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고양이 호섭 씨의 일일 - 즐겁고, 살짝 애잔한 성장 포토 에세이
김주영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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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섭아, 만나서 반가웠어!

김주영 글그림, 말하는 고양이 호섭 씨의 일일(미래의창)

 

하루 종일 폰을 붙잡고 사는 나인데 냥이 유명 인사인 말하는 고양이 호섭 씨를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솔직히 <미래의창> 출판사에서 출간된 호섭 씨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니었다면 호섭 씨를 계속 몰랐거나 보더라도 수많은 냥이 중 한 마리로 스치듯 지나갔을 것이다. 이렇게 호섭 씨가 누군지 제대로 알 수 있어서, 호섭 씨와 집사 가족의 꾸밈없어서 꼬순내가 진동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호섭 씨와 집사 가족의 일상이 나의 일상과 다르지 않아서 더 반가웠다.

집사가 되면 자연스럽게 길 가다가 보이는 고양이를 보고 걸음을 멈춰서 바라보거나 미소를 짓게 된다. 강아지들과 살다가 냥이 집사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내 삶에 냥이들이 찾아오고, 떠났다. 그래서 <말하는 고양이 호섭 씨의 일일>을 읽을 때 나에게 온기를 준 아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호섭 씨의 이야기가 마냥 호섭 씨와 집사 가족이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은 것이 좋았다. 호섭 씨와 집사 가족은 가족이지만 종이 다르다. 동물과 사람이 한 공간에 살면서 어떻게 웃을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나와 같은 종과도 싸우는데 말이다. 그러니 두 종의 특별한 동거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호섭 씨는 집사 가족에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 임시 보호를 맡게 되었고, 이름을 붙여주고 호섭 씨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먹고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호섭 씨와 집사 가족은 틈틈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냥이를 키운다는 건 그만큼 책임과 부담은 물론 물질적실질적인 비용을 따지게 되는데, 병원에서 그냥 돌아왔던 날의 솔직한 집사의 이야기는 공감하면서 대단하게 느껴졌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존재를 책임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돈과 시간은 물론 마음이 균형을 이루어 괜찮은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섭 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호섭 씨도 분명 집사 가족의 자신을 향한 찐-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커지는 호섭 씨를 향한 사랑을 커져 지금의 가족 모습을 이루었다. 앞으로 호섭 씨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건 확신한다. 호섭 씨 가족은 먼 훗날 추억을 회상할 때 후회가 아닌 미소를 지어 보일 것이라는 걸. 호섭 씨가 사랑과 보호를 받고 건강하게 자란 것처럼 집사 가족도 호섭 씨로 인해 성장을 한 게 느껴졌다. 그저 호섭 씨를 고양이로만 생각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하며, 모든 것을 공유하는 순간순간들이 참 포근하고 예뻤다. 호섭 씨는 분명 행복할 것이다. 집사 가족도 호섭 씨가 없었던 날들은 생각나지 않을 만큼 호섭 씨와 함께 하는 모든 날 모든 순간이 행복할 것이다. 호섭 씨 행복에 집사 가족 행복이 더해져 만들어진 거대한 행복이 SNS를 타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걸 보면, 이 특별한 동거를 응원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사랑과 행복이 되어주는 관계라면 아무것도 상관없을 것 같다. 세상 곳곳에 수많은 호섭 씨의 행복하고 특별한 동거를 응원한다. 집사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으면 좋겠다. 냥이들은 행복만 해도 되니까.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니까.

