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역습 - 오만한 지식 사용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
웬델 베리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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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근본을 보기 전에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가는 길은 과연 올바른 길인가 하는 일차적인 의문을 가져본다.  사실 이에 대한 고민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매너리즘과 수동성에 대한 회피의식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인식을 조금 벗어나 제 3자적인 시선과 약간의 근본적 지식이 있다면 답은 금방 나올 수 밖에 없다.  이 사회와 세상이 추구하고 몰아가는 모습은 상당히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이어서 지구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에 인류는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제 그다지 깊은 고민이나 폭넓은 인식이 필요한 깨달음은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내가 사는 곳 어느구석에서부터 또는 지구 어딘가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자멸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시키는 동력인 인간의 지식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끊임없이 파괴하고 순환시켜 만들어내는 문물과 새롭고 신기해보이는 수많은 지식들에 의해 인류는 자멸의 길을 걷고있다면 그것은 무익한 지식이 되지 않을까.  사상가인 저자는 그렇게 말한다.  인류가 지식을 쌓아갈수록 무지함도 함께 쌓인다고 말이다.  우리가 분석하고 전문화시켜 알아만 가는 지식들, 그리고 무언가를 창출하고 이윤을 만들어내려는 사회집단들의 모습은 결국 지식의 독점을 통한 무지의 일반화만 확산시키고, 반드시 추구해야만 하는 개개인과 사회의 인간성은 이윤앞에서 깡그리 무시되는 상황은 서로가 공존해 나갈 수 있는 보편과 일반화된 교류 및 성찰적 상황에서 보면 매우 이기적이며 위험한 모습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나 역시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에 속해있으면서 서양의학이 지니는 이기성과 비인간성에 고민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다른 의학을 배척하면서 첨예한 지식을 독점하게 되며 하나의 지식계급으로 군림하는 모습이 종종 불편할 때가 있다.  의학이 삶속에서 보편화된 모습으로 함께 공존하지 못한 채, 3자적 입장에서 아픈 이들로 하여금 의존을 강요하고 차가운 검사기계와 화학물질의 영향하에 두는 모습이 그다지 인간적이지 못해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하자면 이반 일리히가 말한 지식독점을 통한 계급화를 연관지을 수 있다.  결국 병원이 병을 만들고 학교가 무식을 만들어내며 기술이 무능을 만들어내는 딜레마,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깊어지는 딜레마를 우리는 분업과 분석을 통한 발전된 사회라 부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지금의 모습, 대체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많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알 수 없어 되돌아가 볼 용기도 내지 못하는 이 형국은 깨달아도 걸어나갈 수 밖에 없는 자멸의 길의 본질이 아닐까.




  저자도 결국 근원적 해답을 땅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그는 농사를 짓는다.  땅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어내고 최대한 천천히 성찰하며 얻어내는 것들을 통해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모습을 찾으려 노력한다.  독특한 것은 그는 망가진 자연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호와 보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교란을 통해 서로 영향을 받는 자연적 혼란을 자연 자체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근본적이며 성찰적인 답을 땅에서 찾는 이를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확신에 가까운 답을 얻어낸 기분이랄까..  성찰과 사고의 사소한 차이만 존재할 뿐, 인간과 사회의 삶의 근본을 땅과 성찰, 또는 인문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에는 내가 바라본 모든 이들에게 공통되는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사회에 있어 땅과 인문학은 자연스레 배척되어버린 것들이 아닌가. 




  이 책에 대한 한가지 불만은 해석에 따른 단어의미의 혼동이다. ignorance라는 단어를 '무지'로 해석해 사용했는데, 내용을 읽다보면 단순한 무지의 뜻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순전히 모른다는 뜻과는 다른, 지금의 사회가 풀어가는 지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의 '상대적 모름' 또는 '상대적 무시'의 의미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는 지금 인류가 선천 또는 후천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무식 또는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묘한 차이인데 문맥상에 있어 어떤 어색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근본에의 성찰이 혼동되지는 않는다.  또하나의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 반가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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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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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기만 한 세상을 바라보며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사람들과 현상들을 관통하는 근본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한다.  분노하고 흥분하며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모습들은 단지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자연적 반응으로 납득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감정을 뒤흔드는 일들이 해결이 되면 우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수많은 일들에 감정을 뒤흔들고 다시 평온과 행복을 찾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얼마만큼의 넓이와 깊이의 사유로 가능한 일일까?  



  바다를 내려다본다.  물결은 어떤날은 잔잔했다가도 어떤날은 세찬 파도가 되어 인간의 영역을 덮치곤 한다.  햇살과 마주하여 어느날은 사랑스러운 쪽빛이다가도 깊이를 가늠못할 군청색의 무서움을 만들어내곤 한다.  하지만, 깊은 곳의 바다는 언제나 물때와 지형에 따라 변함없는 모습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보여지는 바다의 변화무쌍한 모습과는 달리 그 내면은 언제나 여일하기만 한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어대는 세상 모든 일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일함, 사유의 깊이와 넓이가 확장되면 우리는 그런 여일함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적이지도 시끄럽지도 않다.  다만, 세상의 격정이 담긴 화살을 맞아 스스로 상처를 입을까 조심할 뿐, 근본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말없이 변화를 모색한다.




