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나이를 찾아본다. 오래전부터 이름을 알던 사람인데 애석하게도 소설은 읽은 적이 없다. 일본 작가의 책은 어떻게 하다 보니 여성 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어 하루키의 책은 읽지를 않았다. 그나마 읽은 책도 판타지류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책들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70세 만 나이로 69세 되었다. 역시 오랫동안 이름은 자주 들었던 이유가 있다. 나이를 찾아본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언제 쓴 글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봐도 글을 쓴 배경 시점은 90년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사고방식은 현재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글을 쓴 일자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지만 찾아보진 않았다. 에세이다 보니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읽다 보면 시대를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림잡아 80~90년대 쯤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시 80년대에 쓰고 90년대에 엮어 책으로 발간했다고 한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유교의 영향권이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어떻게 보면 꽉 막혀 있다 봐야 할. 텐데 너무 자유롭게 글이 쓰여있다.

이 책을 냈을 때 의외로 많은 반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현시점에서도 이런 글을 쓴다면 상당히 쿨한 사람이네 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게 30~40년 전의 이야기라면 쿨한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독특한 사람이네, 말도 안 되는 사상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을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가 가는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저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인 시대다. 그렇게 본다면 하루키는 유행을 상당히 앞서 간다고 생각해도 될법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구절은 표어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표어가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각종 포스터에 표어들이 길에 넘쳐났다. 현재는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꾸준히 공익광고 등으로 표어를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다. 일본도 비슷한 시대 그랬나 보다. 그 시절 각종 표어 만들기 대회가 있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걸 하루키는 삐딱하게 쳐다본다. 그러면서 트집잡기식으로 대상을 받은 표어에 대해서 정리해서 썼다. 본인도 트집잡기라는 것을 알면서 쓴 글이다. 표어가 싫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나름 논거라고 반박하면서 쓴 글을 보니 귀여워서 실소가 나왔다. 70 먹은 어르신을 귀엽다고 표현한 것이 아닌 그때 당시의 하루키라면 내 나이보다 아래 거나 비슷할 테니 예의에 어긋나 보이진 않는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뭔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성찰이나 자아실현 이런 이야기보다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 대부분의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누구를 가르치러 드는 듯한 불쾌한 감정이 덜하고 왠지 모를 흥이 생긴다. 그래서 그런지 대표작들인 소설류보다 에세이를 먼저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래되고 소설책처럼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에피소드를 요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해서 찾기 어렵긴 한데, 최대한 찾아 읽어보고 그의 소설 세계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 본문 P151, 127 중 -

예를 들어 나는 고등학교 시절 온통 미국 소설만 읽었기 때문에, 우선 읽고 쓰는 것으로 영어를 시작해 그다음에 조금씩 회화로 들어갔다. 그래서 회화가 가능해질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도 그리 잘하지 못한다. 어눌하고 투박하게 말한다. 발음도 엉망이다. 말이 매끄럽게 술술 나오지도않는다. 하지만 그게 나라는 인간이다. 세상에는 내가 잘할 수있는 일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일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때우고 산다. 우리는 아주 불완전한 존재이고, 하나에서 열까지 두루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갖가지 사람이 있다.

아무튼 부모와 자식이 뭐든 얘기하는 가정은 과연 정말로 즐거운 가정일까? 나는 그 표어 앞에 서서 근본적인 의문에 빠졌다. 이런 표어는 때로 근본적인 사고의 확인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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