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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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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이방인의 첫 문장이다. 뫼르소...책을 덮었지만 내겐 여전히 모호한 인물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슬퍼하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의 마지막 모습도 보려 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좋았을거라고 말할 뿐이다.

엄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여자 친구와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사랑을 나눈다. 자신이 아랍인을 죽이고 감옥에 있을때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검사는 뫼르소에게 당신이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고 변호사 역시 자신의 말만 하고 있다. 뫼르소는 말한다. 그들은 나를 두고 잘잘못을 따지고 서로 논쟁을 벌이지만 그 속에 정작 나는 없다고.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과장해 불리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검사나 변호사의 제안을 거절한다.

과묵하고 소극정인 주인공 뫼르소. 그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무관심하다. 그는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제기하는 질문에 대답할 뿐이다. 그는 적게 말하는 인물이다.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고 타의에 의해 죽음을 맞는 수동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인 관습에 따라 연출하게 되는 일종의 연극, 사회 생활의 필요에 의해 하게 되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인정할 뿐이다.

1942년에 출판된 책, 전 세계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된 책. 책을 덮었지만 여전히 내게 뫼르소는 모호한 인물이다.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단정짓고 정의 내리는 일에 너무 길들여진 탓은 아닐까?

감정은 스쳐가기만 할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어떤 감정을 표출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감정틀에 우리가 매몰되어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처럼 슬플 수도 아닐 수도, 죄의식을 느낄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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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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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치누아 아체베

이 책은 영국이 아프리카 지역을 본격적으로 침입해 오기 시작한 19세기말,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우무오피아 마을의 이야기다.

오콩코의 아버지 우노카는 게으르고 대충대충 사는 사람인 데다가 내일이라는 것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돈이라도 약간 생기면 야자주 한 통을 사서 이웃을 불러 흥청망청 놀았다. 그는 피리를 잘 불었고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추수가 끝난 다음 이삼 개월이 지나 마을 악사들이 화로 너머에 걸어 놨던 악기를 내릴 때였다.

우노카는 아들 오콩코에게 곳간을 물려주지 못했다. 오콩코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 우노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증오하게 되었고, 평생을 실패와 유약함에 대한 두려움,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고 곳간을 늘려갔으며 용감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불 같은 성격을 지녔고 공격적이었으며 권위적이었다.

마을의 촌장인 에제우두의 장례식에서 에제우두의 막내아들이 오콩코의 총에 맞아 죽는 우발적 사고가 발생한다. 부족 사람을 죽이는 것은 대지의 여신에 대한 범죄였고, 이를 저지른 사람은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마을의 전통에 의해 오콩코는 7년이나 마을을 떠나 살게 된다. 7년 후 오콩코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은 이미 예전의 전통을 간직한 마을이 아니었다. 선교사들이 마을에 나타나 마을 사람들도 둘로 나뉘어 반목하는 관계가 되었고, 그의 큰아들은 선교사를 따라갔다. 오콩코는 집회를 방해하던 전령의 우두머리를 도끼로 내리쳐 죽이고 결국 자신도 스스로 목을 메어 자살한다. 평생 강해야 한다는 강박, 공격적인 그의 성격으로선 그것이 최선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서양의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많은 식민지국에서 경제적 약탈을 자행했고 문화와 전통을 짓밟았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그 내용을 가늠하게 하는 제목이다. 그러나 작가 치누바 아체베는 식민지국 영국의 횡포와 억압의 과정에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오콩코라는 한 남자의 개인적 몰락을 통해 부족의 몰락과 전통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지만, 곳곳에 아프리카 부족의 장례 풍속, 결혼 풍속 등 그들의 전통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민담과 우화를 즐기며 자녀 교육에도 활용했던 그들의 여유와 전통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아체베는 그들의 전통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쌍둥이를 낳으면 숲에 내다 버렸고, 모든 마을과 부족에 '악령의 숲'이 있어 문둥병이나 마마 등 사악한 질병에 걸린 이들을 대지의 신의 저주라 여겨 이들을 마을에서 몰아냈다.

치누아 아체베는 나이지리아 동부의 이보족 마을에서 태어났고,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전통과, 선교사를 통해 유입된 서양 기독교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 전통 사회의 붕괴는 분명 제국주의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그것에만 떠넘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피식민 경험이 있는 우리 또한 그렇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는 쉽다. 그러나 전통의 몰락, 기존 체제의 붕괴가 오로지 타자에 의해 결정 난다는 결론 또한 찜찜하기 그지없다. 체누아 아체베 또한 오콩코의 죽음을 제국주의의 탓으로만 돌렸다면 그의 죽음을 영웅화하는데 까지 나아갔을 것이다. 차누아 아체베가 첫 선교사로 임명된 스미스 씨에게 걸었던 기대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타협점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지나간 역사를 두고 '만약에'는 부질없는 짓이지만 수많은 역사에서 '만약에'에 대한 아쉬움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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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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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스탠포드대 러셀 로버츠 교수가 자신의 언어로 재탄생 시킨 책이다. 애덤 스미스의 원전을 읽지 못했지만 원전에 충실했을거라는 확신을 주는 책이다. 그만큼 쉽고 명쾌한 언어로 '도덕감정론'을 만나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은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우리의 내부에는 우리를 지켜보는 공정한 관찰자가 있다고 말한다. 공정한 관찰자는 지나친 이기심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훌륭하고 고상한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우리 안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스미스는 재산이나 명예, 권력을 통해 세인의 관심이나 사랑을 추구하는 대신 지혜롭고 선한 삶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도 타인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한마디로 정직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존중과 존경을 받으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을 세계를 늘 자기 위주로 해석한다.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자기 방식의 삶을 강요한다.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는 간섭받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내 욕구를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의 욕구 또한 존중해야 한다. 내 삶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큼이나 타인의 삶도 인정하기.

