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먼 이름에게 소설의 첫 만남 36
길상효 지음, 신은정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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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먼 이름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응원할게.

길상효 소설 신은정 그림, 나의 먼 이름에게(창비)(소설의 첫 만남 랜덤 서평단)

 


책에 대한 애정이 과한 욕심이 될 때쯤, 만난 나의 먼 이름에게소설의 첫 만남의 기획과 어울리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몰입감이 높고 가독성이 높은 소설은 오랜만이라, 금방 읽고 말아서 아쉬웠다. 이 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의 먼 이름에게우리 곁의 작은 늑대들을 향한 이야기. 어쩌다 인간의 세상에 왔는지, 이름을 찾아, 기원을 찾아 떠나는 의 여정을 담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한없이 꼬리를 흔들고 배를 보여주고, 좋다고 뒷발로 지탱하여 앞발로 내 다리를 만지던 아이들이 어쩌다 내 곁에 왔을까?’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이 물음표가 너무 늦게 생겼다.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은 어쩌다 인간의 세상에, 그것도 부족함이 많은 내 곁에 왔을까? 어린 날의 내가 무조건 데려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도 나에게 한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아이들은 나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와 아이들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꼭, 어떻게든 만났을 관계라고 생각하니 아이들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최근까지의 우리가 함께 한 장면들이 물 흐르듯 천천히,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가 어쩌다 인간 세상에 왔는지, 이름과 기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멋있다. 어쩌다 인간 세상에 왔는지를 찾고자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낸 것도, 찾기 위해 끝까지 멈추지 않는 모습도 멋있고 대단했다. 의 집요함이 책장을 덮고 난 후의 여운을 깊게 남긴다. 는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다. 처음으로 배불리 먹고 깊은 잠을 자고, 자신을 꼭 끌어안으며 얼굴을 비비는 나의 인간과 안전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중이다. 하지만 는 나의 인간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가둔 벽 너머의 공간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 갈망이 의 물음을 만든 것이다. 한 드라마에서 살면서 질문을 멈추지 말라고,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삶은 끝난다는 대사가 생각났다. ‘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삶을 향해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그 누구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에 다가간 것이다. 의 물음에서 내가 삶을 사는 이유를 생각했다. 어쩌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굴곡이 많은 삶을 살고 있나? 처럼 집요함이 부족한 나는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날 용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귀찮아서 물음을 지우는 선택을 했다. ‘의 집요함을 배워 다시 내가 사는 이유를 찾아 여정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나의 의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나의 깊은 어딘가에 계속 타올랐으면 좋겠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고자 하는 갈망 말이다.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벽이 자신을 가둔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벽이 주는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벽 너머를 갈망할 수밖에 없다. 번식장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나의 주인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는 근본적인 존재 이유와 자유를 간절히 원한다. 얼마나 건강하고, 끝없이 성장 가능한 가능성과 기회를 쥐고 있는 건가. 인간의 생활에 맞춰 생활하는 는 인간이 줄만 들어도 산책 가는 걸 바로 알아차린다.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동족의 냄새를 맡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 는 동족을 만나게 되고, 동족이 판 구덩이로 동족을 따라 뛰어 들어간다. 자신이 품고 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정의 첫걸음을 뗀 것이다. 첫걸음은 꽤 성공적인 것 같다. ‘를 따라 들어간 구덩이는 의 이름과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설렘과 동시에 긴장감이 내 손끝을 감쌌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들이 펼쳐졌다. 가 인간 세상에 오게 된 이유를 찾는 여정이지만 여정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답을 찾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고 답을 알고 나서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자매가 한테 스스로 원망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선택이고, 자신이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의 삶은 충분히 나다우니까’. 소설에서 인간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를 따라 간 여정에서 인간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로 묶어서 말해도 될 만큼 비슷한 삶이다. 틀림없이 꼭, 서로의 주변에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인간과 개의 관계였다. 까마득한 시간부터 인간과 개는 삶의 공간을 공유한 채 엇갈리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구덩이로 들어간 는 인간들과 함께 사냥한다. 한 방향을 달리다가 때로는 엇갈리고, 때로는 합류하며 긴 추격전을 벌인다. 긴 추격전 끝에는 먹잇감이 남았고, ‘는 인간에 대한 물음이 거대해졌다. 인간이 더 궁금해진 것이다. 앞발로 뭐든 척척, 해내는 인간이. 는 동족을 따라가는 대신, 인간들의 뒤를 따라가기로 선택했다. 선택하기까지 의 머릿속은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선택하고 나서도 머릿속의 소란스러움이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지겠지만 선택했다는 사실이 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자매는 그런 가 무리를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인간을 멀리하라고 말하지만 는 인간을 향한 물음과 감정을 멈출 수 없다. 자신 마음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고 흔들리지 않는 나의 꼿꼿함과 의지가 부러웠다. ‘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족 대신 인간을 택한 것이 어쩌면 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족은 이해하지 못하고, 동족과 정반대를 선택하여 반대의 길을 걸어도 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외로움을 인간이 채워줄 거라는 걸 는 은연중에 알게 될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던 날, 마음에 이상하고도 벅찬 감정을 느낀 때부터 인간과 함께 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는 어쩌면 동족과 인간보다 빨리 더 먼 미래를 내다본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곳곳에 있는 수많은 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어떤 물음을 가지고 있을지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인간 세상에 오게 된 이유를 찾아서, 이름과 기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꿈꾸고 있는지 말이다. 보호자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자유와 여정을 묶고 있는 내 모습이 불편했다. 목줄로 자신들을 잡아 놓고 가끔 목줄을 풀어 제지하면서 하는 산책으로 자신을 가두는 공간에서 벗어난 잠깐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 아이들은 벽 너머를 갈망할까? 갈망하지 않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고 이기심이다. 그리고 잔인한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개의 삶에 대해 미안함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 벽 너머를 갈망하는 마음을 한 번이라도 아우르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과 무지함을 느꼈다. 배부르게 먹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자신을 보호하고 돌보는 인간을 사랑하면서도 벽 너머를 갈망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무엇일까? 해준다 한들 그 갈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닌데. 물음에 대한 딱 맞는 답이 있을까?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날 준비를 마치고 용기를 낸 세상 곳곳의 의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인간, 놓아줘야 할까? 놓아준다는 게 뭘까?