호섭 씨의 이야기에 웃음이 나고, 울컥했던 건 나도 집사이기 때문이다. ‘콩알이 집사’! 어릴 때부터 아기 고양이와 특별한 동거를 시작했지만, 늘 이별이 빨리 찾아왔고 이별 상실의 고통을 컸으면 반복될수록 무뎌졌고, 생명과 책임에 두려움이 생겼다. 강아지들과 지내면서 냥이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생각과 달리 현실은 항상 다르게 흐른다. 그렇게 어쩌다 콩알이를 만나게 되었다. 밭에서 혼자 덩그러니 있던 아기 고양이를 보고 동네 아저씨가 엄마한테 연락한 것이다. 엄마는 그 연락이 반갑지 않았지만, 본 적 없는 아기 고양이가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데리고 왔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누군가는 냉정하게 말하겠지만 그때 엄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우리 가족을 바꿔 놓았다. 첫날, 상자에 넣어 놓고 거리를 두고 바라봤다. 막막했다.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만큼 작았고 약했다. 며칠은 우유만 챙겨주고 흘끗, 보기만 했다. 잘해주고 나면 떠날 것 같아서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솔직히 보자마자 콩알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낸 건 몇 주 뒤였다. 금방 우리 곁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살 거라고 밥때가 되면 크게 울었고, 젖병 앞에서 맹수와 다름없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얘는 우리랑 오래 있겠다, 정말 우리 가족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첫 만남 때 떠올린 이름을 아이에게 불러주었다. 자기가 콩알인 줄 알고, 부르며 쳐다보거나 오는 아이가 너무 예쁘다.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정말 잘 지었다. 지금은 콩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아주 크지만, 내 눈엔 여전히 콩알만큼 작고 소중하다. 냥이는 예민하고 도도한 동물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냥이에 대해 둔한 내가 집사가 될 수 있을까 했지만 나름 집사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어렸을 때 늘 내 이불을 나눠 쓰고, 책상 위에 올라와 잠을 청하던 콩알이는 이제 나의 부름이나 스킨십을 도도하게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만 그 모습마저 예쁘다(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게 분명하다). 엄마 말이라면 쪼르르, 와서 큰 몸을 바닥에 철푸덕-, 하고 누여 엄마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정말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 엄마는 콩알이 없이 지냈던 날들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너무 행복하다고, 콩알이에게 고맙다고 여러 번 말한다. 나도 그렇다. 콩알이가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감정, 순간들이 너무 많다. 가끔 콩알이와 이별하는 순간을 떠올리는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이고 두 눈에 눈물이 금방 찬다. 어쩌다 우리 곁에 온 콩알이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콩알이 덕분에 행복한 만큼 콩알이는 행복한지, 냥이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집사 때문에 불편한 건 없는지, 우리 가족으로 지내는 날들이 어떤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 그리고 우리가 콩알이 너를 너무 사랑하고 아낀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우울할 때 아무 말 없이 드러누워 폰하고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팔을 핥거나 내 옆에 앉아 잠을 청하는 너의 모습에 위로받았다고도. 콩알이 눈에는 광활한 우주가 있는데, 그 우주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다. 그 우주에 우리가 보이면 그 감동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매일 행복과 감동을 틈틈이 안겨주는 콩알이가, 콩알이라는 이름으로 낯선 우리와 잘 지내줘서 대단하고, 삶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콩알이라는 아주 특별하고 짙은 사랑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 콩알이와 함께 하면서 다채롭게 물들기 시작한 우리의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절대.

호섭 씨와 집사 가족 덕분에 우리 콩알이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콩알이를 향한 나의 사랑과 늘 사랑스러운 콩알이를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세상 곳곳에 있을 수많은 냥이와 집사의 행복과 건강을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꼭 오늘 느끼고 기록했으면 좋겠다. 오늘이라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분명 있으니까. 본가에 막내딸로서 사랑 받고 있을 콩알이가 보고 싶다. 콩알아,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덕분에 엄마 아빠가 많이 웃어. 콩알이가 준 선물 하나하나 다 기억할게. 앞으로 더 행복하자. 사랑해.

 

이 책은 도서 증정 이벤트에 당첨되어 미래의창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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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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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는 모두가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제누의 선택을 박과 같은 마음으로 존중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 어른인 나보다 제누는 더 어른스러웠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제누의 내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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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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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거리가 많은 페인트5년이 지난 2024년에 만나다,

이희영 장편소설, 페인트(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페인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출간되자마자 많은 독자에게 읽히거나 꾸준히 사랑받는 책들을 제목과 작가만 알아두고, 안 읽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그러고 싶다.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오랫동안 이야기 안에 머물 것 같기 때문이다. 페인트도 그런 이유에서 읽기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다. 5년이 지난 202410월에서야 어쩌다 책장을 넘겼고, 제누와 아키, 노아와 박 그리고 최를 만났다. 정말 생각지 못한 만남이었고, 이 만남을 어쩌다 내게 선물해준 남동생에게 고맙다.

