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랑말랑 기억 젤리 ㅣ 개나리문고 14
이향지 지음, 이은주 그림 / 봄마중 / 2023년 12월
평점 :
갑작스러운 이사로 인한 아이의 상실감과 그리움을
옛이야기 화소와 잘 버무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야기이다.
이사 날 차에 타려 하지 않은 이소의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먹먹한 순간을 상기시킨다.
주인공 이소는 상실감과 그리움이 너무도 큰 나머지
새로 이사 온 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하고 많은 젤리 중에 떠나온 곳의 지명인 구미란 글자가
들어간 젤리에 집착할 정도다.
그런 이소 앞에 수상한 산신이 나타나는데
이소가 좋아하는 젤리를 미끼로 공간이동을 제안한다.
젤리를 먹는 순간 추억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데
하지만 그곳은 눈으로만 봐야 하는 색깔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만지지도 느낄 수도 없지만, 이소는 절실하고 간절하기만 하다.
그 대가는 현실의 시간을 내주는 것.
다시 말해 산신은 시간 도둑이었던 셈이다.
과거의 공간에 머무는 동안 현재의 시간을 내주어야 하는 이소
현실의 이소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점차 생기를 잃어간다.
흔히들 노인을 일컬어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데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이소가 현재의 삶을 외면한 채 과거 추억에 얽매어
집착하는 현실을 상징적이며 시각적으로 잘 녹여 내었다고 본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산신이 비중있게 나오는데 또 다른 한 명은 이소와
친밀하게 지내면서 추억도 쌓은 친구 같은 존재인데도 오히려
자신과의 기억을 이소의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다.
이유는 이소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왜 산신일까 생각해 보면 구릉지가 대부부분인 우리 국토의 특성상
산신의 영향이 끼치지 않는 공간이 없을 테니 어느곳에 터전을
잡고살던 수호신 역할을 해준 산신이 보호한다는 암시일 것 같다.
과거의 시간에 얽매어 현재의 삶을 상실할뻔했던 이소는
또래의 모습으로 나타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산신 하늘이의
도움으로 과거의 허상으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덕분에 이소는 현실의 생활을 받아들여 새로운 학교 생활에
적응할 용기를 얻게 된다.
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젤리와 옛이야기 캐릭터, 거기에 더해
심리적 결핍과 상실감까지 잘 버무려 선보인 퓨전요리 같은 이야기다.
이사로 인한 상실감을 이토록 효과적으로 위로한 동화가 있을까 싶다.
추억과 그리움에서 벗어나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을
스팩터클한 모험담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이소가 겪은 좌충우돌 과거 탈출기는 환경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젤리와 같은 다채로운 맛을 선사하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