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 짓다 - 듣는 순간 갖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 언어의 힘
민은정 지음 / 리더스북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루 동안 마주치는 브랜드가 수천 개라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압도적인 숫자가 아니라 그 많은 브랜드들 중 내 뇌리에 각인된 것들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 브랜드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생존해서 우리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일까? 어떻게 한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일까? 때론 한 도시나 국가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하는 것일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첫인상을 결정하는 '이름'들의 이야기가 한국 최고의 브랜드 버벌리스트인 저자 민은정의 손으로 직접 쓰였다. 그가 참여했던 네이밍 사업과 거기서 탄생한 이름들의 친숙하고 풍부한 예시들이 이 책에 가득하다.  




강한 것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다. 잘 벼린 칼날은 그 무엇보다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위협하는 날카로움이 있다. 이름도 그러해야 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날카로워야 했다. '촌철살인' 딱 그것이 필요했다 -책 中


찰나의 첫인상을 강렬하게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은 꽤 복잡하고 다양하다. 발음되기 편하게 유성음과 무성음을 적절히 조합하고 타겟에 맞춰 글자 수를 조절한다. 제품의 속성이 바로 떠올라야 좋은 이름이다. 


네가 그냥 커피라면, 난 TOP야. 라는 문구로 유명해진 음료도 저자의 작품이다. 그는 첫맛은 강하고 목을 넘어갈 때의 끝 맛은 부드러운 커피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다양한 후보들을 만들고 고민했다. TOP는 수많은 후보들 중 가장 적합한 이름이었다.



커피의 강한 첫맛은 '티', 부드러운 맛은 '오', 여운이 남는 향은 '피' 이렇게 세 음절이 각각의 역할을 나누어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티오피라는 이름을 부르고 들을 때 커피다움을 느낄 수 있다.(...)이후로 프리미엄 원두 캔 커피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여 10여 년 만에 1조 원을 넘는 시장이 되었다. 지금 이 시장의 최강자는 롯데칠성음료의 칸타타와 동서식품의 티오피다. p10



이름을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이름의 이미지를 풍부하게 만들도록 스토리도 만들어야 한다. 대개 한 제품이나 기업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슬로건과 함께 전달되곤 한다. 슬로건은 단지 멋지고 강렬한 것을 넘어 기업이 추구하는 미래와 정신을 담아야 한다. 종종 슬로건이 집단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곤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글은 'Don't be Evil'에서 'Do the Right Thing'으로 슬로건을 변경했다. '올바른 일을 통해 세상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는 존재 이유를 정립하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올바른 일'이라고 스스로의 업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구글은 이러한 존재 이유와 업의 재정의를 바탕으로 주력 사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세계인의 삶 모든 단면에서 활약 중이다 p97



그래서 기업이 슬로건에 반하는 일을 하거나 불법을 저지를 때 소비자는 물론 직원들까지 기업을 규탄하고 나설 때가 있다.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부분을 읽고 두 가지 예시가 생각났다. 사람이 미래라고 했던 한 대기업이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까지 포함해 대규모 정리 해고를 단행한 사실이 밝혀지며 국민들과 직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다. 반면 잘 만든 슬로건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기업의 이미지가 향상되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역시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Just Do it 을 내세우며 다양한 여성 셀럽들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활약하는 장면을 내세웠는데 이는 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호감도도 수직 상승시켰다. 



브랜드가 시대 정신을 담기도 한다. 무궁화호,새마을호, 통일호, 비둘기호 같은 열차 이름은 통일을 염원하거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당시의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 중 하나인 소주 이름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1951년 '금련', 1952년 '낙동강'에 이어 1954년에 출시된 레전드 브랜드 '진로'는 전후 복구, 새마을 운동, 한강의 기적,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며 삶의 고단함을 위로해준 국민 소주였다. 1998년 외환 위기로 한창 어려움을 겪던 진로는 이름을 '참眞이슬露'로 바꾼다. 그리고 2014년, 한자를 빼고 진정한 '참이슬'로 리뉴얼했다.(...) 기존 고객을 지키면서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로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p129



저자는 이런 이름들은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시간을 지나오며 가슴에 새겨진 추억'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름을 짓는 것은 때로 '시대의 감각과 감성을 기록하는 역사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브랜드 하나에 기업이, 도시가, 나라가 흔들리거나 성장하는 것을 보는 건 마치 어린 아이의 그것을 보는 것처럼 신기하고 흥미롭다. 카피라이터, 네이미스트 등 광고계에서 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업계 선배가 들려주는 노하우이자 진심 어린 조언이 될 것이다. 나에겐 브랜드의 유래와 탄생 과정을 알 수 있어서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번엔 어떤 브랜드가 우리를 유혹할까. 

