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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박사의 딸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지음, 김은서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2월
평점 :
카를로타의 삶이 세계 곳곳에 얼마나 있을까.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모로 박사의 딸』(황금가지)
『모로 박사의 딸』은 H.G.웰스의 SF 고전 『모로 박사의 섬』이 19세기 멕시코를 무대로 다시 태어났다. 유카탄반도 야샥툰에 자리한 외딴 저택에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자란 카를로타 모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 모로 박사의 비밀스러운 실험과 그 실험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이라는 줄거리만 보고,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다가 책장을 넘겼다. 상상했던 부분과 얼추 맞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 전혀 다르게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조금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생각의 뿌리에서 다양한 모양과 길이를 가진 줄기가 끝도 없이 퍼져 나가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만난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과 감정, 에너지 등을 낭비하고 있는 요즘의 나를 ‘몰입’하게 만든 고마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카를로타 모로의 삶에 발을 들인 순간, 그녀의 삶을 오랫동안 기억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카를로타 모로는 유카탄반도 야샥툰에 자리한 외딴 저택에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자랐으며, 벗이라고는 무수한 책과 아버지 모로 박사의 비밀스러운 실험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뿐이다. 카를로타의 단절된 삶이 부럽다고 하면, 내가 누리는 자유를 가볍게 여긴다고, 복에 겨워서 우스운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삶이 내가 바라는 삶, 부러워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게 꿈일 정도로 바깥세상은 내가 숨 쉬고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 버거운 곳이다. 단절된 삶에서 딱히 답답함을 느끼거나 바깥세상을 궁금해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그 삶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이어짐보다 단절이 어울리는, 아니 애초에 단절이 아닌 다른 것은 들어올 틈이 없던 카를로타의 삶에 모로의 후원자(에르난도) 소개로 새 집사 ‘몽고메리 로턴’를 들이게 되었다. 이어서 ‘완벽하게 균형 잡혀 있던 정적인 그녀의 세계’는 갑작스러운 방문객의 등장으로 서서히, 그리고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단절에 틈이 생기면서, 그 틈으로 그녀에게는 새로운 것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보고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답답할 정도로 단절되어 있다. 오랫동안 단절된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는 몽고메리를 시작으로 모로 박사의 실험 후원자, 후원자의 아들과 사촌은 바깥세상과 이어지는 통로가 아닐 수 없다. 야샥툰 너머의 바깥세상을 향하는 기회가 드디어 그녀에게 주어지는 것일까? 그녀는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을 가둔 야샥툰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에두아르도를 알면 알수록 야샥툰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행한 예감이 들었다. 언제나 그녀의 이성이 본능을 넘어섰다고 생각했지만, 그 무엇도 본능을 넘어설 수는 없었던 걸까. 카를로타는 모로 박사 후원자의 아들 ‘에두아르도’와 모든 첫 경험을 한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 처음 갖는 관계, 그리고 야샥툰을 떠나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사는 삶 등등. 에두아르도의 등장은 몽고메리 로턴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카를로타를 비춘다. 스토리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수록 카를로타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이성적이고 꽉 막힌 것처럼 보이던 카를로타는 본능 앞에서 당연하게도 무너졌고, 흔히들 하는 착각과 더불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그 미래를 확신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자신을 묶어둔 아버지 모로 박사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으니까.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무수한 책과 동물 인간들하고만 지낸 그녀의 문제점이 에두아르도와 함께 있을 때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에두아르도는 그녀의 두드러진 문제를 약삭빠르게 알아채고, 그저 카를로타의 아름다움에 빠져 충동적이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탐하고 있었고, 그걸 같은 남자인 몽고메리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정작 알아차려야 하는 카를로타는 에두아르도 앞에서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상태다. 무엇보다 아버지 모로 박사는 실험 후원자의 후원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며 딸 카를로타를 후원자의 아들과 결혼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상황을 만든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을 부려 먹을 수 있는 동물 인간을 만드는 것이 조건이었지만 모로 박사는 시간이 갈수록 그렇다 할 결과물을 후원자에게 보이지 못했고, 후원자는 모로 박사의 후원을 점차 줄였다. 후원이 줄면 당연히 실험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테고 실험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후원이 필요한데, 금전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딸을 후원자의 아들과 결혼시키는 거라니. 