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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5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0월
평점 :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본다는 느낌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전달해주는 소설을 나는 알지 못한다. 소설가로서 톨스토이는 신이다
-이현우, 「로쟈의 인문학 서재」 저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그 중 제 1권을 읽었다. 흔히들 '고전'을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이라고도 부른다. 톨스토이에 있어,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버지니아 울프, 헤밍웨이가 극찬하고 죽기 전 꼭 읽어야 할 소설이라는 명성까지 있음에도 불구, 거대한 서사와 압도적인 분량, 러시아 문학이라는 낯설음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학동네에서 마련한 "톨스토이 탐험대"라는 재미난 이벤트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 도전을 또 어영부영 다음으로 미뤘을 것이다. 며칠 후면, 이십 대 중반! 그 길목에서 만난 고전, 톨스토이. 그는 이 불후의 명작으로 나에게 무엇을 알려줄 것인가, 나는 그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때는 1805년, 러시아. 화려함과 부유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교계의 한복판. 그러나 그 곳은 먹고 마시는 데에만 집중하는 한량들의 공간이라기보단 여러 정치 문제와 가문의 생존, 청탁과 계급이 존재하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프랑스를 점령하고 전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이 러시아까지 침공하려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세계 정세를 읽고, 군의 선봉장에 서기 위해 청탁하고, 가문의 생존을 도모하는 데엔 온 귀족들이 다 모이는 사교계만큼이나 안성맞춤인 공간이 없었다.
하여 이 사교계의 인물들을 따라 가다 보면, 누가 러시아의 실력자인지, 어떤 가문이 몰락 직전에 있는지, 전쟁을 통해 야망을 성취하려는 이가 누구인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전쟁과 평화"는 단지 하나의 "장편소설"이라고 치부 할 수 없다.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가족소설이고, 당시 시대 상황을 그려낸 역사 소설이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농밀하게 그려낸 풍속소설이면서, 한 인물의 사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성장소설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 역할을 하는 1권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사생아에서 하루아침에 러시아 대 부호 베주호프 백작의 전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로 변신한 피예르와 그의 지인이자 러시아의 영웅이 되고 싶은 야망을 가진 사내, 안드레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가 임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나가고야 말겠다는 안드레이의 모습이 인상 깊다.
모두가 말리는데도 왜 전쟁을 나가느냐는 피예르의 질문에 그는 참을 수 없단 듯이 이를 악물며 소리친다.
"뭐 때문이냐고? 나도 모르겠어. 그래야 하는 거니까. 또한 내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그는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야!"
그는 줄곧 폐하에게 충성을 다하고, 러시아를 전쟁에서 구해내고 싶다고 힘주어 얘기하지만 이렇게 불쑥불쑥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속마음, 그러니까 '생활의 지루함'과 '전쟁'이라는 흥미 거리에 사로잡힌 자신의 어리석은 속마음을 발설 하고 만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그런 자신을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은 그와 함께 군대를 지휘하는 로스토프도 마찬가지다.
그는 말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게 되자 차츰 즐거워졌다. (...) 이제 그 선을 넘어버렸으니 무서울 것은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가 났다. ''그래, 녀석들을 단칼에 베어 죽이리라." 로스토프는 사브르의 자루를 힘주어 잡으면서 생각했다.
이 안드레이와 로스토프는 전쟁의 한복판에 떨어져, 그 광기에 저도 모르게 사로잡힌 사내들이다. 어디 그들만 그랬을까.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잔혹한 현장에서 도저히 '죽음'이라는 카드는 생각하지도, 볼 수도 없기에 오로지 '삶', 그것도 빛나는 명예가 있을 거라고 믿는, 그 '삶'을 맹목적으로 쫓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용맹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애처롭게 느껴진다. 그들을 그렇게 사지로 밀고 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개인의 영웅주의? 아님 그 뒤에 존재하는 거대한 정복욕? 그러나 결국 허무로 끝나버리는 무언가?
그들의 눈을 가린 안대를 제일 먼저 풀어버린 이는 로스토프였다. 그는 적에게 칼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음을 실감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전쟁을 하고 있는지, 정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도와주는 사람도, 가엾게 여겨주는 사람도 없다. 나도 한때는 내 집에서 건강하고, 쾌활하고, 사랑 받았는데.(...)그는 불 위로 날리는 눈송이를 보면서 따뜻하고 밝은 집, 푹신한 털외투, 쏜살같은 썰매, 건강한 몸, 가족의 애정과 염려가 연상되는 러시아의 겨울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을까! '
그리고 안드레이 역시 전쟁을 치르던 중 이 허무를 맛보게 된다.
왜 나는 이 드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두 허무하다, 모두 거짓이다,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그러나 이 하늘마저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정적과 평안 외에는.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전쟁의 허위를 알게 된 로스토프와 안드레이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폭력성을 넘어 삶의 의미까지 성찰하게 만든다. 포가 날아다니고 총알이 귀 옆을 스치는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더라도 지금 현대인들은 이렇게 자신이 진정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 일상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때 안드레이가 처음으로 바라보게 된 하늘, 그 하늘의 끝없음을 우리가 함께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놓치고 있던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로스토프가 말했듯 한 줄의 선을 경계로 삶과 죽음이 나뉘어진다면, 지금 피예르는, 그 명석하고 순수했던 피예르는 많은 재산과 사랑에 취해 화려한 삶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피예르의 모습과 전장의 잔혹한 모습들이 대비되며 이 1권의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임신한 아내마저 버리고 온 안드레이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일상에 안주하고 마는 피예르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톨스토이의 작품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