책을 덮고 나니 세상이 꽤 재밌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범죄자는 교화 될 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돌았던 질문. 요즘처럼  끔찍하고  믿을  수 없는  범죄가  세  끼  밥  먹듯  나오는  현실에서  이런  질문에  답은  당연히 '아니오'인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은 정답을 내릴 수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넌센스다. 범죄자에게 믿음이나 인류애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루하루 매일같이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있으며 모든 평범한 인간들은 감옥에 갇힐 만한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았을 뿐 모두 더럽고 불쾌한 짓들을 벌이면서 사는 까닭이다. 






감옥 밖에서도 지옥도를 그리고 있는 인간들이 감옥 안이라고 교화될 리가 없다. 그러니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인간은 교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답은 예스나 노로 명확히 구분되는 명사가 아니라 언제든지 왔다갔다할 수 있는 동사가 되어야 한다. 보아라. 정용준의 소설 속 끔찍한 살인범은 474한 명이지만, 그를 둘러싼 인간들을 과연 선하다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우리와 다른 것이 있는지. 우리는 모두 평범한 악마들이다. 그러니 474가 더 나쁜 놈일 뿐, 그 외 인물들이 선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덜 나쁠 뿐이다. 자주 사람들은 이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을 혼동하고, 후자를 '선하다'고 말한다. 




내게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이 이끌리는 존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신해경을 고르겠다. 그녀는 적어도 이 위악이 넘치는 세상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기라도 했으니까. 독자들이여, 부디 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중년의 여성을 단지 474의 누나로만 여기시지 말기를. 474의 과거를 캐내는 수단으로 도구화 하지 말기를. 신해경을 잊는 순간, 우리는 소설 속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474를 죽여야하나 살려야 하나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신해경은 바둑돌을 놓는 고수, 들개를 조련하는 주인같다. 살인을 저지른 건 474지만 그를 그렇게 하도록 충동질한 건 신해경이다. 무심코 놓은 바둑돌이 게임을 의외의 결과로 이끌기도 하는 것처럼 그녀가 원하진 않았지만 결국 474는 그녀가 우려한 대로 운명을 몰고 갔다. 474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그녀에게서 버림받았기 때문에, 관심을 얻고 싶어서라는 것도 흥미롭다. 꼬리를 살랑거리다가도 주인이 등을 돌리면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개와 그 앞에 신해경. 악이 또다른 악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실현되는 장면들은 매일같이 예상치 못한 운명의 손아귀에서 시달리고 불쾌한 타인과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신해경을 진정한 악마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악은 허무할 만큼 평범하고, 평범한 인간들은 그래서 저마다 악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은 선하다고 믿는 것이 인간이니까. 474를 어서 죽으라면서 경멸하는 교도소장도, 실천에 옮기지만 않았을 뿐 살인범에 근접하지 않은가. 실행의 유무가 법에 심판대에 올릴 순 있어도 선악을 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자가 혹, 그것이 손톱만한 차이일지라도 그렇지 않은 자보다 더 자유롭다. 신해경은 아마 바람처럼 날았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런 프리시와 로베트로 인노첸티의 소설 '빨간 모자'는 동화를 현대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주인공 소피아는 심부름을 가기 위해 숲을 지나야 했던 빨간 모자처럼 불빛이 번쩍이는 대도시 한복판을  지나야만 한다. 현대에서 소피아를 노리는 것은 늑대나 산짐승이 아니라 어린이를 성적 대상화하는 현란한 광고 문구이다. 사냥꾼의 도움으로 늑대의 뱃속에서 무사히 구출된 동화 '빨간 모자'는 위험한 곳을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경고가 담긴 애정이자 한 소녀의 성장담이지만 현대판 '빨간 모자'와 배준의 장편 소설 '시트콤'은 두근거리는 모험도 어른들의 애정도 없는 소녀들의 잔혹한 성장담이다. 집 밖을 나선 소녀들은 자신을 위협하는 사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후에야 '어린 여성'에서 '성인 여성'이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세상은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위협하는 것은 단지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란 것을. 