곳곳에 있을 는 구덩이를 파는 게 아니라 만든다는 것을, 간절히 원하면 구덩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간절함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음을 구덩이를 곳곳에 파고 구덩이를 통해 기원을 찾아 떠난 세계와 현실을 오고 가면서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인간 세상에 오게 된 각자의 이유를 찾게 되고, 각자 여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아니면 계속 여정을 이어가든가. 그리고 또 다른 물음을 안고 새로운 여정을 떠날 것이다. 그 여정을 위해 또 다른 용기를 내야 할 그들을 응원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여정에는 언제나 를 기다리는 인간이 함께 하고, 등지고 떠나던 그 자리에 언제나 나의 인간이 서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자신을 찾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이 만남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곱씹는다. 맞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우리의 만남은 막지 못할 것이고, 곳곳에서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만남을 떠올리면 마냥 다정하고 행복하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함께 넓은 들판을 뛰면서 같은 먹잇감을 때로는 엇갈리고 때로는 협력하며 잡던 때와는 달리, 시선을 맞추지 않고 인간이 개를 내려다보는 우리의 삶이 안타깝다. 수많은 가 잃어버린, 인간이 이기적으로 지워버린 이름과 기원을 찾는 걸 멈추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만남이 다정과 행복으로만 채워지는 그날까지, ‘나의 먼 이름에게라는 문장으로 쓰일 수많은 편지를 기억하겠다. 이 책 또한 그 수많은 편지 중 하나니까. 나의 먼 이름, 그 이름을 찾는 그날까지 함께 삶을 나눈 인간들은 의 이름을 계속, 간절히 부를 것이다. 돌아와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름을 찾으러 떠나도 좋다, 떠나야 한다. 물음을 품고만 있으면 고이고 고여 썩어서 덜어내야 하고, 근본적인 냄새를 잃고 말 것이니까. 이름을 찾고,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인간은 언제든 같은 자리에서 기다릴 것이다. 우리는 에게 미안하고 고마우니까. 오늘도 나의 먼 이름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 여정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나서서 치워버릴 것이다. 이름과 기원을 찾아야 우리의 만남이 완전한 만남이 되는 거니까.


오늘따라 본가에서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보고 싶다. 아이들에게 닿을지 알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나의 먼 이름에게와 함께,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통해 전한다. 그리고 우리 곁의 작은 늑대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이 책은 <소설의 첫 만남> 랜덤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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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선물 가게, 기적을 팝니다 꿀잠 선물 가게
박초은 지음, 모차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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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열려 있는 꿀잠 선물 가게에 초대합니다! - 잃어버린 잠을 찾으세요! 얼른요!

박초은 장편소설, 꿀잠 선물 가게, 기적을 팝니다(토닥스토리)(창비)

 


꿀잠 선물 가게를 두 번째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은 어떤 가게인지 궁금해서 설렘만 가득했다면, 두 번째 방문은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떨림과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이 들었다. 두 번째 방문이어도 설레고 떨리는 건 변함없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꿀잠 선물 가게는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함이 가게 곳곳에 스며 있었고, 오슬로와 자자도 다정했다. 내가 다시 방문할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있어 줘서 고마웠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면 오슬로와 자자는 당연히 우리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을 테니 언제든지 와.’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방문이 더 기다려지고 설렜던 것 같다.


첫 방문 때는 꿀잠 선물 가게가 현실에도 존재한다면 너무 좋겠다고, 꿀잠 선물 가게가 많은 이에게 위로와 안식을 줄 공간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꿀잠 선물 가게는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손님들이 찾는 곳이니까. 꿀잠 선물 가게를 딱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돕는 도구를 파는 가게로 좁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찾은 꿀잠 선물 가게에서 오슬로와 자자와 함께 손님들을 만나고, 손님들의 불면을 일으키는 걱정과 고민, 불안 등을 함께 지켜보고 불면을 해결하기 위한 꿀잠 아이템을 고르면서 <꿀잠 선물 가게>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 불면을 해결하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오슬로와 자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오슬로와 자자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꿀잠 선물 가게를 찾은 손님들의 꿈을 보는 일이 마냥 가볍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느끼는 복합적인 무게가 내게 잘 느껴졌다.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그리고 하고 있고 느끼는 복합적인 고민과 걱정, 불안이니까. 손님 한 명 한 명 꿀잠 아이템을 다르게 추천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 속에서 수많은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 다 필요한 꿀잠 아이템이었다. 모든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았는데, ’남달리라는 남자아이의 에피소드가 기억 가장 위에 떠올랐다. 달리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며, 자신의 하루하루를 사랑하는 아이다. 달리의 말과 행동은 추운 겨울을 버티고 싹을 탁- 틔운 새싹의 통통 튀는 싱그러움을 머금은 듯 사랑스럽고 귀엽다. 달리와 있으면 심심할 틈도 외로울 틈도 없을 것 같다. 달리의 긍정과 하루하루를 사랑하는 모습을 너무 닮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한 달리가 앞으로 보낼 하루하루, 그리고 그 하루들이 쌓여 만들어질 삶이 얼마나 눈부실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긍정의 자극이 되었다. 달리라면 앞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달리답게, ‘남다르게‘,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갈 거라는 확신이 든다. 달리는 잠을 자기 싫을 만큼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잠을 못 자는 것보다 안 자려는 달리의 의지가 강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건 좋지만 잠을 못 자는 건 한창 성장하고 있는 달리에게 좋지 않다. 오슬로와 자자는 달리의 불면 원인을 찾으면서 다른 손님들과 다른 귀여운 이유로 잠을 자지 못하는 달리를 귀여워한다. 그리고 달리에게 딱 맞는 꿀잠 아이템 새싹 드림캐처를 추천한다. 새싹 드림캐처는 달리 특유의 긍정으로 하루가 다르게 싱그러움을 한가득 머금은 잎들로 풍성해질 것이다. 현실만큼 꿈에서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말 대신 꿀잠 아이템 새싹 드림캐처를 통해 잠을 잘 자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 오슬로는 정말 잠을 잘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오슬로와 자자가 부럽다. 학창 시절에는 잠이 너무 많아서 생활이 불편했지만, 자기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일을 찾아 타인까지 도울 수 있다는 건 특별하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흔히 잠은 죽어서 자야 한다고, 죽으면 원 없이 잘 수 있다는 말로 잠을 줄여야 함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리고 잠이 부족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잠이 부족한 이유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잠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잠을 쉽게 생각한다. 잠을 잘 자야 하루를 건강하고 균형 있게 잘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잠과 거리를 둔다. 잠을 안 자는 경우도 많고,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불면의 탄생은 언제일까? 불면으로 힘들어하는 손님들의 이야기와 특별한 꿀잠 선물 가게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꿀잠 선물 가게><꿀잠 선물 가게, 기적을 팝니다>의 교집합, 가장 큰 우주를 보지 못했다. 바로 이다. 여러 의미로 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다. 잠을 자기 위해 꿀잠 선물 가게를 찾는다던가, 아니면 잠을 자고 싶은데 잠들지 못할 때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거나 가볍게 산책 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다던가.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걱정과 고민, 불안을 줄이는 것이 아닐까? (가장 좋은 방법은 오슬로를 찾아가는 것이다!) 잠을 이루지 못해 기나긴 밤을 짙은 한숨과 불편하고 복합적인 감정에 빠져 보내야 할 이들에게 꿀잠 선물 가게’, 오슬로와 자자는 기나긴 밤을 함께 보내줄 든든한 존재다. 그러니 잠을 못 자는 날이면 망설이지 말고 꿀잠 선물 가게로 향했으면 좋겠다. 오슬로와 자자는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하고 폭신한 의자로 안내하며 꿀차를 건넬 것이다.


