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니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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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는 버지니아 울프 특유의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는 서술로 되어 있는 책이다. 이 사고 방식은 언제 봐도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동시에 여성적인 차분함을 잘 드러내주어 품위있고 지적인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 책은 전쟁을 막는 법을 물어보는 편지에 대한 답장 형식으로 시작한다. 이 편지에 대한 답을 적어가다가, 편지를 받는 사람이 받을 생각에 대해 다시 답을 하다가, 맥락의 필요에 따라 옆에 놓인 다른 편지에 대답을 하는 식이다.

전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전쟁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남성 중심의 현대 가부장적 세계의 힘과 돈의 논리에 따른 탐욕이 그 원인이다. 이에 대해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남성들의 세계에서 독립하는 것이다. 그래야 기존의 남성이 만들어놓은 세계의 법칙과 다른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자신의 목소리는 어떻게 낼 수 있는가? 스스로 독립하고, 실제 세계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과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교육과 스스로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재적인 문제점이 있다. 여성들을 위한 교육의 문이 매우 좁고, 교육을 받고 나왔더라고 하도 적정한 급여를 지급하는 직장이 없다. 여성의 교육과 직업 환경 개선을 위한 기부금을 낼 돈은 있지만 여기에는 조건을 붙이고 싶다. 기존의 학교와 사회 같은 서열과 투쟁 위주의 교육은 지양한다. 실제적이고 평화지향적인 교육을 원한다. 여성들은 이를 기치로 자신이 사회적으로 처한 환경을 개선시키고, 전쟁의 야만성을 인식하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목소리가 되어 세계에서 전쟁을 그만둘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평화적인 힘이 된다.

책이 나에게는 어려워서 내가 이해한 바는 위와 같다. 몇 십여년 전에 씌인 책이라 현재와는 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당시와 비교하면 여성의 교육기회와 근무환경은 남성과 거의 동일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아직까지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 여성이 누리는 자유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고, 몇십여년 전 수 많은 사람들의 분투와 눈물로 이루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유는 어디에 써야 하는가? 남녀를 떠나 인간이 저지르는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행태를 지양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써야 한다. 3기니라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이 사회의 문제와 근원과 나아갈 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통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더라도 버지니아 울프의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녀만의 사유나 시선, 발걸음을 따라 옮겨가는 구성, 놀라운 통찰력, 차분한 어조에서 풍기는 지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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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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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는 인류가 너무나 혹독한 역사를 지나쳐 왔다. 현대 과학이 만든 무기는 1, 2차 대전, 공산주의 혁명으로 지난 세기에 전쟁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 인류사의 가슴 아픈 기억, 그 중에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것이 킬링 필드이다.

주인공은 아주 화목하고 부유한 집안(저자는 중산층이라 표현했으나 지금 기준으로도 부유한 듯이 보여 이렇게 쓴다)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5살 정도의 어린 나이임에도 상당히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다른 가족들의 기억을 참고한 것을 감안해도 그 때 당시의 보고 들은 내용을 정말 잘 기억하는 것 같아서 놀랍다). 이 때 난데없이 폴 포츠의 도시민들 강제 시골 이주, 자기에게 반기를 들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인이 시작된다.

어린 아이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서술하는 이 책은 아주 느끼는 바가 크다. 인류사의 한 장을 장식할 만하다. 이 책을 보며 공산주의가 정말 썪어 빠진 쓰레기보다 못한 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다른 재능, 다른 생각을 무시하고,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지도자가 잘못된 신념으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모두가 불행하고, 모두가 힘들게 일해도 배고프다. 배가 부르는 건 지도자 집단 일부이다. 사람을 낭비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나라가 장기적으로 유지가 되겠는가? 공산주의는 국가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의 가족이 이유없이 죽어나가고, 어린 글쓴이와 형제자매가 고생을 하는 모습은 눈물없이는 볼 수가 없다. 폴 포츠 아니면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았을 사람들이 비참한 노동과 공포에 시달리다 이유없이 개죽음을 당하는 모습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시체조차 못 찾았다는 사실도 슬프다. 이 비극은 글쓴이의 행복한 어린 시절과 대비되어 더욱 처참하다. 다행히 글쓴이는 7남매 중 6째로 돌봐주는 사람이 많았고, 하늘의 도움도 있어서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렇지 못했던 200만 명의 사람들 대신하여 남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죽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 올 수 없고, 저자가 잃어버린 것은 다시 되찾을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일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지도자란 이름을 쓰고 사리사욕을 위해 사람들을 착취하고, 비참한 인생을 양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슬픔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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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출산 - 현대 자연주의 출산의 바이블
그랜틀리 딕리드 지음, 정환욱 옮김 / 자연스러운탄생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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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출산에는 흔히 두려움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걸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질문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사회이다. 우리는 대중 매체나 지인들을 통해 출산의 끔찍함에 대해 많은 것들을 보고 들었다. 용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출산하는 장면,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온다는 등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보고 들었을 만큼 흔하다. 왜 출산이 두렵냐니,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같다.

