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뒷모습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2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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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른 이들이 쓴 다양한 글이 보고 싶어졌다. 마침 다양한 사물에 대해서 글을 쓴 사물의 뒷모습을 만난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다니, 반성과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사, 연필, 새,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글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가냐는 것인데 이건 정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다.

현대문학에 수록된 에세이들을 모아 엮은 '사물의 뒷모습'은 하나의 사물이 보여주는 이미지적 영감과 문학적 고찰을 동시에 담고 있다. 저자가 미술가이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겠지만, 글보다는 그림이 더 신기하고 매력적인 책이긴 하다.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 이 책의 글과 그림은 하나의 사물에 대해 다양한 영감과 상상력의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비슷한 작품으로 시인들이 자신이 애정하는 사물들에 대한 에세이를 쓴 당신의 사물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없어지면 없는 대로 살고. 자꾸 달아나는 것들을 달아나도록 놔두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상자와 서랍을 더 많이 만들어서 그들을 그 안에 가두기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수도승들의 단정한 생활을 따라 해봐야 한다. 때가 되면 부르지 않아도 어느새 피는 꽃들처럼 사라진 것들은 언젠가 다시 나타날 것이니, 지금은 어지러운 책상 위를 깨끗이 치우고 언제 쓸지 모르는 잡동사니들을 내다 버릴 시간, 내가 먼저 그들로부터 달아나야 할 시간이다.

물건들 중에서

달아나는 사물들이라니, 정말 우리집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발이 달린듯 하다. 사라졌다가 어느순간 나타나고, 고개를 돌리면 다시 보이지 않는다. 그냥 청소를 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지저분한 책상을 이렇게 멋스럽게 표현하다니, 헌데 읽으면 읽을수록 부끄럽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삶의 이면, 어느 한 지점에 다다른 고수들은 하나같이 철학자가 되는 듯 하다.

괜찮다는 말, 어쩔 수 없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 그래서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 어설픈 위로 따위를 듣지 않겠다는 말. ‘살다’ ‘살아오다’ ‘살아가다’ ‘살아내다’ ‘살아남다’가 아니라, ‘살아버리’고, ‘살아치우’고, ‘살아 없애’는 삶, 그래서 결국 삶 속에서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그런 삶.

살아지다 중에서

삶 속에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이 문장을 읽을 때 마다 삶 속에 녹아내리는 사람의 잔상이 조금 호러스럽게(?) 떠오른다. 아마도 저자는 충실하게 삶 그 자체의 삶,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올곧은 시선으로 집중하는 삶에 대해 쓰고 싶은 듯 하다.


말도 못하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물들이 전하는 사유.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그들이 전하는 에너지와 삶에 대한 자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그것은 저자가 전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자연의 미묘한 움직임과 사물이 전하는 기다림의 지혜, 우리가 잊고 있던 생의 가치를 사물들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물의 모든 형태와 구조, 기능은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듯한 책.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9989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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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아픈 밤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6
정인 지음 / 호밀밭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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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자마자 일러스트를 그린 이를 확인했다. 뭉크의 그림이 생각나는 표지. 표지부터 작품 하나하나가 서늘하게 아파지는 소설집. 소설의 화자들은 여성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죽음의 잔상들이 풍경처럼 드리워져 있다. 표지 뿐만 아니라 이 소설 안에서 뭉크의 이미지가 더 짙어지는 이유다.

무엇보다 아픈 삶의 이야기. 그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 자신이 만든 업보가 느껴지기도 했고, 그 안에서 삶의 비애가 스미기도 했다. 삶에 대한 불안과 애증의 경계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집에 불이 난 것은 한낮이었다.

화마 첫 문장

갑작스러운 불과 조각난 일상.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경찰과 국과수, 누전일까 의도적인 방화일까. 방화라면 왜 누가 무엇 때문에 불을 지른 것일까. 화재보험과 생명보험,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작은 의심과 불신. 하나의 사건을 통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한 가족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화마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화자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그가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한때는 나를 안심시켰던 그 소리가 오늘은 견디기 어려운 소음이었다. 어쩌면 그도 문밖에 앉은 내게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우리는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오래된 나무처럼 굳세어지지 못하고 바람에 자꾸 흔들리는가. 나는 시려오는 어깨를 감싼 채 달빛 아래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폰의 벨이 울린 것은 새벽잠이 설핏 든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아픈 밤 첫 문장

요양보호사와 환자의 관계를 다루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루고 있는 누군가가 아픈 밤. 살아있는 이들이 언제 가는 죽는 것처럼,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 역시 언젠가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죽게 되겠지. 요양보호사인 화자의 엄마부터 시작해서, 물레 여사가 죽어버린 딸들 산자와 죽은 자가 수건돌리기를 하는 듯한 작품이다.

