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오늘의 시인 13인 앤솔러지 시집 - 교유서가 시인선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공광규 외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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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

경기문화재단 선정작을 읽게 된 이유는 사실 이 앤솔로지 시집 때문이었다. 권민정, 김이듬, 김상혁 이 세 사람의 시인을 좋아해서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덤으로 전영관 시인의 등단 시인 바람의 전입신고를 매우 좋아해서 필사도 했던 시였다. 이런 시인들이 모여서 앤솔로지 시집을 낸다는데 필히 봐줘야지, 암, 당연히 봐야지. 이런 마음으로 펼쳐든 시집이었다.

죽음과 일상, 글과 단어, 운명과 관상, 어머니와 역서의 흔적, 지구, 코로나까지 다양한 글들이 머문다. 운율 위에 얹어진 문장들이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사무치는 다양한 감정들이 너무 영롱해서 일찍이 읽은 시집의 후기를 미루고, 미룬다. 적고 나면 퇴색될까 봐 그 마음들을 두고두고 또 꺼내보려고.

시인들의 연령, 소재, 이야기, 모든 것이 다 달라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면 시인이 될 수 있는지(이건 시집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다만 띠지에 적힌 싱싱한 언어라는 표현에 웃었다. 어떻게 해야 싱싱한 언어라 말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이야기다. 코로나로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고 내 이웃의 이야기이다. 부디 이 아름다운 은유를 함께해 주길 바란다.

02_

나는 오늘 메모를 지우다 내 미래를 지울 뻔했다

네가 갈겨놓은 그림 속에서 네 무의식을 읽을 수 있구나

불안과 트라우마가 가득하구나

스트레스를 줄이라니 가혹하지

이따위 쉬운 말

권민경, 낙서금지 중에서

지인이 권민경 시인의 시는 낙서가 예술이 된 케이스 같다고 말했다. 주절거리는 문장들 속에 보석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역시 권민경답다 싶은 글들이다. 

당신은 새와 고양이와 행인의 길을 한없이 이어가는 빛이랍니다 그런 당신에게 우리 모두 반했으며 또한 그런 빛과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중이랍니다

김상혁 유리인간 중에서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이후 내 마음의 픽은 김상혁이다. 인간 냄새나는 시가 좋다. 김상혁 시인의 시가 그렇다. 시인이 마구마구 시를, 글을 써줬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나는 어느 시기일까, 삶이 부끄러울 때마다

대책 없이 야위어

숨어 있을 그늘 끌어당길 때마다

낡은 수레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구름을 찢고

공중에서

김안, 대설 중에서

겨울에는 겨울의 소리가 있고 겨울의 언어가 있으므로, 나는 돌아보지 않는다.

김안, 喫茶去 중에서

앤솔로지 시집에서 처음 만난 시인 김안, 모든 시들이 인생의 가장 추운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의 삶은 인생 어디쯤을 가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喫茶去(끽다거 - 차나 한잔 마시고 가)란 시가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끽다거의 뜻과 고사를 읽고 시를 읽으니 더 좋았다. 

이 사각은 너무 부드럽고 탄력적이다

그로기 상태의 상대 같은 구석은 아늑하다

몰리는 일, 한없이 쓰러지고 싶은 곳

얼굴에 빗방울을 받고 싶은 그곳

김철, 링 중에서

반짝이는 재치와 문장을 보았다.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에서 찾은 보석 중의 보석은 김철 시인이다. 대체 이런 시인이 어디 있다 나타났지. 시를 읽는 내내 광대가 승천한다. 눈꼬리가 움찔한다.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라 그런지 삶과 노동에 대한 애환과 애정이 깊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꽃은 지는데 사람이 더디 온다는 몸부림을

꽃샘바람이라 한다

곁이 비었는데도 울렁거리는 까닭을

환생이라 한다

전영관, 환생들 중에서

바람의 전입신고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전영관 시인의 시. 여전하다. 반갑고 그립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변한 것이 없어서 혹은 그 변함이 깊어서 더 좋다.

