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장막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 10주년 기념판
토미 테니 지음, 이상준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정한 예배자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예배의 형식은 있으되 경건은 없다고 질책하신 하나님. “다윗의 장막”을 읽고 나의 형식적인 보는 예배를 회개하고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언제나 생활에 쫓겨 끝내야 할 숙제를 처리하듯이, 찜찜함을 해결하듯이, 출석 도장을 찍듯이, 하나님의 임함이 없는,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갈망함이 없는, 올리는 예배가 아니라 보는 예배를 드렸다. 예배 뒤에 숨어버리고 종교의 행사 뒤에 숨어서 진정한 신앙인인 양 나를 치장하였다.
이런 예배를 하나님은 얼마나 받으셨을까?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예배는 우리와의 만남의 예배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의 예배를 가장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다.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행15:16, 암9:11~12)
하나님은 왜? 그 집을 재건하기를 원하시는가?
최초인 모세의 장막도 아니고, 웅장한 솔로몬의 성전도 아닌, 초라하기 그지없는, 휘장도 없는 장막을~~
그건 다윗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좇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를 좇는 사람이었다.

-본문 중–

다윗은 단 한 번도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 속의 예배 만을 드렸다. 광기 어린 사울 왕에게서 도망을 다니면서도, 자식인 압살롬의 반역에 도망을 가면서도 신세 한탄이나 원망 없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예배를 드리며, 병사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설교할 정도였다. 내 생각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이라고 하나님께 이름을 받기 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오자 기도하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급기야 자기의 목숨을 구하고자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였다. 만약 다윗이었다면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며 찬양하고 예배하지 않았을까? 사도 바울은 나를 때릴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을 배울 뿐이라고 했다. 바울이 다윗의 교훈을 잘 따른 듯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그저 흥분하는 정도나 소름이 끼치는 정도로 만족한다. 다윗은 일시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만족하지 않는다. 날마다 양질의 좋은 음식을 먹으면 결국에는 그 음식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듯 현대의 좋은 음향 시스템의 찬양, 언변이 뛰어난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이미 우리에게 충분하다.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고 즐기듯 설경으로 돌아가 하나님과 대면하며 얘기를 하듯이 내 속에서 우러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좋은 예배, 좋은 찬양, 좋은 설교가 아닌 하나님 그분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뜨거운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본문 중-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라 하지만 요즘의 교회는, 우리는 곡조에 취해 눈물을 흘리며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라고 착각한다. 천사장 루시퍼는 자신의 연주에 취해서 교만해짐으로 타락하고 쫓겨났다. 이것에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내가 만족함에 취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하는 예배여야 한다는 것을~ 다윗처럼 은혜의 보라를 세워야 함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