나도 갓 이사 와서는 그랬는데 요샌 저 소리에 되려 덜 심심하다우. 가만히 들어보면 사람마다 발소리가 다 다르거든. 그걸 구분해보는 게 솔찮게 재밌어. 나중엔 그 사람이 보이는 거 같어. 그래서 저 손바닥만한 창구멍이 나한테는 숨구멍이나 마찬가지야.

애당초 잘못은 내게 있었다. 층간 소음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잘 안다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소리의 함정 첫 문장

층간 소음을 피해 꼭대기 층으로 이사 온 여자. 여우를 피하러 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는 여자의 말처럼 아랫집에는 층간 소음 때문에 힘들다는 남자가 매일 찾아와 여자를 괴롭힌다. 여자 역시 못 견디겠는 것은 마찬가지다. 남자의 말과 절규는 작은 소리도 못 견뎌 했던 오빠를 떠올리게 했고, 오빠의 죽음을 연결 짓게 만든다. 여자는 이웃의 여자에게 남자를 말려달라고 요청하나 '남의 집'일에 간섭 말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때의 한마디가 효과가 있었는지 더 이상 이웃집 남자는 찾아오지 않았다. 평화 속에서 여자는 드라마를 보던 여자는 또다시 벨을 누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마주한 집 밖의 남자. 층간 소음과 이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나는 남자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바람을 맞은 창이 연신 쿨럭거렸다.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놓지 못한 채 남자의 들썩이는 어깨를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현실적이고 날카롭게 병든 일상을 파헤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소설의 화자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다. 그는 누군가를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타인에게 상처를 받고 실패하고 분노하지만 동시에 상대를 보듬고 감싸안을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 아닐까.

소설의 배경에는 죽은 이들이 풍경처럼 둘러져 있다. 그 잔상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살아있는 이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죽은 자의 잔상을 통해 살아 있는 잔상을 보게 만들고, 살아 있는 자들 역시 죽음과 무과하지 않다는 생의 거울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 구조가 어딘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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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 삶을 바꾸는 문학의 힘, 명작을 통해 답을 얻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구와바라 다케오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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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문학이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항상 궁금했던 이 질문. 특히나 책을 읽지 않는 현시점 문학이 주는 가치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답을 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선택한 책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사람들이 문학에게 바라는 것, 문학이 왜 인생에 필요하며, 그러한 문학들이 가치와 뛰어남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문학은 인생에 왜 필요할까?

정말 훌륭한 작품을 만날 때, 저자는 가치를 논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묻게 되지만, 문학은 인생에 그다지 쓸모가 없는 사치품으로 간주되었다 말한다. 문학의 가치와 재미는 흥미로움으로 평가받는다. 그 흥미로움과 관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인생,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서평을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도 나왔던 내용이다. 같은 이야기가 빙글빙글 윤무를 추고 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곧 삶에서 나오고,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문학은 삶의 깊이를 재단하는 척도와 같다.

인생은 합리적으로 살아야 마땅하겠지만, 인생을 충만하고 더욱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려면 이성과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생에는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학이야말로 그런 것들을 양성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문학 이상으로 인생에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뛰어난 문학이란 어떤 것일까

참신함

소설은 관심은 1장에서도 흥미로움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적고 있다. 그렇다면 잘 쓴 작품의 흥미로움 작품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흥미로움을 가져오는 것은 이야기의 참신함이다. 문학에서 필요한 참신함은 제재의 참신함이어도 좋다.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것, 또한 발견을 통해 민중이 생각하는 바에 적확한 표현을 부여함으로써 이것을 한층 강하게 실감시키며, 민중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성실함

이것은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꾸준히 써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생각과 발견에게 적확한 표현을 부여하는 것.

