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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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는 영화로도 2005년 소개된 적 있는 풍자소설이다. 당시 화려했던 영국과 수도 런던의 뒤에서 펼쳐진 극심한 빈부격차와 그로 인해 생긴 경제적 서열화, 계층 간 갈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구빈원에서 고아로 자란 9세 소년 올리버 트위스트가 매순간 역경을 이겨내고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이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선사하는 특유의 우연과 그것이 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주인공이 겪는 고난과 뚜렷한 권선징악이 촘촘히 짜여져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다음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어리고 가진 것 없고 든든한 보호자가 없는 가난한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끼리에서조차 생기는 서열화와 약육강식의 세계는 자연적인 인간의 본능인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함과 정직함, 기개를 잃지 않았던 올리버 트위스트의 타고난 기질은 환경도 그를 바꿔놓을 수 없었다.

가난한 악당들로 묘사되는 유대인 노인 페이긴, 그리고 그의 심복이거나 전략적 파트너였던 미꾸라지 잭 도킨스, 나중에 살아서 죄를 뉘우치는 유일한 인물인 찰리 베이츠, 섬뜩하고 거친 사익스, 사익스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암흑의 소굴에서 유일하게 따뜻함과 동정심을 잃지 않았던 낸시 등 뒷골목 암울한 배경을 주도한 소매치기 도둑들은 결국 거의 대부분 올리버를 괴롭힌 대가로 교수형 또는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된다. 만약 저들도 유복한 집에서 따뜻한 부모 아래 자랐다면 저런 삶을 살았을까. 올리버의 경우처럼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올곧은 마음을 지니며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 바른 예시가 있을테지만 실제로 그런 기질을 날 때부터 보유한 아이가 얼마나 될까.

결국 작가인 찰스 디킨스가 의도한 풍자와 해학의 주된 타깃은 도둑들이 아니라 그 도둑을 만들어낸 사회 구조에 있다. 급격한 산업혁명의 바람으로 자본주의가 판을 치면서 돈이 곧 권력인 시대를 거치며 급격한 빈부격차가 낳은 고아와 구빈원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허와 실을 우스꽝스럽게 낱낱이 드러낸다. 말단 교구원 버블 씨나 간호부장 코니 부인은 그 참혹한 계급의 중간 지점에서 누군가에겐 말단이지만 고아들에겐 최상단의 권력을 뽐낸다. 법도 시스템도 모두 돈과 권력 앞에서 평등하지 않으며, 이 소설이 출간된 지 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넘어야할 많은 불평등의 산이 존재한다. 미꾸라지 잭 도킨스보다 더한 법꾸라지들이 얼마나 고귀한 윗분들 중에 많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실제로 구빈원같은 곳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교구원 버블 씨에 빗댈 수 있는 공무원들이나 관련 업무자들이 행정 집행자이자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버블 씨는 자신이 도로 구빈원에 들어간 말년이 되어서야 자기가 하대했던 이들의 삶을 느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돈 앞에서의 불평등 뿐만 아니라 여성을 짓눌러버리는 남성들의 잘못된 성 인식에 대해서도 수시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소설에 나오는 '여자란 말이야...' 와 같은 식의 대사는 고정된 성 역할과 잘못된 성 인식에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며, 사익스에게 맞고 고통받으면서도 끝까지 사익스에게 돌아가려 한 낸시의 경우가 그 성 착취의 대표적 예이다. 그녀는 올리버를 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을 막 대하면서도 애증관계였던 사익스에게 돌아가 죽임을 당하였는데, 소설 전체에서 개인적으론 올리버보다 더 안타까웠던 인물이다.

올리버는 소설 속 주인공 답게 우연에 의해 위기가 행운이 되는 아름다운 줄거리 속에 살고 있다. 하필 도킨스와 베이츠가 소매치기한 사람이 올리버 아버지의 절친인 브라운로 씨였고, 하필 사익스가 털려고 하다가 올리버가 총을 맞은 곳이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의 핵심 인물이 있는 집이라니. 그리고 올리버는 꽤 괜찮은 아버지에게 유산도 좀 받았고 브라운로씨같은 멋진 양아버지를 두게 되었으니. 그런데 만약 올리버에게 그런 우연의 행운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올리버가 끝까지 올곧게 자랄 수 있었을까, 소설 밖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한 줄기 희망을 얻고자 한 작가의 마음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소설 중간중간 삽입된 흑백삽화는 실제 등장인물이 존재한다면 저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번역이 상당히 매끄러워 두꺼운 책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혔다.

