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암흑의 시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거치는 동안 그때까지 중세 유럽 사회를 지탱했던 세계관과 가치관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자 했고 근대 사회사상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인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자 물질적 정신적 주체로 자리 잡았고, 사회는 그러한 인간들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보장해 주는 제도적 장치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사회사상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대중적 지식으로 확산되었으며, 유럽 사회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정치혁명과 경제혁명으로 발산되었다. 이에 유럽은 두 혁명을 통과하면서 근대 사회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이끈 힘이 이성이었고, 이성은 서구 근대 사회를 이끄는 근본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푸코는 서구의 근대 이성은 과학적 진리의 이름으로 비이성적인 것들을 타자화하는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근대의 지식이 얼마나 진리와 거리가 먼가를,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그 지식이 비이성적인 사람들을 얼마나 정교하게 통제하는가를 제시했다. 근대는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이한 억압과 지배의 메커니즘을 통해 억압과 폭력을 자행한다고 폭로하였다. 근대의 통치 방식이 외적인 도덕규범을 집단적 차원에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의 내면화를 통해 개인들 각자가 참과 거짓, 옳음과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시스템화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도덕원칙이 자신이 아닌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기에 근대 이성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폭력으로 보았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근대이성이 삶의 진보와 해방을 이끈 힘이며 민주주의의 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절대주의 군주 체제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통제를 통해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해 낸 18세기 부르주아 공론장, 살롱, 독서클럽, 공공도서관 등에서 형성된 비판적 여론이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하바마스는 이성과 합리성은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기존의 규범과 가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규범과 가치들을 확립해 나가는 원리하고 주장한다.
근대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었다. 인간의 삶에도 급격한 변화가 주어졌다. 혼란과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진 시대였을 것이다. 그런 근대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두 철학자의 사유는 난해했지만 흥미롭기도 했다. 도덕적 규범의 내면화 속에 함몰된 채 그것이 폭력이나 억압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강제된 도덕규범을 진리인 양 받아들이며 살았다. 정치체제나 사회가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에 너무 종속적 주체로만 산 건 아닐까 반성이 뒤따른다.
언젠가 역사는 발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수많은 난제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멈춰있을 수 없는 존재이고 나아감은 우리를 오늘보다는 조금 나은 우리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믿기에 근대 이성을 긍정적으로 진단했던 하바마스의 주장도 옳다는 생각이 든다.
푸코는 자신의 도덕적 규범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능동적 주체가 되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배려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며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자기 성찰로 나아가는 것, 참으로 묵직한 숙제다. 푸코의 주장처럼 능동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기 성찰로 나아가지 못한 이성은 언제든 억압과 지배의 메커니즘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덮고도 더 큰 숙제를 받아 안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