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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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희 작가가 물건을 사고 버리고, 소유하고 소비하는 경험 속에서 느끼는 깊은 사유에 대해 진지하고 유쾌하게 써놓은 에세이.

 

사는 마음이라는 제목과 반려 물건이라는 키워드를 보았을 때는 그저 가벼운 소재의 글이 담겨 있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물건에 담겨 있는 추억을 이야기하는 에세이가 아니라, 그 물건의 존재와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작가만의 진중한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에세이라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내가 여성이라는 것과 물건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세상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읽으면서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 사회에서 이 물건의 의미를 고찰해나가는 시선이 좋았다. 특히, 엄마들이 딸에게 물려주는 찻잔에 담긴 그 시절 엄마들에게 허용된 소비 영역에 대한 이야기(p40), 집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기혼 여성에게 집이 아닌 작업실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이야기(p88), 욕실 시공을 맡기면서 생긴 수많은 종이 상자들에서 보이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p109) 등등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사적인 추억에 그치는 것이 아닌, 더 나아가 독자에게도 물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첫 물건이 아버지 고() 이윤기 선생(번역가이자 소설가)과의 기억이 담긴 책장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버지의 맞춤 책장이자 유산을 처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작가는 아버지의 책장을 단순히 버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에게 원하는 책장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과정’(p21)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물건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날이 작별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나라는 사람’(p21)이라며 물건을 사고 버리며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목소리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우리도 이 책을 읽으며 소유하고 소비하는 물건을 살펴보고, 나와 세상에 대한 관계를 되짚어보면서, 반려 물건을 간직하고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인사는 손을 뻗어 컵을 잡거나 허리를 굽혀 잡초를 뽑는 등의 동작과는 달리 그 자체로 유용한 것이 아니다. 인위적인 의미가 부여된 동작이다. 우리가 인사라는 동작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인사는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물건에 건네는 인사에, 과거에 대한 추억에, 예의를 차리기 위함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물건과 작별한 다음 거기서 나아갈 힘을 얻기로 한다. 물건을 의인화하여 지나친 연민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고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으면서 살기로 한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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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일 파티 노란상상 그림책 96
대니얼 그레이 바넷 지음, 김지은 옮김 / 노란상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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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평범한 앨버트의 생일날, 제트 할머니와 보내는 평범하지만 완벽한 생일 파티.

 

아주 평범한 날, 아주아주 평범한 마을에 사는 앨버트의 아주아주아주 평범한 생일. 엄마와 아빠의 반대에 이번 생일 역시 평범한 하루가 되려던 그때, 오래된 사진첩에서 보았던 앨버트의 할머니 제트(z) 할머니가 찾아온다. 어딜 가든 신이 날 테니 그저 평범하게 생일을 축하하러 가자고. 그렇게 앨버트는 제트 할머니와 신비로운 생일 모험을 떠나게 된다. 긴 모험 끝에 집으로 돌아온 앨버트에게 더 이상 생일이든, 무슨 날이든 너무 평범하다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날은 생기지 않았다.

 

사실 이 생일 파티는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앨버트가 원하는 생일은 평범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닌 그저 평소와 달랐으면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무언가를 하는 날. 그래서 안 된다고 말하는 엄마와 아빠의 단호함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 역시 너무 현실적이라서(ㅠㅠ) 그렇게 엄마와 아빠의 통제에서 벗어나 앨버트의 상상력이 더해져 제트 할머니와 신나게 생일을 보내는 모습을 따라 읽다 보면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앨버트의 차림새였다.

단정하게 세팅한 머리와 갖춰 입은 정장이 눈에 띄었는데, 처음에는 생일이라 멋지게 차려입었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와 생일을 보내면서 점점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런 앨버트의 모습은 엄마와 아빠에게 맞춰진 모습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에 삐죽삐죽 솟아오른 머리와 잔뜩 물들고 망가진 옷차림으로 러그 위에 편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그 어떤 모습보다 앨버트다워서.

 

어른의 입맛에 맞춘 완벽해 보이는 생일 파티가 아닌, 아이의 입맛에 딱 맞는 완벽한 생일 파티를 보여주는 책이지 않을까? 유쾌한 할머니와 함께 근사하게 생일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완벽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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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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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의 탄생으로 시작해 오로라의 수도 캐나다 옐로나이프를 거쳐 오로라를 남기는 카메라까지, 천체사진가가 오로라에 대한 A부터 Z까지 알차게 기록해놓은 오로라 안내서.

 

<1장 오로라의 모든 것>에서는 오로지 오로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로라의 유래로 시작해 오로라가 빛나는 원리, 오로라의 색깔과 모양, 등급 등등 오로라의 사진과 함께 오로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장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에서는 오로라를 볼 확률이 가장 높은 지역인 캐나다 옐로나이프를 소개한다. 항공, 숙박부터 시작해 관광 프로그램, 관측 프로그램 등등 오로라 여행에 집중하여 이야기한다.

<3장 오로라를 사진으로 남겨보자>에서는 오로라를 촬영하는 데에 필요한 준비물과 카메라를 설정하는 법, 촬영하는 꿀팁, 그리고 카메라를 관리하는 방법까지 천체사진가로서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생각보다 오로라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놀랐다. 232쪽이라는 분량 안에 오로라 사진이 빼곡하게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오로라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부터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대한 소개, 오로라를 찍는 카메라까지 오로라 여행을 곧바로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는 책이었다. 이 책 하나로 여행 준비는 완벽하게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한 마디로, 이 책은 과학책+여행 안내서+사진집 전부 가지고 있었다(!)


오로라와 오로라 여행과 오로라 촬영에 대한 정보로 머리를 채우고,

다채로운 오로라 사진으로 마음을 채우는, 국내 유일 오로라 안내서라고 자신한다!