명쾌함

명쾌하지 않은 작품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이 명쾌함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나의 예술품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경우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는 사실과 함께 '전달' 가능하다는 점을 포함하고 있다. 문학이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힘을 가진다고 평가받는 이유 역시 이 커뮤니케이션의 작용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을 확보한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열정 혹은 하나의 행동을 묘사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그 이야기의 진실성, 즉 그런 것이 자신 안에 있으리라고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어떤 진실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본인 스스로 가지고 있던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바람직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팡세 14

문학의 도덕성

예술가로서의 문학가의 본질은 혁명가다. 참 이것은 어려운 문제라 논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일부 소설 중 장애인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 것을 사랑이라 미화하거나, 사회적으로 관념화된 어머니의 희생을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소설 화해 비판을 받은 작품들이 있다. 문학의 도덕성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좀 어려웠지만, 상대적으로 읽기 편했던 문학 이해서. 문학이 필요한 이유와 좋은 작품의 조건, 달라진 세상과 대중문학의 가치, 그리고 그 모든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는 방법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우선 쉽고 읽기가 편하다.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학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을 읽고 좋은 점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독서모임을 구상하고 있다면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쉬운 점은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책들이 없는 것일까? 고전문학이 인기가 없기 때문일까? 좋은 작품에 대한 토론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보게 되었다. 아 다음엔 이 책을 봐야겠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93103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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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철학 -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하는 18가지 마음 수업
신승철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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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절반 이상을 졸고 있고 항상 여유 넘치는, 다른 말로 하면 게으른 거 갖은 동물 고양이. 지금의 순간에 최선을 하는 고양이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지 '고양이처럼 살아보기' 이런 내용을 말하는 책들이 늘고 있다. 현실과 매 순간에 충실하면서 우리의 삶을 충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철학과 고양이를 함께 묶어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묘한 철학이다.

조금은 고맙기도 한 책이다. 현대 철학에서 나오는 어려운 개념들. 미셸 푸코의 '자기통치'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 자크 데리다의 '환대' 등 이 어렵고도 고약하지만 알아두면 좋을 철학들을 고양이의 습성을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주고 있다. 고양이를 통해 배우는 행복이 아니라 고양이의 삶을 통해 배우는 현대 철학에 가까운 책이다.

​현대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렵다고 생각해서 책을 열기 쉽지 않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도전만 하다 실패했거나 유명해서 이름만 들었던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실존을 본질이 아니다'라고 간명하게 정의 내린 바 있습니다. 본질로서의 기능, 역할, 직분이 끝날 때, 그 군더더기이자 잉여 현실로서의 삶, 실존,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실존은 생명의 유일무이성에 대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이번 수업에서는 실존의 특징인 전락성, 무상성, 유일무이성, 유한성 등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지금, 여기, 내 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 _실존 서문

장 폴 사르트르...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나를 토하게 만든 작가. 구토의 저자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여기 있다. 어렵다. 그의 소설만큼이나 어려운 이야기다. 저자는 실존을 잃어버린 고양이 일화를 통해 설명한다. 고양이를 잃어버려 찾지 못한 채 비슷한 다른 고양이를 가져온다 해도 그 고양이는 잃어버린 고양이와 같은 고양이가 아니다. 생명은 유일무이하고 이러한 성질을 단독성, 특이성, 특기성, 일의성 혹은 실존이라 한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실존이 이렇게 순식간에 정의되는 것이 이 책의 마법이다.

생명에게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엄청난 상냥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 좋습니다. 유일무이한 존재가, 저 위대한 존재가 말입니다.

무의식은 의식한 것의 잔여 붐 붐으로서의 의미라기보다는 우리 마음의 깊이, 높이, 넓이를 알 수 있는 광대역적인 마음의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광야 무의식, 즉 기계, 사물, 생명의 배치에 서식하는 마음을 응시하였지만, 프로이트는 가족주의에 사로잡힌 옹졸한 마음만을 제기하였습니다. 무의식의 심연이 갖고 있는 광활함, 위대함 심오함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마음의 비밀에 접근할 하나의 창이 열릴 테니까요.

헤아릴 수 없는 만큼 심원한 마음 _무의식 서문

펠릭스 가타리는 이 무의식을 장소, 인물, 사물, 자연, 생명의 배치에 서식하고 깃들여져 있는 생각들이라 칭한다. 우리가 의도와 지향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칭하는 것을 지칭하는 걸까. 반면 라캉은 의식의 나머지 잔여물과 잉여를 무의식이라 본다. 라캉은 동물에게는 무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본질을 설명할 수 없는 고양이의 마음, 즉 생명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동물의 무의식은 '알 수 없다'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근대철학이 본질과 이유에 대한 답을 회피하면서 작동과 양상을 설명해 왔기 때문이라 말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개체적 시각에서 본다면 고양이는 실체가 있는 존재이다. 무의식이 생명이 가진 마음의 깊이와 잠재의식을 말한다면, 모성을 가진 생명의 행동은 무의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일까?