어쨌든, 그래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올리버의 진실된 눈을 알아본 브라운로 씨나 로즈 양같은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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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4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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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니 정말 어렸을 때 내가 책을 안 읽긴 안 읽었구나 싶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나의 작은 아씨들'이란 서메리씨의 에세이를 읽고 난 후였다.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는 서메리 작가로 인해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각기 다른 매력과 네 자매의 우애를 엿볼 수 있었고 좋은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워낙 많은 출판사에서 책이 출판되었는데,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에서 이번에 <작은 아씨들>을 번역하여 출간했다. 읽기 쉽게 번역되어 있는 게 이 컬렉션의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글자가 커서 시원하게 읽힌다.

우리의 짐은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가 가야 할 길도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야. 참됨과 행복을 갈구하는 마음을 길잡이 삼아 수많은 어려움과 실수를 헤치고 진정한 '천상의 도시'에 이르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순례자 놀이'란다.
p21 엄마 마치가 네 자매에게

네 자매는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고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며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들의 아침을 기꺼이 베풀 줄 알고, 크리스마스 연극 무대를 꾸미며 즐길 줄도 알며 엄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정 많은 아이들이다. 늘 사랑을 베풀고 자매를 위하는 마치 부인이 있었기에 이런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늘 느끼는데 마치 부인은 이 부분에서 탁월했다.

자매들 사이에 남자가 끼지 않을리 없다. 가드너 부인의 파티에 초대받은 메그와 조는 거기서 춤추는 걸 피하다가 소년 로렌스(로리)를 만나 얘기를 나눈다. 로리는 조를 오랜 시간 사랑하지만, 동생 베스가 로리를 좋아한다고 느낀 조가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기 위해 뉴욕으로 일자리를 얻어 나가고 거기서 나이는 좀 많지만 사려 깊은 바에르 교수를 존경하고 후일 사랑하게 된다. 결국 조에게 차인 로리가 매력적인 막내 에이미와 잘 되어 다행이긴 했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못내 조가 로리와 잘 되길 바랐는지, 아님 왠지 한국 드라마같이 여기 저기 엮이다가 언니도 동생도 모두 사랑하게 되는 로리가 못마땅했는지 결말이 조금 갑작스럽긴 했다. 나는 차라리 조가 결국 바에르 교수를 그냥 인간으로 존경하고 사랑의 감정에 빠지지 않으며 당당히 홀로 서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네 자매는 정말 다양한 매력이 있는 여성들이다. 가장 현모양처 스타일에, 사랑 받는 여자이고 싶으면서도 돈에 대한 현실적 갈망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메그, 선머슴같고 뭐든 확실하며 여성스럽지는 않아도 아버지를 위해 선뜻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허약한 베스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따스한 조, 사랑 받기 좋아하고 집안일을 열심히 하며 수줍음이 많고 인형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며 음악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잘 챙기며 자신이 성홍열에 걸려도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베스, 명랑하고 쾌활하며 그림에 소질이 많은 솔직한 막내 에이미.
서로 다른 색깔의 매력을 가진 네 자매가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위한 우애 있는 모습은 가족의 의미가 점차 상실되어가는 현대 사회에 아름다운 본보기가 된다.

이웃의 정도 빼놓을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난한 이웃을 돕는 마치부인과 베스도 그렇지만, 로렌스 할아버지는 베스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베스가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베스는 할아버지에게 슬리퍼를 선물하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녀가 치던 피아노를 선물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구들을 초대해 연극놀이를 하고 로리와 네 자매의 우정과 사랑은 이웃의 사랑 그 이상이다.