<아래 리뷰에는 소설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스포를 원하시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여기에는 두 명의 빨간 모자가 나온다. 전교 1등 모범생 이연아와 원조 교제를 하며 용돈을 버는 열 아홉 임다정. 일요일 아침, 연아는 여름 방학에 기숙 학원에 들어가 공부하라는 엄마와 심한 갈등을 겪고 홧김에 집을 나와 버린다. 옷에 묻은 김치 국물을 닦기 위해 공원 화장실에서 옷을 닦던 연아는 황급히 앞을 가린다. 속옷을 입지 않아 가슴이 비쳤기 때문. 사춘기 무렵 입기 시작한 브래지어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본다. 가슴의 모양을 예쁘게 잡아주는 게 정말 주 기능이라면, 이거 하나 벗는다고 이렇게 위험하고 야해도 되는 걸까. 


연아는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미성년자 밤 10시 이후부터 입장 불가'라는 경고문이 무색하게 주인은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열쇠를 건넨다. 유명무실한 경고, 의심하지 않는 어른, 허가를 의미하는 열쇠는 현실의 거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13살 소녀가 성인인 줄 알았다며 자신의 성폭행을 변명하는 범죄자나 화장을 하고 새벽까지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성폭행에 무죄 의견을 밝힌 법정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지만 낯설지 않다. 그러니 독자는 안심할 수 없다. 그리고 두려움은  늘 그랬듯 현실이 된다.


열가마에서 의식을 잃은 연아를 발견한 건(연아처럼 프리패스로) 찜질방에 있던 김 혁과 이 웅, 두 명의 남학생이다. 며칠 전부터 동정을 떼고 싶다며 섹스를 열망하던 웅에게 기절한 연아는 지체할 수 없는 목표물이다. 혁이 자신을 말리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 중딩 때 얘랑 썸 탔었어."

"......썸? 무슨 근거라도 있어?" 

"있지, 당연히. 일단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뭐 빌려 달라고 하면 자주 빌려주고.... 쟤가 가끔 나 놀릴 때도 있었고...." p.69


웅의 변명은 귀엽다기보다 소름이 끼친다. 여성의 단순한 친절을 연애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남성들은 현실에도 비일비재하기 때문. 이런 일방적인 해석은 자주 가해자의 무기가 되어 피해자를 후려친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하고도 평범한 카톡을 보냈느냐고 따지거나 회사를 멀쩡히 나갈 수 있느냐고 추궁하는 일 등이 그 예다. 만일 연아가 피해자였다면 그런 의심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그런 곳을 간 것부터가 잘못이라면서 연아에게 화살을 돌리거나 속옷을 입지 않은 것부터 비난하지 않았을까?         


혁은 웅의 친구이지만 그와는 사뭇 다른 성향을 보인다. 혁은 여학생과의 섹스를 목적으로 교회를 다니거나 함부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또래들을 한심하게 여기고 때로는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웅의 목적을 알고 있는 혁의 감시 때문에 그는 기회만 엿볼 뿐 연아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연아가 기절한 것을 알게 되자 둘은 119를 부르는 대신 직접 차를 몰고 응급실로 데려가기로 한다. 혁은 웅의 목적을 계속 의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연아를 업고 차에 탄다.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던 혁은 몰래 112에 신고하려고 하지만 이를 알아챈 웅과 격렬한 실랑이를 벌인다. 


