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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정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전지영 소설집, 『타운 하우스』(창비)
여덟 편이 실려 있는 이 소설집이 『타운 하우스』로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건 이 소설집에 잘 어울린 선택이다. 「말의 눈」을 시작으로 「남은 아이」까지 여덟 편 모두 읽는 동안 달달한 고구마를 한입에 우겨 넣고 시원하고 톡 쏘는 사이다를 마시는 느낌보다 뭔가 찝찝하고 약간의 불쾌감이 들었다. 읽고 나서도 소설집을 다 읽기보다 읽다가 중간에 멈춘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소설을 잘못 읽었다는 느낌이 들 때 전기화 선생님의 해설을 읽고 ‘내가 느낀 부분들이 진짜였구나.’라고 깨달았다. 오랜만에 읽고 나서 찝찝함과 불쾌감을 느꼈던 책이라서 의미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불쾌감은 긍정의 불쾌감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여덟 편의 소설은 닮은 듯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게 답이 아니며, 눈에 보이는 대로 봐야 한다.’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게 답이 아닌데, 눈에 보이는 대로 봐야 한다는 말이 모순적이고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소설들을 읽고 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소리 소문 없이」이다.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청한동 고 박사 부부 집 1층에서 자취하게 된 나, 말이 자취지만 실제 고 박사 부부 집에 기생하는 것이다. 고 박사 부부 집은 실제 2, 3층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주 공간이고, ‘나’가 머무는 1층은 유령 같은 공간-반지하보다 더 어둡고 습하지 않을까-이다. 1층에 유령처럼 살던 ‘나’는 끔찍한 굴욕감-굴욕감 앞에 ‘끔찍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처음 봤다. ‘굴욕’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끔찍한데 말이다.-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성 박사가 자신을 들어 담장 너머로 던져버린 것 같은. 성 박사가 손님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여니 1층에는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자신을 파티에 초대한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굴욕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낄 만한 순간이 아닐까.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파티의 분위기를 알고 느끼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죽여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잔인하고 모욕적인 부탁 아닌 부탁이 아닌가. 하지만 그 말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부분에서 ‘나’가 되어 좌절하고 말았다. 이불속에서 파티의 모든 순간을 느껴야 했을 ‘나’의 초라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외면했다.
죄책감과 수치심, 불안함과 두려움에 빠진 인물들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소설 같다. 불안에 빠진 인물들은 불안이 소거되지 않은 채 도시, 즉 본인의 생활 공간을 배회하며 불안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자신을 불쾌 혹은 불편하게 만드는 불안한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게 아이러니하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본인들을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편안한 상태를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솔직히 불안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우리도 매일 불안을 안은 채 살면서 불안을 잊고 살아갈 때가 있으니 말이다.
『타운 하우스』는 오늘날 가장 첨예한 이슈인 계급적 불안과 그것이 어떻게 공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지영 작가는 ‘우리 시대 마크 로스코’라고 했다. 계급적 불안은 오랜 과거부터 시작하여 현재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첨예한 이슈로 주목될 것이다.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계급적 불안을 보여준 작품들은 수도 없이 넘쳐났다. 독자들은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계급적 불안’을 이해하고,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전지영 작가는 ‘계급적 불안’이 어떻게 공포가 되는지 능란한 필치로 보여준다. 계급적 불안이 공포가 되어 인간을, 삶을 삼켜 버리는 것을 모든 걸 태워버릴 것처럼 무섭게 번지는 불이 아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만큼 약하게, 그리고 서서히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들춰낸 누군가는 뭔가를 잃거나 사라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들추지 않은 다른 누군가는 갖고 있는 것을 잃지 않는다. 이게 맞을까? 진실 위에 쌓인 악취를 풍기는 거짓이 권력에 의해 진실이 되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게, 그렇게 진실이 된 게 얼마나 많을까. 답을 알고 있는데 까막눈이 되기로 자처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진실에 가까운 사람일까, 거짓에 가까운 사람일까? 나조차도 간단한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본인과 상관없다고 생각한 ‘계급’으로부터 나오는 불안과 그것이 어떻게 공포가 되는지 알게 되면 찝찝함과 불쾌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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