페인트국가에서 돌보는 아이들(NC)이 부모를 선택하는 설정으로 묘한 쾌감과 더불어 기시감(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분명 머지않은 미래에 기시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을 선사한다. 부모를 선택하는 걸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던 나에게는 이 설정이 신선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끼게 했다. 한 번도 꺼낸 적 없고 꺼낼 일이 없었던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일을 크게 벌리는 기분이랄까. 나쁘지는 않았다. 답을 찾는 게 두려워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꺼낼 때라고 용기와 더불어 방향을 잡아주는 느낌이라서 따라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발을 들이게 된 NC센터는 수많은 아이가 있었고, 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서 행복한 미래를 보낼 수 있도록 바쁘게 일하고 진심을 다하는 가디들이 있었다. NC가 되었다는 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디들의 보호를 받으며, 부모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는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생각한다. 그중 제누 301은 아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럽다. 어른스럽고 성숙하다는 말이 참 잔인하게 느껴졌다. 가장 아이다워야 할 때 어른스럽다는 건 성숙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반드시 존재하고, 그 이유는 아이들과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제누는 어른스럽고 동시에 아주 늦게 알아버렸으면 하는 어른의 세계를 꿰뚫고 있다. 그런 제누를 바라보는 박과 최는 제누에게 좋은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박은 제누가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예견하고 있었고,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박이 제누를 바라볼 때 대견함을 품은 안타까움이 존재한다. 어른들은 착각하거나 연기한다. 아이들이 속았을 거라고 모를 거라고 넘기지만,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알지만 어른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감추고 싶어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부러 못 본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할 때가 많다. 어쩌면 아이가 어른이고, 어른이 아이일 지도 모른다.

모두 축복받으며 태어나서 사랑받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면 좋겠지만 제누의 말을 빌리자면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언제든지 다칠 수 있는 세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지 못한 아이가 마음에 자리를 잡고, 그 아이를 못 보거나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탓에 상처를 주고받는다. 술만 먹으면 괴물이 되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박을 보면, 자라지 못한 아이가 박의 마음에 자리 잡은 채 박을 괴롭힌다. 그 아이를 토닥여주는 건 박의 몫이다. 박이 이겨내야 할 무게가 상당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를 두고 괴로워하는 박은 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골라 행복한 가족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마음속에 자라지 못한 아이를 충분히 잘 달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용서는 박의 선택이며, 박은 아이들을 위해 쉼 없이 일하는 것으로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한테 당신과는 다르다고,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말하고 있다. 박은 아버지와 다른 선택을 했고, 스스로 미래를 바꿨다. 자신의 몫이라는 걸 알았고, 몫을 처리하고 난 미래가 자신의 것이 되길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박은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제누의 부모가 되기 위해 NC센터를 방문한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특히, 3차 페인트를 하면서 하나가 제누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는 장면. 하나의 엄마는 하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방식이 조금 달랐다(틀렸다고 하고 싶지만,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 테니까. 누군가는 그런 사랑마저 간절할 테니까). 마냥 사랑으로만 볼 수 없던 순간들이 많았다. 사랑하는 딸이었지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들을 대신 이뤄줄 존재로 하나를 여겼고, 하나는 엄마의 엇나간 사랑에 수긍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딸에게 배신감을 느꼈겠지만 하나는 전혀 미안해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삶을 아파했다(딸이 해줄 수 있는, 딸이라서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하나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할 자연스러운 변화에서 부모 또한 자녀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160) 하나의 깨달음에 물컹한 것이 목구멍을 채웠다. 책장을 덮고 나서 하나가 덤덤하게 꺼낸 엄마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다. 하나가 자꾸 내 마음을 헤집어 놓은 이유를 알았다. 하나와 상황은 다르지만, 자꾸 나와 겹쳐 보였다. 하나가 마음 가장 아래 가라앉아 있던 수많은 질문 중 몇 개의 답을 찾아준 것 같다.

페인트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독자들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을 만나 수많은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건 특별하고 소중한 일이다. 부모를 선택하는 시대, 아이에게 선택받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진짜 속내, 어린 날 아버지의 학대를 받은 자신과 닮은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히 따져가며 일하는-아이들에게 진심인-어른, 마음속에 자라지 못한 아이를 마주해야 하는 순간, 알 수 없어서 다행인 미래를 위해 직접 색을 고르고 붓을 든 아이 등 페인트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세하게 다른 색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머지않아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마냥 가정만 할 수 없었다. 일어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안 일어날 거라는 보장 또한 없기에, 제누와 아키 그리고 노아와 같은 아이들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아이들에게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건 신선하면서도 괜찮은 것 같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을 하도록 만든 어른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안 보낼 수가 없다. 축복과 사랑, 보호를 받으며 자라야 할 아이가 버려진 것도 잔인한데, 부모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조차 잔인함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부모가 자식을 선택할 수 없듯이 자식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부모와 자녀는 서로에게 부모와 자녀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요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반복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가깝지만 가장 멀고, 풀기 어려운 매듭으로 지어진 걸지도 모른다.