"너, 저 여자애 어떻게 해보려고 차에 태운 거지? 그래서 나 내리라고 하는 거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 p81

"그리고 넌 씨발, 남자 새끼가 왜 그렇게 예민하냐? 그럼 이 세상에 성욕 없는 남자가 어디 있는데? 여자 얘기 좀 하고 다녔다고 사람을 거의 범죄자 취급하는데, 그럼 넌 씨발 불알도 없어?"(...)"너 존나 위선적인 거 알아? 네가 뭔데? 너도 결국 남자잖아. 네가 뭘 안다고 남자애들한테 잔소리냐고, 재수 없게."p82-83


혁은 웅과 대척점에  서 있는 정의로운 남성 같다. 허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혁 역시 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웅의 목적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제어하지 않거나 웅이 정신을 차린 연아를 때려서 다시 기절 시킨 걸 보고도 어쩔 수 없었단 식으로 일관하는 것은 그 역시 이 범죄의 공모자임을 시인하는 꼴일 뿐이다. 그래서 그가 웅에게 "나처럼 지랄하는 애들이 있으니까, 너처럼 눈치라도 보는 남자들이 생기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무력하고 공허하다. 웅이 봐야 하는 것은 혁의 눈치가 아니라 자신의 추한 모습이니까. 연아가 만일 자신을 두고 소년들이 벌인 갈등을 알았다면 웅에게만 화를 낼 수 있을까? 거기에 함께 있으면서도 방관과 다름 없는 일을 했던  혁까지 용서하지 못했으리라. 웅이 걱정하는 것이 연아의 상태가 아니라 깨져 버릴지도 모르는 혁과의 우정이라는 결말 또한 깊은 씁쓸함을 남긴다.  


여기 또 한 명의 빨간 모자가 있다. 고3 임다정이다. 동화 속 빨간 모자나 연아와 달리 다정은 스스로 위험에 뛰어든다. 그건 자신의 신체를 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 다정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여성의 신체가 손쉽게 자원이나 대상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는 정책이나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은 논점에서 이탈한 것이다. 우리가 던져야 하는 것은 여성을 때려 죽일 돌이 아니라 '왜 여성의 몸이 그토록 쉽게 돈이 되는가'이다. 나는 이 질문을 다정의 앞을 막아선 또 다른 정의로운 남학생, 민준이 꼭 해보길 바란다. 


이제 막 학생 회장이 된 민준은 학원이 끝난 뒤 거리를 걷다가 낯선 남성과 함께 있는 다정을 보게 된다.  민준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원조 교제임을 알게 되고 학생 회장이라는 책임감에 다정을 바른 길로 선도하기로 마음 먹는다. 치킨 배달원으로 위장한 민준은 다정이 있는 모텔 객실까지 들어가 그녀와 실랑이를 벌인다.


"저 학생회장 폼으로 된 거 아니에요. 진심으로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아이언맨 코스프레하고 복도 뛰어다녔던 거예요. 난 누나 도와주고 싶어요."

"그럼 꺼져. 그게 나 도와주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 해야죠. 이런 짓하면서 누난 안 무서워요?" p148


그러나 진심으로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학생회장이 되었다던 민준은 뱉은 말이 무색하게 다정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샤워를 끝마친 남성이 다정과 성관계를 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도 침대 밑에 숨은 민준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고, 다정이 남성을 거부하고 발버둥을 쳐도 망설이기만 했다. 결국 그녀가 전기 충격기를 꺼내 남성을 제압하고 나서야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온 민준은 "난 누나가 '하는'줄 알았죠."라는 초라한 변명을 꺼내 놓는다. 


민준은 같은 남성에게 경고를 주었던 혁과 달리 피해자 여성에게 훈계 하는 인물이다. 성매매라는 행위에서 남성의 죄는 지워버린 채 성을 팔았던 여성에게만 손가락질을 할 줄 아는 남성들처럼, 자신을 소중히 하라면서 순결한 성녀와 타락한 창녀를 구분하는 남성들처럼. 침대 밑에 숨어서 다정의 비명이 정말 위험을 알리는 것인지, 좋으면서 그냥 해보는 것인지 긴가민가했던 민준은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을까? 여성의 no는 yes가 아니라 그냥 no라는 것을.


'애초에 모텔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를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민준은 이제 강한 전기 충격을 받고 쓰러진 남성까지 처리해야 하는 일에 맞닥뜨렸다. 민준은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망설이는데 그건 민준이 한 번도 키스를 해보지 않은데다가 첫키스는 꼭 결혼할 사람이랑 하기로 결심한 소년이기 때문. 시트콤이었다면 이 장면에서 피식, 웃음이 났을까? 다정에게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라며 훈계하던 민준이 목숨이 오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인공호흡도 키스라며 갈등한다니. 모순적인 모습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여성에게 훈계할 정의로움은 있지만 남성을 제압할 용기는 없고, 여성의 거절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며, 인공호흡마저도 키스와 동급이라고 여기는 민준은 사실 평범한 남성 중 한 명일 뿐이다. 그 평범성이, 그 입에 발린 정의로움이 위선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다.