꿀잠 선물 가게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것이다. , 불면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많다는 것이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현실인가.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현실에서 여유는 찾아볼 수 없고 늘 뭔가에 쫓기듯 긴장 상태에 있는데 잠까지 제대로 자지 못하면 하루하루가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 지옥에서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도저히 나올 수 없어서 마지막을 생각하고 찾는 곳이 꿀잠 선물 가게이다. 현실에는 꿀잠 선물 가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도움으로 불면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처음에 들던 약은 나중에 적응이 되고 더 독한 약을 찾게 되면서 약에 기대게 된다. 전문의 도움도 마냥 좋게만 볼 수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의지를 갖고 극복하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오슬로와 자자가 바라는 것처럼 불면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단 한 명도 불면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다. 어째서 불면이 사라지길 바라는 것이 욕심이 되었는지 모르겠고, 안타깝다. 우리는 잠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오슬로와 자자는 잃어버린 잠을 찾아주기 위해 가게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꿀잠 아이템을 만드는 데 시간과 정성, 마음을 한가득 쏟고, 손님들의 방문을 언제든지 환한 얼굴을 하고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오슬로와 자자의 다정하고 밝은 환영은 손님들의 걱정과 불안을 녹이는 데 한몫한다. 꿀잠 선물 가게를 방문한다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손님들의 고민을 나눠 들어주는 오슬로와 자자는 꿀잠 선물 가게를 운영하고 손님들을 만나는 일을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일로 생각한다. 꿀잠 선물 가게를 애정하는 것은 오슬로와 자자뿐 만이 아닐 것이다. 방문한 손님들의 애정까지 더해져 날이 갈수록 꿀잠 선물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세상 곳곳에 봄날의 햇살 같은 빛을 비출 것이다. 밤이 꼭 어두워야 할 필요 없다. 어두워서 빛을 만들어 비추는 게 현실 아닌가(밤길을 비추는 가로등처럼). 혼자 뜬눈으로 긴 밤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꿀잠 선물 가게 마스코트인 부엉이 자자와 꿀차의 스탬프를 꾸욱-, 눌러 찍은 초대장을 보낸다. 꿀잠 선물 가게는 언제나 활짝, 환하게 열려 있고 을 찾기 위해 가게로 향하는 무거운 걸음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가게를 나서는 걸음들도.


꿀잠 선물 가게, 기적을 팝니다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고, 나만 겪는 걱정과 불안과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똑같은 고민을 안고 살고 있으며 의지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과 각 에피소드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을 극복하는 손님들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 나에게만 특별하게 주어지는 힘든 시간이 아님을, 이 시간을 함께 보내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 오슬로와 자자 그리고 박초은 작가님에게 고맙다. 하루가 고단한 날,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밤에 오슬로와 자자를 떠올릴 것이다. 첫 방문 이후, 며칠 동안 오슬로와 자자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였다. 오슬로와 자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고, 힘들지만 웃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꿀잠 선물 가게를 자주 찾을 것이다. 힘들 때만이 아니라, 오슬로와 자자를 종종 찾을 것이다. 둘에게 받은 다정한 힘을 다시 되돌려 주기 위해 말이다.


오늘도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가게를 찾은 손님들과 그들을 위해 열일하고 있을 오슬로와 자자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오늘 밤은 어제보다 가볍게, 편안하게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우리 모두). 그렇게 하루하루 잃어버린 나의 잠을 찾아 나의 잠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춰 내 방 벽면 한쪽에 걸어둘 것이다. 불면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고, 길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잠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꿀잠 선물 가게의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잃어버린 잠을 찾기 위해 용기 낸 손님들과 아주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나를 반갑게 맞아준 오슬로와 자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창비 : 너무 잘 읽었습니다. 글도, 그림도 최고였어요. 위로받고, 공감했습니다. 우리의 매일 밤이 오슬로와 자자의 다정한 마음이 닿아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꿀잠 선물 가게는 부지런히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겠죠? 박초은 작가님 덕분에 마음 한 칸에 저만의 새싹 드림캐처가 생겼어요. 새싹이 풍성해질 수 있도록 부지런히 제 마음을 돌보며, 달리처럼 제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싹 드림캐처가 풍성해지는 날에 오슬로와 자자를 위한 고소하고 달달한 쿠키를 준비해서 꿀잠 선물 가게에 들르겠습니다. 특별한 가게를 선물해 준 박초은 작가님과 가게와 아이템, 오슬로와 자자를 완벽하게 그려주신 모차 작가님, 그리고 꿀잠 선물 가게 두 번째 방문의 기회를 준 창비 출판사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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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2 텍스트T 15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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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비스킷의 존재가 느껴져.

김선미, 비스킷 2(위즈덤하우스)

 



