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마크 피셔 지음, 안현주 옮김 / 구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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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장을 잘못 찾은 느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래도 영화 이야기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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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 사냥꾼 베라 스탠호프 시리즈
앤 클리브스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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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은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조각들을 따라가면 지루하진 않지만, 늘 마지막에 가서 설명해줘야 알아먹는 나는 추리능력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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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주 세라 - 어린 시절 읽던 소공녀의 현대적 이름 걸 클래식 컬렉션 1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오현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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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이야기야. 너도 이야기고, 나도 이야기야. 민친 교장도 이야기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야기가 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힘차게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지난날에 대한 보상처럼 일어나는 마법 같은 일들이라든가, 낙동강 오리알처럼 오리들 틈에서 외로워하던 존재가 실은 화려한 깃털을 가진 특별한 존재였다는 가슴 두근거리는 이야기들 말이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작은 공주 세라>는 한 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전세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되어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도 거기엔 '세라 크루'라는 인물이 지닌 특별함이 큰몫을 하지 않았을까. 신분계급을 뜻하는 공주 이야기도 아니고 당연히 왕자의 등장도 없으며 팔할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채 착취를 당하는 내용이지만 주인공 세라가 날벼락처럼 찾아온 비극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이나 성숙해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또한 인종과 계급을 넘어 약자를 포용하는 자세는 아동용 도서라 생각해 읽기를 주저했던 게 무색할 만큼 큰 울림을 주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진정한 인간됨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이야기, 삶에 귀감이 되는 인물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세라에게 부유함이란 그저 익숙한 것에 불과했다. 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모르던 아이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 고아로 신분 추락을 겪는다. 민친 기숙학교를 대표하던 전시용 학생에서 떠맡아야 할 골칫덩이로 전락해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춥고 삭막한 다락방으로 쫓기듯 거처를 옮긴다. 열한 살 생일날에 알게 된 아버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사람들 앞에선 당당한 기백을 잃지 않는다. 의연하게 상황에 수긍하고 기숙학교에 남아 일을 할 수 있음에 안도하는 장면에서, 자신이 베푼 친절에 감사인사를 강요하는 '민친 교장'에게 세라는 이렇듯 당차게 말한다. -"친절하게 대하지 않으셨어요."- 작중 두 인물간의 대립구도는 계속 이어진다. 권력을 이용해 위압감과 모멸감을 주려는 교장과 그런 상대에게 주눅들지 않고 또 비난하진 않으면서도 할말은 하는 세라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많은 일이 우연하게 일어나." 세라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내겐 근사한 일이 많이 생긴 것도 우연이야. 어떻게 하다보니 난 공부와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배운 내용을 잘 기억하게 된 거야. 내가 잘생기고 다정하고 똑똑한 아빠한테서 태어난 것도,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는 아빠가 있는 것도 다 우연이라고. 난 원래 착한 아이가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친절하게 대해주는데, 어떻게 착한 아이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니?" p.54




나를 규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초반부 세라는 하녀 '베키'에게 이 같은 말을 한다. -"우린 똑같은 사람이고 두 어린아이일 뿐이야."- 지금의 자신을 이룩한 것은 우연의 결과일뿐 중요한 것은 외모도 재산도 아닌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는지 라며 작가 버넷은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의 핵심을 전한다. 없는 것 없이 다 가졌으니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라비니아'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진 자의 젠체함이나 우월적 시선에서 나온 조언 따위가 아니란 것은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순수한 인물 세라를 통해 보여준다. 온갖 화려한 것들로 둘러쌓여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었던 때와 누더기를 걸치고 일꾼들의 괄시와 친구들의 수근거림을 감당해야 했을 때의 세라는 결코 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고된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이야기를 상상하고, 책을 읽고, 주변을 돌보며 오히려 한층 더 성장한다. 오늘날 사회에 소속돼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과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역으로 내가 나를 규정해보면 어떨까. 마리 앙투아네트의 강인함도 좋고 영민하고 선한 마음씨의 우리의 작은 공주 세라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나를 좀먹는 부정적인 영향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필요가 있다.

 


선(善)의 힘은 강하다. 삶을 달관하는 듯한 작은 공주에게도 가끔씩 화가 치미는 순간이 찾아오지만 지르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로티'에게 양엄마가 되어주고 외톨이 '어먼가드'와 모두의 무시를 받는 베키에게 먼저 손 내미는 세라에게서 나는 진정한 외유내강을 본다. 또한 하인 '람 다스'에게 먼저 건낸 따뜻한 인사는 나비효과처럼 마법을 불러일으켰고, 남루한 행색의 소녀가 굶주린 아이에게 빵을 나누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빵집 주인은 또 다른 선행을 이어갔다. '크루 대위'가 이런 딸을 모습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남자아이가 아니어도, 가진 게 없어도 세라는 이미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그날 '앤'이 건네받은 빵에 담긴 따뜻한 마음처럼 식지 않고 계속 퍼져나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선(善)이 아닐까. 이야기로 시시각각 자신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스티유 감옥도 빼놓을 수 없다. 깜찍한 동거자들 멜키세덱 식구들을 포함해 인형 에밀리를 대신하는 진정한 친구들을 얻은 곳이자 인도 신사 '캐리스포드 씨'와의 인연을 이어준 다락방은 넓고 값비싼 물건들로 가득했지만 외로웠던 특실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세라가 다시금 이야기의 힘을 깨닫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진한 잔상을 안겨준다. 삭막한 다락방 풍경에 우울해하는 로티를 달래려 굴뚝에서 피어나는 구름의 모양을, 사람인 양 짹짹거리는 참새의 풍경을, 창문으로 쏟아지는 별들을 말하던 장면. 언제나 화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 스스로 청자가 되어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정말 아름다운 순간. 진실로 이야기는 불행을 견디는 방법이자 삶을 영위해 나가는 힘이 된다.





