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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줘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임경선 작가는 이전에 ‘엄마와 연애할 때’와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이미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엄마라는 역할을 어설프게 해나가며 느낀 것, 생각한 것들을 어디에 하소연하지 못하고 머리와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고
답답해하고 있을 때 읽은 ‘엄마와 연애할 때’는 나의 묵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준 고마운 책이었다. 당시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으로서
작가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느끼고 다른 책들을 찾아보았는데 이런저런 일로 인연이 되지 않아 다른 책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작가의
새로운 책 ‘기억해줘’를 만나게 되었다.

해인과 안나는 열일곱 살에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동양인이 적은 학교였고, 각자 상처를 가지고 있던
사춘기여서 둘은 점차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 나이였기에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리자 서로에 대한 오해를 가진 채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17년 후 둘은 뉴욕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주인공 해인과 안나를 비롯한 등장 인물들은 모두 자기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또 그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패를 지니고 있다. 책 속의 인물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패를 나를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대부분 연인, 가족, 친구) 상처 입게 만든다는 것이다.

담담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 내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 때문에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던 지난 기억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나의 이기심 때문에 상처 입었거나 나에게 상처 주었던 지난 사랑들. 그땐 사랑에 실패하면 내가 아직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에 만남과
이별을 통해 더 배우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야 내가 어떤 상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이별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해인과 안나처럼 우연히 다시 만나 과거의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실현할 수 없기에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돌이킬 수 없기에 그 후회가 더욱 크게 자리하는 것 같다.
우리는 왜 ‘사랑’이라는 단어로 하나 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서로에게 진실하지 못하는 걸까? 상대방의 어떤 모습도 마치
친엄마처럼 보듬어줄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면서 왜 정작 나의 약한 모습은 감추고 싶은 걸까? 2부 마지막 제목 '사랑은 늘 거기에 있었다'는
문장처럼 늘 우리 옆에 있는 '사랑'이기에 책을 읽는 중간에도, 다 읽은 후에도 나를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146쪽 _ 너는 말이야, 늘 그렇게 마음의 벽을 치고 있었어. 어른인 척, 관대한 척, 오빠인 척했지만 단 한번도 진심으로 남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이해하려고 한 적은 없지. 자신의 약한 모습을 털어놓지 못할 만큼 자존심은 강하고 남의 약한 모습을 품어줄 만큼 관대하지도 못해. 넌 너밖에 모르고 너만의 안전한 세계가 흔들리는 게 싫은 거야. 왜인 줄 알아? 넌 처음부터 그럴 필요가 없던 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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