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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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더이상 그렇게,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건 잘 사는 길이 아니죠,
적어도 내겐 그래요. "

5월의 어느 해질 무렵 애디는 루이스를 찾아가 대담하고, 용기있는 제안을 한다. 어둡고 쓸쓸한 잠못드는 긴긴 밤을, 같이 지내자고...
밤 마다 자신의 집으로 와줄 수 있겠냐고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육체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잠못드는 긴긴 밤을 수면제에 의지하여 잠드는 것
보다는 누군가와 나란히 누워 얘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70의 나이에 누군가와 같이 잠을 잔다는 건 주위 사람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여, 수군 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은 주변의 시선에 그들의 기준에 맞추어 살지 않기로 결심을 한것이다.
그건 자신이 바라던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디의 제안을 받아들인 루이스 또한 부인과 사별한 70대 노인이다.
애디와 루이는 같은 마을에서 40년을 이웃으로 지낸 사이다.

"당신이 어떻게 내게 그런 제안을 할 생각을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돼요.
말했잖아요. 외로움 때문이라고요. 밤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고요.
용감한 일 같아요. 당신은 모험을 감행한 거예요.
맞아요. 하지만 뜻대로 안 됐다고 해도 더 나빠질게 없었거든요."

짧고도 간결한 문장.
무겁지도, 어둡지도 않은 전개.
켄트 하루프는 나이 듦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우정과 죽음에
대하여 아주 심플하게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가볍다고 할 수 는 없다.
그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을 하게되고 곱씹게 된다.

"여기 깃든 우정이 좋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요.
밤의 어둠속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잠을 깼을 때 당신이 내 옆에서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것."

애디와, 루이스는 커다란 침대에 누워 손을 잡고, 두런 두런 자신들의
살아온 얘기를 나눈다. 가끔은 귀여운 질투를 느끼며, 서로를 위로하고, 각자 살아온 삶을 격려하고, 공감해주며 우정을 쌓는다.

"원하는 걸 다 얻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대요? 혹시 있대도
극소수 일거에요. 언제나 마치 눈먼 사람들 처럼 서로와 부딪치고
해묵은 생각들과 꿈들과 엉뚱한 오해들을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거예요."

그들은 주위의 야유와 놀림, 자녀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그들의 현재를 살아낸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 스스로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알고봤더니 온통 말가죽인 것만은 아님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자유로워 지겠다는 일종의 결단이지, 그건 우리 나이에도
가능한 일이란다."

"난 그냥 하루하루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밤에는 당신과 함께 잠들고요."
"그래요,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죠, 우리 나이에 이런게 아직
남아 있으리란 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무 변화도, 흥분도 없이 모든게 막을 내려 버린 게 아니었다는,
몸도 영혼도 말라 비틀어져 버린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에요."

그렇게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삶을 살기위해 용기를 냈던 애디는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버리지 못하고 루이스에게 관계를 정리하자고 요구한다.
읽는 내내 애디와 루이스를 맘속으로 응원했고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삶을 마무리 짓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결말에가서는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연상케 한다. 서로 그리워하며, 둘만의 비밀로, 각자의 침대에 누워
전화로 못다한 얘기를 나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개방되고 각자의 삶과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 임에도 어쩔수 없이 늙음에 대한 편견은 똑 같은것 같다.
몇해전 한국 영화중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죽어도 좋아"가 상영 됐을 때 충격과 거부감이 생겼었다.
나이 들어 과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저 연세에 뭐하러 번거롭고 가족들 불편하게 사랑을 하는걸까? 하는 편견과, 굳이 육체적인 사랑이 필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강풀의 만화를 영화화 한 '그대를 사랑 합니다'가 상영 했을때는 나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지고 그래! 누구에게나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은 필요한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범신의 '은교' 중 이런 구절이 생각 난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것이 아니다."

왜? 우리는 늙음을, 노인을 추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왜? 노인들이 하는 사랑은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누구도 그분들의 사랑을 추하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젊음도 지나고 나면 자연히 늙음을 맞이하게
된다.젊은이는 그 오만함과 거만함을 버리고, 노인을 귀찮아 하지
말기를, 노인은 늙음을 서글퍼하거나, 구질구질 신세 한탄하지
말고,당당하게 떳떳하게 현재를 인정하고 즐기는 여유를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하여도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당신은 족음이 두렵지 않아요?
옛날 만큼은 아니에요. 일종의 내세를 믿게 됐거든요.
우리 본래 자아, 영적 자아로 돌아가는 거라고.
거기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냥 이 물리적육체여 깃들어 살 뿐이라고
생각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의 사랑을 응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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