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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책표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르뽀와 판타지의 짬뽕같은 오묘한 느낌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공을 들인 정품이 아니라 오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기획상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고 싶어 뒤적거리게 하는 힘이 있다고나 할까.

표지하단에는 해질녘 머리에 큰 짐을 머리에 인 어른 둘과 생각없이 곁을 따르는 두 아이.

뿌연 하늘에는 저자들의 이름과 이름이 직선으로 이어져있다. 그것은 깊게 헤아리지 않아도 별자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큰 여백에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들, 지는 해의 빛은 한없이 부드럽고 넓게 펼쳐진 하늘엔 시인들의 별자리가 선명하다. 별을 보고 예수를 찾아갔던 동방박사들처럼 시인들도 독자들에게 삶의 궁극으로 이르는 길을 보여주겠다는 뜻인가?

실제로 이 책은 2006년 <사랑은 다 그렇다>로 나왔다가 제목과 구성을 바꾸어 나온 책이라는 것을 먼저 알려주어야겠다. 다른 책인줄 알고 새로 샀다가 낭패당하는 일 없으시도록!

 

이 책은 세 명의 시인과 한 명의 평론가가 쓴 산문집이다. 자신들의 삶에 길이길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들을 끌어올려 그들만의 고유한 잔에 담아 우리에게 들이밀고 있다. 할 말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산문을 통하여 자신의 담백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뽐내기도 한다.

 

정호승- 기다린다는 것은 오지 않는단 것을..

 

안도현의 <고래를 기다리며>는 정호승 시인에게 젊은 시절 품었던'바다를 바라보며 국어를 가르치는 고래 같은 인간’에의 소망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을 기다리는 일이란 오래 지속되면 본질을 망각하고 기다림을 상상으로 채우게 되지 않는가.

오지 않아도 기다리는 일, 그것에서 시인은 자유와 민주를 꿈꾸기도 했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무엇을 기다려야하는가에 대한 끈질긴 물음이며 그 질문과 보기를 다음 세대에 왕관처럼 성스럽게 넘겨주는 일이 되겠다. 그러나 세상의 역설적인 일들을 모두 시인에게만 맡겨둔다면 우리 민간인들의 현실은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또한, 시인은 신경림의 <봄날>을 보고 어렸을 적 경주에 계신 외할머니댁 방문했을 때를 떠올린다. 반가움이 결여된 채 표정 없이 맞아주시던 할머니가 몹시 서운했다한다. 그러나 새벽에 소변을 보러 마당을 질러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 진눈깨비 속에서도 시인이 잠든 방 아궁이 앞에서 군불을 때는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곤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말없이 새벽에 일어나 손자가 자는 방에 군불을 지피는 것이 바로 사랑의 원형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이 '사랑의 군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안도현 - 그릴 수 없는 마음의 빛깔까지도

 

“그 고색창연한 사랑법이 때로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없던 다리를 놓고, 이미 놓인 다리를 더 튼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시 한 줄로 여인을 낚아 본 적 있는 안도현시인의 사랑법이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연애법은 아니겠지만 시 한 줄의 인용으로 마음이 엮일 수 있다면 그 사랑은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리라. 그의 충고에 의하면 연애시절 시 한 편 읽어주지 않는 남자, 서점에서 시집을 읽다가 다리가 저려본 적 없는 여자, 모두 버리란다. 흠.

 그리고 김현승 시인의 <절대고독>을 보고 하도 외우고 따라하다가 지천명에 깨달은 것,

그것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였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절대고독보다 못한 만남들을 지속하는 현대인들,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강탈당하면서도 SNS가 해법인 것처럼 매달려 사는 현대인들.

그것을 인간관계라 느끼는 헛된 망상에 침을 뱉는다. 시여!

 

장석남 - 우리의 희망이 꽃피는 절망일지라도

 

장석남 시인의 <안부>에 서린 곱고 여성스럽고 소극적인 정서를 나는 좋아한다. 그 고움에 대한 기억은 정현종 시인의 <나는 별아저씨>에 안착하게 한다. 별은 시인과 육친적 관계라나.

모든 낯선 것들을 인척지간으로 만들어놓는 정현종 시인의 탁월한 복속력에서 시인 또한 자신을 별 조카, 바람 조카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별, 바람, 침묵의 못된 족보를 시학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오규원 시인의 <분식집에서>를 읽고는 '낙태를 하고 분식집에 가서 라면을 먹어보라'는 권유형 명령을 한다. 여기에서 낙태란 세상에서 모든 자발성의 상실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 ‘꽃 피는 절망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는 모르나 그것은 신의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을 한다.'

천상병의 <강물>에서 만난 소년의 눈물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울음이 순리에 대한 발견의 서글픔인지, 순명에 대한 발견이 설움인지, 혹 사랑의 문제도 그러한지 묻고 또 묻는다.

 

난해한 문제와 그로테스크한 답으로 만나는 시에서 벗어날 때 시는 힘이 있어진다.

시의 해석에 있어서 공식이 없다는데 제발 정답 같은 건 제시하지도 요구하지도 말라.

시는 이해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느끼기 위한 것이므로.

시.

그것은 자신만의 상처로 데려다주는 위대한 안내자,

통증만이 자신의 정체성이다.

 

p.s. 시의 전문을 다 알지 못했던 나는 원 싯귀와 시인의 느낌의 경계가 느슨해서 조금 혼란스웠다.맨끝에 붙어있는 참고시는 좀 불친절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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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은 다 그렇다'는 고백들
    from PAPERAND by G 2012-10-21 01:28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세계로 여행한다.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낯선 세계. 그 속에서는 '나'가 아닌 '우리'의 말들이 살아나고, 그 말들은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실어 나른다. 다시 돌아오는 무엇을 기다리거나 그러다가 지쳐 쓰러지거나 그 모두 사랑에 빠졌을 때 겪어내야 할 몫이다. 덧없는 사랑의 찌꺼기 같은, 온갖 그리움과 절망과 슬픔은 삶의 보석이 된다. 시인에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눈과 영혼이 있다. 그래서 시인들의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