베스트셀러에 청소년들에게 극찬을 받았다는 김선미 작가의 비스킷이라는 문구가 박힌 책 띠를 보고 있으니, 청소년들의 극찬과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고민, 거듭한 수정 등 긴 과정을 거칠지 작가님의 세계를 감히 상상했다. 상상만 해도 마냥 기쁨의 두근거림이라고 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 빛이 수많은 길 중, 어떤 길을 비출지 알 수 없지만 빛이 비치는 길 끝에는 작품의 탄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아득한 꿈에 닿는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고. 비스킷과 같은 책이 세상이 많이 나와 어둠을 몰아내고 절대 꺼지지 않을 따뜻한 빛을 땅에 꼭꼭, 심어줬으면 좋겠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는 작품은 청소년 시기만의 특별함과 솔직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이 읽으면서 공감하고, 공감에 이어 위로받고 자신만의 무언가(해결 방법, 자신의 이해 등)를 찾거나 찾는 계기가 되어 성장이라는 수평선과 맞닿아야 청소년 작품이 빛을 낸다. 책은 쓰이기만 하면 안 된다. 읽히고, 전해지고, 기억되어야 한다. 그게 책 존재 이유이며, 책을 쓰는 사람의 책임감이며,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예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의 역할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박자를 모두 고루 갖춘 책을 오랜만에 만나서 뭉클하고 행복하고, 책을 찐애정하는 독자로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청소년 시기에 만나면 분명 큰 힘이 되었을,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나서 계속 아쉬움이 남는, 지금이라도 만나서 감사한 비스킷 2를 읽는 동안 세상에는 다양한 모양과 냄새의 비스킷이 있고, 나 또한 수많은 비스킷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스킷이었고 비스킷이고, 비스킷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소설에서 바사삭-, 부스러기가 되어 떨어지는 것처럼 존재감을 서서히 잃어가더니 이내 사라지는 사람비스킷이라고 부른다. 비스킷을 구한 아이들은 영웅이라고 불린다. 영웅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거짓으로 꾸며냈다며 익명 뒤에 숨어 그들을 거짓말쟁이로 부르는 불특정 다수의 비난을 받는다. 비스킷을 구하는 아이들은 특정 감각을 통해 비스킷을 찾아낸다. 시각, 후각 등 감각을 이용하여 비스킷을 찾아내는 설정은 비스킷의 존재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감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여기 있음을 알려주는, 자신을 찾아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비스킷 존재의 매력은 그 이상이 된다. 비스킷을 구하는 아이들이 비스킷을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비스킷에게 빠져들수록 비스킷 존재 자체가 아프면서도 비스킷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임을 깨닫게 된다. 감각을 이용하여 존재감을 잃어가는 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구해낸다. 재감을 잃는다는 건 (개인적으로) 감각을 잃는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해서 비스킷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감각을 이용하는 것'은 비스킷에게 새로운 삶의 영혼을 불어넣는 느낌을 준다. 그 일을 하는 아이들이 찬란하여 아이들의 쉽지 않은 비스킷을 구하는 대장정을 거리 둔 채 지켜보는 입장인데(솔직히 숨바꼭질의 숨는자가 되길 자저했다), 아이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받아 내가 더 빛을 내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비스킷을 구하는 일에 진심이고, 적극적이다. 비스킷이었던 적이 있기에 비스킷을 구하는 일이 특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사라지길 원하는 이, 세상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아이들의 마음이 비스킷을 찾아 구하는 일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마음이 어둠이 세상을 완전히 삼켜 버리지 못하는 이유면서 세상이 살 만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비스킷에서 벗어나기까지 어떤 시간을 거쳐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하루빨리 비스킷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소설 곳곳에서 느껴져서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도 했다. 아이들 덕분에 느끼는 가벼움.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 안에서만 자라는 존재라고 내 마음대로 틀에 가두었다. 아이들은 내가 만든 틀은 쉽게 부숴버렸고, 무너진 틀에서 비스킷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스스로 깨야 할 부분들을 아이들이 깰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아이들이 준 도움과 덕분에 느끼는 마음의 가벼움은 민트맛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는 듯 상쾌하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줄 안다.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른이 되면 어느 순간, 한눈에 담기지도 않을 정도로 수많은 길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든다. 아니 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경우가 잦다. 꿈과 희망이 넘쳐나던 아이였을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현실적으로 바뀐다. 현실은 소소한 친절이나 여유를 원하지 않는다. 말로는 서로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며, 여유를 갖자고 한다. 현실적으로 소소한 친절과 배려를 베풀고, 여유를 가지려고 하면 지독한 악의가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그 지독한 악의에 맞서 기어코 승리를 거머쥔 아이들을 보며 느낀 것이 많다. 학창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어른이 된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제성과 덕환, 효진, 지안 등이 비스킷을 찾아 구하겠다는 진심이 선동과 같은 아이들을 구해낸 것처럼 내게도 제성과 덕환, 효진, 지안과 같은 존재들이 있었기에 사라지지 않고 지금 이렇게 비스킷 2을 만났다. 잃어버리고 싶어 한 나의 존재를, 잃어버릴 뻔한 나의 존재를 놓지 않고 꼭 붙잡아준 건 내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늘 고맙다. 사라지길 바랐지만, 세상에서 정말 사라지고 싶은 존재는 없으니 말이다. 나의 존재를 선명하게 비추는 건 나지만, 내 사람들 또한 내 존재를 선명하게 만드는 데 중요하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쉽게 한 건 아니다. 한 번 사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나답게 살고 싶은데 어느 누가 사라지고 싶을까. 어떤 상황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인데, 그 마음은 혼자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어렵고, 도움 요청을 늦지 않게 알아차리고 도와주는 것도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비스킷 2에서는 반드시 해낸다. 혼자라면 오래 걸리거나 불가능했을 일들이 혼자가 아닌 함께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팀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을 때, 갑작스러운 소리에 노출되어 숨을 쉬기 힘들 때, 악의에 맞설 때 모든 순간에 함께했기 때문에 힘들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행복한 순간도 함께이기 때문에 몇 배로 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비스킷 2는 청소년 소설을 떠나서 어른의 관심과 보호, 도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도움과 보호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적극적이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여 지독한 악의를 필사적인 연대로 맞서는 이야기. 아이들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라서 영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다 못해 분명 문장을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서는 책 위로 인물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 술술, 읽히면서 갑자기 순간순간 들이닥치는 감정의 파도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책을 놓을 수 없어서 계속 읽었다. 특히, 강당에서 선동이를 찾기 위해 아이들이 같은 마음으로 선동이를 부르던 장면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쌓아온 작고 소중한 감정들이 거대한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터져 목구멍에 울음이 걸렸다. 지독한 악의가 두렵지만 아이들의 필사적인 연대가 두려움을 누르고, 선동이를 비스킷에서 구했다. 비스킷이 되어 사라질 아이가 느낄 두려움만큼 비스킷이 되어 세상에서 사라질 아이를 느끼고 구해야 하는 과정에 있는 아이 느끼는 두려움 또한 거대하다. 어느 쪽이든 마음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 선동이가 비스킷이 되는 과정에서 마음이 단기간에 무너질 수 있다.’라는 것을 제성이가 깨닫는 부분은 마음이라는 것이 스치기만 해도 톡-, 터져 버릴 것 같은 물방울 같다고 생각했다. 요즘 일기를 쓰면, 대부분 마음에 대한 것이다. 마음에 대해 쓰려고 하지 않아도 어느새 마음과 대화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한바탕 쏟아내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그 가벼움은 착각이다. 마음이 진짜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쌓지 말고 비워야 한다. 덕환이가 말한 것처럼 질투나 이기심 같은 것들 말이다. 마음을 '감정 덩어리(복합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단순할 수 없는 구성이다. 이쯤 되니, '비스킷의 냄새라는 건 참 복잡한 구성 요소의 집합체였다.'(214)라는 문장을 계속 곱씹게 된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복잡한데, 내 마음도 이리 복잡하다니, 사는 게 피곤할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비스킷이 마음으로 보인다. 비스킷이라고 읽고, 마음이라고 적는다. 비스킷, 즉 마음은 만만히 볼 게 아니다. 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각 마음에서 풍기는 냄새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이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결정되는 지금의 현실이 만든 피해자’(214) 같은 비스킷이다. 비스킷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비스킷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될 수 있으며, 단계 이동이 가능하다. 비스킷이 되어도 상관없다. 수그러들지 않는 비스킷을 돕겠다는 열망을 품은, 우리 주변을 넘어 더 넓은 세상에서 비스킷을 돕고자’(214) 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사라지길 바라지만 사실은 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비스킷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닿을 것이다. 숨거나 자꾸 멀어져도 괜찮다, 비스킷이 되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구할 테니까. 세상이 냉정하고 차갑고, 지독한 악의가 제멋대로 군다고 하지만 마지막에 지독한 악의 인물인 진종기가 패배한 것처럼 세상도 악의로 물들고 있는 건 보고만 있지 않는다. 무엇보다 세상이 악의에 물들기 전에 제성과 같은 아이들이 악의를 필사적인 연대로 몰아낼 것이다. 세상 곳곳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의와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악의에 맞서는 그들을 응원하고, 같은 마음을 더해준다면 힘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은 더 밝아질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사랑하게 될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연대로 몰아낸 악의는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연대의 강한 힘 앞에서는 아무리 지독하고 강한 악의라고 해도 별수 없으니까. 세상에 악의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그리고 단단한 마음으로 언제나 존재감을 곳곳에서 발휘하는 이들로 가득 차는 그날까지 비스킷을 향한 관심과 도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비스킷이 되었다고 더 숨지 말고, '내가 여기 있다고, 살려 달라고, 날 찾아달라고.' 끝까지 외쳐줬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찾을 수 있다.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세상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건 당연하다. 언제 어디서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줄 이들이 있다는 것을 비스킷의 존재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꼭 나는 비스킷이 아닌 것처럼, 비스킷이 되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내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비스킷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비스킷이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좋겠지만, 비스킷이 없는 세상은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사소한 친절을 베풀며, 서로가 비스킷이 되지 않도록 미리 비스킷을 구할 수 있다. 어디선가 비스킷의 냄새가 나고, 바사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냄새와 소리를 한 번 맡고 듣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제성과 지안, 효진과 덕환을 아지트로 불러 자신을 찾아달라고 간절히 우리를 부르고 있는 비스킷의 부름에 응해야 할 시간이다. 비스킷을 찾으면서 속으로 그 아이에게 닿길 바라며 외친다, “걱정 마. 가고 있어. 계속 목소리를 내줘.”.