이 소설은 특별한 대사건이나 기승전결이 뚜렷하진 않지만, 시련을 이겨내는 그들만의 방법, 함께 더불어 사는 자매의 모습, 사랑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그렇게 자녀들을 교육하는 부모님의 일상적인 모습이 독자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읽으면서 어떤 특별한 사건이 기다릴까라는 긴장감보단 그 다음엔 어떤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이 그려질까라는 따뜻함이 다음 장을 넘기는 힘이었다.

자신의 삶을 온통 부모님께 헌신하고 가정을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엄청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얼마나 어려운 노력을 하고 있던 것인가? 줄기차게 야심만만하던 한 소녀가 자신의 희망과 계획과 욕망을 포기하고 기꺼이 남들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p295

루이자 메이 올컷은 이 소설의 둘째 조를 자신을 모델로 하여 썼다. 그녀는 독신이었지만 그게 아쉬웠던지 조를 바에르 교수와 결혼시킨 듯하다. 작품 해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 책은 이 땅의 부모들이 읽어야 할 소설이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물불가리지 않고 노력해라, 행복은 잠시 접어두라고 얘기하는 시대에서 이 소설이 얘기하는 바가 구시대적 발상이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성공과 야망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과 사랑이 아닐까. 나도 아직 그 힘을 믿고 있다. 내 아이들도 가족의 소중함, 사랑의 힘,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딸들과 이 책을 읽고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따뜻한 맘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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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100문장 암기하고 왕초보 탈출하기 - 100문장만 말할 수 있게 익히면 일본어 기초회화 끝!
쟈링센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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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우고 대학 때 교양으로 들었던 적이 있다. 영어에 비해 우리 말과 어순이 같고 간단하여 쉽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는데, 새해 들어 간단한 일본어라도 공부해보고자 하는 결심이 들어 이 책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쟈링센세'는 유튜브 '쟈링센세 일본어' 채널을 운영하고 블로그도 운영하는 해커스일본어 강사다. 일본어고 영어고 언어는 통째로 외우는 게 회화에서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기에 100문장 암기하고 왕초보를 탈출한다는 슬로건이 맘에 들었다.

처음에는 일본어 히라가나 오십음도, 가타카나 오십음도, 탁음, 반탁음이 나와 있다. 나는 실제로 이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책은 문장을 통째로 외우게 되어 있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어 동사의 분류, 동사 '마스'형, '테'형 만들기 가 나와서 아주 기본적인 문법사항을 정리할 수 있다. 본문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총 10개의 챕터, 1챕터 당 10문장이 수록되어 있다.

문장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간단한 대화, 그리고 비슷한 문장이 오른쪽에 다섯 가지로 수록되어 있어 응용하기 쉽게 되어 있다.

문법을 통해 배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통째로 일본인이 자주 쓰는 문장을 암기하여 입에 붙을 때까지 익히면 좋을 것 같다. 쟈링센세의 유튜브와 블로그를 함께 활용해서 공부한다면 생생한 일본어를 더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올 새해에는 이 책으로 일본어 왕초보를 탈출하고 간단한 회화를 구사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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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공매도 - 공매도를 모르고 절대 주식투자 하지 마라!
김영옥 지음 / 이레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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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개미투자자들에게는 치가 떨리는 단어이다. 또는 공매도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아 대부분의 개미투자자들이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오르지 않고 공매도 때문에 손실을 본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공매도 때문이 아니라 실력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짱'은 20년간 전업 투자를 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공매도를 활용하여 수익을 거두었다. 기관들이 하는 그것과는 다르지만 대주매매를 통해 꾸준히 해왔던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언젠간 개미들에게도 활짝 열릴 공매도 시장을 대비하자고 이야기한다. 공매도와 함께 비중 있게 초반에 다루는 것은 매수 기법이다. 기본기를 중요시하게 생각하여 책을 구성한 흔적이 보인다.



