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머클라비어
야스미나 레자 지음, 김남주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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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머클라비어(야스미나 레자-프랑스 극작가이자 소설가)

-함머클라비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29 B플랫 장조. 베토벤이 거의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곡 으로 작품의 길이가 50분 정도 된다.
1악장- 알레그로, 거부할수 없는 박력과,
웅장함.
2악장-짧은 스케르초, 나긋나긋하며,
경쾌,발랄
3악장-아다지오. 우아하고 매력적이다.
마지막장-푸가형식,복합적느낌으로
낭만적이다.

-함머클라비어-
19세기 제작된 피아노 포르테.
이탈리아어로 현대적으로 개량된 피아노를
뜻하는 피아노 포르테를 독일어로 옮긴 것.

제목을 보면서 작가가 왜? '함머클라비어'라고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에게 클레식 음악이란 넘사벽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좋네 '그이상의 감상평을 하기가 어려운 장르다.

책을 읽으며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를(5번) 감상하며 읽으니 조금은 제목을 이해할 듯 했다.
야스미나는 유대계 이란인 아버지와 유대계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만큼 감성이 풍부하고, 클래식에도, 미술에도, 문학에도 뛰어난 감성을 지녔다.

이책은 44편의 짧막한 에피소드의 자전적 소설이다.
44편의 이야기 속에는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
처럼 삶의 희,노.애,락 이 들어있다.

*<희>2악장 - 나긋나긋한 스케르초
"눈부신 미소"에서 딸의 앞니가 모두 빠진 공간을 드러내며 활짝 읏는 모습에서, 매력적이라 느끼며 "난 네 이가 정말 좋아" 그 찰라의 순간들을 그녀는 놓치지 않으려 웃는다.
"투덜이 소녀"에서는 일곱 살짜리 딸과 함께 작은 이야기책을 만들면서 죽이 잘맞다고 혼자만의 생각을하며 그 찰라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

-알타는 웃는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빨이 빠지는 구강 상의 성장단계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건 분명히 아는것 같다.-

*<노>1악장- 역동적
"어떤 꿈"에서 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나 베토벤을 만난 얘기를
통해서 베토벤이 자신의 함머클라비어의 아다지오 부분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냐며
화를 내는 모습에서는 베토벤의 다혈질 적인 면을 볼수 있다.
또한 "포르트 샹페레"에선 남녀가함께 차를타고 포르트 샹페레를 가는 중 남,녀의 실존적인 면에서의 차이 때문에,다름을 느끼며 육탄전을 버리듯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이 그 비극을 파헤쳐 분석했을 때도, 그들 두 사람이 애정에 찬 마음으로 각자의 변명에 유머 한 방울을 더하기로 동의했을 때도,(위고가 백퍼센트 잘못했다고 인정했을 때) 두 사람에게는 여전히 뭔가가 미진한 채로 남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또 다른 포르트 샹페레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애> 마지막장 -푸가형식, 낭적이며 종합적. "일그러진 함머클라비어"," 데스마스크" "어느아침", "마문", "현재를 초월해" 서는 삶의 종합, 결론을 보는것 같다.

- 마문은 너무나도 연약하다. 결코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말없는 깃털.~~그녀는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요란스럽게 아녕하세요,를 외치고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베토벤의 마지막 악장은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 삶에 있어서 낭만은 모든것을 포함하고 있지 않을 까? 죽음도 희망도,잊혀진 이들의 슬픔도 포함되는것 같다.

* <락>3악장- 매력적인 아다지오
"가엽은 크로체이크", "슬픈 언덕",
"뤼세트 모제스","목걸이" 등을 통해서 그녀의 우아하고, 고상하며, 품위있는 일상들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지적이며, 매력적이리 만치 자신에 찬 삶들이 질투가 날 정도다.

-이틀 후 나는 봉마르셰 백화점에서 여성판매원의 상술에 홀려 긴 진주 목걸이 두 개를 걸고 그곳을 나선다.~~친구 세르주와 블레옐 홀에서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베토벤 초기 소나타를 듣기로 했다. 새로산 목걸이를 하고 가면 어떨까?...-
-나는 가브리엘이 연구 중인 에에 세제르의 책을 뒤적인다. 여름이 지나가는 이때 가브리엘이 우리가 있는 스위스로 와서 함께 며칠을 보내고 있다.~~ 일정 나이를 지난 남자들에게서는 시간에 대한 무심함이 있다.
나도 갖고싶은 그런 무심함이.-

위의 평?들은 온전히 내 주관적인 생각, 느낌이다. 다소 억지스러운 짜맞추기식 평이긴 하지만 왠지 이렇게라도 억지스럽게 쓰고싶게 만든건, 그녀의 지적인 매력에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30초간의 침묵" 에서 그녀가 경멸했던 소위 "안다 박수를"(한국 사람들이 연주회에서 1악장이 끝나면 감동을 느끼기도 전에 악장이 끝날때 박수 쳐야하는 걸 난 알고 있지 하며 제일 먼저 아는체하며 무조건 박수 치는 사람.
요즘은 감정을 흩뜨린다고 박수를 안치기도 한다.) 치는게 나일지라도.
난 그 천박한 공동체에 속하고 싶다.

-마지막 대사가, 마지막 음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들의 거친 함성을 내지르고 싶어서 조바심을 치는 거야. 합법적인 자신들의 요란한 함성으로 연극의 마지막 한숨을 뒤덮고 싶어서, 자신들의 역겨운 자유를 세상에 공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거야-
-30초간의 침묵 중-

내가 이토록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그녀는
스스로 삶에 맞서고 있는 것일게다.
잊혀져 가고, 사라져 가는 시간과 추억들에
존재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고자 한 몸부림 인지도 모르겠다.
얘기 곳곳은 통쾌하면서도 슬프고 애잔함은
프랑스 문학적인 암울함이 있고, 해학이 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방법대로 시간에 내쫓기지 않으려고 애를쓰고 있다.

- 나는 과거 어느날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 어느 날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무관심한 이 두 순간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존재하려 애쓴다.-
-나는 시간 앞에 무릎을 꿇을 수가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결국 어떻게 행동하든 나는 결국 죽을 것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하고 싶다....
나는 더 나아가고 싶다.
나는 더 길을 잃고 싶다.
<참을성에 대한 공포 > 중

그녀는 어쩌면 시간을 뛰어 넘고 싶었는지도,
지배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려는 글을 씀으로 맞섰는데, 난 무엇으로 맞서야 할지를 깊이있게 고민해 봐야 겠다.

프랑스 문학은 언제나 너무 어렵고 심오해서 늘 부담스러웠는데 함머클라비어는 나에게 그 부담감을 완전히 덜어 주었다.
아주 짧은 내용에 얇으며, 그녀 주변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로 프랑스적인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깰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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