비스킷을 찾으러 갔더니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스킷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였다. 나한테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비스킷 냄새가 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했다. 내가 비스킷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근데,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존재가 선명해졌다.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비스킷이 되는 건 당연한 거였다. 나조차도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못 본 척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미안했다. 앞으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의 존재를 나만의 스타일로 선명하게 만드는 데 시간을 들여야겠다. 그렇게 비스킷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비스킷의 기운이 느껴진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향해 뛰어갈 것이다. 금방이라도 숨이 차 쓰러질 것 같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스킷 2를 통해 작가를 꿈꾸게 되거나 비스킷을 구하는 영웅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세상은 냉정하고 차갑지만, 낭만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구하고 도우면서 곳곳에 퍼져 있는 고소하고 따뜻한 비스킷의 냄새를 맡으며 은은한 미소를 띠는 낭만을 가질 수 있다. 그 낭만을 잃으면 세상은 완전히 빛을 잃을 것이다. 우리 존재만으로도 세상은 이미 밝고, 서로를 위한 마음과 친절 그리고 배려로 세상은 더 밝아질 수 있다. 세상 모든 비스킷에게 말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외치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한 번 들은 목소리는 놓치지 않고 반드시 찾으러 간다는 말을 덧붙이며, 오늘도 어디선가 비스킷이 되어 사라지려고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열심히 달리고 있을 이들에게 감사함과 응원의 마음을 빗소리에 실어 보낸다.

 


할머니가 그러는데 가끔 비스킷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래요. 강철 멘털이라도 한순간에 마음은 무너질 수 있다고요. 비스킷이 되었더라도 자고 일어나면 마음이 회복되어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오면 된다고 하셨어요.” 


_212: 근원이가 하는 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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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기다릴게 넥스트
한세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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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기다릴게, 옥상으로 와.

한세계, 옥상에서 기다릴게(자이언트북스)

 


청소년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갖게 만들어 준 작가님들이 많아서 감사하다. 옥상에서 기다릴게를 읽는데, 마음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정확하게 형용할 수 없었다.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서 다음 책장을 넘기기 무섭기도 했다. 유신이와 영원이가 갖는 마음이나 감정 등을 누렸던 그때의 나에게 미안한 게 참 많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나에게 자신, 믿음, 확신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보다 남에게 기대야만 존재한 채 살았달까.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는 영원의 쌍둥이 형 김지원의 부탁을 거절하다가 결국 수락하는 유신. 유신은 남모르게 대필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꼭 용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지만, 대필할 때만큼은 시간이 잘 간다고 했다. 대필을 떠나서 이 유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유신은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영원은 바로 알아차리고 유신에게 끊임없이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준다. 정작 자신의 세계에서는 기죽는 모습이면서. 그래도 유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있어서 영원의 세계도 분명 넓어졌다. 유신에게 대필은 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신이 쓴 글이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닌 대필을 의뢰한 사람의 이름이 자리 잡는 것을 볼 때마다 유신은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공허할 것이다. 의뢰받은 사람인 척 글을 쓰고 대가()를 받지만, 유신이 그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유신이 쓴 글은 의뢰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유신의 그런 마음을, 유신도 모르는 유신의 모습을 알아준 건 김영원이었다. 영원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위로를 건네고 보듬어 줄 다정함이 있다. 김영원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친구를 구하다가 세상을 떠나버린 영원. 유신은 영원의 죽음 이후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내는 것 같다. 영원을 죽인 사람이 본인이라고, 유신은 그렇게 영원을 향한 미안함과 그리움, 절망을 복합적으로 안은 채 영원과의 추억을 외로이 돌아보며, 쓴맛을 느낀다. 유신은 영원을 잊으려 하기보다(영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것조차 미안해서 애써 영원과의 시간을 마음 깊숙이 꾹꾹- 눌러 내린 건지도 모른다. 영원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원이 준 영원의 일기장 때문에 유신은 어쩌면 영원과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기장을 넘기기까지, 일기장을 다 읽기까지 유신은 용기가 필요했다. 영원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영원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영원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유신은 두려웠다. 영원을 향한 복합적인 감정을 달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영원과 유신이 처음 대화를 한 곳은 학교 옥상이었다. 옥상이라는 공간이 주는 뻥- 뚫린 시원함과 동시에 사방이 뚫려 괜히 느껴지는 서늘함이 두 사람의 거리를 가깝게, 그리고 옥상을 찾는 이유에 진짜 이유를 찾아준 것 같다. 유신과 영원은 사방이 뚫려 있는 옥상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청소년 시기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학업 문제, 부모님과의 갈등 등 수많은 것이 쉴 새 없이 몰려와 정신없는 와중에 숨구멍을 찾은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이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처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때론 형용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된다. 그 숨구멍이 둘에게는 옥상이었다. 옥상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옥상이 아니었다면 이 둘은 서로에게 특별한 친구가 되어줄 수 없었을 테니까, 서로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덥지만 마음만큼은 시원한 여름을 보내지 못했을 테니까. 옥상에서 자주 만나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은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고, 본인 세계에 들어오는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성격이 좋고 언제나 웃고 다니는 영원은 지금껏 보여준 모습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진짜 모습을 고백하는 영원은 친구들이 알고 있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영원은 남들이 하는 기대에 맞춰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자신과 달리, 공부를 잘하는 형 지원과 영원을 비교하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또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엉켜 영원을 힘들게 했다. 영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 너무 늦은 걸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를 드러냈음에도 주변 사람들이 각자 보고 싶은 대로 영원을 보고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자주 우리가 보고 싶고, 말하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보고 말하고 믿는다. 영원은 사람들의 편한 생각의 피해자가 아닐까. 진짜 모습을 꼭꼭 감춘 영원이 유신에게 고백한 것은 유신을 믿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믿음을 떠나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영원은 진짜 자신을 알아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상대가 유신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신과의 첫 만남이 영원에게는 강렬했을 것이다. 난간에 서 있는 유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유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기장에 적은 걸 보면 영원과 유신은 특별한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영원은 없고, 영원의 일기장은 남겨져 있는 참 외로운 이 상황. 그 사람의 온기는 없는데,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일기장에는 그날 그 순간의 그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어 읽는 동안 심장이 비틀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 경험하고 싶지 않은 형용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하지만 유신은 그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평생 영원을 향한 죄책감으로 살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살게 되면 영원과 보낸 찬란하게 눈부시고 행복했던 날들이 후회와 눈물로 번질 테니까. 영원의 죽음의 죄책감에 갇혀 살아가던 유신에게 지원과 영원의 일기장은 유신에게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과 같은 역할을 했다. 유신은 영원이 남긴 일기를 통해 영원의 진심을, -영원의 진심을 알고 있다. 그런데 모른 척 했을 뿐이다.- 영원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함으로써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면서도 영원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영원의 일기를 읽는 유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를 영원에게, 유신에게 대입해서 상상한 결과 나는 유신의 입장에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함께 있을 때 더 잘해줄걸, 괜찮다고 말해줄 걸,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말해줄 걸, 네가 있어서 내 세상이 특별해졌다고 말해줄 걸, 너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설렌다고 말해줄 걸등 수많은 후회로 스스로 마음에 짙은 멍을 만드니까. 남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이렇게 무겁다면, 차라리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자주 내가 떠나고 남겨진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린다. 주변 사람이 많지 않지만, 내가 떠난 이후 남겨진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가라앉아 있다. 나를 떠나보내는 일이 슬픈 일이지만, 금방 털어내고 웃으면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물이 나를 살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낸다면 모를까, 내가 다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후회 대신 함께 한 행복한 시간들을 아주 가끔 떠올리면서. 유신은 영원을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에 슬퍼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슬퍼하지 못하니 영원을 제대로 보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원이 바라는 건 유신의 행복일 것이다. 유신 당사자보다 유신의 행복을 더 간절히 바랐다. 영원은 알았을까, 영원이를 만난 덕분에 유신이 세상은 환해졌다는 것을. 영원이 살아있다면, - 늘어져 있는 유신의 어깨를 힘껏 때리며 정신 차려! 기운 없으면 달달한 게 최고지!”라며, 주머니 속에서 달콤한 과자를 꺼내 유신의 손에 쥐어 줬을 것이다. 영원과 함께 옥상에서 보낸 시간, 그 여름은 평생 유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매년 여름이 오면 영원과 함께 했던 옥상이, 나눠마시던 이온 음료가, 피식- 웃음을 자아내던 이야기들이 고개를 내밀어 얼굴을 환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영원이 유신과 함께 할 것이다.


