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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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이디스 워튼. 워낙 유명한 고딕 소설가라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낯설다. 환상과 괴기의 기묘한 경계와 인간의 심리를 워낙 섬세하게 다뤘기에 100이 지났음에도 어색하거나 촌스러움이 없다.

그녀의 또 다른 소설 '올드 뉴욕'에서처럼 그녀가 가장 무섭고 괴이하게 다루는 것은 '인간'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도덕적 딜레마와 갈등, 선택을 하는 상황에 놓인다. 선택의 고뇌를 섬세하게 다룬 탁월한 묘사들이 특히나 매력적인 소설이며, 그 과정에 이루어지는 삶의 부조리와 위선 삶의 딜레마가 깊이를 더한다.


오, 하나 있어, 물론.

하지만 너희는 절대 모를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중에서

첫 작품 '시간이 흐른 후에야'는 시작부터 으스스한 분위기의 단편이다. 뭔가 나올 것 같은데 형체는 보이지 않는 으스스한 분위기, 환상인지 착각인지 모를 것을 보면서 우왕좌왕하는 부부의 모습이 긴장감을 더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상한 것은 귀신뿐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숨기는 남편과 불안을 넘어서 신경과민, 정신병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 아내. 뒤로 갈수록 예상치 못하던 방향으로 흐르던 이야기가 맺는 결말은 제목을 떠올리면 더욱 납득이 갈듯하다.

유령이 있긴 있는데, 아무도 그게 유령이라는 걸 모른다고?

글쎄, 어쨌든 나중에 가서야 한대

나중에 가서야?

한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장티푸스를 앓고 난 가을이었다.

하녀를 부르는 종소리

장티푸스를 앓았다는 작가의 삶과 환상을 보는 주인공이 겹쳐 보였던 소설. 브림프턴 부인의 하녀로 가게 된 하틀리는 계속해서 환영을 보게 된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환상. 브림프턴 부인의 별장은 다른 곳과 다르고 이상한 점이 있었다. 종을 울려 하인을 부르지 않는 주인과 맞은편에 비어있는 방, 만연한 비밀 앞에 침묵하는 사람들.

그녀는 비밀을 풀기 위해 사람들을 미행하고 의심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마주한 브림프턴 부인은... 몽환적이고 묘한 분위기와 어디까지를 의심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나열된 사실들.

남편이 움직였는데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그녀는 온몸을 가볍게 떨기 시작했다. 그 어떤 소리보다 침묵이 두려웠다. 남편이 소리를 전혀 내지 못한 게 아닐까? 지금 그녀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된 걸까? 극도로 지친 마음은 상상할 수 있는 불길한 일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귀향길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 병원에서는 치료를 포기하고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라는 뜻이었다. 병간호에 지친 아내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고, 그녀는 죽은 남편을 발견한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기차역의 승강장에 버려질 것을 두려워한 아내는 남편을 커튼으로 가린다. 그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죽은 남편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이중적인 그녀의 속 마음이 계속 부딪히는 것이 주요하다.

그녀는 겁에 질려서 웅크리고 앉았다. 기차의 속도가 느려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차가 역에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승강장에 외로이 서 있던 부부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거칠게 블라인드를 내렸다.


현실과 부딪히는 인간의 모순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사람의 이중성과 부조리를 이렇게 우아하고 매력적이게 다룰 수 있다니, 이 정도 능력이었기에 퓰리처상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초기 고딕소설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환상과 괴담의 경계에 선 서늘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는 매력적인 추천작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8625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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