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의 데드히트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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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빡 속았다
하루키의 장편을 다 읽은 후 단편을 읽어야 하나 고민했다. 하루키의 에세이들은 다들 재미있고 흥미로웠지만 소설들은 에세이보다는 큰 재미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 소설의 완성도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로 하루키의 글쓰기가 나에게 맞지 않았다. 환상 문학이라 보기에 다소 미흡하고 문학 소설이라 하기에도 뭔가 부족해 보였다. 그렇다면 책을 놓지 않을 흡입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 낮은 기대와 고민 속에 책을 집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형식으로 글을 써서 작가라는 특성에 특이한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네 하고 생각했다. 도시괴담 수준의 이야기들도 몇 보여서 뻥이 심한 사람들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하루키가 지어낸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루키가 리얼한 글쓰기를 연습하려고 들은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처럼 만든 이야기란다. 이건 정말 깜빡 속았다. 이야기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진짜 들은 이야기를 적은 것 같은 글쓰기에 다 읽은 후 감탄하게 되었다.

# 전해들은 이야기
보통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할 때 내가 겪었던 이야기인데 하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강하게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그래서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이야기의 진위를 파악한다. 그렇지만 이때 내가 들은 이야기인데 라고 하면 별 의심을 하지 않는다. 중간에 어색한 부분이나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나와도 입으로 전해지면서 어색해 졌겠거니 한다. 무엇보다 캐물어도 내가 들은 이야기인데 난 모르지 하고 진위를 확인해 줘야 할 의무가 사라진다.

그럼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진실로 믿게된다. 좀 허무맹랑한 이야기더라도 말이다. 진실이라기 보다는 그 이야기를 전한 사람이 거짓을 말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게 진위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일거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제법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가짜 뉴스라는 것이 이렇게 생성되고 유통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깜짝 놀라게 되었다. 소설이라 알고 있었지만 책을 보면서 왜 에세이인데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붙혔을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니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진짜 있었던 이야기라고 오해할 법하다고 생각했다.

# 진짜 같은 가짜가 흥미롭다
이 책의 진정한 흡입력은 본인이 소설 속에 등장하면서 화자로서 마치 수기처럼 글을 써 나간다는 것에 있다. 하루키가 직접 겪었던 일이구나 하면서 흥미롭게 글을 읽었다. 물론 하루키의 에세이의 재미를 알기 때문에 더욱 몰입이 되었던 것도 있었다. 또한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본인은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이야기들을 수집한다는 대목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하루키가 의도했던 그러지 않았던 스스로 덫에 빠지고 말았다.

이야기들은 묘하게 진짜 같은 가짜다. 과하다 하는 내용도 있었으나 기억을 전하고 전하는 과정에서 과장이 되었으려니 했다. 설마 이 모든 이야기가 가짜일 거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말 깜빡 속았다는 말 밖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속고 난 이후 속았어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속이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처음부터 이 책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라고 선언했다. 그 내용을 간과한 것은 독자인 나였다. 작가가 화자로 등장해 말할 수 있을 텐데 왜 그 생각은 못했을까?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무라카미 씨라고 하는 순간 진실을 감지하는 센서는 맛이 갔다 할 수 있겠다. 책 속의 무라카미는 무라카미 류일 수도 무라카미 아베일 수도 있었다.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속았고 누구도 속이지 않았기에 즐겁게 책을 다 읽고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짜 뉴스를 퍼트릴 수 있다는 것에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 수록된 작품은 『INPOCKET」이라는 고단샤의 문고 PR지에 실린 것이다. 내가 군조 신인상을 받았을 때 담당 편집자였던 M씨가 『군조에서 이 IN POCKET』 편집부로 옮기며 청탁해 연재를 시작했다. 아마 창간호부터 일 년 반 정도 격월로연재했을 것이다. 한 편당 매수는 400자 원고지 30매 정도였다.
이 연재의 주제는 ‘듣고 쓰기‘였다. 쓰는 것은 일인칭 ‘나‘지만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 지금이니까 고백하지만 - 전부 창작이다. 이들 이야기에 모델은 일절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내가 지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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