유신과 지원은 영원을 잃고 나서야 그동안 속에 꽁꽁-, 감췄던 마음을 고백한다. 고백도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고 했던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평생 후회로 남는 고백이 잔인하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지원이 유신에게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고 제안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영원이 떠났는데도 별로 슬퍼 보이지 않아서 밉기까지 했다. 근데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고 한 이유, 영원을 향한 지원의 진심을 듣고 나서 꽁꽁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녹았다. 지원이도 영원에게 많이 미안해하고 있고,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영원이 있을 때, 표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원은 그런 지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원은 자꾸 영원이 생각나고, 잠을 잘 수 없는지도 모른다. 유신과 지원은 영원을 보고 싶어 하고 있다.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한 것이다. 인정하기 싫어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정하기에는 영원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랬던 거다. 영원이 옆에 있었다면, “오글거려! 미안하면 앞으로 잘해!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겠구먼!”이라며 자신만만한 표정과 과장된 몸짓을 취하며 분위기를 띄워줬을 것이다. 유신과 지원의 사이에는 영원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영원을 아는 아이들이라면 영원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영원은 자신을 못났다고 했지만, 전혀 아니다. 그 말을 직접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유신의 모습은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아팠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기에. 당시엔 그 말이 왜 나오지 않았는지, 어째서 용기를 내어 솔직한 내 마음을 고백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솔직히 털어놓고 나서 이어질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와 멀어질 거리를 지레짐작하여 겁내어 숨기를 선택했다. 겁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싫어서 부정을 강하게 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나와 반대로 영원은 언제나 솔직히 드러내고, 언제나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영원은 피하지 않았다. 영원의 확고한 행동과 말이 유신의 세계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영원과 유신을 보며 알았다. 흔히 첫사랑이라고 할까.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아서 첫사랑이라며, 가끔 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유신에게 영원이 첫사랑인지 알 수 없으나, 친구 이상의 존재였던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읽는 내내 영원과 유신 당사자들은 모르지만 남이 보기엔 사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정하고 솔직했다. 뒤늦게 영원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유신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네.’ 싶어 더 씁쓸했다. 영원도 유신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영원이 감정에 솔직했던 건 유신 앞에서만이었다. 이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일기장 앞에서는 유신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더 솔직하게 표현한 것 같다. 용기를 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라는 가정을 자꾸 한다. 영원의 죽음이 유신과 지원, 그리고 영원의 죽음을 슬퍼하던 친구들만큼 나 또한 너무 슬프니까. 영원은 소설 인물 중 하나이고, 본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데 왜 자꾸 봤던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읽는 동안 마음이 자꾸 울컥했다. 유신과 지원이 영원을 그리워하며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눈앞이 흐릿했다. 특히, 지원이 영원을 질투했다는 것과 영원이 자신과 비교 당하면서 자신의 위치가 올라갔고 그것에 만족을 느꼈다는 것, 영원이 힘들었을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 부분에서는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질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 퇴근길 버스 안이어서 다행이었지, 집에서 읽었다면 청승맞게 눈물을 질질-, 짰을 것이다. 영원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나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불가능한 가정을 자꾸 한다. 차라리 영원이를 몰랐으면 좋았을 만큼 영원이가 보고 싶다. 영원이 같은 친구가 곁에 있었다면 싶다가도 나는 누군가에게 영원이 같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금방이라도 영원이가 축- 쳐져 있는 내 어깨 위로 시원한 이온 음료를 올리고 히죽-, 웃어줄 것 같다. 영원을 잃은 건 유신과 지원인데, 나는 왜 유신과 지원이 갖는 마음과 감정을 갖는 걸까?(F성향이 강하기는 하나, T일 때도 있다. F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 굳이 답을 찾지 않아도 되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나를 스스로 비웃는다. 정해진 답은 없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 드는 생각이 답이니까.