높이의 마음을 얘기할 때, 생명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누락하고 인간의 희생정신에 대해 얘기하거나, 인간 사회가 이로부터 건설한 문명의 위대함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자연의 숭고함과 위대함은 어떤 높이의 마음보다 높은 영역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고양이의 삶과 일상을 통해 철학을 이해를 돕는 고마운 철학 입문서다. 반려동물을 통해 생에 대한 가치를 알게 하고,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하는 것은 부가적 습득물이기도 하다. 그 안에 담기 고양이의 귀여운 일상은 부록에 가깝다.

이 책은 인간 위주의 사고보다는 생명과 함께 공존하는 삶을 지향하는 책이다. 동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인간이 살기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동시에 나와 함께 숨 쉬고 존재하는 존재들에게 감사하게 한다.

책을 읽고나니 많은 철학적 사유보다 왜 간디의 한마디가 생각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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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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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이디스 워튼. 워낙 유명한 고딕 소설가라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낯설다. 환상과 괴기의 기묘한 경계와 인간의 심리를 워낙 섬세하게 다뤘기에 100이 지났음에도 어색하거나 촌스러움이 없다.

그녀의 또 다른 소설 '올드 뉴욕'에서처럼 그녀가 가장 무섭고 괴이하게 다루는 것은 '인간'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도덕적 딜레마와 갈등, 선택을 하는 상황에 놓인다. 선택의 고뇌를 섬세하게 다룬 탁월한 묘사들이 특히나 매력적인 소설이며, 그 과정에 이루어지는 삶의 부조리와 위선 삶의 딜레마가 깊이를 더한다.


오, 하나 있어, 물론.

하지만 너희는 절대 모를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중에서

첫 작품 '시간이 흐른 후에야'는 시작부터 으스스한 분위기의 단편이다. 뭔가 나올 것 같은데 형체는 보이지 않는 으스스한 분위기, 환상인지 착각인지 모를 것을 보면서 우왕좌왕하는 부부의 모습이 긴장감을 더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상한 것은 귀신뿐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숨기는 남편과 불안을 넘어서 신경과민, 정신병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 아내. 뒤로 갈수록 예상치 못하던 방향으로 흐르던 이야기가 맺는 결말은 제목을 떠올리면 더욱 납득이 갈듯하다.

유령이 있긴 있는데, 아무도 그게 유령이라는 걸 모른다고?

글쎄, 어쨌든 나중에 가서야 한대

나중에 가서야?

한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장티푸스를 앓고 난 가을이었다.

하녀를 부르는 종소리

장티푸스를 앓았다는 작가의 삶과 환상을 보는 주인공이 겹쳐 보였던 소설. 브림프턴 부인의 하녀로 가게 된 하틀리는 계속해서 환영을 보게 된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환상. 브림프턴 부인의 별장은 다른 곳과 다르고 이상한 점이 있었다. 종을 울려 하인을 부르지 않는 주인과 맞은편에 비어있는 방, 만연한 비밀 앞에 침묵하는 사람들.

그녀는 비밀을 풀기 위해 사람들을 미행하고 의심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마주한 브림프턴 부인은... 몽환적이고 묘한 분위기와 어디까지를 의심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나열된 사실들.

남편이 움직였는데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그녀는 온몸을 가볍게 떨기 시작했다. 그 어떤 소리보다 침묵이 두려웠다. 남편이 소리를 전혀 내지 못한 게 아닐까? 지금 그녀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된 걸까? 극도로 지친 마음은 상상할 수 있는 불길한 일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귀향길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 병원에서는 치료를 포기하고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라는 뜻이었다. 병간호에 지친 아내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고, 그녀는 죽은 남편을 발견한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기차역의 승강장에 버려질 것을 두려워한 아내는 남편을 커튼으로 가린다. 그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죽은 남편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이중적인 그녀의 속 마음이 계속 부딪히는 것이 주요하다.

그녀는 겁에 질려서 웅크리고 앉았다. 기차의 속도가 느려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차가 역에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승강장에 외로이 서 있던 부부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거칠게 블라인드를 내렸다.


현실과 부딪히는 인간의 모순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사람의 이중성과 부조리를 이렇게 우아하고 매력적이게 다룰 수 있다니, 이 정도 능력이었기에 퓰리처상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초기 고딕소설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환상과 괴담의 경계에 선 서늘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는 매력적인 추천작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8625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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