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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기다릴게 ㅣ 넥스트
한세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언제나 기다릴게, 옥상으로 와.
한세계, 『옥상에서 기다릴게』(자이언트북스)
청소년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갖게 만들어 준 작가님들이 많아서 감사하다. 『옥상에서 기다릴게』를 읽는데, 마음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정확하게 형용할 수 없었다.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서 다음 책장을 넘기기 무섭기도 했다. 유신이와 영원이가 갖는 마음이나 감정 등을 누렸던 그때의 나에게 미안한 게 참 많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나에게 자신, 믿음, 확신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보다 남에게 기대야만 존재한 채 살았달까.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는 영원의 쌍둥이 형 김지원의 부탁을 거절하다가 결국 수락하는 유신. 유신은 남모르게 대필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꼭 용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지만, 대필할 때만큼은 시간이 잘 간다고 했다. 대필을 떠나서 ‘글’이 유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유신은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영원은 바로 알아차리고 유신에게 끊임없이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준다. 정작 자신의 세계에서는 기죽는 모습이면서. 그래도 유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있어서 영원의 세계도 분명 넓어졌다. 유신에게 대필은 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신이 쓴 글이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닌 대필을 의뢰한 사람의 이름이 자리 잡는 것을 볼 때마다 유신은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공허할 것이다. 의뢰받은 사람인 척 글을 쓰고 대가(돈)를 받지만, 유신이 그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유신이 쓴 글은 의뢰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유신의 그런 마음을, 유신도 모르는 유신의 모습을 알아준 건 김영원이었다. 영원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위로를 건네고 보듬어 줄 다정함이 있다. 김영원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친구를 구하다가 세상을 떠나버린 영원. 유신은 영원의 죽음 이후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내는 것 같다. 영원을 죽인 사람이 본인이라고, 유신은 그렇게 영원을 향한 미안함과 그리움, 절망을 복합적으로 안은 채 영원과의 추억을 외로이 돌아보며, 쓴맛을 느낀다. 유신은 영원을 잊으려 하기보다(영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것조차 미안해서 애써 영원과의 시간을 마음 깊숙이 꾹꾹- 눌러 내린 건지도 모른다. 영원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원이 준 ‘영원의 일기장’ 때문에 유신은 어쩌면 영원과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기장을 넘기기까지, 일기장을 다 읽기까지 유신은 용기가 필요했다. 영원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영원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영원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유신은 두려웠다. 영원을 향한 복합적인 감정을 달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영원과 유신이 처음 대화를 한 곳은 학교 옥상이었다. 옥상이라는 공간이 주는 뻥- 뚫린 시원함과 동시에 사방이 뚫려 괜히 느껴지는 서늘함이 두 사람의 거리를 가깝게, 그리고 옥상을 찾는 이유에 ‘진짜 이유’를 찾아준 것 같다. 유신과 영원은 사방이 뚫려 있는 옥상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청소년 시기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학업 문제, 부모님과의 갈등 등 수많은 것이 쉴 새 없이 몰려와 정신없는 와중에 숨구멍을 찾은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이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처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때론 형용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된다. 그 숨구멍이 둘에게는 옥상이었다. 옥상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옥상이 아니었다면 이 둘은 서로에게 특별한 친구가 되어줄 수 없었을 테니까, 서로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덥지만 마음만큼은 시원한 여름을 보내지 못했을 테니까. 