영원과 유신은 옥상을 시작으로 서로의 세계를 넓히고, 서로의 세계가 되어주었다. 생각지 못한, 이별로 인해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해서 차라리 흐릿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 유신에게 영원의 쌍둥이 형 지원은 영원을 함께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지원과 유신의 관계 또한 영원 덕분에 이어진 것이다. 영원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에게 행복과 사랑, 다정함을 아무 조건 없이 주던 아이였다. 유신이 스스로 몰라서 영원이 알려준 것처럼 유신은 영원의 그런 다정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영원의 예쁜 모습들을 직접 말해주지 못해 후회를 반복하지만, 그 후회는 이제야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영원의 죽음에 솔직하게 슬퍼하며 한층 더 성장하는 유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롭고 두려움이 앞서는 일을 유신은 잘 해냈다. 앞으로 영원을 향한 마음을 정리(추억으로 만드는 시간을 의미한다)하는데 시간을 더 보내야 할 것이다. 전에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지원이 있다(유신과 지원이 더 친해지면, 영원이 꿈에 나와 왜 둘이 더 친해진 거냐며 유신에게 삐질지도 모르겠다). 지원과 함께라면 옥상으로 가는 길도, 영원을 떠올리는 일도, 영원이 남겨두고 간 일기장과 책들을 꺼내 읽는 일도 슬픔이 아니라 영원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 확실하다. 영원은 유신과 지원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나 또한 영원을 내 기억이 다하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다. 기억하니까, 유신이 대필을 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신은 대필하면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 그렇게 자신의 존재와 위치가 선명해진다고 했다. 유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단 대필이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택했고, 영원은 대필이 아닌 유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길 바란다고, 써보라고 계속 옆에서 유신의 존재에 색을 칠했다. 유신은 두고두고 영원이 자신에게 해준 말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영원처럼 자신의 글이 재밌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쓸 것이다. 영원이 일기장에 적은 대로 유신은 영원에게 엄청 고마워 할 것이다. 유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면 영원은 그 누구보다 좋아할 것이다. 대필을 멈추고, 영원이 자신에게 남긴 책들을 읽고 형식 상관없이 한 편씩 글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넣는 모습을 보니 유신의 세계가 단단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유신이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일, 다 영원의 덕분이다. 누군가의 세계를 이렇게 단단하고 넓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능력을 순간순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이 같은 존재들이, 유신이 같은 존재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작가님 말대로 세상이 조금은 더 사랑스러워졌으면 좋겠다. 영원과 유신이 많은 세상이라면 힘든 일들이 몰아 닥쳐도 버틸 힘이 생길 것 같다. 세상이 사랑스러워지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시간이 흘러 그 마음이 옅어지더라도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은 언제든 내 발밑에서 내 세계를 단단히 받쳐줄 테니까. 절대 무너지지 않을 마음이니까. 우연히 지나친 건물의 옥상을 보다가, 지는 노을을 보다가, 삼삼오오 모여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입을 벌리고 시원하게 웃는 학생들을 보다가 그렇게 나의 하루를 채우는 순간순간에서 영원과 유신을 발견할 것이다. 영원이 유신에게 유신의 세계를 알려주고, 세계를 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한 것처럼 나는 나에게영원과 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원의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세상 곳곳에 유신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다가가 세계에 발을 들여 서로의 세계에 특별한 존재가 되어주는 행복한 날을 상상하며 나에게 영원이 되어주는 연습을 부지런히 할 것이다. 언제일지 알 수 있지만 영원의 숨결이 내 안에 닿을 때, 대필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쓸 준비가 된 유신에게 내가 쓴 글을 들고 찾아갈 생각이다. 유신과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대필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쓸 유신을 응원한다는 핑계로 영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며칠을 밤새울 것이다. 옥상에서 기다릴게를 통해, 진짜 나를 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진짜 나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영원과 같은 존재를 만날 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도 다짐 끝에 붙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원과 같은 존재가 되는 날도.


영원과 유신이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던 옥상을 떠올린다. 옥상에서 둘이 속삭이던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갔을 것이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 있는 영원과 유신에게 찾아간 것이다. 영원과 유신, 바람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옥상에서의 둘의 시간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답고, 손을 대기만 해도 톡- 터질 것 같이 투명한지. 아니, 지원과 나는 안다(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둘의 예쁜 모습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행복만 했어야 할 만큼 예쁜 둘인데, 세상이 둘을 질투하여 마법을 부렸다. 세상의 마법은 더 이상 유신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유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영원의 죽음을 유신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보내주는 중이니까. 유신의 솔직한 고백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아팠지만 행복했다. 유신이 부러웠다. 영원의 친구였고 친구이고, 친구일 테니까. 유신이 옥상을 찾을 때면 하늘을 바라보며, 유신을 기다리고 있는 영원이 있을 것이다. 유신이 , 김영원!”하고 부르면 세상 밝은 얼굴을 하고 뒤돌아보며 왜 이제 와! 보고 싶었어!”라고 영원이 말할 것이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자이언트북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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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박사의 딸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지음, 김은서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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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타의 삶이 세계 곳곳에 얼마나 있을까.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모로 박사의 딸(황금가지)



 

모로 박사의 딸H.G.웰스의 SF 고전 모로 박사의 섬19세기 멕시코를 무대로 다시 태어났다. 유카탄반도 야샥툰에 자리한 외딴 저택에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자란 카를로타 모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 모로 박사의 비밀스러운 실험과 그 실험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이라는 줄거리만 보고,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다가 책장을 넘겼다. 상상했던 부분과 얼추 맞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 전혀 다르게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조금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생각의 뿌리에서 다양한 모양과 길이를 가진 줄기가 끝도 없이 퍼져 나가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만난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과 감정, 에너지 등을 낭비하고 있는 요즘의 나를 몰입하게 만든 고마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카를로타 모로의 삶에 발을 들인 순간, 그녀의 삶을 오랫동안 기억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카를로타 모로는 유카탄반도 야샥툰에 자리한 외딴 저택에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자랐으며, 벗이라고는 무수한 책과 아버지 모로 박사의 비밀스러운 실험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뿐이다. 카를로타의 단절된 삶이 부럽다고 하면, 내가 누리는 자유를 가볍게 여긴다고, 복에 겨워서 우스운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삶이 내가 바라는 삶, 부러워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게 꿈일 정도로 바깥세상은 내가 숨 쉬고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 버거운 곳이다. 단절된 삶에서 딱히 답답함을 느끼거나 바깥세상을 궁금해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그 삶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이어짐보다 단절이 어울리는, 아니 애초에 단절이 아닌 다른 것은 들어올 틈이 없던 카를로타의 삶에 모로의 후원자(에르난도) 소개로 새 집사 몽고메리 로턴를 들이게 되었다. 이어서 완벽하게 균형 잡혀 있던 정적인 그녀의 세계갑작스러운 방문객의 등장으로 서서히, 그리고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단절에 틈이 생기면서, 그 틈으로 그녀에게는 새로운 것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보고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답답할 정도로 단절되어 있다. 오랫동안 단절된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는 몽고메리를 시작으로 모로 박사의 실험 후원자, 후원자의 아들과 사촌은 바깥세상과 이어지는 통로가 아닐 수 없다. 야샥툰 너머의 바깥세상을 향하는 기회가 드디어 그녀에게 주어지는 것일까? 그녀는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을 가둔 야샥툰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에두아르도를 알면 알수록 야샥툰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행한 예감이 들었다. 언제나 그녀의 이성이 본능을 넘어섰다고 생각했지만, 그 무엇도 본능을 넘어설 수는 없었던 걸까. 카를로타는 모로 박사 후원자의 아들 에두아르도와 모든 첫 경험을 한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 처음 갖는 관계, 그리고 야샥툰을 떠나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사는 삶 등등. 에두아르도의 등장은 몽고메리 로턴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카를로타를 비춘다. 스토리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수록 카를로타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이성적이고 꽉 막힌 것처럼 보이던 카를로타는 본능 앞에서 당연하게도 무너졌고, 흔히들 하는 착각과 더불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그 미래를 확신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자신을 묶어둔 아버지 모로 박사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으니까.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무수한 책과 동물 인간들하고만 지낸 그녀의 문제점이 에두아르도와 함께 있을 때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에두아르도는 그녀의 두드러진 문제를 약삭빠르게 알아채고, 그저 카를로타의 아름다움에 빠져 충동적이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탐하고 있었고, 그걸 같은 남자인 몽고메리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정작 알아차려야 하는 카를로타는 에두아르도 앞에서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상태다. 무엇보다 아버지 모로 박사는 실험 후원자의 후원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며 딸 카를로타를 후원자의 아들과 결혼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상황을 만든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을 부려 먹을 수 있는 동물 인간을 만드는 것이 조건이었지만 모로 박사는 시간이 갈수록 그렇다 할 결과물을 후원자에게 보이지 못했고, 후원자는 모로 박사의 후원을 점차 줄였다. 후원이 줄면 당연히 실험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테고 실험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후원이 필요한데, 금전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딸을 후원자의 아들과 결혼시키는 거라니. 모로 박사의 이기적인 욕심은 끝이 없었다. 자연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모로 박사는 이미 정신이 무너진 건지도 모른다. 자연의 문제는 모로 박사의 욕심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실험 끝에 탄생한 것은 보기 흉하고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동물 인간뿐이다. 모로 박사가 남긴 유산은 카를로타가 말했듯이 비참함과 고통이다. 원하지 않는 탄생,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삶을 모로 박사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겁 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카를로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카를로타는 모로 박사가 만든 가장 완벽한 동물 인간이었고, 그 사실을 카를로타에게 숨겼다. 훗날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혼란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카를로타는 아버지 모로 박사와 야샥툰이 자신의 전부였다. 하지만 모로 박사에게는 떠나보낸 부인과 자식이 있었고, 카를로타는 그저 대체품에 불과했다. 카를로타는 자신이 대체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모로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카를로타를 정성껏 돌봤지만, 그건 떠난 아내와 자식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대체품마저 떠나보낼 수 없어서 애써 발버둥 친 게 아니었을까. 모로 박사는 카를로타에게 잔인했다. 카를로타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야샥툰을 사랑하지만, 숨어 있던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마주할 때마다 혼란과 분노를 감추지 못할 것이다. 모로 박사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카를로타가 감당해야 할 상처가 광활한 우주를 덮을 것 같다. 깥세상과의 단절은 카를로타의 선택이 아니었다. 아니, 카를로타의 탄생은 그녀의 선택도, 그렇다고 신의 선택도 아니었다.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모로 박사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모로 박사는 허영심이 가득 찬 자신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 같지만, 자신이 벌인 실험에 대한 찬사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모로 박사의 거만한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애초에 모로 박사에게 동물 인간을 조건으로 후원을 한 후원자를 탓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구린 짓을 해서라도 큰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들을 만든 신을 원망해야 할까? 원망의 화살이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겨냥한다.


