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생존 육아 - 스스로 하는 아이로 키우는
박란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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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휴가 3개월을 포함해서 총 26개월이라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지 두 달이 되어간다. 오래 쉰만큼 복직도 부담스러웠고 말이 느려서 아직 엄마라는 단어밖에 말할 줄 모르는 아이 걱정에 잠도 설칠 정도였다. 출근하면 회사 통근버스를 이용해도 왕복 두 시간 반이 걸리는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하는데 남편은 출장 중이고 시댁과 친정이 멀어 가까이에 도움받을 사람이 없어서 더욱 마음이 불안했다. 다행이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일단 어린이집 등·하원 등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해야 할지 기약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매일 회사에서 바쁜 와중에도 아이가 활짝 웃어주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린이집에는 투정 부리지 않고 잘 갔는지, 친구들과는 잘놀았는지, 밥은 잘먹었는지, 하원하고는 무엇하고 놀았는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다. 평일에 12시간 이상을 떨어져있어야 하고 퇴근하고 아이가 잘 때까지 겨우 2시간밖에 못 보니까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다. 겨우 두 달이었는데 벌써 워킹맘으로서의 정체성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읽게 된 게 '워킹맘 생존육아'였다.

 

박란희 기자는 전직 정치부 기자로 아이보다 일을 우선하던 워커홀릭이었는데 가정이 흔들리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로의 삶을 택한다. 현재는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 미래>의 편집장을 맡으며 다시 워킹맘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저자가 기자라는 뽀대나는 직업을 접고 전업주부로 살며 생긴 에피소드가 주내용이다. 2장과 3장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교육열이 제일 치열하다는 서울 목동에서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전업주부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노하우와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4장은 전업주부와 워킹맘이라는 두 개의 길을 모두 걸어본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충고와 따스한 격려가 담겨있다. 

저자가 그냥 워킹맘도 아니고 무려 목동에 사는 워킹맘이라니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목동 전업주부들이 자식 뒷바라지에 높은 열의가 있음이 느껴졌고 그 내용들을 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놀라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좋은 점은 전업주부나 워킹맘의 단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각각의 자리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저자의 경험에 비추어 꼼꼼이 알려준다는 것이다. 내가 워킹맘으로 생활한지 이제 겨우 두 달이지만 그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의 행동(주로 안 좋은 행동)을 보며 내탓인 것만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나조차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이젠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두고 일과 육아의 균형을 잘 맞춰보려 한다. 어떻게 해야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지, 장점은 어떻게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전업주부와 워킹맘은 견제 대상이 아닌 공생관계임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아니던가!

사회는 빠르게 변하는데도 불구하고 워킹맘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남성 육아휴직도 늘어나는 추세이고 아빠의 육아참여율도 높아지는 등 새로이 변화해나가는 과도기라고 본다. 지금의 워킹맘들이 긍정적인 발전을 향해 나아간다면 미래에는 다같이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애환과 희망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이 책은 최근에 읽은 육아서 중에 단연코 최고였다. 


 

 

<밑줄긋기>

 

245 - “우리가 부모로서 제일 빛났던 순간이 언제입니까? 저는 큰애가 태어나서 처음 저한테 뒤뚱뒤뚱 걸어올 때, 마음이 너무 벅차올라서 눈물이 났어요. 둘째가 7개월일 때 급성 장염에 걸려 조그만 손에 커다란 링거 바늘을 꽂는데,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순간에는 이렇게 느껴야 한다’하고 배워서 아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안에는 충분한 ‘부모성’이 있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부모’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부모는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어릴 적 상처나 세상의 왜곡된 정보들, 불안감으로 그런 모습이 가려 있는 겁니다. ‘부모교육’이 무얼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말을 듣는데 전율이 돋았다. 부모나이 열두 살이 된 내 안에 충분한 ‘부모성’이 있다니!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녀는 “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좋은 음식이나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듯, ‘어떤 요건’을 갖춘 부모가 필요하다는 전제로 부모교육이 이뤄져서 문제”라며 “부모를 역할 대상자로만 보지 말고, 부모 자체로 교육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늘 부족한 부모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셈이었다.

259 - 주변을 돌아보면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어른도 비슷하다.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해 주는 문화도 부족하고, 남과 다르게 사는 걸 당당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약하다. ‘엄마=아이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전업주부’ 공식만 정답으로 간주한 채, 그렇지 않은 모습은 모두 뭔가 부족한 답으로 여기다 보니 여러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워킹맘도 엄연히 엄마의 한 유형이다. 사실 우리는 ‘엄마’라는 역할모델을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배워보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내가 경험해온 엄마는 우리 친정엄마 한 명 뿐이다. 학교에서도 영어, 수학만 배웠을 뿐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가 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단행본을 사서 읽어봐도,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저자의 성공사례 한 가지 뿐이었다. 아니면 의사나, 상담선생님, 부모교육 전문가들이 엄마의 실패 사례를 상담한 후 이를 바탕으로 조언하는 내용이 담긴 책들이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엄마 유형이 존재한다. 일하는 워킹맘도 있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한부모도 있고,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있다. 100명의 엄마에겐 100가지 다른 유형의 육아방법이 존재한다. 아마 전 세계 전문서적을 다 뒤진다고 해도, 내 사례에 딱 맞게 적용 가능한 모델을 찾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니 전업주부 한 사례를 정상적인 엄마 모델로 은근히 강요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가.


115 - 대개 워킹맘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전업주부가 되면 애의 24시간을 충실히 돌봐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업주부가 되는 순간, 그동안 워킹맘이었기에 열외가 되었던 수많은 숨은 집안일이 갑자기 생겨난다. (...)


전업주부에 대한 환상이 없으니, 사표를 쓰는 게 반드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안다.


139 - ‘전업주부들은 한가하다’는 편견을 갖는 건 및 위험하다. 식사준비, 청소, 빨래 등 주부의 전통적인 역할 이외에 자녀 교육 전문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워킹맘 못지않게 바쁜 게 현실이다. 전업주부들은 ‘회사와 집을 오가는 워킹맘들은 세상 물정에 뒤늦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를 알지 못하고, 전업주부들과 소통하려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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