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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2 - 제1부 아, 한반도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부-
다시금 일어서는 의병과,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으로 국권 일체를 빼앗긴 조선의 혼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극악무도한 탄압에 잠시 주춤했던 민중 봉기가 봄의 기운을 얻어 땅이 기지개를 켜듯 다시금 불길을 당기기 시작하였다. 밟아도 밟아도 이듬해 다시금 고개를 내미는 허허펄판의 풀들과 같이, 갑오년에 일어났던 의병들이 다시금 모여들기 시작 하였다. 항쟁을 위한 준비의 침묵이 깨지고 있었다.
"들녘에 봄기운이 아련하게 어렸다. 그 아련함은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자욱했다. 그 환상적인 자욱함은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아른아른 피어오르고 꼬물꼬물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건 겨울이 풀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었던 산천만 풀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몸도 풀리고 있었다."
"남자의 나이 스물다섯, 죽기는 아깝지만 큰일에 나서기는 더없이 적합한 나이였다. 이미 큰일은 여러 곳에서 벌여져 있었다. 그 길이 옳은 것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옳은 길을 가는 것, 그것은 당연한 사람의 도리였다. 이기고 지는 것, 죽고 사는 것, 그런 것은 모두 그다음의 문제였다."
옳은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한 사람의 도리였어도 사람의 도리란 그 지위와 위치에 따라 달랐다. 뜻이 같아도 그 가는 길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명분과 신리. 반상의 도리 앞에 그들은 또다시 서로의 길로 갈릴수 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길. 서로 생각이 다르면 가는 길도 다를 수밖에. . . . . 그 말은 들으나마나 양반 유생의 입장을 강변하는 것일게 뻔했다. 주자학이 골수에 박힌 유생들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말든 충효가 으뜸이고 양반 지체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건 그들의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었다. 지난번의 최익현의 처사가 그 고질병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황제인 고종도 고종이었고, 의병장이라는 최익현도 최익현이었다. 풍전등화인 나라를 구하겟다고 목숨 걸고 나선 의병들에겐 국왕이 해산명령을 내리는 것은 무엇이며, 그 이름 좋은 황칙을 받았다고 하여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며 일으킨 의병을 일순간에 해산시키고 포박당하는 의병장의 차사는 또 무엇인가, 그 결과 불쌍한 평민들만 왜놈들에게 무참히 살육당했다."
망국 백성의 설움은 이역만리 백성들에게도 찾아들었다.
본토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한 4년의 세월이 허송세월로 돌아가버리게 된 하와이 이민자들은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잡역부들이 많이 필요했던 초기의 공사가 다 끝나 사람이 더 필요없어지자 노동자들이 하와이에서 본토로 건너갈 수 없도록 조처가 취해진 것이다. 본토로 건너가기 위해 60달러의 목돈을 모으는 데 흘러간 세월이 1년이었다. 좀더 나은 벌이를 찾아 가려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고, 이역만리까지 들려온 나라의 소식에 그들은 주저앉고 말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목에다가 불이 붙도록 독한 중국술을 털어넣는 것이었다. 슬픔을 태우듯 목줄기를 타고 내리는 독한 술기운을 빌어 꺼억꺼억 한맺 힌 소리를 시커먼 하와이 바다에 토해낼 뿐이다.
남한 대토벌과 한일합방조약으로 기세가 꺽인 의병활동은 의병들뿐 아니라 그 가족과 백성들 마저도 갈길을 잃고 헤매게 만들었다.
의병으로 떠난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며 모진 고초를 당하는 것은 여인네들의 몫 이었다. 남은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일본군의 매타작을 견디어 내야 했다. 그녀들은 또다른 형태의 의병 이었다.
" 그 타는 속 아는디, 쬐깨만 더 기둘리소. 기연시 델로 올 것이네. 여자넌 뿌리 실헌 나무가 돼야 허는 법이시. 남자가 날개 돋친 새로 멫십년 떠돌다가도 소리 소문 없이 들이닥치면 그간 건사헌 자석덜 내뵈고 편안헌 잠자리 피게 여자넌 실헌 나무가 돼야 허는 법이여. "
여지없이 아리랑에도 여인네들에 대한 비하? 발언과 소모품 취급은 있다. 페미니즘에 반하며 공격의 대상이 될것만 같다. 여인네는 남자를 위한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대에 우리네 여인들이 그런 취급을 받고 살았음을 말하고자하는 것임을 안다. 이전까지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을때는 문득 걱정아닌 걱정이 생긴다. 페미니스트들이 맘먹고 깔려고 든다면 깔수도 있는, 논쟁 거리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에 아리랑이 발간 되었다면 페미니스트들에게 뭇매를 맞지 않았을까 싶다. 괜한 노파심이 생긴 것이다. 이 대작을 과연 , 누가,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