카를로타의 삶이 동물 인간의 삶보다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동물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동물 인간 루페가 오히려 열린 생각을 품고 있어서 놀랐다. 동물 인간이라고 해서 생각 없이 본능만 있을 거라고 단언한 내가 어리석었다. 루페는 밖으로 나가길 원했다. 야샥툰 바깥의 세상을 궁금해하고, 밖에서의 미래를 꿈꾸는 것 같았다. 원했지만 현실이 동물 인간들을 쉽게 놓아줄 리가 있을까. 그들은 그저 모로 박사의 실험품이며, 후원자 에르난도의 소유물뿐이었다. 하지만 루페는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구체성을 띠며, 카를로타를 자극했다. 그녀가 자극에 감정이 상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루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리라. 카를로타는 루페가 자신의 여동생이고, 카치토가 자신의 남동생이라고 우리는 가족이라고말했지만, 루페가 오히려 그녀를 더 가족으로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루페는 자신의 삶보다 카를로타의 삶이 더 걱정되었던 것 같다. 반갑지 않은 방문에 미리 머물렀던 곳을 떠나는 동물 인간들 사이에서 다시 카를로타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걸 보니 말이다. 동물 인간들이 떠나는 그 길은 동물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을까? 동물 인간으로 태어나 갇힌 세상을 살던 그들이 인간으로 살 수 있을까?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인간들과 섞여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카를로타와 몽고메리도 몸져누운 모로 박사를 두고,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루페가 돌아온 것처럼 카를로타 또한 다시 모로 박사 곁으로 돌아왔을까? 내가 던진 이 물음들은 카를로타의 삶이, 야샥툰의 삶이 그들에게 잔인해서 그 잔인함의 책임을 묻고자 위함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모로 박사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만, 그는 몸져누워 곧 이승을 떠날 상태가 아닌가. 그녀의 아버지가 죽음을 목전에 둔 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봤자, 그가 책임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던 모로 박사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가 남긴 건 비참함과 고통, 그리고 반복되어서는 안 될 동물 인간이다. 수많은 불행한 삶을 탄생시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다. 단절된 삶을 살던 카를로타가 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뭔가 깨어나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깨달음이 이성인지,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동물적 본능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분법적으로 딱, 나눠서 표출된 것은 아니다. \루페가 아니었다면 이 깨달음조차 카를로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을 것 같다. 카를로타가 놓친 것이 많다.


동물 인간을 만드는 실험이라는 설정은 참신하거나 놀랍지 않았다. 이 주제로 많은 작품이 나왔고, 세상에는 별의별 일들이 일어나니 동물과 인간에게 실험하여 믿고 싶지 않은 존재의 탄생이 세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테니까. 읽는 동안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카를로타와 같은 존재가 인간인 척하며 우리와 같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고, 모로 박사와 같이 자신의 욕심과 허영심, 착각에 빠져 불행한 삶을 탄생시키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들이 많을 거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모로 박사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들보다 실험이 아닌 자연의 섭리를 따라 세상에 첫 숨을 뱉고, 걸음마를 떼고 언어를 배우고 부모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란 우리가 더 동물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자꾸 루페가 생각난다. 동물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분명하게 열려 있는 생각과 태도,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갖고 있는 루페가 카를로타였다면 스토리는 훨씬 더 격렬한 파동을 품은 채 결국 본인이 원하는 삶에 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카를로타가 아니었다면 격렬한 삶의 굴곡을 잘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카를로타도 동물 인간이었고, 그저 모로 박사가 탄생시킨 가장 인간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동물 인간이자 모로 박사 곁에 부재한 자리를 채운 대체품에 불과한 삶을 살았지만, 소신 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것 또한 카를로타가 아닌가 싶다. 카를로타가 동물 인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동물 인간이 인간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만큼 비슷한 모습이라면 진짜 인간들은 그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며 같은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 책장을 덮고 나서도 물음들이 끊이지 않는다. 단절된 삶에서 벗이라고는 무수한 책과 동물 인간이었지만 자신도 동물 인간이었다는 것.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카를로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힘으로, 모로 박사를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으니. 카를로타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하나씩 나열하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을 호위하는 별들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카를로타의 삶은 앞으로 어떨까, 몽고메리는 카를로타의 곁에 계속 남아줄까. ‘모로 박사의 딸은 정말 카를로타일까? 카를로타는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자신의 삶의 첫걸음을 뗄 준비를 맞췄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이별, 카를로타가 바라는 삶의 끝에 카를로타의 야샥툰에서 함께 한 이들이 모두 모여 함께 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세상 곳곳에 있을 수많은 카를로타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을 가두려고 한다면 겁내지 말고 맞서라고 자신을 믿으라고.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카를로타의 삶은 정적인 것보다 흔들리는 게 더 어울렸던 걸까. 그녀의 삶이 흔들린 건 동물 인간들이 야샥툰을 벗어난 삶을 위해서였던 건 아닐까, 결국 카를로타 자신을 위한 삶을 위해. 당연하게 누려야 할 자신만의 삶을 뒤늦게라도 쟁취한 그녀에게 끝없는 축하를 전한다. 앞으로의 길이 더 험난할지 모르지만, 그 전의 삶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갖게 될 것이다. 지키고 싶은 것, 지켜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카를로타가 더 이상 모로 가에 발 묶여 자신을 가두지 않고 자유롭고 카를로타답게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의 삶은 그 누구도 방해하거나 멈출 수 없다, 열쇠는 각자 본인이 갖고 있으니까.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황금가지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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