민준이 도망가지 않고 다정과 함께 공범이 되길 자처했단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 모텔을 나온 후 민준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다정이 원조 교제를 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주거나 이 사실을 무기로 다정을 협박하는 것일 테다. 성매매를 한다는 건, 남성보다 여성에게 크나큰 약점이 되니까. 아니, 다정이 그 날 원조 교제가 아니라 그저 남자친구와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대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그리고 민준은 그 방법이 옳다고 믿을 것이다. 다정을 강간하려고 한 남성을 때려 잡는 대신 그녀에게 '자신의 몸를 소중히 하라'고 가르쳤던 민준이라면 이후에도 계속 남성이 아니라 다정 만을 향해 훈계할 테니까. 그 꽉 막힌 도덕심 안에는 성찰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소설의 결말과 달리 이 두 명의 빨간 모자들이 돌아갈 일상에 해피 엔딩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책을 덮고도 웃을 수 없었던 이유다. 작가는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듯 팝콘을 먹는 기분으로'편하게 읽어 달라고 했지만 막상 손에 든 시트콤은 어두운 현실을 비튼 거대한 블랙 코미디 같았다. 경장편의 매력은 어쩌면 가벼움 속에 숨어 있는 무거움 아닐까. '웃음이 빵빵 터지는 유쾌한 소설!'이라고만 평가 받기에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크고 진지하다. 책이 끝난 뒤에도 계속 곱씹어보게 하는 소설, 이 작품은 그래서 좋은 작품이고, 읽어볼 가치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해석을 들어보고 싶다. 그러니 꼭 읽어 보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추천별: ★★★★☆


누군가 내게 좋은 소설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뒷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소설'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외에도 깊이가 있다거나, 사전 조사가 탄탄하다거나 등등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특히 손에 땀을 쥐고 읽어야 하는! 도저히 다음 이야기를 예상할 수 없는!

스릴러 소설이나 추리 소설 같은 것을 읽을 때는 이 조건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장안 24시는 합격!!!(책 두껍다고 벽돌로 쓰지 말기ㅠㅠ)

사실 지금도 계속 생각난다.. 나는 지금 상권만 있고 하권이 없으므로... 



빨리 하 권 읽어야 겠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

사실 중국 소설이라고 해서, 나도 모르게 편견이 있었다. 줄거리 파악보다 인물 파악이 더 어렵다는 러시아 소설처럼 주인공들의 이름이 난해하거나, 외우기 힘들진 않을까? 아님 대륙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 반도의 일개 독자가 따라가기는 너무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 웬걸... 너무 재밌자나!!!



진짜 홍보 뭐 이런 거 아니고요... 처음에는 두께가 너무 두꺼워서(600페이지 실화냐;) 장안에서 하루

24시간 벌어지는 일을 모조리 적은 이야기인가 보다 했거든요? 근데 숨 가쁘게!! 손에 땀을 쥐고!! 읽었는데 막 세 시간 지나있고 이럼... ㅎㅎ 그만큼 심장 쫄깃하고!! 차라리 이야기가 안 끝났으면 싶습니다..ㅇㅣ거 끝나면 나 무슨 낙으로 살아오... 책 읽기 전에 저 같은 길치를 위해서 출판사 분들이 친절하게 장안성 지도까지!! 



넣어주셨지만!! 



진정한 길치는 눈 앞에 지도가 있어도 읽을 줄을 모르는 게 함정^^ 고로 이 지도 몰라도 괜찮습니다 ㅎㅎ 어차피 장안성이 너무 넓고 주인공이 너무 빠르고 길도 너무 잘 알아서 그 뒤만 쫄쫄쫄 따라가도 됩니다 ㅎㅎ 주인공이 누구냐고요? 주인공은 바로! 



왜 나를 선택했습니까?


