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이반지하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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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공간에 침투하다.

이반지하,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창비)

 


각종 매체를 넘나드는 현대미술가이자 퀴어로서 분투하는 글쓰기를 선보이며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한 작가 이반지하의 세 번째 단독 저서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라는 문장을 해체해서 보고 또 봤다. 책 소개나 작가 소개를 보면 읽고 넘겼는데, 이반지하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특유의 유머와 통찰이 담긴 퍼포먼스, 끊임없이 정상사회와 대결하는 예술 행동으로 행보마다 주목을 모으는 그가 세 번째 단독 저서에서 공간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나쁜 장애인은 지하철을, 성소수자 청소년은 학교를, 평범한 시민조차 공공도서관을 박탈당하는 시대특유의 유머와 통찰을 통해 보여준다. 빈곤의 공간공간의 빈곤이 만연한 사회에서 그가 어떻게 자신만의 공간을 창출해 왔을지, 그의 침투를 따라가며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세상의 모든 공간 상실자에게 전하는, 우리가 박탈당한 공간을 되찾게 해줄 이반지하의 거침없고 솔직한 침투를 맛보면-장혜영 정치인의 말을 빌려-어디에도 가기 싫은 날, 내가 미운 날, 침대에 누워 손에 잡히는 페이지부터 다시 읽고 싶은 책을 만난 행운을 가질 수 있다.

나에게 공간은 가시적이고 실재하는 사각형이라는 이미지이다. 우리는 언제나 공간에 속해 있고,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존재한다. 이반지하는 아무리 벗어나고 뛰쳐나와도 우리가 여전히 공간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그곳에서 배제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숨거나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던 경험을 통해 공간이 주는 빈곤의 무게를 느꼈다. 또한 공간의 의미가 확장됐다. 공간을 그저 방 한 칸으로 간단하게 생각한 나에게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는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공간을 이동하면서 마주하는 이반지하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자질구레함을 표현한 꾸밈없는 문장들은 웃음을 자아내면서 사유와 통찰의 과정에 나를 던져 놓았다. 내가 정말 말로만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세상의 변화를 바란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는 부끄러움을 몰고 왔다. 그가 보여준 다양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많은 일이 어떤 이에게는 공간으로부터 끊임없이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하며,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서 힘들게 이뤄냈던 것이 사라질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쉽게 파괴되었다. 누군가는 속해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관망하고 있는 사회에서 이반지하는 여러 입장이 되어 누군가는 끊임없이 내야 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의 편협한 시선과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앞뒤가 꽉, 막힌 생각에 변화를 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가 나에게는 이반지하에게 있어서 신해철님과의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반지하의 침투를 뒤따르면서 웃고 분노하고, 한숨 쉬면서 속도를 올렸다. 처음에는 뒤따랐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그와 걸음을 맞추면서 그와 비슷한 마음을 갖고, 닮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분명 긍정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반지하가 세상의 모든 공간 상실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리가 공간을 박탈당했다는 것을 알아주고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박탈당한 것도 모른 채-원래 없었다고 생각하는-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에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는 박탈당한 우리의 공간이 무엇인지 그리고 박탈당한 공간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직접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고 나서 바늘과 실처럼 공간과 소속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이 힘들고, 소속되지 못하는 사람이다. 소속되기를 원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공간이 존재하는 한, 소속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속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이 없다. 가끔 사람들 안에 섞여 있다가 갑자기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소속되어 있지만 전혀 소속되지 않은 불편하고 붕- 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 사람일까?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할까?’ 등 그 누구도-나조차도-답해줄 수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다가 마지막에는 나의 떨어지는 사회성을 탓한다. 공간이 나를 밀어내는 것인지, 내가 공간을 밀어내는 건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확실한 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도망쳐도 공간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어쩌면 공간이 있기에 가 실재하고,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년 넘게 살면서 분명 박탈당한 공간과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있었을 것이다. 한 번도 공간이라는 개념을 사각형에서 벗어나 확장하지 않은 나의 공간 개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균열을 시작으로 박탈당한 공간을 되찾는 여정을 떠나보고 싶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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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진심인 편 앤드 산문집 시리즈
이은규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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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진심인 우리를 위해서,

이은규 산문집, 미래에 진심인 편(넥서스 앤드)

 

열한 편의 시를 만나고, 시를 깊게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은규 시인이 시에 대해 깊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시보다 더 시처럼 느껴졌다. 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달과 같은 존재라서 완벽하게 읽어내거나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창과 재학 시절, 읽고 배우고 써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만나게 된 이은규 시인의 산문집을 통해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은규 시인의 나긋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문장)를 들으니 끝도 없이, 거침없이 확장될 수 있는 시를 더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열한 편의 시를 보면 시간성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20대 중반에 열한 편의 시와 이은규 시인의 산문집을 만난 순간에 행운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한다.

