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9월 18일 마침내 만주사변이 터졌다. 일본의 관동군들이 마지를 침략한 것이었다. 만선철도를 따라, 남만주에서 제일 큰 도시이고 아록강으로부터 중국의 첫 관문인 봉천을 하루아침에 점령한 관동군들은 거침없이 북동진을
감행하고 있었다.
관동군들의 거센 침략 앞에서 중구 군들의 대항이란 극히 미미했다. 관동군들의 침략은 너무 갑작스러웠던것이다. 그리고 만주군벌 장학량의 군대는 적극적인 저항에 나서지 않고 관내인 북경 쪽으로 후퇴작전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국민당 정부의 장개석이 내린 후퇴 명령이었다. 장개석으로서는 변방에 일본군이침략하는 것보다는 내륙에서 공산당과 싸우는 내전이 더 다급했던 것이 다. 관동군들은 무적의 상태인 만주벌판을 하루에도 몇백리씩 점령해 나 아가고 있었다.
만주사변은 일본의 조작극에 의해 돌발한 사건이었다. 오래 전부터 만주를 손아귀에 넣고자 노려왔던 일본은 결국 침략의 구실을 꾸며내기에이르렀다. 관동군은 자기네 관할인 만주철도를 봉천의 외곽지역인 유조구에서 스스로 폭파시켰다. 그러고는 그게 중국측의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우는 동시에 철도를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전격적인 군사행동을개시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