무려 자신의 상관을 죽인 죄(이것도 다 사연이 있다능..ㅠㅠ 아직은 모르지만..어쨌든 있을 거야! 사연!ㅠㅠ)로 사형을 선고 받은 장안 최악의 살인마, 장소경!(a.k.a.장염라) 장소경은 서역에서 10년, 장안에서 불량수로 9년이나 근무했기 때문에 장안의 지리를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북방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돌궐 족에 둘러싸여 장장 9일을 넘게 포위 되어 있었을 때! 모두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때!! 끝까지 살아남았던 최후의 3인 중 한 명이 바로 장소경이었습니다. 그러니 무술 실력도 장안 최고!! 하지만 조정과 얽힌 과거의 악연(소설로 확인해보시길!)때문에 지배 계층에게 뿌리 깊은 원한과 냉소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소경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군인 사이의 신의와 백성들의 안전 뿐. 장안에서 일어날 테러를 막기 위해 차출되었을 때도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며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때문에 장안 테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장소경을 골랐던 사람, 장소경이 가장 미워하는 지배 계층 중 한 명, 이 필이라는 엘리트 선비는 장소경을 붙잡기 위해 이렇게 소리칩니다.



장소경! 자네는 이 임무를 꼭 성공시켜야 해. 자네 손에 수십만 장안 백성의 목숨이 달려 있어. 수십만이라고!

백성이라는 말에 장소경은 어쩔 수 없이 장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이 이 임무를 성공시키더라도 조정은 자신을 죽일 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 필은 명문 귀족 집안의 외동 아들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났고 현재는 태자 곁에서 그를 위해 일하는 엘리트 관리입니다, 이 필은 언제든 조정을 배신할 것만 같은 장소경을 믿지 못하고 그를 감시할 충직한 스파이 한 명을 붙여 놓는데요.



난 언제든 당신을 체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이제 막 장안성 포리(아마 경찰?)가 된 신입 포리(이름도 왜 포리야..) 요여능!! 입니다. 이 필로부터 장소경을 감시하란 임무를 맡았을 때 요여능은 장소경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포리의 고수는 칼날처럼 올곧고 위엄 있게 예기를 뽐내며 악인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정의의 사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장소경은 모든 규칙과 모든 제약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깨버리고 필요하다면 편법과 협박도 서슴지 않는, 요여능으로서는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소경을 따라다니면서 장소경이 보여주는 진심과 백성들을 향한 애정, 홀로 감춰두었던 은밀한 고독까지 엿보게 되는 요여능은 점차 정의란 무엇인지, 자신이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고 성장하는데요. 요여능의 흑화(?)를 보고 있는 것도 짠하면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조금 더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장안성에서 포리로 살다보면 거의 매일 이런 선택지와 마주하게 돼. 옳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고, 옳은 일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아주 많지. 언제까지 군자의 길을 고집할 건지, 빨리 결정하는 게 좋아.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괴물이 되지 않으면 괴물한테 잡아먹히는 거지


사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장안에서 벌어지는 테러를 막는 것인데요, 소설을 읽다 보면 테러를 벌이려는 돌궐 족보다 자신의 부귀만을 생각하고 백성들이나 자신이 부리는 일꾼들의 목숨은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지배 계층의 모습 때문에 복잡하고 화 나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테러를 쫓는 것인지, 테러 뒤에 숨은 지배 계층의 욕망을 쫓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ㅠㅠ 돌궐이든 장안이든 어디든 백성 목숨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건 똑같나 봅니다. 여기 백성 울어요...ㅠㅠ 그래서 장소경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고문 장면 나올 때는 제 겨드랑이가 다 아팠다는..)테러를 진압할 때마다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해요!

소설을 꼭 읽어보세요..ㅠㅠ



아 이 소설이 맘에 드는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그건 바로 주체적인 여성 인물들입니다!!

핵심 인물로 나오는 여성은 이 필의 시종, 단기와 장소경과 인연이 있는(러부는 아직 모름ㅎ)문염이라는 낭자입니다.