  시골교사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일희일비하며 흥분하고 안타까워했던 모든 일들을 넘어, 많은 이야기들과 감정의 기복을 관통하여 내재된 근본을 들추어 바닥에서부터의 성찰을 논한다.  그것은 한 인간만의 생각을 넘어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근본의 이야기이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무형의 폭력을 자행하는 학교의 모습들과,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파괴의 폭력을 일삼는 세상과, 성찰은 존재하지 않은 채 나팔소리만 난무한 소음의 폭력을 넘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근본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한 잔잔한 제안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잔잔하며 덤덤하다.  그러나 국어교사라는 직업과 잘 어울리게 감칠맛나는 글이 어렵지않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녹색평론 독자로서 지은이가 녹색평론에 기고한 글들도 자주 접했지만,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또다른 어떤 힘을 느끼기도 했다.  그 힘은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데 조용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글들은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오래전부터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이 결국엔 땅으로 돌아가 농사를 돌보는 모습을 보며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누군가의 설명이 아닌 스스로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지금은 나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더라도 땅과 땅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의 근본성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도 지은이가 생각하는 근본을 이야기한다.  12세기 베네딕트 성인이 말한 기도와 노동, 성찰과 땅, 그리고 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인문학과 농업..  근본적으로 나 역시 동의한다.  성찰없는 노동은 괴로움과 소외됨일 뿐이고, 노동없는 성찰은 가벼운 입씨름일 뿐이다.  아수라의 근본인 자본의 속성을 멀리하는 성찰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필요한 만큼 얻어내는 삶.  그런 삶들이 모여 감정의 요동과 참담한 파행을 근본에서부터 바로잡는 힘이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결국엔 나 자신의 실천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처지에 직면하게 되지만, 끊임없는 성찰이 스스로의 변화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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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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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토마스 만의 작품들에 대해 뭐라 할 이야기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개인의 시선과 감정의 변화만이 존재하는 예술성만이 가득한 작품안에서 내가 별다른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사회에 대한 시선을 유지하려 애쓰고 비판성을 잃지 않으려 하는 나의 독서습관에 따른 어떤 생소함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역자의 이야기로는 은밀한 사회비판과 파시즘으로 치달았던 독일사회에 저항의 메세지를 남기기도 했다고는 하나 나에겐 형식과 고루함이 가득했던 20세기 초반의 유럽사회, 그것도 나름의 부르주아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던 이들의 감수성 가득한 사적감정의 향연으로밖에 읽혀지지 않았다.



  독일어라는 언어의 특성상 어감이나 느낌자체가 딱딱한 언어로 부드러운 감성을 표현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부드럽고 풍성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문장의 구성과 단어의 나열, 그리고 묘사는 마치 크림을 넣어 깊고 부드러운 맛이 있는 따뜻한 커피와도 같다.  하지만 작품마다의 전개는 분명한 기승전결이 있었고, 결론에 다다라서는 마치 내리막길 또는 반전과도 같은 급격한 전환이 있었는데 비교적 이러한 구성에 충실해있는 모습에는 독일인 특유의 딱딱함과 분명함이 느껴졌다.  아이러니하다고 할까?  고정된 틀 속에 풍부한 감성의 문장과 단어들을 담아내는 토마스 만의 작품들이 말이다.




  사실 여기까지가 내가 이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들인 것 같다.  부르주아성이 짙은 사적 감정의 향연을 일종의 사치까지도 생각하게 되어 읽는 내내 짐짓 불편하기도 했고, 예술성이라는 명목아래 자세히 읽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숨겨진듯한 정황과 감정의 흐름이 너무도 어렵고 불편했다.  문득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작품들 중에는 평론가들을 위한 작품들이 있다고..  물론 토마스 만이 의도적으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 단편들은 결국 '평론가들을 위한 작품'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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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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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문화가 만남으로 어떤 상승효과를 낸다는 것은 사뭇 반가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문화의 충돌은 대개 전쟁이나 갈등을 만들어냈지만, 한 공간에서 개인적인 만남은 대개 가벼운 대립이나 갈등, 반대로는 상승작용을 통한 깊은 친밀함을 만들어내곤 한다.  뉴욕이라는 복잡다단한 공간에서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온전한 한국적 문화를 지니고있다기보다는 척박했던 이민자의 성향이 많이 담겨 조금 다른 느낌의 한인과 전통적 청교도성향의 백인이 만나 일구어내는 어떤 교감은 사뭇 독특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3년전의 뉴욕에 대한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선입견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집 밖을 나서면서부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안감.  혼자 버스를 타고 맨하탄에 가서 거리를 다니며 커피를 마시고 간단한 끼니를 때우며 음반쇼핑을 아무런 무리없이 하는 것과는 무관한 다른 어떤 불안감이었다.  문득 이민자들에 대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들은 이런 막연한 불안감을 어떻게 이겨내며 살고 있었을까 하는 것.  곳곳에 한인타운이 생겨난 이유는 그런 불안감때문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런 불안감을 이겨내며 미국사회의 중하위계급 속에서 억척같이 살아왔던 사람들이 그런 이민자라 생각하면 저자의 한인장모는 상당히 억척스런 여인네였을 것이다.  게다가 한인들에 어울려 살지 않고 독립적인 환경에서 생계를 꾸려갔을 법한 모습은 그 강인함이 어느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그런 억척의 집안에 들어간 청교도집안의 백인사위도 참 재미있어보이지만, 델리를 운영하며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긍정적 변화를 목도하는 모습은 문화에 대한 수용력과 변화에 대한 수긍력이 참 뛰어나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하지만 미국사회에서 백인들의 문화적 우수성을 무조건 긍정한다거나, 백인이 겪은 한인문화라해서 이 때문에 주목받는 한인사회에 대한 관심은 나름 경계한다.  다른 문화안으로 편입하는 이민자들의 사회나 문화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고 문화란 어느곳에서든지 동등하게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기에 문화의 우월주의나 미국이나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한인사회의 생존과 주목이라는 사대주의적 시선은 반드시 배제해야 하지만 이 책의 말미와 홍보에서 언뜻 느껴지는 그런 시선은 내용과는 무관한 어떤 흠이라고 할까? 




