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솔직히 무슨 말인지
하루키의 에세이와 굉장히 분위기가 다르다. 에세이를 보면 한없이 쿨한 작가인데 소설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 허무주의가 가득한 내용으로 보이기도 하고 뭔가 어두운 기운이 물씬 풍기는 소설인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내용이든 간에 쿨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질척 거리는 분위기라고 할까? 에세이는 쿨하다 못해 쨍하기까지 하는데 소설은 이런 분위기라니 사람이 이렇게 분위기를 확확 바꿀 수 있는지 특이해 보이기도 하다.

딴은 그렇지만 더 솔직한 소감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잡힌다. 40년 전의 감성이라 그런가 아니면 내 감성이 메말라서 그런가 왜 핀볼 기계를 찾아 그렇게 헤매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가장 중요한 핀볼 기계를 찾는 이유에 대하여 감정이입을 못했으니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서 몰입이 되었을 리 만무하다. 전체적으로 계속 겉도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은? 내가 10년만 더 빨리 태어났으면 감정이 확실히 잡혔을까? 그렇다면 200년 전 소설은 아예 이해가 가지 않아야 정상인데 그렇지도 않은걸 보니 딱 그 시대에 특화된 책인가 보다 하고 쿨 하고 생각하고 넘긴다.

# 핀볼 기계
핀볼은 내가 어렸을 때도 기계를 보기 어려웠다. 대부분 3D 핀볼이라는 윈도 기본 게임으로 접했을 것이다. 여기서 간극이 벌어질 것이다. 핀볼 기계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핀볼 기계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한 듯 느낌을 알까? 당연히 알지 못할 것이다. 나도 핀볼을 게임으로만 접해서 별로 재미없는 이런 게임을 왜 만들었을까? 하다가 이벤트성으로 내놓은 핀볼 기계의 웅장함에 놀랐던 적이 있다. 게임의 재미는 차치하고 핀볼이라는 기계는 생각보다 웅장하고 큰 소리가 났다.

핀볼 기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핀볼을 접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쉽게 이해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들 어리둥절할 것이다. 게임으로만 접한 사람은 핀볼은 A4보다 작은 오락기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청 큰 기계로 되어 있고 쇠구슬을 튕기며 하는 게임인데 소설만 보고서는 그런 느낌을 체감하지 못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 공감이 어려운 소설
핀볼이 가장 큰 이유기도 하지만 그것 외에도 공감이 어렵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소설이다. 20대의 고민 허무 그리고 자아에 대한 고민, 사실 이런 것들은 현재 그리고 짧은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사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족의 시대라면 저런 고민을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 소설이 쓰였을 당시는 일본의 고도 성장기였다. 물질의 풍족에 대비해 정신의 빈곤이 눈에 띄던 시절이다.

고도 성장기를 지난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고도 성장기 이후 찾아오는 침체기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들이다. 그들은 저런 고민하지 못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당장의 고민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의 불균형으로 인한 고민은 없다. 당장 육체부터 해결해야지. 그런 것에 더욱 괴리감이 커지는 것 같다. 소설은 잘 봤으나 공감은 되지 않는 이유다.

하루키의 초창기 3편을 팬들은 ˝쥐 삼부작˝이라 부른다 한다. 일단 삼부작은 비슷한 내용을 보이지만, 일단은 계속 볼 생각이다. 한편 남았으니 금방 보지 않을까 한다. 하루키도 다른 소설들은 시간이 지나서 글을 다듬었는데 이 삼부작은 초기의 작품으로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 손대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다는 이유라고 한다. 투박하지만 하루키의 초기 거친 생각을 여과 없이 보려고 한다.

아니, 정말로 일어난 일이야. 다만 사라져버렸을 뿐이지.
괴로워?
아니, 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無에서 생겨난 것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인데, 뭐.
우리는 다시 한 번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
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때를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이제 그만 가보는 게 좋겠어, 하고 그녀가 말했다.
실제로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웠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담배를 밟아 껐다.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잘 지내, 하고 그녀는 말했다.
고마워. 안녕, 잘 있어, 하고 나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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