옥상에서 자주 만나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은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고, 본인 세계에 들어오는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성격이 좋고 언제나 웃고 다니는 영원은 지금껏 보여준 모습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진짜 모습을 고백하는 영원은 친구들이 알고 있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영원은 남들이 하는 기대에 맞춰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자신과 달리, 공부를 잘하는 형 지원과 영원을 비교하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또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엉켜 영원을 힘들게 했다. 영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 너무 늦은 걸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를 드러냈음에도 주변 사람들이 각자 보고 싶은 대로 영원을 보고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자주 우리가 보고 싶고, 말하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보고 말하고 믿는다. 영원은 사람들의 편한 생각의 피해자가 아닐까. 진짜 모습을 꼭꼭 감춘 영원이 유신에게 고백한 것은 유신을 믿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믿음을 떠나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영원은 진짜 자신을 알아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상대가 유신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신과의 첫 만남이 영원에게는 강렬했을 것이다. 난간에 서 있는 유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유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기장에 적은 걸 보면 영원과 유신은 특별한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영원은 없고, 영원의 일기장은 남겨져 있는 참 외로운 이 상황. 그 사람의 온기는 없는데,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일기장에는 그날 그 순간의 그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어 읽는 동안 심장이 비틀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 경험하고 싶지 않은 형용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하지만 유신은 그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평생 영원을 향한 죄책감으로 살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살게 되면 영원과 보낸 찬란하게 눈부시고 행복했던 날들이 후회와 눈물로 번질 테니까. 영원의 죽음의 죄책감에 갇혀 살아가던 유신에게 지원과 영원의 일기장은 유신에게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과 같은 역할을 했다. 유신은 영원이 남긴 일기를 통해 영원의 진심을, -영원의 진심을 알고 있다. 그런데 모른 척 했을 뿐이다.- 영원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함으로써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면서도 영원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영원의 일기를 읽는 유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를 영원에게, 유신에게 대입해서 상상한 결과 나는 유신의 입장에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함께 있을 때 더 잘해줄걸, 괜찮다고 말해줄 걸,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말해줄 걸, 네가 있어서 내 세상이 특별해졌다고 말해줄 걸, 너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설렌다고 말해줄 걸’ 등 수많은 후회로 스스로 마음에 짙은 멍을 만드니까. 남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이렇게 무겁다면, 차라리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자주 내가 떠나고 남겨진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린다. 주변 사람이 많지 않지만, 내가 떠난 이후 남겨진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가라앉아 있다. 나를 떠나보내는 일이 슬픈 일이지만, 금방 털어내고 웃으면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물이 나를 살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낸다면 모를까, 내가 다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후회 대신 함께 한 행복한 시간들을 아주 가끔 떠올리면서. 유신은 영원을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에 슬퍼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슬퍼하지 못하니 영원을 제대로 보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원이 바라는 건 유신의 행복일 것이다. 유신 당사자보다 유신의 행복을 더 간절히 바랐다. 영원은 알았을까, 영원이를 만난 덕분에 유신이 세상은 환해졌다는 것을. 영원이 살아있다면, 축- 늘어져 있는 유신의 어깨를 힘껏 때리며 “정신 차려! 기운 없으면 달달한 게 최고지!”라며, 주머니 속에서 달콤한 과자를 꺼내 유신의 손에 쥐어 줬을 것이다. 영원과 함께 옥상에서 보낸 시간, 그 여름은 평생 유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매년 여름이 오면 영원과 함께 했던 옥상이, 나눠마시던 이온 음료가, 피식- 웃음을 자아내던 이야기들이 고개를 내밀어 얼굴을 환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영원이 유신과 함께 할 것이다.