삶을 아우르는 듯한 느낌을 준 책은 오랜만이다. 삶이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영역을 감히 누가 아우를 수 있을까. 세상을 창조한 신마저 다 아우르지 못해 세상에서 갖은 소음이 발생하지 않나. 가끔은 세상을 창조한 신이 원망스럽다. 다 알면서 보고만 있는 신의 자격을 따져 묻기도 하고, 내 원망이 신에게 닿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 미치면 세상에 태어난 나를 원망하기도 한다. 신이 세상을 만들면서 변수를 둔 건 시간이다. 뭐든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는. 신이 잔인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매일 소음만 들린다면 관망하는 신 자신도 괴로울 테니까. 시간을 크게 과거-현재-미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우리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살아있는 한 세 가지의 시간 속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 멈출 수도, 되감을 수도 빠르게 감을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적응한 채 살아가야 한다. 신조차 시간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보면 신보다 무서운 게 시간이 아닐까. 누구한테나 공평한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라는 자명한 사실을 자주 잊거나, 그것만 알 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시간에게 참 무심한 것 같다.

이 산문집을 읽는 동안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마치 나의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삶이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문제에 대한 아주 간단한 요점만 훑어본 기분이랄까. 삶을, 삶을 살아갈 나를 엿본 느낌이다. 이은규 시인과 같이 읽은 시와 들려준 이야기에는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치거나 혼자서 한두 번은-나는 자주 그렇다-심연에 빠진 사람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단어와 상황, 감정 등이 꾸미지 않는 이은규 시인만의 목소리로 잘 담겨 있다. 위로를 받았다. 공감했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감정 등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데 무심하게 툭툭,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심장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놓는 느낌이 들었다. 안도한 것이다. ‘나의 삶을 스스로 갱신할 수 있다는 믿음-나의 삶은 나밖에 갱신할 수 없다.-과 조금 더 나은 내일이 가능할 거라는 믿음’, 이 두 가지의 믿음을 갖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하루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잠들기 직전까지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내일의 불안으로 겨우 눈을 붙이고, 순식간에 날이 밝아오면 하루를 상쾌하게 열기보다 짙은 한숨으로 시작하는 내가 안타까웠다. 안타까워만 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시인은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동화에 등장하는 불쌍한 역할을 자처한 나를 깨닫자 부끄러웠다. 공기처럼 익숙한 시간이라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늘 잊는다. 시간에 갇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나를 가두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몸소 변화를 알려주고 있었다. 냉정한 시간의 이미지가 제법 다정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아니 세상 모두에게 미래에 진심인 편을 건네주면서 조금 더 나은 내일이 가능할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솔직히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미래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꿈꾸고 바라던 미래를 이루기 위해 어제오늘을 묵묵히, 걷는 것이다. 우리가 왜 사는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때 빛을 발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이미 무겁고 추상적인 삶에 뭘 자꾸 그럴싸한 의미를 만들어 끼워 넣으려는 건지. 굳이 의미를 만들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가끔은 잘 흐르고 있는지 확인해야겠지만-미래를 준비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미래에 진심인 우리는 더 나은 내일에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며, 그렇게 꿈꾸던 미래에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미래에 진심인 편이다!

 

이 책은 넥서스 앤드 편집짱J님이 열어준 ‘20248월 앤드림 남은 여름 Event’에 당첨되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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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진심인 편 앤드 산문집 시리즈
이은규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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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흐름을 느끼면서 읽기 좋을 산문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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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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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게 정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전지영 소설집, 타운 하우스(창비)

 