오로라의 형광빛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면서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는데 그 빛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하얀 눈으로 덮인 대지도 그 빛에 공명하여 온 세상이 같이 빛난다. 그 신비로운 빛 가운데에 서 있으면 동화 속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된다. 태양에서 날아온 우주의 입자들이 대기권과 충돌하며 퍼져나가는 형형색색의 빛들의 떨림을 보노라면 가슴도 덩달아 떨린다. 밤하늘에 펼쳐진 여신의 드레스 자락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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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마귀 - 2023 화이트 레이븐스 선정작, 2023 ARKO 문학나눔 노란상상 그림책 95
미우 지음 / 노란상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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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간 날개를 다친 까마귀의 고독한 여정, 그리고 힘찬 날갯짓.

 

날개를 다친 까마귀는 깊고 깊은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면서 이것저것 풀을 주워 모아 온몸을 꼭꼭 가린다. 어느 누구에게도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은 산에서 낮은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그 소리는 까맣고 불길한 까마귀라며 숨겨도 다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래 봐야 너는 너야. 새까만 까마귀.”라며 어두우니 어둠 속으로 틀어박혀 지내라고 말한다. 그렇게 괴로운 밤을 보내고 해가 떠오를 무렵, 어느 행인에게서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는다. 늘 까맣기만 한 게 아니라 하늘빛에 물들어 다채롭게 빛날 수 있다고.

 

사나운 눈을 가진 까마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날카롭게 길게 뻗은 부리만큼 날이 서 있는 눈빛은 모두가 꺼리고 피하는 까마귀의 적대적인 모습처럼 보이지만, 읽을수록 그 모습에서 오히려 고독하고 여린 면모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까마귀의 검은색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인상을 깨지게 만드는 거 같달까. 까마귀라는 존재에 대한 외적으로 느껴지는 거리감이 이 그림책을 읽으면 그저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외면을 넘어서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깨닫게 만든다.

 

깊은 산에서 들려오는 낮은 소리는 그동안 사람들이 가졌던 까마귀에 대한 인상 같기도 하고, 까마귀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아오면서 자존감이 깎여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까마귀를 보면서, 산에서 몸을 숨기려고 애쓰는 까마귀가 마치 이불 속에 혹은 방으로 숨어드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타인에게 외면을 지적받아 상처를 받은 우리의 모습을 까마귀에 투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제목은 단순하지만 참 잘 지었다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까마귀>. 더 이상 너는 까마귀야.”라는 부정적인 목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는 게 아닌, “나는 까마귀야.”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받아들이며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리고 맨 뒤의 면지에 가닿는 순간 그림책은 본문뿐만 아니라 면지까지 이야기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까맣기만 한 게 아니라 하늘빛에 물들어 다채롭게 빛날 수 있다는 말처럼, 까만 까마귀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색을 가지게 된 까마귀의 모습을 맨 뒤의 무지갯빛 면지로 표현한 것만 같아서 좋았다.

 

그렇게 맨 뒤의 면지가 눈앞을 가득 채우는 순간, 더 이상 새까만 까마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까맣기만 한 게 아니라 얼마든지 다채롭게 빛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금빛, 자줏빛, 비췻빛 까마귀…… 그리고 새까만 까마귀. 그 모두가 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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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도어 프라이즈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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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2달러로 DNA 속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 수 있는 기계 ‘DNA믹스를 둘러싼 디어필드라는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이야기.

 

더글러스셰릴린부부를 중심으로, 시장 리슈의 아들 제이컵과 죽은 쌍둥이 형 토비’, 토비의 전 여자친구 트리나와 그녀의 삼촌 피트신부, 더글러스의 동창이자 셰릴린을 짝사랑하는 사진사 브루스 뉴먼까지. 이들의 삶 속에서 사랑과 고민과 갈등, 위기가 어떻게 엮이면서 흘러가는지 담겨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임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식으로 교차 되어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마을의 큰 축제인 200주년 기념제를 앞두고 있는 상황과 DNA믹스 기계의 존재, 마을 주민들 개개인의 사정을 똘똘 뭉친 이 소설은 OTT 드라마로 영상화되었을 때 더욱 극대화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질문>으로 시작해 <>으로 끝나는 구성도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DNA믹스라는 기계를 이용해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인생의 가능성을 알게 되어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나와 당신, 우리를 돌아보게 되는 것까지. ‘미스터리 휴먼 판타지인 소설이 미스터리 휴먼 드라마가 되는 느낌이랄까(!)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말>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제목과 더불어 소제목들이 전부 전설적인 포크 가수 존 프린의 노래 제목과 가사에서 따왔다는 것이었다. 읽으면서 소제목들이 마치 노래 가사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는데, 실제로 존 프린의 가사라니! 드라마화가 되었을 때 존 프린의 노래가 이야기에 어떻게 등장해서 녹아들지 궁금해졌다.

 

운명을 읽어주는 신비로운 기계가 등장하기에, 자칫 빅 도어 프라이즈의 등장인물들이 운명과 선택,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으로 측정된새로운 삶이라는 엄청난 약속을 마주한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자만심을 품기 쉽고, 현실에서 등 돌리기도 그만큼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측면들을 결코 소홀히 다루지 않는 작가 M. O. 월시는 등장인물들이 내면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한편으로 지금의 사랑스러운 삶을 지켜내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오래 묵은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을 되찾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가 바라보는 삶은 복권이나 제비뽑기를 통해 운 좋게 얻은 큰 선물이라는 의미의 제목 빅 도어 프라이즈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pp. 510-511,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준다는 기계 ‘DNA 믹스가 있는 디어필드의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삶을 그리면서 2023년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책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

#작가정신 #작가정신서포터즈 #작정단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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