허울을 알기 위해 허울이 되어야 합니다

책임이 경계 밖으로 시선을 배출할 수 있도록

정민식, 관성 중에서

정만식 시인은 문장을 너무 아름답게 예쁘게 쓴다. 너무 예뻐서 위화감이 드는 문장에 이력을 보게 된다. 2020년에 등단한 시인이었다. 시인의 시에 삶이 더 깃들면 어떤 문장을 만들어주려나~ 기대가 되는 시인을 만났다.

하고 싶은 말 대신 할 수 있는 말을 합니다

들리는 대로 당신을 이해하고 싶지만

당신은 언제나 들리는 만큼의 당신입니다

정민식, 어린 나의 외국어 중에서

03_

내가 쓴 포스팅을 보고 시집을 구매했는데, 쓴 내용을 찾지 못해서 다른 책을 산 줄 알았다고 지인이 말했다. 속은 기분이라고. 흘러가는 시선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그 안에서 문장들이 떠오를 것이라 말했다. 인생 그 어떤 달콤한 말을 하는 친구보다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 말했다. 정 원치 않으면 책은 내가 갖겠다 말했는데, 이후 소식이 없다. 인생 친구를 찾았을까.

정말 우리는 아는 만큼 읽고, 읽을 수 있을 만큼 느낀다. 그래서 이 어려운 단어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암호 해독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이들 물어 온다. 시의 의미를 모를 때 어쩌면 좋으냐고. 그냥 제껴.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그 뜻을 알고 깊어지는 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수 십 편이 실린 시집을 읽으며 그 뜻 하나하나를 다 찾으며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다음엔 시집을 펼치기도 싫어질 테니.

그저 손 닿는 가까운 자리에 두고 수시로 만져주길 바란다. 시간을 내어 정독하란 뜻이 아니다. 자기 전 십 분, 삼 십분, 삶의 틈 바구니에서 시집을 뒤적이다 보면 맘이 닿는 문장들이 가슴을 칠 것이다. 그 페이지마다 라인 테이프를 붙여 두어도 좋다. 어느 순간 페이지 페이지마다 빽빽하게 박힌 색색들을 보며 놀라는 순간이 올테니. 굳이 내가 권하지 않아도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그래서 시집을 읽을 땐 보석을 발굴하는 느낌으로 보라 말하지 않던가. 

우리 가장 가까운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어, 지금을 이야기하고 있어 더 싱싱한 문장들. 싱그러운 이야기를 만났다.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이 제목은 편집자의 바람이 아닐까. 예술이란 백 년이란 시간을 뛰어 넘어 살아남는 것이니. 이 싱싱함이 부디 백 년을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주길 그때도 그 빛을 잃지 않은 채 빛나주길. 그래서 문학사 한 자리에 오롯이 이름을 남겨주길 바랄 뿐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3020897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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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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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

오랜만에 본 김이은 작가의 이름이 반가웠다. 저자의 소설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는 환상성과 사회의 부조리를 적절히 섞은 소설이었다. 이번엔 또 작가가 어떤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줄까 싶었다. 못 본 사이 작가의 글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환상성, 부조리, 블랙 유머보다는 보다 리얼한 설정, 현 세대가 가진 어둠과 욕망을 세밀한 문장으로 직조하고 있다. 

이번 경기문화재단 선정작에서 집에 대한 특징이 드러나는 소설이 몇 있는데, 이로 인해 사람들이 가지는 집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집을 갖지 못해 떠도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편(박초이 소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집은 거주지의 의미와 함께 재산과 지위의 위치를 내보이는 소설도 존재한다.(김이은 소설 산책, 정남일 소설 세리의 크리에이터) 

김이은의 소설 '산책'은 현 사회를 비추는 욕망과 세태를 비추는 거울 같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집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집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어떤 존재일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소통이 단절된 사회에서 개인을 보여주는 것 같은 소설이라 보는 내내 집에 대한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했다.

하루짜리 승리라. 여경의 말을 듣고 윤경은 그리 생각했다. 그토록 짧은 것을 승리라 말할 수 있는 까닭이 무얼까.