여덟 편이 실려 있는 이 소설집이 타운 하우스로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건 이 소설집에 잘 어울린 선택이다. 말의 눈을 시작으로 남은 아이까지 여덟 편 모두 읽는 동안 달달한 고구마를 한입에 우겨 넣고 시원하고 톡 쏘는 사이다를 마시는 느낌보다 뭔가 찝찝하고 약간의 불쾌감이 들었다. 읽고 나서도 소설집을 다 읽기보다 읽다가 중간에 멈춘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소설을 잘못 읽었다는 느낌이 들 때 전기화 선생님의 해설을 읽고 내가 느낀 부분들이 진짜였구나.’라고 깨달았다. 오랜만에 읽고 나서 찝찝함과 불쾌감을 느꼈던 책이라서 의미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불쾌감은 긍정의 불쾌감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여덟 편의 소설은 닮은 듯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게 답이 아니며, 눈에 보이는 대로 봐야 한다.’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게 답이 아닌데, 눈에 보이는 대로 봐야 한다는 말이 모순적이고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소설들을 읽고 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소리 소문 없이이다.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청한동 고 박사 부부 집 1층에서 자취하게 된 나, 말이 자취지만 실제 고 박사 부부 집에 기생하는 것이다. 고 박사 부부 집은 실제 2, 3층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주 공간이고, ‘가 머무는 1층은 유령 같은 공간-반지하보다 더 어둡고 습하지 않을까-이다. 1층에 유령처럼 살던 는 끔찍한 굴욕감-굴욕감 앞에 끔찍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처음 봤다. ‘굴욕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끔찍한데 말이다.-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성 박사가 자신을 들어 담장 너머로 던져버린 것 같은. 성 박사가 손님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여니 1층에는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는 자신을 파티에 초대한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굴욕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낄 만한 순간이 아닐까.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파티의 분위기를 알고 느끼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죽여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잔인하고 모욕적인 부탁 아닌 부탁이 아닌가. 하지만 그 말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가 되어 좌절하고 말았다. 이불속에서 파티의 모든 순간을 느껴야 했을 의 초라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외면했다.

죄책감과 수치심, 불안함과 두려움에 빠진 인물들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소설 같다. 불안에 빠진 인물들은 불안이 소거되지 않은 채 도시, 즉 본인의 생활 공간을 배회하며 불안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자신을 불쾌 혹은 불편하게 만드는 불안한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게 아이러니하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본인들을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편안한 상태를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솔직히 불안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우리도 매일 불안을 안은 채 살면서 불안을 잊고 살아갈 때가 있으니 말이다.

타운 하우스오늘날 가장 첨예한 이슈인 계급적 불안과 그것이 어떻게 공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지영 작가는 우리 시대 마크 로스코라고 했다. 계급적 불안은 오랜 과거부터 시작하여 현재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첨예한 이슈로 주목될 것이다.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계급적 불안을 보여준 작품들은 수도 없이 넘쳐났다. 독자들은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계급적 불안을 이해하고,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전지영 작가는 계급적 불안이 어떻게 공포가 되는지 능란한 필치로 보여준다. 계급적 불안이 공포가 되어 인간을, 삶을 삼켜 버리는 것을 모든 걸 태워버릴 것처럼 무섭게 번지는 불이 아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만큼 약하게, 그리고 서서히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믿으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들춰낸 누군가는 뭔가를 잃거나 사라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들추지 않은 다른 누군가는 갖고 있는 것을 잃지 않는다. 이게 맞을까? 진실 위에 쌓인 악취를 풍기는 거짓이 권력에 의해 진실이 되는 것을 보고있는 게, 그렇게 진실이 된 게 얼마나 많을까. 답을 알고 있는데 까막눈이 되기로 자처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진실에 가까운 사람일까, 거짓에 가까운 사람일까? 나조차도 간단한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본인과 상관없다고 생각한 계급으로부터 나오는 불안과 그것이 어떻게 공포가 되는지 알게 되면 찝찝함과 불쾌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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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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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

사노 요코 지음, 시즈코상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아름드리미디어)

 

세상 모든 모녀가 이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 만나게 된다면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끝내 말 못하고 마음 깊-숙이, 넣어뒀던 엄마한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천천히 꺼내보길 바란다.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때가 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히 그리고 다행히 사노 요코 작가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이 시간을 특별하고도 귀하게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한다. 세상 모든 모녀에게 사노 요코의 이야기가 잘 닿길 바란다.

누군가의 삶을 들을 수 있다는 건 감사하면서도 부담될 수밖에 없다. 모녀 이야기라면 더더욱. 사노 요코의 모녀 이야기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듦과 동시에 ? 내 이야기인 줄.’하고 쓴웃음이 났다. 책장을 넘길수록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긴장이 되었고, 나였다면 전혀 용서할 수 없는 엄마와 어떻게 극적인 화해를 할 수 있었던 건지, 드라마틱한 화해의 과정이 궁금했다. 솔직히 화해가 아니라, 사노 요코가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보니 엄마를 어느 정도 이해했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용서하기에는 사노 요코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으니까(책장을 덮고 알았다. 엄마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라는 걸). 엄마의 학대가 시작되고, 언제 히스테리를 부릴지 몰라 불안에 떨었던 사노 요코의 어린 날은-물을 긷고 얼음이 언 강에서 기저귀를 빠는 등-얼어버린 강보다 더 추웠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때의 사노 요코에게 아무도 묻거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라든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안아주거나 등을 토닥여준다거나.

