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이 되고자 신을 죽인 니체.
니체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 교육을 받았던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신의 죽음'을 공표함은 스스로 신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 내용은 상당 부분 성경을 인용했다. 특히 p261. (가장 고요한 시간 파트)에서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자신의 고독 속으로 되돌아가려고 사람들에게 떠나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 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모습이다.
"나는 아이처럼 울었고 벌벌 떨며 말했다. 부디 이것만은 면하게 해다오! 내 힘을 넘어서는 일이다." 니체는 예수님에 대한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니체의 사상 중 가장 중요한 핵심 사상은 "힘에의 의지"이다. 존재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이며,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고, 의욕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것이며, 그렇게 계속 변화해 감을 말한다. 힘에의 의지가 복종하는 대상은 오로지 항상 주인이 되고자 하는, 더 많은 힘을 얻기 원하고, 더욱 강해지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더 강한 존재로 만들어야 하며, 열등한 존재는 당연히 도태된다고 한다.

니체가 가장 경멸하는 인간은 '비천한 인간'이다.
1. 창조나, 신, 별과 같은 것을 동경하고 찬미하는 인간
2. 이웃 사랑이나 형제 그리고 동정이나 관용들을 중시하는 사람
3. 자기 본성을 중시하는 사람.
4.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존재로 악하다고 말한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현실에 안주하는, 평화주의자인척하는 게으른 패배자라고 말한다. 그래서 신이 죽었다는 것이다. 약한 자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 그들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이 신을 죽게 만들었으며, 그런 신은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새로운 신의 탄생을 희망하며, '위버멘쉬가' 되라고 한다. 위버멘쉬가 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극복하라고 한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 인간을 극복한 존재가 되라고 한다. 더 많이 원하며, 주인이 되고자 하며, 더욱 강해지라고 강조한다. 끊임없이 투쟁하고 더 많은 것을 정복하며, 자기 자신을 더욱 강한 존재로 만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삶만이 가장 고귀한 삶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으면서 싸우고 있지 않다면 그는 항복한 존재이며, 노예는 용기와 힘에의 의지를 버린 자이며, 그래서 노예로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자는 노예로 사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니체가 나치즘, 사회주의자라고 의심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노예도 힘에의 의지를 가지고 용감히 귀족과 끊임없이 싸운다면 그 자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의 가치나 위계, 계급은 일대일의 투쟁으로 쟁취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그러한 투쟁의 삶이 고귀한 삶,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니체는 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새로운 계급, 신의 영역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 .

그렇다면 과연 니체는(차라투스트라는) '위버멘쉬'가 되었을까? 끝부분 ' 지체 높은 인간들'편을 보면, 신의 죽음을 이해했던 지체 높은 인간들도 결국 인간적인 것을 버리지 못하고 위버멘쉬로의 여정을 포기하고 나귀를 신으로 숭배하면서 또다시 우매한 인간 집단을 이루고 만다. 차라투스트라도 수많은 자기를 버리는 몰락을 단행함으로 변화의 마지막 단계에 '어린아이'에 대한 예감을 느끼며 웃음을 짓지만 '위버멘쉬'가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차라투스트라도 '지체 높은 인간들'처럼 그 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성'이 아닌 '의지', '안전'이 아닌 '모험'의 삶을 갈망하고 추구한 니체, 그의 말년 10년은 정신질환을 앓다 마감한다. 자신의 병약한 몸, 연약한 정신 때문에 그리도 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강박적으로 강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도전 정신과 초 긍정의 정신은 본받을 만하다. 니체가 살았던 19세기는 기독교가 섞을 대로 썩은 암울한 때였다. 니체뿐 아니라 누구라도 새로운 신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신의 잘못이 아니라 목이 곧은 인간들의 잘못이다. 니체의 말마따나 그런 인간들이 신을 죽었다고 말하게 만든 것이다. 니체는 종교가 섞은 시대에 자신이 터득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위버멘쉬'가 되기를 바랐고,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 같다. 특정한 범주를 묶어 집단화한 신, 무리에게 숭배되는 신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신이 되어 누구를 위하여 희생하지도 죽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신. 니체는 그 사람(예수가)이 그런 신 이 기를 바랐다. 그랬더라면 이 대지를 떠나지도, 자신을 떠나, 죽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니체에게 예수는 질투의 대상이자 연민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 목적은 살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죽고자 함 이었다.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여 대신 죽고자 오신 것이다. 나에겐 자기중심적인 신은 필요치 않다. 그런 신이라면 내게도 신은 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