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
최예선 지음, 정구원 그림 / 지식너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중학교 다닐 때 방학마다 서울에 살던 삼촌 댁으로 놀러갔었는데 TV로 보던 모습과 달라서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TV를 통해 머릿속에 각인된 서울의 모습은 으리으리한 건물과 삐까뻔쩍한 거리였는데 삼촌 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서울은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오래된, 지저분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던 칙칙한 건물들이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서울은 조선왕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한마디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금 내 주위에 어떤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지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저자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잊어버렸거나 감추어진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들의 흔적과 자취를 뒤쫓는다.

저자와 함께 ‘예술 산보’를 하며 어느 순간 갑자기 가슴 속에서 울컥함이 솟구쳤다. 예술을 위해 열정을 다 바친, 혹은 크나큰 열정을 펼쳐보기도 전에 절명한 그들의 삶에 나도 모르게 깊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이름이 익숙한 예술가들도 있고, 낯선 예술가들도 있었지만 저자를 통해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공감할 수 있었다.

추석 즈음, 친정에 갔다가 친정엄마 찬스로 남편과 영화를 보러 외출을 했었다. 검색해보니 신도심에 있는 영화관은 가까운 시간 영화가 이미 다 매진이어서 구도심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어 옛 추억을 되새겨 볼 겸 거리로 나가보았는데 예전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는 쓸쓸한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먹먹했었다. 첫사랑이 알바를 했던 식당, 혼자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던 극장, 그 시절 단골 미용실, PC방, 커피숍, 옷가게 등이 반짝반짝 했던 나의 청춘과 함께 아련한 추억이 되어 있었다. 생기가 없는, 많이 변한 속에서 혹시나 그때 모습 그대로인 간판이나 풍경이 보이면 얼마나 반갑던지. 이후로도 가끔 그 속에 어우러져 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겼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때의 감정이 자꾸 되살아났다.

책을 통해 눈으로 좇은 추억이었지만 정말 귀한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매일 새로워지는 도시이기에 그들의 흔적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것이었다. 유럽 여행 당시에 도시 자체가 지나온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존경스러움을 느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러한 면이 부족함을 느꼈고 특히 근대문화유산에 대해서는 많은 보전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특별한 것 없던 서울이라는 도시에 그들의 열정과 고뇌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하자 모습이 달라졌지만 같은 땅을 밟고 있다는 자체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오후 세 시가 되면 책 속의 예술가들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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