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선우 선생이 겪은 경험에 예속되거나 또는 피해를 입은 보복감정으로 가치를 설정하거나 판단의 기준을 삼거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탈피하지 못하면 생각이 왜소해지고, 사태를 오판하게 되고, 사람을 오해하게 되고, 스스로 외로워지게 됩니다. 사회 개혁이라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부르짖거나 실천하는 공산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도 사회개혁은 얼마든지 부르짖을 수 있고 실천될 수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더욱 사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백산맥 2 (무선) - 제1부 한의 모닥불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사람 믿지 말고
쏘련한테 속지 말고
일본놈들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세

뇌일수록 끝없는 우울과 서글픔과 비감이 쌓이는 가락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그 노래는 하늘의 일깨움이고 하늘의 예언인지도 모른다. 예언을 제대로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래서 실천될 수 없기에 예언은 언제나 빛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사람을 믿고, 소련한테 속아 이미
서로 다른 정권을 세움으로쎄 예언과는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

경찰 토벌대는 치안을 위하고, 도주한 빨갱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 했다. 빨갱이들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중차대한 일을 수행 할거라 했다. ‘조선사람 조심하라‘... 그러나 토벌대는 치안을 불안하게 했고, 재산을 축냈고, 인명을 함부로 죽였다. 경찰서는 살벌한 폭행의 장소가 되었다. 경찰들의 팽배한 보복감정이 앞선 횡포와 잔인함의 결과는 그들에게 명분이 되었다. 토벌대의 횡포에 무참히 죽음일 당한 청년의 시체 앞에 손승호는 자신에 대해 존재론적 회의를 느꼈다.

" 내가 몇 시간 전에 들른 학생 집이었고, 그때 만났던 사람을 피 흘리는 시체로 보아야했지,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총 든 사람들 앞에 인명이 파리 목숨이야. 그 순간 나는 내가 한 마리 작고 하잘것없는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어, 그 장소를 외면할 비굴한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폭력에 대항할 당당한 용기도 없는 나는 이미 내 눈앞의 시체와 다를 것이 없었지. "

카프카의 ‘변신‘에서 해충으로 변신한 주인공 잠자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현실의 문제에 대응할수도, 도망칠수도 없는 상황. 나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실존과 정체정의 문제 앞에서 ‘변신‘의 주인공 잠자는 자신의 기생적 존재에 타협함으로 죽음을 선택 한다. 자기 희생으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흉측한 해충으로 변신한 잠자. 생존을 위해 허덕이는 자아는 껍데기에 불과한 벌레 같은 존재였다. 피곤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가족의 따뜻한 보호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와 가족에게서 배제 되었다. 손승호 또한 삶의 부조리 앞에서 자신의 한계성에, 자신의 자아는 껍데기에 불과한 벌레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실존과 정체성의 문제 앞에서 손승호의 선택은 실증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모아 인위적 힘을 만들어 관권의 폭력을 쳐부술 수 있음을 실증 한다. 그들 속으로 들어감으로 구성원의 일원이 되기를 자처했다.

아리랑과 마찬가지로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실존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고 혼란함을 느낀다. 눈으로 읽는 내가 이럴진대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랴... 잠자처럼 스스로 소멸의 죽음을 택하거나 손승호처럼 존재의 실증을 택하거나. 그 어느 쪽을 택하던 서글픔과 비감이 쌓이기는 마찬가지 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이란 무엇인가. 동물이란 무엇인가. 굶주림 앞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 동물과 다름은 무엇인가. 시한부적 배고픔도 이리 견디기 어려운데 영속적인 굶주림은 얼마나 큰 형벌인가. 가난한 사람들, 아무리 몸부림쳐도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굶주림에서 벗어날수 없도록 짜여진 사회구조에 얽매여 있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인내심이 강한 것이 아니다. 사회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소수 부류들이그만큼 철두철미하게 잔인한 것이다. 그런 사회구조는 기필코 바꿔져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찰들이 공산주의자들을색출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고, 경찰서가 살벌한 폭행의 장소가 되는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싶었다. 어떤 주의의 정치적 실현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기 전에 순천경찰서는 이번 사건으로 기존경찰의 절반 이상을 잃어야 하는 현실적 피해를 입은 형편이었다. 자신이 학병으로 끌려가 대일본제국의 승리나 천황폐하의 영광을 위해총을 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 총질을 했듯이, 경찰들도 팽배한 보복감정이 앞서 횡포해지고 잔인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나 수단이야 어찌되었든 결과는 거창한 명분을 실현시키는 데 공헌하게 되는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도 땅의 역사의 길이가 반만년 이라고 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턱대고 자랑삼으려 한다. 세월의 길이가 왜 자랑감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건 배부른 자, 인민대중의 생혈을 빨고 살아온 부르주아계급들의 타령이고 최면술인 것이다. 그 긴 세월이 진정 자랑이 되려면 계급 없는 사회로 계속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왕조 오백 년, 고려왕조
오백 년, 그리고 통일신라 오백 년과 그 전 왕조들........끝도 없는 착취의 역사일 뿐이었는데 그 세월을 무엇으로 자랑삼는다는 것인가, 반만년의 역사는 가장 비인간적인 착착취의 부끄러운 역사가 되고 말았다. 그런 세월을 무엇으로 자랑 삼을 수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