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요약본을 보고 내용을 파악한다면 읽지 않고 내용도 모르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남들과의 대화나 다른 글에서 그 내용이 인용될 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내게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어제 아래의 칼럼을 읽기 전까지는.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5026.html

 

  책을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도구로 여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소설이 킬링 타임의 한 가지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빨리 읽어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그리고 남들은 그 소설의 '내용' 을 통해 무엇을 얻어냈는지를 나의 생각과 비교하는 것이 내가 소설을 읽는 목적이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비문학을 주로 읽었고 자기계발서보다는 전문서적을 주로 읽었다.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속독 하고 나서 그 책이 나의 것이 되었다는 자만심을 즐겼고, 속독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궁리하기에 이르렀다. 요약본 또는 리뷰만을 읽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만화로 토지를 읽는 다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음을 칼럼을 읽으며 깨달았다. "독서의 목적은 생각하는 긴장과 외로움, 쾌락을 얻기 위해서다" . 그렇다. 나도 소설을 읽으며 이러한 감정을 느꼈으나 이를 무시하였고 내용만을 기억했던 것이다.

 

이번에 카프카의 "변신" 을 읽었다. 내용은 단순할지 모른다. 어느날 깨어나보니 화자는 바퀴벌레로 변해있었고, 가족들의 외면을 받으며 쓸쓸히 죽어갔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었던 가족들은 어느새 주인공이 없는 일상에 적응하여 별탈없이 살게 되었다는 단순한 플롯이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눈 앞에 보일 듯 생동감있게 표현된 사람 크기만한 바퀴벌레였다. 카프카의 세심한 묘사 덕분에 나는 그 벌레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상상할 수 있었고, 어느새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그가 느낀 절망감과 외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고, 생에 대한 의지를 잃어가는 모습에 눈물 흘릴 수 있었다. 이는 소설의 줄거리라는 정보 습득을 넘어선 작가와의 대화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5-01-2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약본을 주로 읽는 습관이 가장 위험한 이유가 요약본의 내용을 완전히 읽고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책(요약본 위주로)을 빨리 읽게 되면 왠지 잘 아는 듯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신감을 그대로 방치하면 알맹이가 없는 지적 허영심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공부 2015-01-2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보고 다시 생각하니 그러한 착각을 하고 있던 것 같네요. 자신감보다는 자만심에 빠질때가 종종 있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