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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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서술자가 처한 시대적 상황, 서술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서술자가 잘 몰랐거나, 알았어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부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미술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렸던 여성들이 아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곤충과 독식물에 대한 열정으로 17세기에 수리남이라는 열대 지방까지 가서 신개념의 생물학책을 편찬하였다. 로자 보뇌르는 동물 그림에 특출나서 그녀 이후의 동물 그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카린 라르손은 북유럽풍 집 인테리어를 만든 사람이다. 로즈 배르탱은 옷을 만드는 일을 단순 노동에서 패션으로 격상시켜 현재의 고급 브랜드의 모태가 된 사람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한 획을 긋고, 새로운 장르를 만들다시피한 여성도 사후에는 역사 속에서 증발되어 버렸던 것이다.

남성들의 세계를 뚫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인기있었던 작가마저도 사후에는 역사 속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 된다. 앙겔리카 카우프만, 앙귀솔라 소포니스바는 상류계급 출신으로, 여러 왕실과 귀족에게 주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교계에서도 인기있던 여성들이었다. 이런 두 사람은 우리 눈에도 익숙한 유명한 작품도 여러 점 남겼으며, 화가 계급 여성 작가들보다 기록도 단연 많이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조차도 미술사에 제대로 언급이 되지 않고, 생소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그나마 위에 언급된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사람이거나, 상류층 출신이라서 힘들게 살지 않은 사람들이다. 마리에타 로부스티는 아버지의 반대로 왕실 화가 제의를 거절해야 했고, 결혼도 계속 아버지 공방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30세에 해야 했다. 데 로시와 유디트 레이스테르는 뛰어난 재능과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미술가였지만, 여자의 작품은 가격이 떨어지므로 스승이나 남자 가족의 이름으로 작품을 남겨야 했다.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알려진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가려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젠틸레스키는 17세 때 그림 선생에게 강간을 당했다. 하지만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문을 비롯한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과거의 여성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남성들의 그늘이 필수였으며, 그 대가로 부당한 대우를 겪어야만했다.

위 여성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동시대 다른 여성들처럼 살았다면 고생을 덜 하며 좀 더 편하게 살았을 것이다.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이 비난을 피할 수 있었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든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그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의 개척자였던 그녀들의 노력 덕분에 현대 여성들은 반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과 그 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많은 여성들의 노력에 감사한다. 내가 배우고, 직업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들 덕분이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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