소설 산책 중에서

02_

김이은 작가의 '산책'은 너무 현실적이라 여러모로 아픈 소설이다. 두 자매가 산 집은 위치로 인해 가치가달라진다. 그리고 둘 사이에느 미묘한 지위의 균열, 그리고 시기와 질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안에 집으로 인해 진 빚으로 인해 삶에 대해 체념하는 모습이 의아했다. 산책이란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져야 하는데, 소설 산책 속 산책이란 불편하기만 하다. 

대체 왜 집을 구매한 것일까.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대한민국에서 집이란 의미의 퇴색을 이 소설 만큼 잘 보여주는 소설이 있을까. 서울 강남과 서울 변두리 신도시의 아파트라는 두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욕망은 우리 내부가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를 잘보여주는 척도다.

작가는 산책이라는 소설을 통해 집의 의미와 좋은 삶에 대해 되묻는다.

한곳에서 지나치게 오래 산다는 건 그런 뜻인 것 같았다. 그 집에 살던 모든 것들이 결국 늙거나 죽게 된다는 것. 그래서 소문의 시작이 되고 만다는 것. 예고된 비극처럼 그렇게 조용히 시간과 더불어 숨이 멎는다는 것.

소설 산책, 경우지에서 중에서

03_

두번째 단편 경유지는 상실과 외로움을 견디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주인공 이화는 충동적으로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이후 원어민 강사와 동거를 하다 헤어진다. 이 충동은 자기 파괴적이여서 이유를 찾게 된다. 

이화에게 에릭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경유지'이다. 이 경유지를 통해 이화는 삶이란 혼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에릭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다 어디도 정착하지 못한 채 다음으로 향한다. 더 이상 관계를 포기한 이화는 집으로, 사람을 경유지로 택한 예릭을 다른 이를 찾아 떠날 것이다. 

이별 후 이화가 택한 집이란 공간은 회피인 걸까. 자기 구원인걸까. 반복해서 읽어보지만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다만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이화가 행복하기를 바랄뿐이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제 이 집에서 더 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산책, 경우지에서 중에서

04_

소설 산책에서 이야기하는 두편의 소설은 '원하는 삶' 행복한 삶을 묻고 있다. 산책 속 두 자매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좋은 집과 재산을 축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빚에 찌들어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졌다. 마치 체념한 듯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산책 속에서 나오는 집은 고립과 단절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무엇이 있는가. 반복해서 생각하게 된다. 일상의 가치까지. 여러가지를 되묻게 되는 소설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301888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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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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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는 제목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소설이다. '십 분 이해하는 사이'와 더불어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두 권의 책은 제목이 특이하다 보니 책을 펼쳐 보기도 전에 인상에 남았다. 손이 먼저 가기도 가지만, 네이버 검색어에도 책이 바로 뜬다. 소설 제목을 명사로 쓰니 아무리 검색을 해도 뜨지 않는다. 네이버 검색어를 통해 제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십 분 이해하는 사이'와 더불어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두 권의 책은 관계를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한 책은 관계를 통해 구원과 이해를 이야기하고, 지금 소개하는 책은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는 관계의 부재, 고립을 통해 걸어가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변의 관계는 멀어지고 헤어지게 된다. 그게 죽음이든 이별이든 인간은 홀로 남게 되고, 혼자 남은 인간은 미래를 향해 걸어야 한다. 그 걸음은 어쩐지 위태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그것은 구원일까, 절망일까.

이제 과거를 다시 쓰고 싶었다. 내가 만들어갈 미래가 내 과거가 될 수 있도록.

미뤄두기만 했던 미래를 지금 이 순간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소설 안 두 권의 작품의 마지막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끝난다. 첫 번째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의 화자는 관계를 잘못된 과거라 칭한다. 그는 어쩌면 미래의 장례식을 통해 과거와 결별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혹은 관계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화자는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결과물은 관계의 부재와 헛된 미래다. 두 번째 소설 '사소한 사실들'에는 연인의 이별과 룸메이트와의 재결합이라는 두 가지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화자는 관계의 끝맺음과 새로운 만남을 통해 관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게 된다.

