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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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완성은 죽음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삶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 있다. 수많은 경험과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나아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눈물겹고 숭고한 일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인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주인공 '스티븐 더덜러스'의 이런 여정을 따라가고 있다. 스티븐 더덜러스는 가족과 민족, 종교, 정치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옛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 종교만의 영원한 구원의 길임을 믿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조국인 아일랜드의 정치적 갈망(가톨릭 교회와 영국의 통치로부터 독립)과 민족주의, 당시 유럽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종교(가톨릭과 예수회)에서도 벗어나 예술가이 자신의 길임을 자각하고 그 모든 것들에서 스스로 길을 떠난다.

예술에 천착한 그는 그만의 예술론을 정립한다.

우리가 이해하게 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천천히, 겸허하게, 꾸준히 표현하고 다시 짜내려고 하는 것, 그게 예술이야

예술이란 말이야 미적인 목표를 위해 감각적인 것과 이지적인 것을 인간적으로 처리하는 것이지

그는 또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도 밝힌다.

이해 가능한 것들의 가장 원만한 관계에 의해서 충족되는 지성이 포착하는 바가 진실이요 지각 가능한 것들의 가장 원만한 관계에 의해 충족되는 상상력이 포착하는 바가 아름다움이야
동일한 물체가 모든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는 있지만, 어떤 아름다운 물체를 찬미하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미적 이해의 단계 그 자체를 충족시키고 또 그것과 합치되는 특정 관계를 그 물체 속에서 보고 있을 거라는 가정이야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전일성, 조화, 빛 이 세 가지가 필요해

스티븐 더글러스는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너는 네 방식대로 살면 돼. 나는 내 방식대로 살게 좀 내버려 둬"라고 말한다.

우리 역시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각자의 가치관과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펼쳐나간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언제든 외부 환경에 의해 쉽게 흔들릴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다. 주체적 자기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세상의 수많은 가치관들을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등으로 판단할 수 없다. 스티븐 더글러스의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섬기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모든 것이 나의 판단이고 선택이다.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스티븐 더글러스의 길만이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믿음과 확신, 그 속에서 진실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동반될 때 그 삶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더덜러스의 성장 과정에서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의 모습도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모습도 보였다. 주체성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해 하는 과정에 동반된 아픔과 고뇌, 그것은 한 개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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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지식인마을 32
하상복 지음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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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암흑의 시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거치는 동안 그때까지 중세 유럽 사회를 지탱했던 세계관과 가치관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자 했고 근대 사회사상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인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자 물질적 정신적 주체로 자리 잡았고, 사회는 그러한 인간들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보장해 주는 제도적 장치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사회사상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대중적 지식으로 확산되었으며, 유럽 사회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정치혁명과 경제혁명으로 발산되었다. 이에 유럽은 두 혁명을 통과하면서 근대 사회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이끈 힘이 이성이었고, 이성은 서구 근대 사회를 이끄는 근본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푸코는 서구의 근대 이성은 과학적 진리의 이름으로 비이성적인 것들을 타자화하는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근대의 지식이 얼마나 진리와 거리가 먼가를,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그 지식이 비이성적인 사람들을 얼마나 정교하게 통제하는가를 제시했다. 근대는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이한 억압과 지배의 메커니즘을 통해 억압과 폭력을 자행한다고 폭로하였다. 근대의 통치 방식이 외적인 도덕규범을 집단적 차원에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의 내면화를 통해 개인들 각자가 참과 거짓, 옳음과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시스템화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도덕원칙이 자신이 아닌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기에 근대 이성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폭력으로 보았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근대이성이 삶의 진보와 해방을 이끈 힘이며 민주주의의 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절대주의 군주 체제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통제를 통해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해 낸 18세기 부르주아 공론장, 살롱, 독서클럽, 공공도서관 등에서 형성된 비판적 여론이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하바마스는 이성과 합리성은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기존의 규범과 가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규범과 가치들을 확립해 나가는 원리하고 주장한다.

근대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었다. 인간의 삶에도 급격한 변화가 주어졌다. 혼란과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진 시대였을 것이다. 그런 근대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두 철학자의 사유는 난해했지만 흥미롭기도 했다. 도덕적 규범의 내면화 속에 함몰된 채 그것이 폭력이나 억압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강제된 도덕규범을 진리인 양 받아들이며 살았다. 정치체제나 사회가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에 너무 종속적 주체로만 산 건 아닐까 반성이 뒤따른다.

언젠가 역사는 발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수많은 난제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멈춰있을 수 없는 존재이고 나아감은 우리를 오늘보다는 조금 나은 우리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믿기에 근대 이성을 긍정적으로 진단했던 하바마스의 주장도 옳다는 생각이 든다.

푸코는 자신의 도덕적 규범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능동적 주체가 되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배려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며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자기 성찰로 나아가는 것, 참으로 묵직한 숙제다. 푸코의 주장처럼 능동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기 성찰로 나아가지 못한 이성은 언제든 억압과 지배의 메커니즘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덮고도 더 큰 숙제를 받아 안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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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색 인생그림책 14
리사 아이사토 지음, 김지은 옮김 / 길벗어린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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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고 진중한 책 사이 그림책 읽기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마음이 간질거린 시간이었다.

