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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삶과 죽음을 넘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설영환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5월
평점 :

이 책은 2차 대전 당시 생텍쥐베리가 남긴 글, 연설, 편지 등을 모은 책이다. 2차 대전 상황을 직면하여 생텍쥐베리가 스스로에게, 지인들에게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고, 전쟁에 대한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대중 연설을 한 글도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올해 어린 왕자를 감명깊게 봤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읽은 어린 왕자, 어리둥절했던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어린 왕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교만, 위선, 욕망을 위한 욕망 등 어른의 시선이 아닌, 때묻지 않은 마음을 가진 어린 아이 같은 고귀한 존재가 어린 왕자이다. 어린 왕자는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진리를 찾으려는 구도자이다. 책을 다 읽고도 미처 다 읽지 못한 행간이 너무 많다고 느꼈고, 생텍쥐베리가 어떤 의미를 담아 이 인상 깊은 동화를 썻는지 궁금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2차 대전 당시의 프랑스 인 버전의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다. 대신 좀 더 가혹하고 실제적인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생텍쥐베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2차 대전은 독일인들의 팽창을 위한 팽창이다. 이 끝없는 욕망은 다른 나라, 많은 사람을 짓밟으며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은 세계의 평화와 인간의 자유를 위해 인류를 위한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된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생텍쥐베리는 전장의 최전방에 나서게 된다. 자신이 소중한 재원이며 나이도 많으므로 후방의 안전한 임무를 맡기려고 하는데도 고집을 부려 최전방에 나가게 해달라고 한다. 또한 미국의 전쟁 개입과 원조도 촉구한다. 독일의 끝없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다.
전쟁의 야만성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반대하지만, 이를 위하여 전장의 최전방에 선 사나이. 이 모순 속에서 그는 괴로워한다. 히틀러와 독일 사람들의 무자비한 팽창 욕구는 어린 왕자에게 이해될 수 없는 세상의 해악이다. 이는 바오밥나무와 같아서 내버려두면 끝을 모르고 자라나 자신이 뿌리내린 행성조차도 파괴하게 될 것이다. 행성이 파괴되면 아름다운 석양, 장미, 활화산과 사화산,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 바오밥나무를 어떻게든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그의 눈에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오밥나무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대응은 너무도 제각각이다. 다른 나라의 일이니 개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나라만 침략을 당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전쟁을 피하고 싶어서 눈가리고 아웅인 휴전협정을 맺기도 한다.

어린 왕자와 같은 생텍쥐베리의 순수함과 고집은 전쟁이 아닌 출판사와의 대화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출판사에서 마감 기일을 둔 것에 대한 불합리함을 장문의 편지로서 설명을 한다. 그가 쓴 글 중 비중있게 회자된 책은 모두 25번 이상 다시 쓴 것이다. 시간이 가며 그 자신이 좀 더 경험이 있는 사람이 될수록, 글이 점점 다듬어질수록 좀 더 좋은 글이 나온다. 그의 글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더라도 더 좋은 글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따라서 마감 기한을 정하는 것은 글의 완성도를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한다. 마감 기한은 저자, 출판사가 함께 작업을 해야 하므로 꼭 필요한 약속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제약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읽기 쉽지 않았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생텍쥐베리의 글을 쓰는 스타일이 익숙지 않은지,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다. 몇 번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 좀 많았다. 또한 글의 이해를 위해 시대, 문화적 배경에 대한 주석이 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문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은 이해되는 부분을 통해 적당히 짐작하며 넘어가야 했다.
이 책을 통해서 본 생텍쥐베리는 자유와 진정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병마와 고통과 싸우며 쟁취하는데 앞장섰다. 자신의 생각을 글과 말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여 행동을 함께 하자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궁금함을 풀기 위해 온 우주를 한 바퀴 돌고, 뱀에 물려 자살하는 것까지 감행하는(읽는 동안은 감성적인 느낌이었지만, 어린 왕자 터프한 행동파였네!) 어린 왕자를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생텍쥐베리는 자신의 글과 삶이 일치하는 순수한 행동가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