이번 경기문화재단 선장 소설의 특징은 실려있는 두 소설의 연관성이다. 마치 연작 작품 같은 관계성에 읽는 재미,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이 책에 실려있는 두 책에서 이야기하는 관계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의 이야기, 내 주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야기라 더 큰 깊이와 읽는 재미를 준다. 

나는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를 내려다보았다. 미래와는 특별한 추억이 없는 줄 알았는데 꽤 많은 것을 공유한 것 같았다. 무언으로 느껴지는 친밀감, 함께 있다는 체온 같은 것.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중에서

소설 속 미래는 고양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과거를 상징하고 미래가 되기도 하는 존재이다. 최근 우리가 반려동물에게 가지는 애정은 특별하다. 그것은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절대적 관계의 대체물이 아닐까. 화자도 그리고 구도 그것을 깨달아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해 버린게 아닐까. 관계의 부재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버릴, 미래가 만들 미래는 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몰랐다.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혼자여서 삶이 무서웠고 혼자여서 삶이 막막했으며, 혼자여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들과 함께라면 삶을 조금 더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장바구니도 비울 수 있을 것이고, 모자라는 것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소한 사실들 중에서

사소한 사실들의 주인공을 끊임없이 떠돈다.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거주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얻은 셰어하우스와 관계. 그 셰어하우스는 무엇보다 비좁고 불결한 공간이다. 결코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화자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정말 무서운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라고 말하는 그 말이 더없이 처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소설을 읽으면서 박민규 작가의 '갑을 고시원 체류기'가 떠오른다. 고시원에서 살게 된 주인공에게 부자 친구가 말한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니' 소설의 문장이 처참하게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다. '사소한 사실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러한 처참한 공간도 갖지 못해 떠도는 이들이 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이 거주지 문제다. 그만큼 사회에 심각한 문제로 자리한 문제에 결코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서로 한 공간에 머무는 것조차 어색했던 두 사람이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살기를 결정한다. 부족하고 부족하고 하염없이 부족한 돈. 두 사람의 앞날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빈민 같다는 얘기를 하면서 웃는 두 사람.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어쩜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미래를 그리는 주인공을 보면서 응원하게 된다. 내 삶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미래를 그려보게 되는 그 따뜻함이 좋다.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위로한 적도, 위로받은 적도 나는 없었다. 삶이란 혼자서 외롭게 버텨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소한 사실들 중에서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우리 같아서 아프고 마음이 가는 소설이다. 주어진 문장은 하나같이 아름답기만 하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문장들이 가슴에 닿는다. 꼭 읽어보라 추천하는 소설 중 하나다. 이런 문장을 지어내면서 작가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관계와 상실, 고립과 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인류가 앞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난제 일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관계와 행복에 대해 고민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조건들은 무엇일까. 내가 거주하는 집, 친구, 연인 무엇을 공통분모를 그릴 수 있을까.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불안한 미래를 떠올려 본다. 미뤄둔 미래를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소한 사실' 속 화자의 말처럼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 희망 그 자체가 아닐까. 

https://blog.naver.com/sayistory/223017087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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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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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의 선정작을 얘기하면서 처음 보는 작가들이라고 했는데... 등단작을 읽은 작가들이 다수였으며 일부 작가의 책은 소장하기도 했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유재영 작가의 첫 단편집 '하바롭스크의 밤'이 그러했다. 책을 소장하고 있음에도 작가를 보고 시인인가...?(결국 시인을 찾아보았더니 유계영 시인으로 전혀 다른 타인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전작 하바롭스크의 밤은 전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사건들이 일어나서 비슷할까 싶었으나 비슷한 듯 다른 이야기였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라. 다들 전작 하바롭스크의 밤을 보고 기대감에 남긴 후기들이 상당했다.

