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속으로 걸어가요

가을을 만났어요 - 가을 ㅣ 계절 그림책
한수임 그림, 이미애 글 / 보림 / 2002년 9월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더니 몇일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더니 이젠 긴팔옷에 절로 손이 가는 날씨가 되었네요.
이런 가을의 초입에 만난 보림의 "가을을 만났어요"
전체적으로 갈색톤의 고즈넉한 그림에 예쁜 의성어 의태어들이 가득한 예쁜 그림책입니다.

 

이 책은 작가가 책 서두에서 밝혔듯이 시골의 "가슴 저리게 눈부시고 아름다운 가을" 에 대한 책입니다.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냈고 현재도 지방의 소읍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래서 이 책에 나타난 가을이 더 정겹고 반갑습니다.
그래서 처음 책을 받고 아이들을 저만치 젖혀두고 혼자서 유년시절의 기억에 잠겨 책을 읽었습니다. 
바스락거리는 감잎과 고추잠자리의 향연, 메뚜기와 방아깨비, 풀꽃들 그리고 홍시며 잘 익어서 벌어진 밤송이며 제겐 너무나 익숙한 가을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동화책이지만 유년기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엄마, 아빠가 함께 읽어도 좋을 동화책입니다.

 

이 책에는 참 예쁜 표현들이 많습니다. ...햇살에 후끈 단 모과냄새, 바람을 꺼내더니 들판에 휘리릭 펼쳐냈어요, 가을은 밭둑에 앉아서 작은 풀꽃 하나하나에 은은한 향기를 묻혀주었어요, 덜익은 사과알들 가을이 발갛게 발갛게 익혀주었어요, 밤나무 아래를 지나자 가을을 반기며 후드득후드득 알밤이 떨어졌어요 ....등등
모과냄새며 가을들판의 풀꽃 그리고 잘익은 과일들은 저렇게 예쁘게 표현해내다니 ,,,
그런 힘을 가지신 작가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우리아이들도 이렇게 예쁜 말들을 쏟아낼수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바램은 엄마의 지나친 욕심일까요.

 

아이는 책 내용보다 자신이 익히 보아왔던 가을의 모습이 더 정겨운가 봅니다.
갈색톤의 희미한 그림(적어도 아이눈에는)속에서 시골집 앞마당의 빨갛게 익은 고추며, 알전구, 잘익어 쩌억 벌어진 밤이며 빠알간 홍시를 보며 반가워합니다.
사실 시댁이 시골인지라 우리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보다는 이 책이 훨씬 더 익숙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벌써부터 밤줍고 감따며 고구마 캐는 저만의 가을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손주를 위해 훨씬 감나무며 밤나무를 훨씬 더 정성스럽게 돌보신 시부모님 덕분에 아이들의 가을이 훨씬 더 알찰것 같습니다.
책을 펼쳐들고 책속에 나오는 가을을 찾아 가을들판이며 시골집 앞마당을 찾아보는것도 아이에게 좋은 가을추억일것 같습니다.
도시의 아이들이라면 엄마의 유년의 가을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면 도심속의 가을을 찾아나서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문득 생각해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을은 어떤 의미일지...어른들은 보통 따뜻한 커피가 그립고, 잊었던 엣추억들이 떠오르고, 고독하고, 쓸쓸한 가을인데
우리아이들에게 가을은...
아마 어린이집 체험프로그램 "고구마캐기"가 아닐까요..
하긴 아이들에게 가을이 어떤 의미일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을속에서 그냥 느끼고 함께 하는것이 중요하죠..

 

좋은 동화책 한권 덕분에 유년기의 아름다운 기억을 되새겨보고 우리아이들에게도 미리 가을을 선사해줄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을 파하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스케치북과 고운빛깔의 색종이를 꺼내 가을을 펼쳐보아야 겠습니다.
요즘의 동화책은 왜 이렇게 예쁘고 좋은지 ....
제 어린시절에도 이렇게 예쁘고 좋은 동화책이 있었을텐데 그때는 미처 읽지 못했던 좋은 동화책들을 만나니 제가 동심으로 돌아가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