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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4 - 고국원왕, 사유와 무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두 나라의 태자. 고구려의 사유 vs 모용부의 모용황
비운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장자 사유와 차자 무.
온순함을 넘어 유약해 보일 정도의 사유는 평화주의자이며, 전쟁 반대론자이다. 을불의 백성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닮아 백성들의 손에 창과 칼 대신 농기구를 쥐여주는 왕이 되고자 한다.
" 싸움이 나라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전쟁이란 물러서고 물러서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싸우는 게 강한 것이지만, 세상에는 물러서는 강함이란 것도 있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전쟁에 백성들의 희생이 날로 더해지자 태자의 지위로 스스로 모용부에 사신으로 가기를 청한다.
" 세상이 강자의 것만은 아니고, 싸움이 나라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외교가 있는 것일 테지요."
한참 세력을 키워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고구려에게 외교 정책은 시기 상조였다. 위로는 요동에서 한참 세력을 확장해 가는 모용부와 하성에서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으며, 아래로는 백제와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머리 숙임의 외교는 상대에게 빌미를 주는 격이 되어버렸다.
을불이 활달하고 무예가 뛰어난 차자 무가 아닌 온순한 사유를 태자로 책봉한 이유 또한 사유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군주란 또 무엇이요?!
항상 전쟁에 이기며 모든 백성들을 싸움터로 몰아내는 용맹한 군주에 비해 전쟁에 지더라도 백성을 전쟁에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옹졸한 군주가 못하지 않다는 걸 말이요. 군주는 백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광을 이루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오, 무는 너무 전쟁을 잘할 아이요. 백성의 수효도 얼마 되지 않는 이 고구려의 장정들은 그 아이을 따라다니며 끝도 없이 목숨을 잃고 팔을 잃고 다리를 잃을 거요. 태자로는 사유가 맞소! "
톨스토이 소설 '바보 이반의 이야기'에서 왕이 된 바보 이반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평화롭게 백성과 나라를 지켜낸다. 이반이 바보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전쟁을 일삼는 다른 나라 왕들이 바보 보다 못한 것일까? 사유는 바보 이반처럼 나라를 다스리고 싶었다. 백성들과 함께 평화롭게 묵묵히 밭을 일구며 살고 싶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 아니라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밀어 백성을 평화롭게 지키는 왕이 되고 싶었다.
사유와는 정 반대의 왕을 꿈꾸는 모용 황은 성정이 포악하고 잔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신의 나라는 오직 강하고 위협적 이어야만 했다. 아버지 모용외가 옛정에 연연하여 부족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을 그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약한 왕, 나약한 나라는 자신에게 필요치 않았다. 모용외는 나라를 병들게 만드는 전염병이었다. 그가 왕위를 찬탈 한 이유이다.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정치학 논고'의 내용은 모용황의 행동을 잘 대변하여 주고 있다.
"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범죄로 취급될 때, 그리고 신과 인간에 대해 경건함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을 악한 것으로 금지할 때 가장 분통을 터뜨리게 되어 있다. 그와 같은 경우, 그들은 기꺼이 법을 부정하며 자기의 목적을 위해 반역을 선동하는 것은 불명예가 아니라 명예로운 것으로 간주하면서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음모를 획책하며, 대의를 위해 서라면 어떤 폭력적 행동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