먼저, 굉장히 심플하고 단순한 매매 기법과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 셋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차트 보는 법을 강조하며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동평균선, 세 가지 핵심 개념인 지지, 저항, 돌파선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고, 다양한 매수 기법과 공매도 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여러 가지 주식 책들을 봐왔던 나지만 기본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핵심만 풀어낸 책이 사실 잘 없었는데 이 책이 딱 핵심만 잘 풀어낸 책인 것 같다. 물론 이 책만 본다고 절대 주식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주식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열심히 정진해 나갈 마음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인 것 같다. 살벌한 저자가 주식시장에서 20년이나 살아남았고 큰 부를 이룬 사람이기에 이런 저자가 펼쳐내는, 조금은 생소할수도 있는 공매도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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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 스탠딩에그 커피에세이
에그 2호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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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디밴드, 스탠딩에그는 방송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지만 공연장에서 주로 만나거나 드라마 OST로 대중과 만나온 그룹이다. 에그 1호, 에그 2호, 에그 3호로 이루어져 있는 삼인조 밴드라는 사실 이외에 개인프로필도 잘 공개되어있지 않은 이 밴드의 '에그 2호'가 커피 에세이를 냈다. 진한 커피 색의 표지가 매력적이며 한 손에 착 감기는 이 책의 제목은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에그 2호가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들른 카페와 거기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사진과 함께 감각적으로 실려 있어 커피의 매력에, 그리고 여행의 매력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커피가 주는 여유를, 그것도 세계 곳곳에서 그 여유를 만끽하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며 그걸 책으로 엮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뮤지션 에그 2호가 부러웠다. (내 청춘이 다 지나가고서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여유인 듯...) 책이 주는 그 대리만족에 빠져 읽는 내내 모든 것이 좋았던 시간이었다.

일단, 나는 커피라하면 스벅이고, 단거 아님 쓴거 밖에 모르는 지나친 단순주의자다. 그런 내게 커피를 마시고 난 후의 느낌을 서술하는 이런 문장은 상당히 낯설지만 대체 그 느낌이 뭐길래,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

한 모금 입안에 넣자 몽글몽글한 느낌이 적절한 온도로 퍼지고 혀 깊은 곳부터 잘 익은 포도의 달콤함이 진하게 와닿더니 이어서 화사한 '보라색'이 한가득 확 퍼졌다.
p53

도쿄에서 맛본 게이샤의 느낌이라 한다. 나같은 철저한 이과주의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감성이 부럽기도 하다.
에그 2호님의 카페는 '모티프 커피바'라고 한다. 망원동 쪽이고 블로그 사진들을 보니 아주 카페가 감각적이고 이쁘다. 커피하나만을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한 에그 2호님의 열정이 녹아있는 듯하다. 저자가 뮤지션임에도 바리스타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합정동 '레드 플랜트'에서 맛본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 때문이었고, 그 맛에 이끌려 바리스타가 되고 카페를 열기로 결심했다 한다. 지금은 소원해진 두 바리스타가 서로 완벽히 녹아들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쨌든, 꼭 방문해보고픈 곳이다. 그 이외에 내가 읽으면서 적어둔 목록들이다.

ㆍ연희동 매뉴팩트 커피

ㆍ런던에서의 커피 일상

ㆍ취리히 MAME에서의 콜드브루 토닉

ㆍ도쿄의 게이샤

ㆍ시부야의 스트리머 커피 컴퍼니에서의 라테 아트

ㆍ블라디보스토크의 카페마

ㆍ연남동 도깨비커피집의 얼음커피우유

ㆍ구라마에의 CW의 아포가토

ㆍ롯폰기의 재즈 하우스 알피

ㆍ망원동 M1CT(망원시티)

ㆍ에스프레소에 설탕 타먹는 로마 카페 사람들

ㆍ베드포트 애비뉴의 파이브 리브스 턴테이블에 돌고 있는 음반 소리

ㆍ런던 해크니의 클림프슨 앤 선즈에서의 플랫화이트

ㆍ샌프란시스코의 더 밀(포 배럴즈와 조시 베이커 브레드의 협력으로 탄생한 베이커리 카페)

ㆍ교토 Drip 앤 Drop

ㆍ도쿄의 오모테산도 식기가게 인근의 카페에서의 콜롬비아 게이샤

다음에 정말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게 될 수 있을 때, 여기 소개된 카페나 장소가 그대로 있어주기만 한다면, 꼭 가보고 싶다. 아니 어쩌면 그때는 옛 흔적이 사라지고 새로 생긴 또 다른 곳에서 내가 그곳과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드는 시간을 느끼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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