NC센터를 떠나 자신이 선택한 부모와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아이들이 부디 NC센터로 돌아오는 일이 없기를, 서로 좋은 면을 보고, 보여주기 위해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천천히, 서로에게 진짜 가족이 되어주길 바란다. 마음속에 자라지 못한 아이를 품은 우리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길, 아이를 혼자 두지 않길, 다 보이는 검은 속내보다 솔직하게 진심을 털어놓고 그 진심이 온기를 품은 채 가닿길 간절히 바란다.

 

■ 『페인트가 이희영 작가님과 첫 만남이다. 출간되고 5년 후인 2024년에 만난 페인트를 만난 건 특별하다. 아픈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나의 마음속에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고, 알려줬으니까. 그 아이와의 대화는 당장 어려울 것 같지만 언젠가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거라는 걸 안다. 작가님 말을 빌리자면, 유년 시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듣고 싶은 말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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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늦었네 스콜라 창작 그림책 80
신순재 지음, 염혜원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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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늦었더니,

신순재 글 염혜원 그림, 한발 늦었네(위즈덤하우스)

 

속도라는 단어를 봄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 안에 등장하는 아이와 고양이, , 나비 그리고 다양한 색이 각자 속도대로 말하고 걷고 바라보고, 흐르고 있다. 아주 잠깐, 봄이가 되고 싶었다. 풀린 신발 끈을 묶는 동안 먼저 놀러 가버린 친구들을 뒤따라가는 길이 고양이, , 나비 덕분에 외롭지 않았으니까. 한발 늦었지만 봄이는 한발 앞서 갈 때 볼 수 없던 것을 보고 듣고, 느꼈을 테니까.

봄이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전부터 봄이였던 건지도 모른다. 해맑은 얼굴을 한 봄이가 아닌 신발 끈을 묶고 뒤늦게 뛰다가 넘어진 봄이에서 멈춘 게 이다. 봄이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한발 두발 세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봄이는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봄을 만난다. 봄이와 달리, 나는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가야 한다는 건 알지만 몸이,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한 적 없지만 나는 늘 무언가 쫓기고 있다. 쫓기는 느낌이 들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결과물이 생긴다면 쫓긴다는 느낌의 순기능을 이용할 테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저 쫓기고만 있을 뿐이다. 나만 제자리걸음이고, 모두 멀리 가서 보이지 않는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다. 애초에 누군가를 따라잡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각자 속도가 다른데, 어떻게 쫓을 것이며 따라잡을 것인가. 어른이 되니 쉽게 휘둘리고 쫓긴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마음이 모나진다. 꼭 정해진 속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한다. 다들 각자 속도가 있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각자의 속도를 인정할 만큼 여유가 없다(인정은 무슨. 이해도 전혀 하지 않는다). 빠르고 앞지르는 것에 쉽게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속도 대신 누가 정했다고 정확히 집을 수 없지만 불특정 다수가 따르는 속도를 학습하고, 그것이 제 속도라고 믿는다. 자기 속도를 찾기 전부터 학습된 속도는 수많은 속도 앞에서 까막눈이 되길 강요한 채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 잃어버린 수많은 속도는 어디로 갔을까? 설령 그 속도를 찾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각자 몫이겠지만 아무 쉽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에 길들여진다는 건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도 내 속도를 찾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으니 속도를 알 수 없다. 과거에는 빨랐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

한발 늦으면 어떤가, 하고 싶지만 스스로 거부한다. 이미 한발만 늦은 게 아닐 텐데, 여전히 늦은 상태일 텐데 뭐가 무서워서 마음에 바람이 통하지 않게 잠궜는지 모르겠다. 속도를 잃어버린 건 분명하고, 한발보다 훨씬 많은 걸음을 늦은 것도 확실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고, 이미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그걸 뒤늦게 알아차릴 게 뻔하다.

계속 걷는 것. 그것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대신 내 시간을 걸어줄 사람이 없으니. 걷다 보면 내가 어느 정도 걸어야 쉬었다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제자리걸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잃어버린 속도를 찾기 위해서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내 발꿈치를 시작으로 속도가 따라붙지 않을까. 봄이처럼 친구들을 만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예쁜 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 한발 늦은 김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천천히 감각으로 담고, 그것을 에너지로 만들어 한발 내딛을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도록 한발 늦으면 어때?’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한발 늦으면 어때?, 하고 입으로 소리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말이 주는 힘은 거대하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그럴 듯한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발 늦으면 어때?, 뒤로 붙을 문장은 이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문장이 끊기지 않고, 매일 다른 문장이 물음표 뒤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길.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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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초단편 그림소설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고정순 그림, 홍한별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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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무엇인지 이제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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