위대한 것은 위대하지 않은 평범한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다. 세상의 물줄기를 바꿔보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바르고 충실하게 사는 하루를 무시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기.

처벌이 두려워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 아닌,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내 안에서 나를 지켜보는 공정한 관찰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이런저런 결심들을 새겨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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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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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우리는 모두 길 위의 존재들이다. 주어진 삶의 여정 속을 걷는다. 때로는 묵묵하게, 때로는 포효하기도 하면서 운명이 내 편이기를, 내가 원하고 상상하는 삶이 내 앞에 펼쳐지기를 기대하면서. 
 
싯다르타, 2022년 새해  첫날 주문한 책이다.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이 주는 단단한 믿음이 아니어도 무엇인가 삶의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싯다르타가 자신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인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싯다르타는 유복한 바라문의 가정에서 태어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그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기쁨을 주지 못했고 즐거움이 그의 원천이 되지도 못했다. 싯다르타는 내면에 불만의 싹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사랑이 영원토록 자신을 행복하게 하여 주시도, 자신을 달래주지도, 흡족하게 하여 주지도, 자신을 만족시켜주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 존재의 내면 속에 삼라만상과 하나이자 불멸의 존재인 아트만이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온갖 번뇌로부터 자신을 비우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신을 초탈하는 상태의 경지에서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놓은 것이 목표였다. 
 
그는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집을 떠나 사문의 길을 걷는다. 사문 생활을 하며 명상을 하고 고통과 굶주림을 극복함으로써 자기 초탈의 길을 간다. 그러나 그 길 또한 자아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사문 생활을 하던 중 그는 세상의 번뇌를 극복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킨 부처 고타마의 소문을 듣게 되고 마침내 고타마를 만나게 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으며 고타마를 떠난다. 
 
그는 세상으로 나와 기생 카밀라에게서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재산도 얻고 권력도 얻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영원한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빠져 들어가 있음을 깨닫고 또다시 길을 떠난다.  
 
그는 생명의 근원인 강에 이르러 뱃사공 바주데바와 함께 생활하며 온전한 평화에 이르는 길을 깨닫게 된다. 깨달음은 외부에 있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있음을 깨닫는다. 자기완성의 길은 외부의 가르침을 통해 주어지지 않으며 자신의 체험, 삶을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이를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일체의 소리들, 일체의 목적들,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사건의 강을 이루고 있었으며 생명의 음악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싯타르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이 강에, 이 수천 가지 소리에 어우러진 노래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가 고통의 소리에도 웃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어떤 특정한 소리에 묶어 두거나 자신의 자아와 더불어 그 어떤 소리에 몰입하지 않고 모든 소리를 듣고, 전체,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개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이라는 말이었다.(싯다르타 196페이지) 
 
완성의 의미 옴은 모든 것은 온전히 수용하였을 때에 우리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영혼의 소리다. 싯다르타가 자신의 운명과 싸우는 일도, 고민하는 일도 그만 두었을때 그는 온전한 평화에 이르렀다. 자신의 운명을 상상하고 그 방향으로 끌고 가려 안간힘을 쓰면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의 평화를 염원하고 깨달음과 해탈을 염원한다. 주어진 삶과 대립할 때 평화는 우리에게서 멀리 도망가 버린다. 갈등과 분노와 괴로움이 그 곳에서 일어선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싯다르타'의 싯다르타처럼 우리는 자기완성을 염원하며 살아간다. 그 해답이 결코 자신의 외부에 있지 않음을 가르쳐 준 책이다. 내 삶의 이정표는 결국 내 안에 있음을 확인한다. 가볍고 얄팍한 확신이라 작은 바람에도 또다시 흔들릴지라도 다시 알아차리면 된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해로 계획을 세운다. 그 중심에 '내가 있는가' 나 자신에게 묻는다. 싯다르타는 자기완성을 위해 스스로 나아갔지만 아직은 싯타르다도 부처 고타마도 작가 헤르만 헤세도 곁에 두고 싶은 영적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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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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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세월'이란 단어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다. 쉼 없이 흐르고 그 흐름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 누구에게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세월을 따라 흐른다. 그 유장한 흐름이 삶이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은 개인의 서사이고, 가족의 서사이며, 프랑스의 서사이고, 유럽의 서사인 동시에 세계의, 인간 보편의 서사다.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반칙이다. 그녀의 기억은 집요하고 촘촘하다. 사라지지도 색이 바래지도 않았다. 때로 장중한 오케스트라 같고, 때로는 가족 음악회 같으며, 때로는 허밍 같다. 이 책은 '그녀'의 기억이고 '우리'의 기억이며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 속에 전쟁과 테러와 삶을 위한 투쟁이 함께 흐른다. 사랑이 있고 이별도 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이 모든 과정의 경험들은 개인의 기억에 각인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기억은 자신의 생 전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사람살이는 시대와 시간을 넘어서있다. 이런 자연적인 순리가 왜 우리를 슬프게 할까? '퐁투아즈 요양원 현관에서 오후 내내 잠옷과 슬리퍼를 신고, 방문객들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더러운 종이를 내밀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며 울던 남자' 책의 마지막 장 그 남자가 '그'이거나 '그녀'이거나 '우리'이거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울게 된다. 우리들의 부모 혹은 우리의 모습일지 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세세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리다. 책을 덮으며 느꼈던 쓸쓸함과 애잔함은 기억 속에서 금방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많은 문장에 줄을 그었다. '세월'을 세상에 남겨놓은 그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럽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책이다.

연말연시다. 그 어느 때보다 몸도 마음도 부산스러운 시기, 이 책은 추억을 따뜻함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그 시간 속의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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