소설 도메인은 장르소설과 SF를 좋아하는 작가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소설집이다. 다양한 시도와 상상력이 활개를 치는 소설이라 실험적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올 소설이다. 쌓여가는 소재와 문장들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사실 별거 아닌 사건인데 이게 뭐라고 쫄깃하단 말인가) 문장으로 쌓인 사건들은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책을 읽은 뒤 작가 소개를 보니 자정의 매표소라는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SF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명작들이 소개되고 있어 팔로우했다. 해당 블로그에서도 소개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말하고 불길에 뼛조각을 던지면 그 기억을 지울 수 있대요

도메인, 소설 '영' 중에서

첫 작품 '영'은 이상한 사건들이 연속해서 일어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신기한 작품이다. 어둠에 묻힌 캠핑장, 이상한 분위기의 관리인, 주변을 배회하는 동물들. 음습한 분위기 속에 자살한 시체도 나오고 도난 물품까지. 금방에라도 풀숲에서 연쇄살인마가 뛰쳐나올 것 같은 소설은 마지막까지 분위기를 잡고 간다. 그들은 왜 자살을 했을까, 그 보석들은 어디서 온 걸까. 이야기는 끝까지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어딘가 찝찝하고 불쾌한 소설은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공포의 근원이 알 수 없음에서 온다는 듯이.

함부로 말한 건 나였습니다. 말하지 못한 것도 나였습니다. 내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도메인, 소설 '역' 중에서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하나의 성과 그 성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복된다. 성에 살았던 아티스트의 삶은 같은 듯 다른 사연으로 이야기를 변주한다. 그리고 영상 속 사연은 어느 순간 유튜브 제작자들의 실종으로 하나의 연결 고리를 만들며 미스터리를 쌓아간다. 

앞에 소개된 '영'처럼 무언가 사건들이 툭, 굉장한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과 미스테리를 끊임없이 뱉어낸다. 하지만 다소 실험적인 문장과 구성은 얼핏 보기엔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소 난해해 보이기도 한다. 

던져진 이야기는 비슷해 보이면서 비슷하지 않다. 관계가 있는듯하지만 관계가 없다. 이 불편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소설을 다 본 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다시금 읽게 되는 소설이다. 

꼭 소설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개 있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도메인, 소설 '역' 중에서

소설 '도메인'을 보면서 바로 전 서평인 '부표'가 생각났다. 두 소설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표'는 죽음을 통해 삶을 조망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도메인'은 기묘한 분위기로 소설 자체가 죽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부표'의 작가는 소재들의 관계성을 편집증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엮고 있다. 반면 도메인은 관계있어 보이는 소재들은 전혀 관계가 없는 데다 서로 부딪히며 삐걱거린다. 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분위기가 서사를 압도하기도 한다. 소설의 분위기, 이미지, 각각의 매력이 다르다 보니 읽어보고 판단하라고 할 수밖에... 

소설 도메인은 거대한 실험장 같다. 아마 작가가 문장을 실험한 거대한 실험장일 것이다.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지만 일어나지 않고, 연결된 이야기들은 관계가 있는듯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는 사건의 나열이다. 불친절한 소설. 처음 본 이들을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독자의 불만과 달리 작가는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성공적인 실험이었다.

처음 요소요소들의 미묘한 결합에 이게 뭐야... 란 생각이 들었다. 추천글에서 '맥거핀'이라는 단어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된다. 소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분위기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시각적이고 영화와 닮아 있다. 영화적 기법을 문장으로 구현하기 위한 실험이었나 싶기도 하다.

소설을 다 보고 난 뒤, 너무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 주인공들의 거취를 묻고 싶어진다. 이것 역시 작가의 의도려나.

https://blog.naver.com/sayistory/22301584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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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표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이대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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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보다 절실하고 치열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이라는 바다

에서, 삶의 부표를 찾게 만드는 소설, 삶의 목표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소설집 '부표'.

이대연 작가가 쓴 등단작 '검란'은 이미 읽은 소설이다. 알이 부화하는 과정을 쓴 단순한 소설인데, 디테일한 사실성과 묘사, 그리고 검란을 통해 인생을 반추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작가는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보다 노련해진 문장으로 소설 부표에는 인생이 담겨 있었다. 

