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트리 - 상큼한 성장의 기록
오가와 이토, 권영주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묘했다. 무슨 뜻일까? [패밀리 트리]라니 특이한 제목이다 싶었다. 어떤 내용일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연애 소설이라고 되어 있으니, 제목과 내용이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오가와 이토라면 음식이 주된 내용일 텐데 가족 그리고 나무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살짝 생각해 봤는데 연관성을 유추해 낼 수 없었다.

첫 장을 펼쳤을 때 순수하게 깜짝 놀랐다. 우선 화자가 남자였고, 음식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쓰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려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전이나 이후나 풍부한 묘사에 치중했다면 선이 굵고 짧게 쓰려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보였다. 항상 일인칭으로 글을 쓰다 보니, 여성적으로 보였던 문장을 남성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묘를 부린 것으로 보였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 시도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나오는 책들이 다시 주인공이 여성이고 풍부한 표현을 주로 했던 방식으로 되돌아간 것을 보니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글 쓰는 게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사실 나도 그다지 독특한 매력을 발견할 수 없었다. 평범한 연애소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인칭 소설은 화자에 몰입하여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주인공에게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항상 여성을 화자로 사용하다 남자를 화자로 사용해서 그런지 무리하게 남자는 이럴 것이다 라고 특정 지어버린 것 같은 주인공 캐릭터의 모습이 첫 째요. 두 번 째는 주인공의 행동이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해피앤딩을 만들기 위해 구겨 넣은 듯한 종반부가 쉽사리 설명하기 어렵다.

[패밀리 트리]는 증조할머니를 기점으로 만들어진 가계도를 뜻하는 것으로 크리스마스트리 같다고 하여 붙였다고 마지막 즈음 이야기한다. 그럼 증조할머니의 존재가 두 커플의 관계에 강한 힘을 넣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증조할머니는 커플의 최고 위기 때 화해의 매개체 딱 그 정도로 쓰였다. 그렇게 할 거면 굳이 증조할머니를 그렇게 오랫동안 끌고 가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할머니라는 존재로 인해 가족 간의 관계가 유지가 되었고, 할머니가 사라짐으로 인해 트리가 해체되었다든지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였다면 제목과 이야기가 납득이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제목과 내용과 분위기는 각자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아쉬운 건 작가만의 그 독특한 문체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나름 종장까지 끌고 가면서 본인의 향기를 묻히고 싶었던지 증조할머니의 음식이라고 음식 표현을 써두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글이 힘을 잃었던 때라 감동으로 남지는 못했다.

이제까지 읽었던 오가와 이토의 책 중 가장 재미없는 책이 아닐까 한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 테니 이 책에서 큰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기존 작품과 동일한 향기를 느끼고 싶었다면 아차 싶을 듯하다. 그나마 아쉬운 소설이지만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완급조절을 잘했기 때문에 독서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이 나서 다행이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 못 하고 또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만, 그래도 말이다. 류세이."
기쿠 할머니는 또렷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 뺨은 그때 이미눈물로 빛나고 있었을 터였다.
"살아 있으면 꼭 좋은 일도 있는 법이야. 신께선 그렇게 심술궂은일은 하지 않으신단다. 선하게 살기만 하면 언젠가 자기한테 돌아오는 법이야."
나는 땅속에 파묻힌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음에 꽉 닫혀있던 뚜껑이 딸깍 하고 벗겨지면서 천장이 환히 열린 기분이었다.
할머니도 바다를 잊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것이 기뻤다.
"할머니."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그 이상 말을잇지 못했다.

- 본문 P180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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