유신과 지원은 영원을 잃고 나서야 그동안 속에 꽁꽁-, 감췄던 마음을 고백한다. 고백도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고 했던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평생 후회로 남는 고백이 잔인하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지원이 유신에게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고 제안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영원이 떠났는데도 별로 슬퍼 보이지 않아서 밉기까지 했다. 근데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고 한 이유, 영원을 향한 지원의 진심을 듣고 나서 꽁꽁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녹았다. 지원이도 영원에게 많이 미안해하고 있고,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영원이 있을 때, 표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원은 그런 지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원은 자꾸 영원이 생각나고, 잠을 잘 수 없는지도 모른다. 유신과 지원은 영원을 보고 싶어 하고 있다.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한 것이다. 인정하기 싫어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정하기에는 영원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랬던 거다. 영원이 옆에 있었다면, “오글거려! 미안하면 앞으로 잘해!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겠구먼!”이라며 자신만만한 표정과 과장된 몸짓을 취하며 분위기를 띄워줬을 것이다. 유신과 지원의 사이에는 영원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영원을 아는 아이들이라면 영원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영원은 자신을 못났다고 했지만, 전혀 아니다. 그 말을 직접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유신의 모습은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아팠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기에. 당시엔 그 말이 왜 나오지 않았는지, 어째서 용기를 내어 솔직한 내 마음을 고백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솔직히 털어놓고 나서 이어질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와 멀어질 거리를 지레짐작하여 겁내어 숨기를 선택했다. 겁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싫어서 부정을 강하게 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나와 반대로 영원은 언제나 솔직히 드러내고, 언제나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영원은 피하지 않았다. 영원의 확고한 행동과 말이 유신의 세계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영원과 유신을 보며 알았다. 흔히 ‘첫사랑’이라고 할까.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아서 첫사랑이라며, 가끔 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유신에게 영원이 첫사랑인지 알 수 없으나, 친구 이상의 존재였던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읽는 내내 영원과 유신 당사자들은 모르지만 남이 보기엔 사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정하고 솔직했다. 뒤늦게 영원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유신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네.’ 싶어 더 씁쓸했다. 영원도 유신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영원이 감정에 솔직했던 건 유신 앞에서만이었다. 이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일기장 앞에서는 유신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더 솔직하게 표현한 것 같다. 용기를 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라는 가정을 자꾸 한다. 영원의 죽음이 유신과 지원, 그리고 영원의 죽음을 슬퍼하던 친구들만큼 나 또한 너무 슬프니까. 영원은 소설 인물 중 하나이고, 본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데 왜 자꾸 봤던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읽는 동안 마음이 자꾸 울컥했다. 유신과 지원이 영원을 그리워하며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눈앞이 흐릿했다. 특히, 지원이 영원을 질투했다는 것과 영원이 자신과 비교 당하면서 자신의 위치가 올라갔고 그것에 만족을 느꼈다는 것, 영원이 힘들었을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 부분에서는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질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 퇴근길 버스 안이어서 다행이었지, 집에서 읽었다면 청승맞게 눈물을 질질-, 짰을 것이다. 영원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나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불가능한 가정을 자꾸 한다. 차라리 영원이를 몰랐으면 좋았을 만큼 영원이가 보고 싶다. 영원이 같은 친구가 곁에 있었다면 싶다가도 나는 누군가에게 영원이 같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금방이라도 영원이가 축- 쳐져 있는 내 어깨 위로 시원한 이온 음료를 올리고 히죽-, 웃어줄 것 같다. 영원을 잃은 건 유신과 지원인데, 나는 왜 유신과 지원이 갖는 마음과 감정을 갖는 걸까?(F성향이 강하기는 하나, T일 때도 있다. F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 굳이 답을 찾지 않아도 되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나를 스스로 비웃는다. 정해진 답은 없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 드는 생각이 답이니까.