'김장'과 '부표'는 등단작을 가장 많이 읽었을 시기인 2015년 전후로 등단한 작가들이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선정작에서 오랜만에 만난 작가들이 괜히 반가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란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작법서 '책이 밥 먹여 준다면'이 생각났다. 그리고 작가들은 어디선가 쉬지 않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구나. 지금은 글을 쓰고 있지 않은 자신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된다.(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행복하니 어쩔 수 없다만...)

부표를 읽으며 정용준 작가의 '가나'가 생각났다. 내용이 유사하지도, 주제가 같지도 않음에도 아무래도 바다가 배경이어서 그런듯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용준 작가의 '가나'는 좋아하는 등단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스위치를 올리자 등명기에 불이 들어왔다.

소설 부표 중에서

'부표'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삶을 반추하는 소설이다. 위에서 설명했듯 디테일한 묘사가 현장감을 올린다. 정말 내 옆에서 바닷가에 살고 있는 이웃이 실제로 겪은 일처럼 느껴지는 소설이다.

일확천금을 주야장천 이야기하던 아버지는 별다른 한 방 없이 뺑소니 사고로 사망한다. 집에 온 돈은 아버지가 늘 말하던 일확천금이 아닌 사망보험금인 씁쓸한 현실. 한 평생 투자로 집에 돈 한 푼을 준 적 없으나 장기기증이라는 아버지의 선행. 아버지는 나쁜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주기도 하고 다른 이에는 선행을 하기도 한다. 선하다고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는 평범한 아버지의 삶. 그저 아버지의 삶과 방향은 사회에 뿌리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 위에 뜬 채 표류하는 부표처럼 말이다. 그런 아버지의 삶과 부표 교체 작업을 하는 주인공의 작업이 묘하게 교차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게 하면서 마지막까지 아버지가 쥐지 못한 일확천금을 통해 삶의 목표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한지에 스민 먹이 표상을 이루면 글이 되고, 심상을 담으면 그림이 된다. 그러나 단지 표상이고 심상일 뿐이어서, 따지고 보면 기껏해야 흰 종이에 묻힌 검은 얼룩일 따름이었다.

소설 부표, 전(傳) 중에서

'전(傳)'은 앞서 읽은 검은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는 허구가 가미된 역사 소설이나 그 느낌이 다르다. '검은 고양이'는 현재에서 검은 고양이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좇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던져진 사실들이 독자의 흥미를 끈다. 그리고 독자와 작가와 게임을 하는 듯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물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주제의식을 뒤로 슬쩍 들이미는 소설이다.

그에 반해 '전(傳)'은 사실인 역사를 매우 진지하게 서술한다. 검은 고양이를 읽으며 어디까지가 진실일지 거짓일지 의문조차 들지 않는다. 어느 시점 어딘가에 실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술하는 듯한 소설이다. 

소설 안에는 '문장에 인망이 없다' '칼에도 인정이 있거늘'이란 표현 등이 등장한다. 글도 칼도 사람을 반추하는 부산물이 아닐까. 그래서 인정이 비칠 수도, 무엇보다 비정해질 수도 있다. 글을 통해 다시 회자되는 곽재우라는 인물을 통해 후대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곽재우의 죽음은 실패이자 종결이 아니다. 이야기를 통해 회자되는 그의 부활은 새로운 민중적 꿈이자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최근 가짜 뉴스가 회자되는 생활 속에서 '전(傳)'을 통해 글쓰기와 펜의 힘을 생각해 본다. 자본주의가 쫓는 자본이 글과 펜을 비천하게 만드는 사회가 비참하고 슬프다.

칼에도 인정이 있거늘…… 그게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글을 쓸 수 있단 말이요?

소설 부표, 전(傳) 중에서

'죽음'을 통해 사람은 삶을 반추한다고 한다. 이 책 부표는 죽음을 통해 생을 반추하는 이야기이다. 그 존재는 역사 속 인물이기도 하도 가까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혹은 글을 통해 다시금 생을 얻는다. 그리고 서사를 끌어온 이는 떠난 이가 미처 이루지 못한 사명을 이어 받는다. 그것은 숭고한 꿈 일수도 혹은 지난한 삶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죽음과 생의 경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 비춘다. 그 거울을 통해 부디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301283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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