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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예술이 일상이고 글 쓰기가 직업인 여자' 띠지 카피가 인상적이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참으로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구나, 처음엔 그런 막연한 생각을 했다. 작가 소개란을 보고는 이렇게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면 분명
굉장히 부지런한 성미의 소유자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공감의 웃음이 흘러나왔고 다 읽고 난 지금에는 예술이
일상인 삶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졸음을 쫓으려 들이키던 커피가 이젠 프랑스 화가 질베르의 「커피 한 잔」을 떠올리며 더 짙은 향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미국 풍경화가 조지 이네스의 「몬트클레어, 11월」 속 나그네의 시선 너머 나의 내면을 보게되는 것처럼 삶의 감각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저자 문소영은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를 다루면서 당연시되는 불합리함이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꼬집어 이야기하면서도 무턱대고 할 수 있다며 등떠밀거나, 천편일률적인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 자신의 시선과 사유하는 방식을 넌지시 보여줄 뿐이다.
아기를
낳고 돌보며 심신이 녹초가 되고 자기 시간이 따로 없게 된 한 지인은 자식을 무척 사랑하지만 때로는 자식이 자기를 파먹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다. 나도 그렇게 엄마를 파먹었으리라. 엄마는 끝없이 인내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어머니가
되어갔으리라. 그래서 어머니 노릇을 하는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모성애가 신화에 불과하기에 더더욱 위대하다. 본능을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며 어머니가 되는 것이기에. p.81
나는
아직도 가끔씩 혼란스럽다. 여성의 목소리가 소거된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우스꽝스럽게도 나 자신을 착각하고 오해하는 무수한
인지부조화의 순간을 지나왔다. 듣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올라올 것 같은 모성애가 하나의 예다. 신성시 되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스러운 이면을 뒤늦게 알고 비출산을 결심했지만 한때는 나같이 삭막한 사람도 아이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보편적 의미의) 모성애가 발현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더랬다. 그런데 위 구절을 읽으며 어딘가 찜찜했던 부분이 해결됐다. 그러니까 본래 어머니 노릇이란 난데없이 불쑥 솟아나는 게 아닌 끝없는 인내와 자신을 향한 채찍질로 이루어진 험난한 수행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문득 애잔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를 괴롭히던 남자아이들의 행동을 호감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키고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던 어른들의 말말말. 그때 같이 때려주었더라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을 텐데. 억누르고 참는 건 이제 그만 하련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당찬 일라이자처럼 그 어떤 상황에 놓여져도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일단 나부터 변해야 한다. 비교의 잔소리는 듣기 싫으면서도 은연중에 거기에 동화돼 스스로를 열등감에 가두고 남에게도 비교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많다. 이로써 비교의 굴레는 순환, 확장된다. 좀 벗어나 보고 싶다. p.156
번아웃
증후군으로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들과 이에 대한 반향처럼 재산 탕진의 즐거움을 누리는 그릇된 욜로족의
등장은 지금 우리 사회의 방향성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기나긴 여정에서 지독한 번뇌에 빠지지 않고 삶을 잘 운용하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어떨까. 우리는 의심하는 토마를 가슴에 품어 소리내어 말하고 사색적 집중 상태로 타인의 지옥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너와 나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죽음을 인식하고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는 광대한 시야가 절실하다. 작가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수동성" 이라며 사람들에게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꼭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원대한 일은 아닐지라도 비교의 굴레를 벗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지치지 않는 게으른 몸짓으로 말이다.
독서란 본래 혼자하는 행위인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대화를 나눈 기분이다. 비슷한 취향을 지닌 이와 실컷 주고 받을때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미 본 영화인데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간 장면이라던지 아예 다른 의미로 오해하고 있었던 표현이나 맘에 들어오는 시를 발견한 건 최고의 성과였다. 최근 덥고 습한 날씨를 핑계로 아주 게으른 독서를 하던차에 본문에 등장한 영화와 책들은 다시 움직일 원동력으로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 한마디를 보태자면, 그에게 과민하단 말 대신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 말해주고 싶다. 아름다움에서 보는 씁쓸함이야말로 진정 삶을 다채롭게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