영국의 산과의사 그랜틀리 딕리드의 두려움 없는 출산이라는 자연주의 출산의 고전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출산은 일상과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다. 이 책이 말하는 출산에서는 산모의 자신감과 기분이 중요시 된다. 저자는 문명화되지 않은 곳에서 통증없이 분만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주입된 이미지, 의료진의 출산보다는 효율을 추구하는 태도 등은 산모에게 긴장감을 더하고, 산통은 고통스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교감신경이 높아지면 자궁으로 혈류량이 감소하고, 이는 진통을 심하게 하고 태아를 위험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연주의 출산은 놀랍게도 인간적이다. 산전에 산모에게 출산에 대해 설명하고, 충분히 안심시킨다. 진통할 때에도 산모가 원한다면 원하는 차를 마시기도 하고, 의사는 옆에서 밝고 친근한 태도로 산모를 안심시키고 도와준다. 진통제는 옆에 구비되어 있고, 진통제의 사용은 의료진뿐만 아니라 산모의 의견을 더해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이렇게 출산 과정을 거치면 놀랍게도 통증이 없는 경우도 있고, 참을만하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출산은 산모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성함,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태아와의 특별한 교감을 할 수 있게 된다.

출산이 더 없이 인간적이고, 일상적이고, 평화롭게 묘사되는 부분은 가히 혁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은 생사고비를 넘나들고, 몸이 망가지고, 많이 힘든 일이 아니었던가? 자연주의 출산은 진통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출산의 신성함과 즐거움 또한 되찾아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료 업무의 편의, 관행 때문에 산모와 아이가 출산에서 뒷전이 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너무나 시대를 앞서나가고 있다. 당장은 보편적으로 적용이 어렵더라도, 점점 이 책과 같은 방향으로 출산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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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갓 - 그 의사는 왜 병원에서 몸을 던졌을까?
사무엘 셈 지음, 정회성 옮김, 남궁인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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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병원을 갈 때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갈까? 내가 어디가 아픈지 의사 선생님께서 정확히 진단해주고, 잘 치료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간다. 환자가 보고 기대하는 의료의 모습과, 의사인 본인이 보고 겪는 의료의 모습도 같을까?

하우스 오브 갓의 배경은 1970년 대 동명의 미국의 대형 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이 인턴이라 책 속의 사건은 대부분 병원 안에서 일어나고, 그 외의 사건도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진행되므로 책을 읽으며 시대적인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우스 오브 갓에는 요양말고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는 고령의 환자들이 요양원에 베드가 모자란다거나, 개인 병원 의사가 수익을 올리고 싶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입원을 한다. 이러한 환자들에게는 병원의 검사나 치료가 오히려 생명을 당길 뿐이다. 이러한 고령의 환자들은 병원에서 통칭 고머라고 불린다. 이들에게 최선의 치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 아무 치료도 하지 않은 환자들의 예후가 가장 좋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펼치는 레지던트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한다. 의사의 개인적인 흥미, 병원의 영리적인 목적에 따라 이 환자들은 필요도 없는 검사를 받고, 합병증으로 죽어간다. 현재에도 없다고 할 수 없는 의료의 한 단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러한 혼란의 최전선에는 인턴들이 서 있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고머는 인턴들의 몫이다. 의사가 되자마자, 환자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환자와 대면하게 된다. 자신들이 맡은 생명에 대한 중압감에 더해 과중한 업무는 덤이다.

의사가 되기 전에 했던 기대와 너무도 다른 모습, 의료의 비뚤어진 작태 속에서 인턴들의 삶은 하나하나 망가져 간다. 부인과 여자 친구, 다른 인턴과의 우정도 우주 밖의 일인 듯 희미해져간다. 병원에서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작태 하나하나가 인턴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힌다. 인턴들은 간호사들과의 성적인 관계, 환자들의 죽음 등에 매달리기도 하고, 정신병, 죽음 등으로 병원을 떠나기도 한다. 이것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젊고 유능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괴로워하는 인턴들을 보며 끝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을 위시한 동료 인턴들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찾고 인간성을 되찾을 것인가? 주위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개인적인 노력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하우스 오브 갓에서 괴로움은 과거사가 되어 나쁘지 않았던 경험이 된다. 그 때의 경험으로 자신이 원하는 분과를 선택하기도 한다. 1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자살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게 된다.

소설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참으로 현실적인 소설이다. 처음 의사가 되어 의료의 본 모습을 처음 대하게 되는 인턴의 시점을 통해 의료업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무대 뒤 편의 피와 땀을 보여주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속한 세계의 소설판이 될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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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수기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39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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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러시아의 주민 60%농노라는 계층에 소속되어, 주인에게 예속된 재산이며 러시아 생산의 기반을 받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인터넷에 떠도는 러시아 짤을 생각하면 참 어울리지 않는 과거사다. 곰도 두려워하지 않고, 맘에 들지 않을 때는 주저없이 주먹으로 맞서는 체격이 큰 사람들의 나라 아니었나?) 과거 이들은 사람 이하의 무엇으로 취급받는 존재였다고 한다. 농노의 역사적 성립 배경은 잘 알지 못하나, 인종적으로 아주 다른 피정복민급으로 대우받지 않았나 싶다.

사냥꾼의 수기는 아름답고 서정적이면서, 아주 혁명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소설에 속하나 나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역사적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기를 읽는 것처럼 인물의 모습이 개성있고 생생하게 전달된다. 장삼이사처럼 살다가 간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가진 미덕과 삶의 방식은 뇌리에 생생하게 박히며 감동을 준다. 천한 농노의 신분이며,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아주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주어진 상황을 전혀 개의치 않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재능이나 지혜로 살아가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든다. 농노라는 신분에서 되려 인간으로서 그들의 존엄성이 드러난다. 이들을 순수하게 작가가 창작했다기 보다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책을 농노를 해방시킨 러시아 황제가 여러번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내게는 역사적인 기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노와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책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인간성과 지성, 재능을 보여주는 인간 군상이 아주 매력적이다. 주인공이 사냥을 다니며 자연을 마주하는 모습도 눈 앞에 그릴 듯이 생생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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