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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 - 제1부 아, 한반도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생전의 이오덕 선생님은 말을 마음대로 마구 토해내는 사람, 그렇게 토해내는 말들이 모두 살아 있는, 구수한 우리 말이 되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고 하셨다. 그러한 말에서 비로소 잊었던 고향으로, 우리의 넋도 깃든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시면서. 어렸을 때 배운 고향의 말을 용케도 잊어버리지 않고 빼앗기지도 않고 잘도 가지고 있는것이 한없이 부럽다고 하셨다. 이는 꼭 박경리, 조정래 작가님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다. 그중에서도 조정래 작가님은 거칠고 투박 하면서도 말의 흐름이 강물이 유유히 흘러 바다로 나가듯이 매끄럽고 광대 하다. 또한 말 속에 해학과 비유가 넘쳐나 읽는 즐거움 뿐 아니라 가슴이 뻥 뚤리는 통쾌함까지 느끼게 한다.
"거칠게 휘도는 바람을 앞세우고 탁한 회색빛 구름이 바다 쪽에서 몰려 오고 있었다. 시꺼먼 먹구름은 하늘을 금방금방 삼켰다. ~ 그 구름떼는 성난 짐승들의 무리가 내달아오는 것 같은가 하면, 총칼을 든 도둑패들이 아우성치며 몰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
"허리가 반으로 휘어지는 고초를 당하면서도 서로서로 의지해 가며 용케도 다시 허리를 세우고는 했다. 그 슬기로움은 험한 기세로 몰려오고 있는 먹구름도 그다지 두려워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리랑 1권 첫장은 넓은 들을 휘감는 거친 하늘의 기세를 묘사함으로 우리민족의 앞날이 얼마나 파란만장 할지를 예고하며, 들판의 벼들을 묘사하는 문장에서는 험난한 삶을 살아내는 민초들의 애환과 자생력을 보여준다.
"말이야 덕유산 칡넝쿨이시. 말허디끼 부채질이나 활활 혀, 활활"
" 아이고 잡것 안 더울라면 뜨거운 밥이나 묵지 말고, 뜨거운 밥 쳐묵을라면 덥다고나 말 것이제"
"아부지, 아무리 생각혀도 앞길이 벨로 가망이 없구만요, 귀신이 붙어야 굿판을 벌이고 꽹과리가 있어야 풍물얼 치더라고 이민 가겄다고 나스는 사람이 있어야 회사 될 것 아닌감요,
"여그 징게 맹갱 들얼 미친년 널뛰딧기 심바람꾼 하나가 저그 저 궁뎅이 큰 에펜네 주막집서 아랫말 이서방헌티 술을 받아줌스로 논얼 즈그헌티 팔아넘기라고 조청 발르고 깨소금 치고 콩가리 쿧힌 말로 사리살살 꼬디기고 있드라 그거시요. 헌디 방안이서 술얼 묵고 있든 송 선상이 그 달착지근허고 꼬시고 고소롬헌 말얼 다 듣다봉게 그거시 모다 귀 간질간질허게 맨글고 간 사리살짝 녹게 맨글고 허파에 바람 팅팅 차게 맨그는 거짓말이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일자무식 농꾼 일지라도 말을 한 마디로 끝내는 법이 없다. 말을 맛깔스럽게 만드는 비유와 어휘력과 표현 력은 어느 양반의 고상한 학식 보다도 뛰어나다.
아리랑.
우리 민족에게 이 한 마디의 단어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며, 애끓는 한숨을 뱉어내게 한다. 아리고 쓰린 가슴의 통증과 고통의 말 이다.
첫 장 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땅이 꺼져라 한숨 나게 만드는 아리랑의 이야기. 경술국치. 일제강점기의 세 시기 중 첫번째 시기인 1910년대의 무단 통치기를 시작으로 일제의 극악무도한 국권 침탈 속에서 유린 당하는 이땅 백성들이 땅을 빼앗기고 빚에 팔려 하와이 이민노동자로 따나는 기나긴 아리랑의 곡조가 시작 된다.
"식당 앞에서는 또 채찍질이 가해지고 있었다. 채찍질소리와 비명이 뒤범벅이" 되고 있었다. 더운 탓에 저고리를 벗어버려 맨몸이거나 짚신을 신지 않아 맨발인 사람들을 골라내 채찍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농토를 만들기 위한 개간작업 이었다. 개간해야 하는 땅은 평지라고는 하지만 열대성 잡초들과 나무들이 뒤헝클어져 원시림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뿌리까지 전부 뽑아내서 농사지을 땅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열대의 7월 햇빛은 눈이 시리도록 부신 밝은 빛을 내쏘았다. 또한 햇살은 무수한 바늘끝으로 내리곷히면서 두꺼운 햇볕의 장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이민자 그들의 삶은 노예 보다 처참한 일하는 짐승일 뿐이 었다. 척박하기 그지 없는 땅에서 노동과 인권의 착취를 당하며 힘겹게 버티는 삶 이었다. 이 땅 백성에게는 비가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민족의 혼란과 민중의 고달픔을 산천이 자신이 품은 아름다움으로 백성들을 위로하듯이 아름답고, 찬란했다. 그 어떤 수탈에도 굴하지 않는 백성처럼 꿋꿋이 그 자태를 잃지 않는, 파헤쳐지고, 깎이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조선의 국민과 함께 그 아픔을 같이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이민자 그들에게는 품어줄 산천 마저도 없었다. 그저 꾸덕꾸덕 격어낼 뿐 이었다.
작가의 말 중 " 우리의 분단역사는 해방 이후의 역사만 왜곡하고 암장시킨 것이 아니라 식민지시대의 역사까지도 그렇게 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제살 깎아내기인 그 어리석음은 남과 북이 서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우매한 짓으로 만족정기는 소멸되어 가고, 민족정신은 혼탁해졌으며, 민족자존은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언제인가 통일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가서 민족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분단대립의 편파성은 어떻게 평가될까.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 라고 말씀 하셨다. 아리랑을 쓴 이유 이기도 하다.
언제인가 이루어질 통일을 위해서 만이 아니더라도 역사는 바르게 인식 되어야 하며, 과거사 청산은 꼭 되어야 한다. 올바로 알고 청신되지 않은 역사는 곪을대로 곪아 섞은내가 진동하고 구더기가 생겨 결국에는 도려낼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 악취가 나고 구더기가 들끓는 이유 이다. 제때 적절한 시기에 고름을 짜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름은 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