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 스탠딩에그 커피에세이
에그 2호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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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디밴드, 스탠딩에그는 방송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지만 공연장에서 주로 만나거나 드라마 OST로 대중과 만나온 그룹이다. 에그 1호, 에그 2호, 에그 3호로 이루어져 있는 삼인조 밴드라는 사실 이외에 개인프로필도 잘 공개되어있지 않은 이 밴드의 '에그 2호'가 커피 에세이를 냈다. 진한 커피 색의 표지가 매력적이며 한 손에 착 감기는 이 책의 제목은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에그 2호가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들른 카페와 거기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사진과 함께 감각적으로 실려 있어 커피의 매력에, 그리고 여행의 매력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커피가 주는 여유를, 그것도 세계 곳곳에서 그 여유를 만끽하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며 그걸 책으로 엮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뮤지션 에그 2호가 부러웠다. (내 청춘이 다 지나가고서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여유인 듯...) 책이 주는 그 대리만족에 빠져 읽는 내내 모든 것이 좋았던 시간이었다.

일단, 나는 커피라하면 스벅이고, 단거 아님 쓴거 밖에 모르는 지나친 단순주의자다. 그런 내게 커피를 마시고 난 후의 느낌을 서술하는 이런 문장은 상당히 낯설지만 대체 그 느낌이 뭐길래,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

한 모금 입안에 넣자 몽글몽글한 느낌이 적절한 온도로 퍼지고 혀 깊은 곳부터 잘 익은 포도의 달콤함이 진하게 와닿더니 이어서 화사한 '보라색'이 한가득 확 퍼졌다.
p53

도쿄에서 맛본 게이샤의 느낌이라 한다. 나같은 철저한 이과주의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감성이 부럽기도 하다.
에그 2호님의 카페는 '모티프 커피바'라고 한다. 망원동 쪽이고 블로그 사진들을 보니 아주 카페가 감각적이고 이쁘다. 커피하나만을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한 에그 2호님의 열정이 녹아있는 듯하다. 저자가 뮤지션임에도 바리스타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합정동 '레드 플랜트'에서 맛본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 때문이었고, 그 맛에 이끌려 바리스타가 되고 카페를 열기로 결심했다 한다. 지금은 소원해진 두 바리스타가 서로 완벽히 녹아들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쨌든, 꼭 방문해보고픈 곳이다. 그 이외에 내가 읽으면서 적어둔 목록들이다.

ㆍ연희동 매뉴팩트 커피

ㆍ런던에서의 커피 일상

ㆍ취리히 MAME에서의 콜드브루 토닉

ㆍ도쿄의 게이샤

ㆍ시부야의 스트리머 커피 컴퍼니에서의 라테 아트

ㆍ블라디보스토크의 카페마

ㆍ연남동 도깨비커피집의 얼음커피우유

ㆍ구라마에의 CW의 아포가토

ㆍ롯폰기의 재즈 하우스 알피

ㆍ망원동 M1CT(망원시티)

ㆍ에스프레소에 설탕 타먹는 로마 카페 사람들

ㆍ베드포트 애비뉴의 파이브 리브스 턴테이블에 돌고 있는 음반 소리

ㆍ런던 해크니의 클림프슨 앤 선즈에서의 플랫화이트

ㆍ샌프란시스코의 더 밀(포 배럴즈와 조시 베이커 브레드의 협력으로 탄생한 베이커리 카페)

ㆍ교토 Drip 앤 Drop

ㆍ도쿄의 오모테산도 식기가게 인근의 카페에서의 콜롬비아 게이샤

다음에 정말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게 될 수 있을 때, 여기 소개된 카페나 장소가 그대로 있어주기만 한다면, 꼭 가보고 싶다. 아니 어쩌면 그때는 옛 흔적이 사라지고 새로 생긴 또 다른 곳에서 내가 그곳과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드는 시간을 느끼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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