  저자의 다른 문화와 다른 삶에 대한 주체적인 수용과 이해는 상당히 본받을 만한 일이다.  물론 현실적인 여건도 작용했겠지만 자신의 문화에서는 그닥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생각의 차이에 있어 나름의 설득을 위한 노력과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한 이해, 그리고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앞에서 속으로 올라오는 짜증을 스스로 억누르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가슴안에 존재하는 넓은 포용력을 느끼게 했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에 대한 기록인 이 책은 델리라는 작은 공간을 중심으로 모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타인의 문화와 삶을 교류하고 이해했던 일종의 성찰과 고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바라는 것은, 저자의 장모집안이 한국인들이라는 데에만 촛점이 맞추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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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루나파크 : 훌쩍 런던에서 살기
홍인혜 지음 / 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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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게 된다면 정말 하고픈 여행의 모습.  어딘가의 시골에서 6개월 정도를 한 집에 머물며 그 집의 식구들과 일을 함께하고 함께 먹으며 그들의 생각, 일상, 재미를 함께 나누어보는 것.  좋다는 어딘가를 돌아다니기 보다는 그렇게 한 곳에서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몸으로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판타지가 다소 가미된 나의 미래의 소망은 그저 미래에 겪을 경험으로만 존재했었다.



  그녀가 기록한 일상은 런던에서였다.  그녀는 여행이라는 표현으로 런던으로 건너갔지만, 그녀가 기록한 것은 여행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철저하다 싶을 정도의 일상, 그 기록에는 런던에서 만난 친구와의 스페인여행기를 빼면 완벽한 타지에서의 일상이다.  집근처의 펍, 시내의 미술관, 가까운 공원, 플랏에서의 생활은 8개월간의 여행이 아닌 일상이었다.  그리고 머물며 느끼는 감정들과 가벼운 성찰은 미래의 내가 원하던 여행을 하며 기록하고 표현하고 싶었던 모습 그 자체였다.  마치 나의 미래를 누군가 먼저 경험하고 와서 기록한 것 같다는 착각, 그리고 누군가 내 머리속을 둘러보고 원하는 바 그대로 실행시켜놓았다는 착각이 드는 듯 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머무는 곳이 런던시내 한복판이라는 점과 생각이 가진 시야와 방법의 차이정도랄까.  사실 나는 이국의 시골에서 함께 땅을 일구거나 몸을 써가며 그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가진 생각과 나의 생각을 비교해보고 싶고 생각의 영역을 깊고 다양하게 구사해보고 싶다.  그래서 한땐 유럽의 포도수확기에 3개월정도 일품팔이 여행을 꿈꾸기도 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좀 더 깊은 생각을 가지고 걷는 꿈을 꾸기도 했다.  여행이 단순히 보고 먹고 느끼는 그런것이라기 보다는 좀 더 육체적이고 성찰적인 방법으로 깊이를 가지는 경험이라는 것을 직접 증명해내고 싶기도 했던 것이다.  조금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아무래도 내가 하고픈 경험을 먼저 겪어낸 한 선배를 만난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선배를 온전히 닮고 싶은 바램이 생긴다.  누군가의 소개로 우연히 집어든 이 책에서 이런 기분과 바램을 가진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과 반가움이었다.




  여행기라는 것이 마냥 이런저런 곳을 소개하고 설명하고 사진을 싣는 것으로 장식됨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진부한 반복일 뿐이다.  동시에 어딘가를 다녀온 자랑과 소개는 있어도 성찰과 진득함은 그다지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 책이 타지에서의 일상을 통한 진정한 여행의 모습과 그 안에서 이루는 느낌과 성찰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수많은 여행기와는 다른 정적인 충만감을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다.  여행을 꿈꾸는 자들,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시길..  설령 목적지가 런던이 아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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