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주 세라 - 어린 시절 읽던 소공녀의 현대적 이름 걸 클래식 컬렉션 1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오현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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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이야기야. 너도 이야기고, 나도 이야기야. 민친 교장도 이야기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야기가 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힘차게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지난날에 대한 보상처럼 일어나는 마법 같은 일들이라든가, 낙동강 오리알처럼 오리들 틈에서 외로워하던 존재가 실은 화려한 깃털을 가진 특별한 존재였다는 가슴 두근거리는 이야기들 말이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작은 공주 세라>는 한 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전세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되어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도 거기엔 '세라 크루'라는 인물이 지닌 특별함이 큰몫을 하지 않았을까. 신분계급을 뜻하는 공주 이야기도 아니고 당연히 왕자의 등장도 없으며 팔할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채 착취를 당하는 내용이지만 주인공 세라가 날벼락처럼 찾아온 비극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이나 성숙해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또한 인종과 계급을 넘어 약자를 포용하는 자세는 아동용 도서라 생각해 읽기를 주저했던 게 무색할 만큼 큰 울림을 주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진정한 인간됨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이야기, 삶에 귀감이 되는 인물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세라에게 부유함이란 그저 익숙한 것에 불과했다. 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모르던 아이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 고아로 신분 추락을 겪는다. 민친 기숙학교를 대표하던 전시용 학생에서 떠맡아야 할 골칫덩이로 전락해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춥고 삭막한 다락방으로 쫓기듯 거처를 옮긴다. 열한 살 생일날에 알게 된 아버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사람들 앞에선 당당한 기백을 잃지 않는다. 의연하게 상황에 수긍하고 기숙학교에 남아 일을 할 수 있음에 안도하는 장면에서, 자신이 베푼 친절에 감사인사를 강요하는 '민친 교장'에게 세라는 이렇듯 당차게 말한다. -"친절하게 대하지 않으셨어요."- 작중 두 인물간의 대립구도는 계속 이어진다. 권력을 이용해 위압감과 모멸감을 주려는 교장과 그런 상대에게 주눅들지 않고 또 비난하진 않으면서도 할말은 하는 세라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많은 일이 우연하게 일어나." 세라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내겐 근사한 일이 많이 생긴 것도 우연이야. 어떻게 하다보니 난 공부와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배운 내용을 잘 기억하게 된 거야. 내가 잘생기고 다정하고 똑똑한 아빠한테서 태어난 것도,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는 아빠가 있는 것도 다 우연이라고. 난 원래 착한 아이가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친절하게 대해주는데, 어떻게 착한 아이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니?" p.54




나를 규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초반부 세라는 하녀 '베키'에게 이 같은 말을 한다. -"우린 똑같은 사람이고 두 어린아이일 뿐이야."- 지금의 자신을 이룩한 것은 우연의 결과일뿐 중요한 것은 외모도 재산도 아닌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는지 라며 작가 버넷은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의 핵심을 전한다. 없는 것 없이 다 가졌으니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라비니아'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진 자의 젠체함이나 우월적 시선에서 나온 조언 따위가 아니란 것은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순수한 인물 세라를 통해 보여준다. 온갖 화려한 것들로 둘러쌓여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었던 때와 누더기를 걸치고 일꾼들의 괄시와 친구들의 수근거림을 감당해야 했을 때의 세라는 결코 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고된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이야기를 상상하고, 책을 읽고, 주변을 돌보며 오히려 한층 더 성장한다. 오늘날 사회에 소속돼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과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역으로 내가 나를 규정해보면 어떨까. 마리 앙투아네트의 강인함도 좋고 영민하고 선한 마음씨의 우리의 작은 공주 세라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나를 좀먹는 부정적인 영향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필요가 있다.

 


선(善)의 힘은 강하다. 삶을 달관하는 듯한 작은 공주에게도 가끔씩 화가 치미는 순간이 찾아오지만 지르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로티'에게 양엄마가 되어주고 외톨이 '어먼가드'와 모두의 무시를 받는 베키에게 먼저 손 내미는 세라에게서 나는 진정한 외유내강을 본다. 또한 하인 '람 다스'에게 먼저 건낸 따뜻한 인사는 나비효과처럼 마법을 불러일으켰고, 남루한 행색의 소녀가 굶주린 아이에게 빵을 나누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빵집 주인은 또 다른 선행을 이어갔다. '크루 대위'가 이런 딸을 모습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남자아이가 아니어도, 가진 게 없어도 세라는 이미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그날 '앤'이 건네받은 빵에 담긴 따뜻한 마음처럼 식지 않고 계속 퍼져나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선(善)이 아닐까. 이야기로 시시각각 자신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스티유 감옥도 빼놓을 수 없다. 깜찍한 동거자들 멜키세덱 식구들을 포함해 인형 에밀리를 대신하는 진정한 친구들을 얻은 곳이자 인도 신사 '캐리스포드 씨'와의 인연을 이어준 다락방은 넓고 값비싼 물건들로 가득했지만 외로웠던 특실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세라가 다시금 이야기의 힘을 깨닫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진한 잔상을 안겨준다. 삭막한 다락방 풍경에 우울해하는 로티를 달래려 굴뚝에서 피어나는 구름의 모양을, 사람인 양 짹짹거리는 참새의 풍경을, 창문으로 쏟아지는 별들을 말하던 장면. 언제나 화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 스스로 청자가 되어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정말 아름다운 순간. 진실로 이야기는 불행을 견디는 방법이자 삶을 영위해 나가는 힘이 된다.





어릴 적 제목의 뜻도 모르고 빠져들어 보았던 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판자에 의지해 위태롭게 건물을 걷너간 소녀는 아버지와 재회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원작을 읽은 지금에서야 영화가 많이 각색되었음을 알게 됐는데 어쩐지 기분이 울적하다. 영화 속 세라에게 일어난 불운한 사건은 그저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이 나지만 완전한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 소설 속 세라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담긴 세세한 묘사와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 예상과 다른 결말이 더해져 원작의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는 무작정 나쁘게만 보였던 민친 교장이 실은 상처가 많은 미성숙한 어른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엉뚱하게도 팽개쳐두었던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이 샘솟는기도 한다. 비록 늦게 세라를 만났지만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이것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련다. 분명 "모든 일에는 우리가 모르는 좋은 점이" 있으니까.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도, 다 자란 아이들도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환경에 있든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평등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특별한 존재란 사실을.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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