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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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정유정 작가님의 책을 여러 권 읽어왔는데 나에게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문장들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아서 쭉쭉 읽어나가기 힘들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처음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가 네 번의 시도 끝에 읽어낼 수 있었다.


주인공 유진은 피비린내를 맡으며 잠에서 깬다. 처음에는 지병으로 인한 발작 전조증상인줄 알았으나

거실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정황은 유진이 어머니를 죽인 범인임을 알려주지만

자신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 전날 자신이 집을 비웠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2시간 30분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총력을 다하며 일단 모든 흔적을 없앤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방에 남겨져 있던 기록과

그간 잊고 있던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며 서서히 사이코패스인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모든 정황이 그러했듯 처음부터 유진이 어머니를 살해했음을 믿으며 계속해서 책갈피를 넘긴 것은

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유진이 남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죽음과 대면하는 상황에 유독

무감정한 모습을 보며 사이코패스임도 짐작했다.

"93_낡은 담요에 누워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죽는다는 건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현재 어머니의 죽음, 과거에 형과 아버지의 죽음, 이복형 해진의 할아버지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에도

유진은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때와 현재와의 차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와

인지했을 때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기록을 보며 왜 자신이 겁먹은 것에 피비린내에 끌리고 흥분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자 앞으로 자신이 해야할 것이 더 명확해진 것이다.


"249_유진은 모든 채널을 오롯이 자신에게만 맞춘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도 하나뿐일 거라고 했다.

나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259_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유진 엄마의 인생은 어땠을까? 빛과 어둠이 공존하다가 어둠만 내곁에 남는다면 나는 어찌했을까?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로 판정된 아들을 마음 놓고 품어주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나도 마음이 아팠다. 아마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마지노선을

정하고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죽이는 유진의 모습이 더욱 쓰렸다.


초반부터 소름돋는 부분이 꾸준히 나오는데 나에게 첫 소름은 22쪽 하단 3번줄 '유진아'였다.

소름이 돋고 등뒤가 서늘할 수록 더욱 몰입되었다. 제일 소름돋았던 것은....

소설을 다 읽고 다시 첫장을 읽어볼 때였다. 첫 영성체를 받는 날 쓰러져버린 유진...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인류의 2~3%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어린 유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이란 걸 알았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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