영원과 유신은 ‘옥상’을 시작으로 서로의 세계를 넓히고, 서로의 세계가 되어주었다. 생각지 못한, 이별로 인해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해서 차라리 흐릿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 유신에게 영원의 쌍둥이 형 지원은 ‘영원’을 함께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지원과 유신의 관계 또한 영원 덕분에 이어진 것이다. 영원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에게 행복과 사랑, 다정함을 아무 조건 없이 주던 아이였다. 유신이 스스로 몰라서 영원이 알려준 것처럼 유신은 영원의 그런 다정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영원의 예쁜 모습들을 직접 말해주지 못해 후회를 반복하지만, 그 후회는 이제야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영원의 죽음에 솔직하게 슬퍼하며 한층 더 성장하는 유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롭고 두려움이 앞서는 일을 유신은 잘 해냈다. 앞으로 영원을 향한 마음을 정리(추억으로 만드는 시간을 의미한다)하는데 시간을 더 보내야 할 것이다. 전에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지원이 있다’(유신과 지원이 더 친해지면, 영원이 꿈에 나와 왜 둘이 더 친해진 거냐며 유신에게 삐질지도 모르겠다). 지원과 함께라면 옥상으로 가는 길도, 영원을 떠올리는 일도, 영원이 남겨두고 간 일기장과 책들을 꺼내 읽는 일도 슬픔이 아니라 영원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 확실하다. 영원은 유신과 지원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나 또한 영원을 내 기억이 다하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다. 기억하니까, 유신이 대필을 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신은 대필하면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 그렇게 자신의 존재와 위치가 선명해진다고 했다. 유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단 대필이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택했고, 영원은 대필이 아닌 유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길 바란다고, 써보라고 계속 옆에서 유신의 존재에 색을 칠했다. 유신은 두고두고 영원이 자신에게 해준 말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영원처럼 자신의 글이 재밌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쓸 것이다. 영원이 일기장에 적은 대로 유신은 영원에게 엄청 고마워 할 것이다. 유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면 영원은 그 누구보다 좋아할 것이다. 대필을 멈추고, 영원이 자신에게 남긴 책들을 읽고 형식 상관없이 한 편씩 글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넣는 모습을 보니 유신의 세계가 단단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유신이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일, 다 영원의 덕분이다. 누군가의 세계를 이렇게 단단하고 넓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능력을 순간순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이 같은 존재들이, 유신이 같은 존재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작가님 말대로 세상이 조금은 더 사랑스러워졌으면 좋겠다. 영원과 유신이 많은 세상이라면 힘든 일들이 몰아 닥쳐도 버틸 힘이 생길 것 같다. 세상이 사랑스러워지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시간이 흘러 그 마음이 옅어지더라도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은 언제든 내 발밑에서 내 세계를 단단히 받쳐줄 테니까. 절대 무너지지 않을 마음이니까. 우연히 지나친 건물의 옥상을 보다가, 지는 노을을 보다가, 삼삼오오 모여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입을 벌리고 시원하게 웃는 학생들을 보다가 그렇게 나의 하루를 채우는 순간순간에서 영원과 유신을 발견할 것이다. 영원이 유신에게 유신의 세계를 알려주고, 세계를 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한 것처럼 나는 ‘나에게’ 영원과 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원의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세상 곳곳에 유신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다가가 세계에 발을 들여 서로의 세계에 특별한 존재가 되어주는 행복한 날을 상상하며 나에게 영원이 되어주는 연습을 부지런히 할 것이다. 언제일지 알 수 있지만 영원의 숨결이 내 안에 닿을 때, 대필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쓸 준비가 된 유신에게 내가 쓴 글을 들고 찾아갈 생각이다. 유신과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대필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쓸 유신을 응원한다는 핑계로 영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며칠을 밤새울 것이다. 『옥상에서 기다릴게』를 통해, 진짜 나를 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진짜 나’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영원과 같은 존재를 만날 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도 다짐 끝에 붙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원과 같은 존재가 되는 날도.
영원과 유신이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던 ‘옥상’을 떠올린다. 옥상에서 둘이 속삭이던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갔을 것이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 있는 영원과 유신에게 찾아간 것이다. 영원과 유신, 바람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옥상에서의 둘의 시간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답고, 손을 대기만 해도 톡- 터질 것 같이 투명한지. 아니, 지원과 나는 안다(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둘의 예쁜 모습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행복만 했어야 할 만큼 예쁜 둘인데, 세상이 둘을 질투하여 마법을 부렸다. 세상의 마법은 더 이상 유신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유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영원의 죽음을 유신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보내주는 중이니까. 유신의 솔직한 고백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아팠지만 행복했다. 유신이 부러웠다. 영원의 친구였고 친구이고, 친구일 테니까. 유신이 옥상을 찾을 때면 하늘을 바라보며, 유신을 기다리고 있는 영원이 있을 것이다. 유신이 “야, 김영원!”하고 부르면 세상 밝은 얼굴을 하고 뒤돌아보며 “왜 이제 와! 보고 싶었어!”라고 영원이 말할 것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자이언트북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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