모로 박사의 이기적인 욕심은 끝이 없었다. 자연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모로 박사는 이미 정신이 무너진 건지도 모른다. 자연의 문제는 모로 박사의 욕심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실험 끝에 탄생한 것은 보기 흉하고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동물 인간뿐이다. 모로 박사가 남긴 유산은 카를로타가 말했듯이 ‘비참함과 고통’이다. 원하지 않는 탄생,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삶을 모로 박사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겁 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카를로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카를로타는 모로 박사가 만든 가장 완벽한 동물 인간이었고, 그 사실을 카를로타에게 숨겼다. 훗날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혼란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카를로타는 아버지 모로 박사와 야샥툰이 자신의 전부였다. 하지만 모로 박사에게는 떠나보낸 부인과 자식이 있었고, 카를로타는 그저 대체품에 불과했다. 카를로타는 자신이 대체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모로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카를로타를 정성껏 돌봤지만, 그건 떠난 아내와 자식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대체품마저 떠나보낼 수 없어서 애써 발버둥 친 게 아니었을까. 모로 박사는 카를로타에게 잔인했다. 카를로타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야샥툰을 사랑하지만, 숨어 있던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마주할 때마다 혼란과 분노를 감추지 못할 것이다. 모로 박사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카를로타가 감당해야 할 상처가 광활한 우주를 덮을 것 같다. 바깥세상과의 단절은 카를로타의 선택이 아니었다. 아니, 카를로타의 탄생은 그녀의 선택도, 그렇다고 신의 선택도 아니었다.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모로 박사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모로 박사는 허영심이 가득 찬 자신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 같지만, 자신이 벌인 실험에 대한 찬사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모로 박사의 거만한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애초에 모로 박사에게 동물 인간을 조건으로 후원을 한 후원자를 탓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구린 짓을 해서라도 큰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들을 만든 신을 원망해야 할까? 원망의 화살이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겨냥한다.
카를로타의 삶이 동물 인간의 삶보다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동물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동물 인간 ‘루페’가 오히려 열린 생각을 품고 있어서 놀랐다. 동물 인간이라고 해서 생각 없이 본능만 있을 거라고 단언한 내가 어리석었다. 루페는 밖으로 나가길 원했다. 야샥툰 바깥의 세상을 궁금해하고, 밖에서의 미래를 꿈꾸는 것 같았다. 원했지만 현실이 동물 인간들을 쉽게 놓아줄 리가 있을까. 그들은 그저 모로 박사의 실험품이며, 후원자 에르난도의 소유물뿐이었다. 하지만 루페는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구체성을 띠며, 카를로타를 자극했다. 그녀가 자극에 감정이 상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루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리라. 카를로타는 루페가 자신의 여동생이고, 카치토가 자신의 남동생이라고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했지만, 루페가 오히려 그녀를 더 가족으로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루페는 자신의 삶보다 카를로타의 삶이 더 걱정되었던 것 같다. 반갑지 않은 방문에 미리 머물렀던 곳을 떠나는 동물 인간들 사이에서 다시 카를로타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걸 보니 말이다. 동물 인간들이 떠나는 그 길은 동물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을까? 동물 인간으로 태어나 갇힌 세상을 살던 그들이 인간으로 살 수 있을까?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인간들과 섞여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카를로타와 몽고메리도 몸져누운 모로 박사를 두고,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루페가 돌아온 것처럼 카를로타 또한 다시 모로 박사 곁으로 돌아왔을까? 내가 던진 이 물음들은 카를로타의 삶이, 야샥툰의 삶이 그들에게 잔인해서 그 잔인함의 책임을 묻고자 위함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모로 박사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만, 그는 몸져누워 곧 이승을 떠날 상태가 아닌가. 그녀의 아버지가 죽음을 목전에 둔 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봤자, 그가 책임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던 모로 박사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가 남긴 건 비참함과 고통, 그리고 반복되어서는 안 될 동물 인간이다. 수많은 불행한 삶을 탄생시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다. 단절된 삶을 살던 카를로타가 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뭔가 깨어나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깨달음이 이성인지,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동물적 본능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분법적으로 딱, 나눠서 표출된 것은 아니다. \루페가 아니었다면 이 깨달음조차 카를로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을 것 같다. 카를로타가 놓친 것이 많다.