사노 요코를 향한 엄마의 말과 행동은 사랑이었을까? 다양한 사랑의 유형과 모녀의 유형이 존재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사랑한다면 상대가 덜 아프길 바란다. 사노 요코의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노 요코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다(어째서). 엄마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다. 사노 요코에게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평범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았다. 그런데 딸이 엄마를 향해 죄책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고 지난날 모질게 엄마를 대했던 순간을 후회한다. 읽으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노 요코의 모습에 억울했다. 후회는 할 수 있지만 죄책감까지 느낄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사노 요코의 감정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으나, 마음은 전혀 추측할 수 없으니 여기서 내가 더 말은 하는 건 실례인 것 같다.

사노 요코가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라는 걸 인정했다. 엄마가 싫었지만 사랑했다.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거대한 덩어리에 짓눌린 듯한 딸 사노 요코를 느낄 수 있는 문장들에서 여러 번 멈칫-, 했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고,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싫어하는 관계가 엄마와 딸이라는 걸 끝내 인정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으로 사노 요코가 엄마에 대한 원망을 마음껏-해도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응어리가 사라질 거라는 기대는 안 한다.-하길 바랐다. 읽고 나면 통쾌할 줄 알았다(화해대신 복수를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나쁜 딸 아닌가). 나는 사노 요코도 그러길 바랐지만, 그녀는 엄마를 모질게 대하고 냉정했던 지난날 자신을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살림살이를 잘하고 힘든 조건에서도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는 등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했다. 엄마 나이가 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사노 요코는 시즈코, 엄마를 사랑했다는 것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쓰지 않고, 사랑을 보여줬다. 딸 사노 요코와 같은 딸들이 세상 곳곳에 얼마나 많을지 어림잡아 떠올려 보는데, 마음 아래서부터 물이 차오른다.

엄마를 떠올리면, ’애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빈틈없이 꽉, 채운다. 사랑하면서 미워한다. 딸이 엄마한테 하지 못한 말이 있듯 엄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할 나이가 되어보니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있다. 엄마가 된다면 엄마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살아온 길과 속도, 조건이 모두 다르니까. 달라서 오히려 다행이다. 자신의 엄마를 이렇게밖에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기도 하면서 사노 요코와 같은 수많은 딸이 그녀 덕분에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엄마, 가족에 대해 솔직하게 문장으로 적어낸 사노 요코는 쓰는 동안, 다 쓰고 나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사노 요코는 치매에 걸리고 나서 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국자로 퍼내듯이말하는 엄마와 어렸을 때 바랐을 모녀가 되었다. 엄마는 정신이 온전할 때 절대 하지 않았던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로 사노 요코를 의지하고, 고맙고 미안한 딸이라는 걸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 때 인정하며 딸에게 용서를 구했는지 모른다. 딸은 그런 엄마의 용서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후회, 죄책감, 자책감을 바람에 실어 보내며 한결 편안한 숨을 쉬었을 것이다. 서로의 진심이 닿기까지,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만 돌아온 모녀가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시즈코와 요코는 극적인 화해를 했지만, 화해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모녀는 또 얼마나 많을까. 책장을 덮고 나서 시즈코가 요코를 질투했다는 사실이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고 나니 요코가 겪었던 지난날에 대한 억울함이 아주 조금, 흐려졌다. 시즈코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요코와 보냈던 아주 짧고 달았던 시간은 요코의 아팠던 시간을 완전히 보듬을 수는 없지만, 흘러가는 시간 중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라고 말하며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늘에서 만난 모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사노 요코 덕분에 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엄마에게 쏟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솔직히 엄마를 마주하고, 진지한 이야기할 용기가 없어서 늘 숨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사소한 상처,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모여 빙산을 이룬 마음을 서로에게 숨기지 않고 보이기까지 먼 길을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단한 길을 선택하기에는 쌓인 상처를 서로 바라보는 것은 잔인한 일이니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세상 모든 모녀에게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은 해결책이 되어줄지도 모른다(그러길 바란다). 사노 요코의 모녀 이야기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녀 이야기도 하면서 내 이야기도 하니까.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길벗어린이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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