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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다섯 계급으로 나뉘며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량생산된다. 이들은 시험관에서 길러지며 반복적인 수면 학습과 전기 충격 등으로 자신의 신분에 맡는 역할을 세뇌당하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과 신분에 만족하며 산다. 소마라는 약을 먹고 슬픔이나 분노 등 나쁜 기억을 없애고 만인을 위해 만인이 존재한다는 사회통념에 충실하면서 쾌락을 즐기며 산다. 어머니, 아버지, 부모님, 결혼, 가정, 임신, 자유, 순결, 태어나다 등은 이 사회의 금기어다.
누구도 불만이 없어 보이는 완벽한 세계에 어느 날 야만인 보호구역에 살던 존이 나타난다. 존은 놀라운 과학문명에 감탄하지만 정부에 의해 개인의 자유나 행복까지도 관리당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껴 외딴 등대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은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끓임 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총통과 존의 대화다. 영생이 삶의 축복일 수 없듯이 온갖 고통이 사라지고 쾌락만이 존재하는 세상도 우리가 갈구하는 이상향이 아님을 이 책은 보여준다.
1932년 작품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과학과 문질문명의 발달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은 헉슬리가 우려했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90여 년 전 과학의 미래를 비판적으로 내다본 작가의 통찰력이 놀라운 작품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고통이 없기를 바라고 슬픔이나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이 내 삶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헉슬리가 제시한 사회는 그런 세상이다. 완벽한 세상처럼 보이지만 그곳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의지가 사라진 개인들은 '나'라는 고유성을 잃어버리고 획일화된다.
완벽한 세계에서 철저하게 제거되는 그 모든 것을 원한다는 존의 외침은 의미심장하다. 죽음이 있어 삶이 있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 행복 역시 고통이 있어야 존재한다. 존의 말처럼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 모든 것의 선택 역시 우리 의 권리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지금의 삶, 그 속에 존재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