어릴 적 제목의 뜻도 모르고 빠져들어 보았던 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판자에 의지해 위태롭게 건물을 걷너간 소녀는 아버지와 재회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원작을 읽은 지금에서야 영화가 많이 각색되었음을 알게 됐는데 어쩐지 기분이 울적하다. 영화 속 세라에게 일어난 불운한 사건은 그저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이 나지만 완전한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 소설 속 세라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담긴 세세한 묘사와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 예상과 다른 결말이 더해져 원작의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는 무작정 나쁘게만 보였던 민친 교장이 실은 상처가 많은 미성숙한 어른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엉뚱하게도 팽개쳐두었던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이 샘솟는기도 한다. 비록 늦게 세라를 만났지만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이것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련다. 분명 "모든 일에는 우리가 모르는 좋은 점이" 있으니까.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도, 다 자란 아이들도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환경에 있든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평등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특별한 존재란 사실을.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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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 누구도 말하지 않은 진실
권순욱 지음 / 혜윰(도서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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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무현을 부르짖는 치들을 보며 또 얼마나 개탄스러워 하실까. 여전히 현재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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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3-08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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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일상이고 글 쓰기가 직업인 여자' 띠지 카피가 인상적이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참으로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구나, 처음엔 그런 막연한 생각을 했다. 작가 소개란을 보고는 이렇게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면 분명 굉장히 부지런한 성미의 소유자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공감의 웃음이 흘러나왔고 다 읽고 난 지금에는 예술이 일상인 삶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졸음을 쫓으려 들이키던 커피가 이젠 프랑스 화가 질베르의 「커피 한 잔」을 떠올리며 더 짙은 향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미국 풍경화가 조지 이네스의 「몬트클레어, 11월」 속 나그네의 시선 너머 나의 내면을 보게되는 것처럼 삶의 감각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저자 문소영은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를 다루면서 당연시되는 불합리함이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꼬집어 이야기하면서도 무턱대고 할 수 있다며 등떠밀거나, 천편일률적인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 자신의 시선과 사유하는 방식을 넌지시 보여줄 뿐이다.




아기를 낳고 돌보며 심신이 녹초가 되고 자기 시간이 따로 없게 된 한 지인은 자식을 무척 사랑하지만 때로는 자식이 자기를 파먹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다. 나도 그렇게 엄마를 파먹었으리라. 엄마는 끝없이 인내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어머니가 되어갔으리라. 그래서 어머니 노릇을 하는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모성애가 신화에 불과하기에 더더욱 위대하다. 본능을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며 어머니가 되는 것이기에. p.81




나는 아직도 가끔씩 혼란스럽다. 여성의 목소리가 소거된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우스꽝스럽게도 나 자신을 착각하고 오해하는 무수한 인지부조화의 순간을 지나왔다. 듣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올라올 것 같은 모성애가 하나의 예다. 신성시 되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스러운 이면을 뒤늦게 알고 비출산을 결심했지만 한때는 나같이 삭막한 사람도 아이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보편적 의미의) 모성애가 발현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더랬다. 그런데 위 구절을 읽으며 어딘가 찜찜했던 부분이 해결됐다. 그러니까 본래 어머니 노릇이란 난데없이 불쑥 솟아나는 게 아닌 끝없는 인내와 자신을 향한 채찍질로 이루어진 험난한 수행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문득 애잔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를 괴롭히던 남자아이들의 행동을 호감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키고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던 어른들의 말말말. 그때 같이 때려주었더라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을 텐데. 억누르고 참는 건 이제 그만 하련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당찬 일라이자처럼 그 어떤 상황에 놓여져도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일단 나부터 변해야 한다. 비교의 잔소리는 듣기 싫으면서도 은연중에 거기에 동화돼 스스로를 열등감에 가두고 남에게도 비교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많다. 이로써 비교의 굴레는 순환, 확장된다. 좀 벗어나 보고 싶다. p.156




번아웃 증후군으로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들과 이에 대한 반향처럼 재산 탕진의 즐거움을 누리는 그릇된 욜로족의 등장은 지금 우리 사회의 방향성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기나긴 여정에서 지독한 번뇌에 빠지지 않고 삶을 잘 운용하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어떨까. 우리는 의심하는 토마를 가슴에 품어 소리내어 말하고 사색적 집중 상태로 타인의 지옥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너와 나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죽음을 인식하고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는 광대한 시야가 절실하다. 작가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수동성" 이라며 사람들에게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꼭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원대한 일은 아닐지라도 비교의 굴레를 벗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지치지 않는 게으른 몸짓으로 말이다.



독서란 본래 혼자하는 행위인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대화를 나눈 기분이다. 비슷한 취향을 지닌 이와 실컷 주고 받을때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미 본 영화인데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간 장면이라던지 아예 다른 의미로 오해하고 있었던 표현이나 맘에 들어오는 시를 발견한 건 최고의 성과였다. 최근 덥고 습한 날씨를 핑계로 아주 게으른 독서를 하던차에 본문에 등장한 영화와 책들은 다시 움직일 원동력으로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 한마디를 보태자면, 그에게 과민하단 말 대신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 말해주고 싶다. 아름다움에서 보는 씁쓸함이야말로 진정 삶을 다채롭게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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