‘동물 인간을 만드는 실험’이라는 설정은 참신하거나 놀랍지 않았다. 이 주제로 많은 작품이 나왔고, 세상에는 별의별 일들이 일어나니 동물과 인간에게 실험하여 믿고 싶지 않은 존재의 탄생이 세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테니까. 읽는 동안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카를로타와 같은 존재가 인간인 척하며 우리와 같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고, 모로 박사와 같이 자신의 욕심과 허영심, 착각에 빠져 불행한 삶을 탄생시키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들’이 많을 거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모로 박사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들보다 실험이 아닌 자연의 섭리를 따라 세상에 첫 숨을 뱉고, 걸음마를 떼고 언어를 배우고 부모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란 우리가 더 동물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자꾸 루페가 생각난다. 동물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분명하게 열려 있는 생각과 태도,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갖고 있는 루페가 카를로타였다면 스토리는 훨씬 더 격렬한 파동을 품은 채 결국 본인이 원하는 삶에 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카를로타가 아니었다면 격렬한 삶의 굴곡을 잘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카를로타도 동물 인간이었고, 그저 모로 박사가 탄생시킨 가장 인간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동물 인간이자 모로 박사 곁에 부재한 자리를 채운 대체품에 불과한 삶을 살았지만, 소신 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것 또한 카를로타가 아닌가 싶다. 카를로타가 동물 인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동물 인간이 인간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만큼 비슷한 모습이라면 진짜 인간들은 그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며 같은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 책장을 덮고 나서도 물음들이 끊이지 않는다. 단절된 삶에서 벗이라고는 무수한 책과 동물 인간이었지만 자신도 동물 인간이었다는 것.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카를로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힘으로, 모로 박사를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으니. 카를로타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하나씩 나열하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을 호위하는 별들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카를로타의 삶은 앞으로 어떨까, 몽고메리는 카를로타의 곁에 계속 남아줄까. ‘모로 박사의 딸’은 정말 카를로타일까? 카를로타는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자신의 삶’의 첫걸음을 뗄 준비를 맞췄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이별, 카를로타가 바라는 삶의 끝에 카를로타의 야샥툰에서 함께 한 이들이 모두 모여 함께 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세상 곳곳에 있을 수많은 카를로타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을 가두려고 한다면 겁내지 말고 맞서라고 자신을 믿으라고.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카를로타의 삶은 정적인 것보다 흔들리는 게 더 어울렸던 걸까. 그녀의 삶이 흔들린 건 동물 인간들이 야샥툰을 벗어난 삶을 위해서였던 건 아닐까, 결국 카를로타 자신을 위한 삶을 위해. 당연하게 누려야 할 자신만의 삶을 뒤늦게라도 쟁취한 그녀에게 끝없는 축하를 전한다. 앞으로의 길이 더 험난할지 모르지만, 그 전의 삶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갖게 될 것이다. 지키고 싶은 것, 지켜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카를로타가 더 이상 모로 가에 발 묶여 자신을 가두지 않고 자유롭고 ‘카를로타답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의 삶은 그 누구도 방해하거나 멈출 수 없다, 열쇠는 각자 본인이 갖고 있으니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황금가지’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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