단기는 과거 파키스탄 쪽에 있었던 소발률이라는 부족 국가 출신의 혼혈인데요. 어려서부터 이 필 집안의 하녀로 자랐지만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이필의 총애를 받는 여성입니다. 단기는 빛나는 지성으로 이 필을 돕고 나중에는 장소경과 함께 하면서 장소경이 위기에 처했을 때 멋지게 도와주기도 하는!(이 장면은 꼭 소설로 보세요! 단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플랜B를 쓰는 게 진짜 멋있★) 주체적인 여성이에요. 불같고 거침없는 장소경과 생각이 깊고 냉철한 단기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나오는 게 정말 좋더라고요. 과거부터 무역이 발달하고 다른 나라와 교류가 자유로웠던 중국답게(국사 시간에 배운 게 다지만^^) 페르시아 왕자도 나오고.. 한국의 드라마나 조선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여러 인종이 나와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마음가짐이 외모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저 거칠고 천박한 호색한으로밖에 안보입니다. 공자의 앞날이 걸린 일인데, 왜 그 사형수에게 도박을 걸었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됩니다."-단기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장안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문기방'의 주인, 문염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문염이 붓을 집어던지고 머리로 조파연을 들이받았다. 조파연이 창고 쪽을 보며 잠시 상황을 살피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우물 정자는 텅 비어 있었다. 문염이 사라졌다."


문염은 장소경에게 은혜를 한 번 입은 적이 있어서 그가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일매일 그를 위해 기도를 했던 인물입니다. 장소경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향수 배달을 갔다가 난데없는 사건에 휘말려 목숨이 위태로워지기도 하지요! 장소경은 문염을 구하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내는데요! 이건 비밀이에요★ 소설로 확인 >▽< 하기


이렇게 개성 있는 네 명의 인물 외에도 장군 '최기'(아 진짜 이 사람 성격은 진짜 입체적이어서 마지막에는 반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번뜩이는 지혜로 대활약을 하는 장소경의 친구, 서빈(서빈 너 괜찮은거지?)이 필의 스승이자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하지장 어르신, 페르시아 왕자(이긴 왕자인데...) 이사 집사, 가난하지만 똑똑한 선비 잠삼(나 얘 좋아..♥ 덕후 양성할 것 같아요) 등등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서 읽는 재미 역시 쏴라 있답니다~!! 마보융이라는 작가는 사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책 소개를 보니까 중국 역사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정점! 문학의 귀재! 라고 불리는 인물이래요. 이름값!!! 제대로 하는 것 같아요!!! 중국에서는 드라마로도 만들고 있다네요!! 중국판 미드 24시? 라고도 불린다는데 혹시 보신 분!!?? +▽+ 구글링해보니까 중국에 조금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소설이랑 드라마를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놀랐어요. 오오 내가 읽은 거 엄청 유명한 소설이었구나!!



시간이 많이 남는데 머리를 싹 비우고 싶으신 분! 

심장 쫄깃하고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고 싶으신 분!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핀 시리즈가 좋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핀 시리즈 중에 가장 재밌었다. ★★★★☆

이기호 작가님의 장점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소설도 작가님이 실제 사시는 나주를 배경으로 하는 줄 알았으나! 검색해보니 목양면이라는 지명은 나주시에 없는 것으로 나온다. 진짜 있을 것 같은 마을, 진짜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나와서 목양 교회에서 발생한 의문의 방화 사건에 대해 인터뷰 하는 과정이 서술 되어 있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한 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 것'이다. 이 소설에서 진실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누군가는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싸우는 소리를, 떠도는 소문 등을 사실인 양 떠드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최요한 목사도 끝내 진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최근덕 집사가 진실을 말한 사람도 아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자기가 말하는 거짓을 실제로 믿고 사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마이크를 들이대면 한 마디 씩, 아니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말을 쉽게 한다는 건, 쉽게 그 사람의 사정을 추측하는 것과 같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게 짜증이 났다기보다 슬프고 비참했다. 그 이유는 여기서 밝히고 싶지 않다. 그냥 뉴스만 보면 답답하다. 그 악의 섞인 댓글들이, 자극적인 헤드라인들이, 너무 아프고 상처다. 작가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지는 모르지만 나에겐 이 소설이 인간이 토해내는 악의적인 말로 읽혔다. 


인터뷰 형식을 읽을 때는 살짝 긴장이 된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이 의외의 인물들의 입을 통해 불쑥 튀어나오거나 결말이 약간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모르는 염려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느 쪽일까? (궁금하신 분은 꼭 소설로 확인해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