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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의 세계사 - 왜 우리는 작은 천 조각에 목숨을 바치는가
팀 마샬 지음, 김승욱 옮김 / 푸른숲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지리의 힘>으로 유명한 팀 마셜의 책이라 더욱 기대하며 펼쳐보게 된 책이다. 9.11테러가 발생했던 날 소방관 세 명이 연기가 아직 피어오르던 세계무역센터에 성조기를 올렸다. 그 사진을 본 미국인들은 자국민의 힘을 알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 깃발, 천조각 하나가 지니는 힘은 무엇일까?
전세계 국가주의가 부상하며 다시 깃발의 상징적 의미가 커지고 있다. 축구와 정치적 상황, 깃발의 조합이 커다란 분쟁으로 발생할 수도 있고 테러와 같은 상황에서 깃발은 힘과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모든 국가가 갖고 있는 국기는 한 나라의 목표, 역사, 신념 그 자체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집단정체성이며 IS처럼 종교적 상징이나 예언적 상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책에는 역시 성조기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감정적이기도 하지만 예술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사업 아이템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성조기. 맥헨리 요새에서 포격을 이겨낸 것도 깃발의 힘이 컸다. 그러나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 후 이에 반대한 극단주의자들이 인종차별의 수단으로 성조기를 갖다쓰기도 했다. 이렇듯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깃발에 우리가 잘 아는 규칙이 심어져 있다.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가 등장하면 제복을 입지 않은 미국인들은 국기를 향해 차려 자세로 오른손을 심장에 올려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소속감, 자유,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 깃발이고 성조기다. 감정적인 의미가 배어 있는 국기의 역사에 포착된 미국의 이상은 역사 속 가혹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도 마음을 움직인다. 국기 덕분에 미국인들은 꿈을 가지고 힘을 내 달리는 것이다.
유니언잭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잉글랜드 깃발과 영국 국기는 수많은 작고 큰 사건들 덕분에 극우의 손에서 구출되었다. 유니언잭은 과거를 인정할 수 있는 가능성뿐만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 원래 의도대로 통합의 상징이 될 가능성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유럽연합의 깃발은 상당히 여러 의미가 있다. 이 깃발이 만들어진 과정도 서술되어 있는데 회원국 수에 따른 깃발의 별의 개수를 정하는 합의 과정에도 상당한 정치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정해진 유럽연합 깃발은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프랑스 국기의 역사 또한 같이 서술되어 있는데 저자가 이 과정이 상당히 가치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생 마르탱 망토 색깔, 샤를 마뉴의 빨간색, 잔 다르크의 하얀색,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다. 십자가 대신 표현된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서의 국기도 있다.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국기 등이 대표적이다.
4장은 아라비아의 깃발에 관해 나온다. 아랍인들이 모두 같은 민족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깃발은 아주 많고 같은 민족이라도 깃발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이 민족이 분열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는데 이 아랍 국기들은 정치적 분쟁과 역사와 따로 떼서 생각할 수가 없다. 요르단 국기는 팔레스타인 땅까지 아우르는 깃발이어서 요르단 국기와 똑같고 이라크와 시리아는 아랍 반란 깃발을 바탕으로 만든 깃발을 사용했다. 오스만 제국의 본을 따라 다양한 배경에 별과 초승달이 그려진 깃발을 채택한 나라인 터키도 있다. 이란 국기에 왜 튤립이 있는지, 튤립은 왜 그들에게 죽음, 순교,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낱 천 조각에 불과할 것 같은 깃발이 이렇게 많은 의미와 이야기가 들어 있다.
IS의 깃발은 그야말로 공포스럽다. 5장은 국가가 아닌 집단의 깃발을 다룬다. 특히 이슬람의 이야기다. 테러단체들은 깃발을 내걸어 홍보를 하는데 홍보전쟁이라 부를 만하다. 시아파 헤즈볼라는 노란색, 수니파 하마스는 초록 바탕에 하얀 붓글씨다. 깃발에 쓰여진 메시지처럼 상징과 그 의미를 둘러싼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6장은 소련 붕괴로 생겨난 신생국들,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스탄 국가들과 그 깃발의 이야기다. 인도인들슨 국기거는 걸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인도 국기에는 복잡한 종교, 민족, 정치 상황이 한데 반영되어 있다. 특이한 네팔 국기를 비롯해 중국, 대한민국, 북한, 일본 국기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기도 다음 장들에 언급된다. 국기는 국민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중심점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국가가 생기기 전 과거의 정체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은 단단한 정체성을 벼려냈고 국기는 옛것과 새것의 융합을 보여준다. 깃발이 국가를 안정시키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국기에 얽힌 정치, 역사, 분쟁, 정체성, 문화 등 여러 가지를 심도 있게 알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