아이의 삶에서 소년이 삶, 자기의 삶, 부모의 삶, 어른의 삶, 기나긴 삶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한 권의 그림책이면서 한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다.

두 면을 가득 채운 그림에 글은 한 문장이다. 그것도 때로는 지극히 짧은. 말을 아껴 그림을 돋보이게 했지만, 글이 품고있는 의미가 결코 얕지 않다. 글이 있어 그림이 더 곡진하고, 그림이 있어 글의 의미가 더 돌올하다.

작가는 아이의 삶에서 "하지만 당신이 그 시절에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와 기나긴 삶에서 "삶의 모든 순간, 당신이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를 반복한다. 결국 이 문장에서 울게 된다. 사랑받았던 느낌보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느낌에 갇혀 우리는 오래 아파하고 오래 방황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긴 삶의 여정이 순간이었음을, 그 여정 속에서 악착스레 쥐고 있었던 그 모든 것들도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 순간 미련과 후회 대신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랑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삶일까?

여전히 고통과 아픔 대신에 행복과 평온을 갈구하는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로 살고 있다. 앞으로 맞이해야 할 생도 지나온 생처럼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절망적이고 때로는 아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책에서 말하는 마지막 문장처럼 살아야겠다. '삶의 모든 색'을 사랑해야겠다. 윤동주 시인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노래했듯.

저마다의 색을 가진 삶의 구간구간들, 경험들, 사유들, 눈부시고 경이롭기도 하고 부끄럽고 안타깝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순간이 우리다.

가을빛이 무장무장 깊어지겠다. 삶에 대한 우리의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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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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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다섯 계급으로 나뉘며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량생산된다. 이들은 시험관에서 길러지며 반복적인 수면 학습과 전기 충격 등으로 자신의 신분에 맡는 역할을 세뇌당하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과 신분에 만족하며 산다. 소마라는 약을 먹고 슬픔이나 분노 등 나쁜 기억을 없애고 만인을 위해 만인이 존재한다는 사회통념에 충실하면서 쾌락을 즐기며 산다. 어머니, 아버지, 부모님, 결혼, 가정, 임신, 자유, 순결, 태어나다 등은 이 사회의 금기어다.

누구도 불만이 없어 보이는 완벽한 세계에 어느 날 야만인 보호구역에 살던 존이 나타난다. 존은 놀라운 과학문명에 감탄하지만 정부에 의해 개인의 자유나 행복까지도 관리당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껴 외딴 등대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은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끓임 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총통과 존의 대화다. 영생이 삶의 축복일 수 없듯이 온갖 고통이 사라지고 쾌락만이 존재하는 세상도 우리가 갈구하는 이상향이 아님을 이 책은 보여준다.

1932년 작품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과학과 문질문명의 발달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은 헉슬리가 우려했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90여 년 전 과학의 미래를 비판적으로 내다본 작가의 통찰력이 놀라운 작품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고통이 없기를 바라고 슬픔이나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이 내 삶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헉슬리가 제시한 사회는 그런 세상이다. 완벽한 세상처럼 보이지만 그곳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의지가 사라진 개인들은 '나'라는 고유성을 잃어버리고 획일화된다.

완벽한 세계에서 철저하게 제거되는 그 모든 것을 원한다는 존의 외침은 의미심장하다. 죽음이 있어 삶이 있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 행복 역시 고통이 있어야 존재한다. 존의 말처럼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 모든 것의 선택 역시 우리 의 권리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지금의 삶, 그 속에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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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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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5•18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진실과 거짓 공방, 책임의 유무, 이념 논쟁 등 우리가 보고 들은 5•18 이야기는 분노와 피로감을 더해주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5•18을 이용하고 왜곡했다. 그 속에서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정치적인 이슈가 아닌, 이념 논쟁이 아닌 5•18을 만났다. 그 속에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삶이 있었다.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5•18은 끝이 났지만,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그 속에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달랐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소설의 첫 구절이다. 소설 속 화자는 실종된 친구를 찾아 나섰다가 상무관을 떠나지 못하는 중학생 동호를 이인칭의 시점으로 바로 보고 있다. 2장에서는 동호의 친구인 죽은 정대가 일인칭 ‘나’로 사건을 묘사한다. 소설은 이렇게 6장까지 다른 화자를 통해, 5•18이 발생했던 시•공간을 묘사하기도 하고, 세월이 흐른 후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통해,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날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살아남은 자들과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그날의 사건은 종결될 수 없는, 여전히 진행형의 삶이었다. 여전히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들과, 가족을 잃고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에게 오늘은 참 잔인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문학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 자체가 사건의 연속이다. 어떤 사건들을 수많은 생채기를 남긴다. 그 생채기를 기억하는 일, 보듬는 일 그것이 문학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구의 책임이냐, 진실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그들이 겪은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일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혼자서 망월동을 찾았던 스무 살의 겨울에서 이 책이 나오기까지 한강 작가 역시 그 시간과, 그 공간 속을 함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날리는 눈발 속에서 상무관을 바라보고 섰던 작가의 그 마음 역시 아픔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잔영이 책을 덮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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