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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시절
강소영 지음 / 담다 / 2025년 6월
평점 :

#도서협찬 #사랑이라는시절
분명 [사랑이라는 시절]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에서 부터 시작되었으리라.
하지만 왜 모든 이야기들이 ‘나’로 시작되어 ‘남편’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초점이 맞춰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해답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갑천 씨는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두통약 한 두 알로 참아왔다. ... 갑천 씨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p.59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계속 두통으로 시달리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잠을 잘 못 자서이겠지 하며 버틴 것이 한 주, 두 주. 더 이상 버티기 힘들면 두통약과 진통제로 참아왔다. 그렇게 갑자기 걸음이 부자연스러웠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은 길에서 쓰러졌다. 다행인 것은 빠른 발견이었다. 더 늦게 발견되었거나, 증상이 더디어 계속 약으로 버텼다면 나도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섭고 아찔하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그때만 해도 초등학생 딸과 유치원생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기 심장이 안 뛴대.”』 p.91
우리 부부는 20대에 결혼을 하였다. 내 나이 23살. 참 꽃다운 나이였다. 그리고 결혼 후 첫 아이를 6년 만에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그리 건강하지 않아서 아이를 갖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했었다. 그래도 노력해보자 했고, 안 되면 입양까지도 생각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감사하게도 6년 째 되는 날 가장 큰 선물이 나에게도 찾아 왔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와 나의 건강에는 언제나 문제가 많았고, 그때마다 나에게는 남편과 하나뿐인 엄마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재혼가정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서 새아버지가 생겼다. 나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엄마가 소중했고, 엄마의 삶이 우선이었으며, 엄마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했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재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당연히 ‘괜찮다’고가 아니라 ‘엄마가 행복하면’의 전재조건이 따랐다. 그거면 되는 거였다. 지금도 그렇고.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나는 가락국수랑 순대. 떡볶이도 먹고 싶어.”
“나는 어묵도 먹고 싶어. 국 말고 꼬치에 낀 모양 그래도.”
“그래, 다 시키자. 다 먹고 더 먹고 싶으면 또 사 줄게.”』 p.48
[다 먹고 더 먹고 싶으면 또 사줄게] 이 말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행복이었을까.
갑천씨와의 추억 하나하나가 어른이 되어가는 지금은 무한의 힘이 되고, 삶을 지탱해주는 뿌리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하늘의 계신 갑천씨도 그런 당신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으리라. 그리고 말하리라. ‘사랑한다고.’
『“엄마, 우리 여행 간다면 어디 가고 싶어?” ... 어느 계절이라도 좋을 거다. ...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p.158~159
나도 이제 둘째가 조금 더 크면 엄마랑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가끔은 아이들이 나에게 묻는다. “엄마도 엄마가 있지요? 그게 할머니지요?” 이런 멍청한 질문이 또 어디 있을까 만은. 너희들도 나에게 엄마가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기하겠지. 내가 매일 전화로, “엄마!! 엄마!!”하는 모습을 보니까 말이다. 자신들이 나에게 하듯이. 그렇게 나도 우리 엄마한테는 한없이 어린 아이가 되는데 말이다.
내 어릴 적 꿈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 같은 그런 엄마’.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고, 기대하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