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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박재영 지음 / 청년의사 / 2013년 8월
평점 :
1.
'개념'을 가지려면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사회의 많은 현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의료 민영화라는 단어도 그렇다. 민영화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지금의 의료계에서 벌어지거나 의료계에 가해지는 변화들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을텐데, 현재 병원의 이익추구활동이나 지금의 정부가 의료계에 가하는 압박들을 무조건 민영화라고 해석하는 건 오히려 '괴담'이라는 역비판을 불러일으키고만 있지 않은가. 이는 6년전의 촛불과 비슷한 면이 있다. 촛불은 당시 정부의 안하무인격 정책추진과 건강권의 침해에 대한 걱정이 사회 전반의 불안감과 접목되어 폭발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광우병에 대한 걱정과 소문에만 집착을 하였고, 그것은 결국 '괴담유포'라는 역공격을 받으며 언론을 장악한 정권이 촛불을 끄는 효과적 기제로 작용했었다. 우리는 비판과 싸움을 벌여나갈 때, 분명한 파악과 이해를 통한 개념을 가진 후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분명한 이해든 개념이든 간에 이런 것들을 챙겨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뭔가 진중하고 심각한 현상에 직면해있다는 정황을 의미하는 것일테고, 그것은 지금 의료계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목처럼 우리는 병원에서 화가 난다. 그게 환자든 의사든 간에 병원의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은 심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환자들의 불안감, 경제적 부담감, 불만, 그리고 의사들의 답답함, 불안함, 걱정, 짜증이 한데 뭉친 공간인 병원은 다시 바깥에서 흔들어대는 바람에 앞날이 그닥 밝아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본질적인 의료환경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민영화를 강력히 의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의료환경을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그 안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본질적인 의료환경의 개선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급조된 모든 일들의 과정과 결과가 그닥 좋지 않듯, 한국의 의료보험도 그렇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급조되어 만들어진 의료보험은 시작부터가 엉성했던 데다가 적용대상 확대와 더불어 약속했던 수가인상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이에는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서 '먹고사는 일'에 그닥 위기를 느끼지 못했던 선배의사들의 과오도 한 몫했을 것이다. 결국 경제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의료의 포화는 전체 의료시스템의 90% 이상을 민간의료가 책임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무한의 경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고, 근본적인 의료환경 개선 이전에 반드시 해야한다는 명목으로 의약분업을 추진한 일은 역할과 생존의 측면에서 의사들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료환경은 근본적 차원에서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의료의 포화상태와 무한경쟁체제의 사회는 서로 맞물려 의료의 역할을 사회적 근간보다는 각자의 생존과 몫에 시선을 두게 만들었다. 점점 한계적 상황으로 내몰리는 의료는 의협회장의 극단의 행동마저도 불사하게 만들 정도로 정부에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원격의료 운운하며 의료비 절감만을 생각하고 의료재단으로 하여금 온천이나 호텔같은 서비스산업에 손을 대게 함으로서 자본친화를 유도하면서 정말 필요한 수가인상이나 보험적용의 확대에는 애써 외면하는 중이다. 의료는 이제 본질적 활동에의 고민을 떠나 자본의 톱니바퀴가 되어 수익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안에서 의사는 양심적 진료보다는 매출증진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3.
그래도 의료는 변화와 발전을 이어나간다. 의료의 변화는 기술발전의 속도와 더불어 무섭게 변화 중에 있다. 모바일 기기를 통해 내 몸의 이상을 측정하고 병원으로 전송하는 기술을 포함하여, 수술에 필요한 온갖 기구들의 성능과 효율은 개인적으로도 학회에 참석할때마다 그 변화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이다. 몇년 전 참석한 로봇수술학회에서는 수술 중 동맥의 박동을 기계를 통하여 손에 감지할 수 있는 기술도 곧 선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만 듣고 있으면 우리는 기술과 기계를 통해 굳이 힘들여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의료는 손에서 손으로, 그리고 마주하는 시선을 통해 위로와 안정의 감각을 나누는 행위임을 점점 잊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동시에 의료기술의 발전은 자본과 자원에 의존하는 것인 만큼, 우리는 필요하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청진기가 사라지는 일은 놀라운 일이지만, 다시 청진기를 사용해야만 할 때, 우리는 이전만큼의 감각으로 진료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시선을 마주함으로 느낄 수 있던 환자의 외양적 변화 그리고 위안과 믿음을, 모니터를 통해 마주함으로서 그만큼의 공감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무언가에 의존해야하는 발전에 대한 자신감과 만족감은 그만큼 자기 본연의 확신과 믿음을 전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의 의료의 과실에 대처하는 입장과 자세에의 조언이었다. 딱딱한 법을 사이에 두고 말을 최소한으로 아껴가며 고압적이고 긴장한 자세로 문제를 대하는 것이 기존의 통상적인 모습이었다면, 좀 더 솔직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눔으로서 부드럽고 원활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은, 불확실성이 어디에서나 만연하는 의료라는 영역에서 의사와 환자가 이를 뛰어넘은 원만한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현상이다. 대화는 어디에서나 가장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문제해결법이라는 사실은 의료라는 영역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의 장점은 의료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모든 현상의 이면과 본질의 파악에 있어 상당한 객관적 견지를 유지한다는 데 있다. 때로는 제 3자적 시선을 고집함으로서 객관적 판단을 매우 공고화하는데, 이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현상을 정확히 판단하는데 매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만, 의료라는 영역은 매우 복잡하고 시작과 진행이 체계적이지 못한 점이 커서, 객관적으로 현상을 파악하는 데도 분명한 해결책이나 생각해볼 수 있는 해결책은 그닥 많아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에서 좀 아쉬운 점이라면, 한국의료체계에서 대한병원협회라는 존재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심평원이라는 기관의 역할에 대한 객관적 비판이 없다는 점이었다. 의료라는 환경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봉직의라는 입장에서 이 두 집단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부분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이 아쉬움은 좀 크게 다가왔다.
이 책의 내용은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아서 누구나 읽어도 현재 의료의 상황을 매우 가깝게 느낄 수 있다. 동시에 복잡한 구조들을 쉽게 설명해놓아 의사이면서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의료의 세부적인 모습들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통해 타인으로서의 의사와 자신으로서의 의사, 그리고 의료의 본질적 모습을 누구나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회적 역할에 있어 오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여전한 터에 다시한 번 반가운 책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