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향산이라고 씨를 창설하고 광랑이라고 일본적인 명으로 개(改)한 동기는 황송한 말씀이나 천황어명 (天皇御名)과 독법(法)을 같이 하는 씨명을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이 좀더 천황의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창씨개명은 1940년 2월 11일부터 실시되었고, 그 글은 창씨개명친 이광수가 2월 20일 《매일신문》에 발표한 것이었다. 그고, 그 글은 창씨개명을 마발표한 것이었다. 그런데 동걸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