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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존 에버라드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2015-12-23
요 근래 본 책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 시험기간에 언기도에서 하릴없이 돌아다니다가 발견하자마자 바로 꽂혀서 낙찰 !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온 영국 외교관이 남한 사람들보다 북한에 대해 더 잘 알고 평양에서 거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다.
처음에 책을 집어들 때는 아무래도 외국인 입장에서 평양이라는 북한의 대외 홍보용 꾸며진 도시를 보는 것이므로 북한 특권층의 좋은 면에
대해서만 서술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저자인 존 에버라드라는 분 성격이 참 용감하시다. 자전거를 타고 정말 평양 근교 이 곳 저 곳을 다 돌아다니셨더라.
허락 안 받고 여행할 수 있는 경계를 자전거타고 우습게 넘어가는 것은 정말 예사일이며 업무 외 남는 시간에는 정말 구석구석을 놀러다니시는
데 시간을 다 보낸 듯 하다.
북한 사람들과 위험한 대화도 진행하시고 개구리 장마당 같은 불법 비공식 시장도 구경하고 금지된 지하철 탑승도 하고
본인 말마따나 북한에서 정리되어 있는 본인 관련 서류철이 꽤나 두둑할 듯...
하여튼 책 읽으면서 의외로 내 생각보다 북한, 특히 평양이 훨씬 더 열악하고 가난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평양 사는 사람들이 북한 내의 소수의 소위 금수저들로 남한 중산층 생활 정도는 유지하지 않을까 했는데
평양에서도 정말 극소수만이 금지된 도시였나? 바리케이트로 가려진 구역에서 사는데 그나마도 전기 정전은 흔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그 외 평양의 비특권층 일반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마저 그런 힘겨운 상황이란게 정말
충격적이었다...
나는 사회주의란 체제를 정말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었나 보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평양과 주요 도시만인 듯...) 국가에서 식량이
공급되고
보통 사람들이 일하고 받는 월급은 정말 형식적으로 소액이거나 아예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몇 년전까지는 정말 시장이라는 구조
자체가 불법이었다고 한다.
수업 들으면서 사회주의는 시장 반대하고 이런 걸 달달 외우면서도 실제로 현실과는 맞물려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중국도 시장이 생긴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도 충격... 나의 무식함에 충격의 도가니였다...
김일성 사후와 맞물린 90년대 기근으로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 세뇌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중간에 책 내용 중에서 시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데려다가 시장 뒷골목에서 정치 교육을 시키는 걸 목격하는 장면이 있었다. 역시나 난 정치교육, 세뇌 이런 걸 이론상으로만 생각해봐서
실제로도, 지금도 주기적으로 전 국민 대상으로 이뤄진다는게 매우 놀라웠다. 북한의 처음부터 잘못세워졌다는 기틀이 흔들거리면서
외부로부터 세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들어와서 실제로 평양 주민 중에 그러한 정치 교육 내용에 믿거나 열광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전 인생에 걸쳐서 시행한지라 정부(정확히는 개인 김씨 일가 독재자들)과 국가를 구분을 못 한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완전한 딴 세상같은 그런 국가가 존재한다는게 새삼 신기하고 놀랍다.
자발적으로 김일성 광장 동상 근처 계단을 청소하는 사람들 등 책 속 북한 모습은 아무리 상상해보려도 막상 현실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농사는 화학비료공장이나 농기계를 가동할 전력이나 에너지가 부족하여 거의 조선시대 방식으로 이루어 진다고 하더라.
내가 그동안 북한을 과대평가한건가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못 사는 주민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뒷 부분에서는 저자가 다양한 북한 관련 저서를 읽고 평양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관계나 문제, 해결방안들을
분석하는데
이 부분은 정말 강의 자료로 써도 흠없을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도 싶고 기본지식 쌓는데 딱 좋다.
생각보다 북한은 지금 불안불안한 상황이고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들로 앞으로 오랫동안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북한을 유지시키는 지지대가 국민들과 외부 세계와의 단절이라서 기근이나 허약한 기반시설들을 지원해줄 NGO나 국제기구의 도움은
북한이 외부 세계의 지원을 받는 허약한 국가임을 북한민족이 우월한 민족이 아님을,
사실은 외부 세계가 북한을 우러러보고 관계를 맺고 싶어서 안달난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라 마냥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은 자립이 불가능한 상태고 외부의 지원없이는 오래 버티기가 힘든데 계속 거부하다가는
굶주린 북한 국민들이 결국은 들고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북한의 역사깊은 대처방법이 바로 '뻔뻔하게
들이밀기'.
북한이 설립된 4,50년대부터 소련과 중국에서 많은 원조와 도움을 받았지만 북한은 큰 감사를 표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받고 부족해지면 뻔뻔하게 더 요구했단다. 북한의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있는 것이 대단한 특권인 마냥.
알면 알수록 북한은 참 이상한 국가인 듯 하다. 하여튼 읽으면서 북한에 대해 모르던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위기의 상황에서 소련에게 버림받은 후로는 대차게 삐졌는지 스탈린-레닌주의 찬양도 멎었고 괴상하게 융합한 주체사상을 밀고
나간다고 한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자유와 평등의 권리는 물론 의식주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생존권이 위태로운 북한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통일은 당연히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통일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이기적이지만 진심으로 통일을 원한다고는 할 수 없다.
동독-서독 통일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북한-남한의 경제적 차이는 수십 배에 달할 정도로 크고
정치적 이해관계나 북한의 부실한 기반 시설이나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정말 오랜기간동안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도 한국의 발전은 매우
후퇴될 것이다.
지금 당장 한국 상황도 나름 명문대라 불리는 연대생인 나는 졸업 이후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통일
세대는 정말 모든 고생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기적이게도 나는 늘 마음 속으로 통일이 되어도 내 세대만 아니었으면하고 굳게 생각해왔었다.
그래서 북한의 한 층 더 근접한 생활에 대해 읽으면서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너무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북한의 핵 개발 관련한 문제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사안인 듯 하다.
북한 관련 서적 몇 권 더 찾아 읽고 싶어졌다. 외교관, 참 힘들어보이면서도 보람차고 멋있어 보이는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