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람 믿지 말고
쏘련한테 속지 말고
일본놈들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세
뇌일수록 끝없는 우울과 서글픔과 비감이 쌓이는 가락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그 노래는 하늘의 일깨움이고 하늘의 예언인지도 모른다. 예언을 제대로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래서 실천될 수 없기에 예언은 언제나 빛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사람을 믿고, 소련한테 속아 이미
서로 다른 정권을 세움으로쎄 예언과는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
경찰 토벌대는 치안을 위하고, 도주한 빨갱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 했다. 빨갱이들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중차대한 일을 수행 할거라 했다. ‘조선사람 조심하라‘... 그러나 토벌대는 치안을 불안하게 했고, 재산을 축냈고, 인명을 함부로 죽였다. 경찰서는 살벌한 폭행의 장소가 되었다. 경찰들의 팽배한 보복감정이 앞선 횡포와 잔인함의 결과는 그들에게 명분이 되었다. 토벌대의 횡포에 무참히 죽음일 당한 청년의 시체 앞에 손승호는 자신에 대해 존재론적 회의를 느꼈다.
" 내가 몇 시간 전에 들른 학생 집이었고, 그때 만났던 사람을 피 흘리는 시체로 보아야했지,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총 든 사람들 앞에 인명이 파리 목숨이야. 그 순간 나는 내가 한 마리 작고 하잘것없는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어, 그 장소를 외면할 비굴한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폭력에 대항할 당당한 용기도 없는 나는 이미 내 눈앞의 시체와 다를 것이 없었지. "
카프카의 ‘변신‘에서 해충으로 변신한 주인공 잠자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현실의 문제에 대응할수도, 도망칠수도 없는 상황. 나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실존과 정체정의 문제 앞에서 ‘변신‘의 주인공 잠자는 자신의 기생적 존재에 타협함으로 죽음을 선택 한다. 자기 희생으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흉측한 해충으로 변신한 잠자. 생존을 위해 허덕이는 자아는 껍데기에 불과한 벌레 같은 존재였다. 피곤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가족의 따뜻한 보호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와 가족에게서 배제 되었다. 손승호 또한 삶의 부조리 앞에서 자신의 한계성에, 자신의 자아는 껍데기에 불과한 벌레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실존과 정체성의 문제 앞에서 손승호의 선택은 실증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모아 인위적 힘을 만들어 관권의 폭력을 쳐부술 수 있음을 실증 한다. 그들 속으로 들어감으로 구성원의 일원이 되기를 자처했다.
아리랑과 마찬가지로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실존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고 혼란함을 느낀다. 눈으로 읽는 내가 이럴진대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랴... 잠자처럼 스스로 소멸의 죽음을 택하거나 손승호처럼 존재의 실증을 택하거나. 그 어느 쪽을 택하던 서글픔과 비감이 쌓이기는 마찬가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